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1-27 가장 믿어지지 않는 순간에
2011-11-27 가장 믿어지지 않는 순간에
인생은 새옹지마(塞翁之馬)이다. 좋은 일로 알았더니 나쁘게 끝나고, 나쁜 일로 알았더니 좋게 끝나는 것이 많다. 그래서 인생 앞에서 사람의 예상이란 번번이 깨진다. 그 예측불가해성을 알지 못하면 그는 결국 인생을 모르는 것이다.
(쉬운성경, 전도서7:14)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재앙의 날에는 살펴보아라. 이 모든 날들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 미래를 알지 못한다.
믿음이란 무엇인가? 나는 믿음이란, 하나님이 가장 믿어지지 않는 순간에 바로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손양원 목사님의 이야기가 있다. 손양원 목사님의 두 아들은 무장공비에게 살해당했다. 그러나 손양원 목사님은 그 무장공비를 용서하고 자기의 양아들을 삼으셨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그대로 순종한 것이다. 사람들은 이것이 단순히 훌륭한 믿음에서 나온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마치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독자 이삭을 하나님께 번제로 드리려고 했다고 아주 간단하게 얘기하는 것과 같다. 물론 이런 사람들은 예수님의 십자가도 도그마(dogma)화 시킨다. 왜 필요하고, 어떤 원리가 담겨 있는가만을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이런 생각들이 참 바보 같은 생각이라고 느껴진다. 아들을 번제로 드리는 아버지의 마음, 예수님의 계명을 좇아 자기 아들을 살해한 살인자를 용서하고 양아들로 삼는 마음이 어찌 그토록 담담하고 간단하겠는가? 인간의 실존은 고통이다. 복 받고 싶고, 편안하고 싶고, 아프기 싫은 것이 사람이며, 자기에게 손해를 끼치는 자에게 분노하고 미워하는 것이 본능이다. 이것은 인간이라면 누구라도 간단하지 않은 문제이다. 그 본능을 다스리고 알고 있는 믿음의 원리를 실천하는 과정은 쉬운 길이 아니다. 그야말로 좁은 길이며, 고난의 십자가이다. 자기를 죽이고서야 비로소 행할 수 있는 믿음의 차원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믿음은 ‘가장 믿어지지 않는 순간’을 필요로 한다. 별이 보이지 않는 폭풍우의 바다에서 등대가 더 절실하게 빛나는 것처럼, 진정한 믿음이란 내가 가장 어려운 순간에 나의 뜻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는 것이다. 만약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안타깝게도 그가 무엇을 알고 있든지, 얼마나 교회를 다녔든지 그는 ‘믿음’에서 낙제생에 불과하다.
도망하지 말아라. 원망하지도 말아라. 전도자의 말과 같이 재앙의 날들 또한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이다. 우리는 그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싫지만 인정해야 한다. 하나님이 내 편이시지만, 나를 정말 사랑하시지만, 그러나 내가 원하는 대로만 움직이시는 분이 결코 아니며, 나의 맘대로 조정되는 분도 아니라는 것을 배워야 한다. 그리고 비로소 그분의 뜻에 모든 것을 맡기고 겸손해질 때에, 우리는 세상이 주지 않는 평강을 누리게 된다.
아브라함이 모리아산에 올랐을 때에, 정상에서 아래를 보았을 것이다. 작아지고 멀어진 저 아래의 세상… 오는 노정에서 생각하고 또 생각하던 갈등을 그는 비로소 내려 놓았다.
‘아프지만, 내가 붙잡는다고 지켜지는 아들도 아니지 않는가? 전쟁과 질병과 살인의 위험이 저 아래에 있고, 아버지는 아들을 다 지켜줄 수 없다. 오직 하나님께서만이 유일하게 이 아이의 생명을 좌우하신다. 내 의지가 아니라 하나님의 의지만이 중요한 것이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고 칼을 높이 드는 순간, 아픔의 순간은 기쁨의 순간으로 바뀌었다. 불행과 슬픔이 보호와 축복으로 바뀌어진 것이다. 역시 인생은 새옹지마(塞翁之馬)였다.
** 새옹지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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