2011-05-08 쉬운 길로 가지 마라
2011-05-08 목양칼럼
쉬운 길로 가지 마라!
편해지고 싶고 그래서 타협하고 싶어 하는 나 자신을 잘 알기에 마음에 새기고 외치는 소리다. 그러나 그 말의 진의(眞意)가 고통을 무조건 사서 하자는 뜻은 결코 아니다.
이번에 한국에서 누군가가 예수님을 흉내 내어 십자가에 스스로를 못 박은 모양이다. 완전한 자살인지, 누군가 협조했는지 아직으로서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모든 정황이 스스로의 결정이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불행하게도 교회의 역사에서 이런 일은 계속 반복되어 왔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고난을 자기의 것으로 삼기 위해 몸을 상해(傷害)하고 심지어 스스로 죽기까지 했다.
인간의 본능에는 고통을 숭배하는 마조히즘(masochism)적 경향이 있는가 보다. 때문에 행복을 추구하기도 하지만 고통 속에서 카타르시스를 찾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경향들은 결코 예수님의 가르침과 일치되지 못한다.
예수님은 맹목적인 고통이 아니라, 희망을 위한 과정으로서의 고통을 받아들이도록 말씀하셨다. 그런 의미에서 그것은 ‘소망을 위한 인내’이다. 만약 소망이 없다면 인내는 무의미해진다. 이것은 성경에서 계속 강조되고 있는 사실이다.
고통을 통해 예수님을 만날 수 있다. 그러나 고통 자체가 그런 능력이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대부분의 고통은 삶을 파괴하고 사람들을 병들게 한다. 고통이 은혜의 통로가 되려면, 그 안에 소망이 역사해야 한다. 고통을 이기는 소망의 힘, 그것이 바로 신앙의 비밀이며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시기를 원하셨던 선물이다.
쉬운 길로 가지 마라. 그러나 할 수만 있다면 쉬운 길로 가라.
누릴 수 있는 행복을 누리고, 삶을 긍정하는 것은 신앙의 반대가 아니다. 다만 행복과 쾌락이 소망의 가치를 훼손하여서 마땅히 치러야 하는 대가(代價)마저 회피하려고 할 때, 그 때만은 쉬운 길을 버리고 좁은 길을 선택해야 영혼이 사는 것이다. 그 선택에서조차 자기의 편안함을 위해 쉬운 길을 선택할 때에, 신앙뿐 아니라 인간의 모든 존엄이 무너지는 것이다.
나는 의지가 약하다. 그러나 나이를 먹으면서 깨달으니, 인간이란 계속해서 노력하는 과정에서 아름답게 되더라. 완전하고 강해야만 감동적인 것이 아니라, 약하더라도 자기를 변화시키려고 계속 노력할 때에 그 진심(盡心)에서 다른 사람들을, 그리고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힘이 나오는 것 같다.
일부러 고통을 즐길 필요는 없다. 행복할 수 있으면 되도록 행복하게 살아라. 그러나 생각하라.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 치러야 하는 대가가 무엇인지. 그것을 외면하지 말고 살라는 것이다. 이 말이 쉬운 길로 가지 말라는 외침의 속뜻이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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