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2-03 김장 담그는 날
2011-12-03 김장 담그는 날
어린 시절, 이 맘 때면 김장을 했다. 본격적인 추위가 다가오기 직전, 어머니는 시장에 나가서 실하고 싱싱한 배추와 무를 구입하셨다. 보통은 배추를 200포기에서 500포기까지 구입하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저씨는 대문 앞에까지 트럭으로 배달을 왔고, 마당에 산처럼 배추와 무를 쌓았다. 그러면 서리가 내리기 전에 김장이 시작되었다.
마당에 있는 커다란 다라이에는 고무 호수가 물을 뿜었고 물도 넉넉하게 넘쳤다. 배추는 겉잎이 떼어지고, 하얀 속살이 반으로 쪼개져서 물에 씻겨졌다. 그리고 소금물에 들어가 숨이 죽어갔다. 물에 젖은 배추는 무거웠다. 식구들이 총 동원되었고, 심지어는 이웃까지 몰려와서 함께 김장을 했다.
소쿠리에 받쳐져 물이 빠진 배추를 마루까지 나르면, 여자분들이 모여 앉아서 하하 호호 떠들면서 속을 넣었다. 연하고 어린 배추잎을 골라 시뻘건 김치속을 둥그렇게 말아싸서는 서로 먹여주면 꿀맛이다. 그 맛이 좋아 자꾸만 참새처럼 입을 벌리면, 어느새 김장도 끝나기 전에 속이 아려온다.
김장하는 날이면 어김없이 보쌈을 했다. 돼지고기를 된장과 커피 등을 넣고 푹 삶아 두툼하게 썰어 접시에 내오면, 우리는 그것을 김치와 함께 먹었다. 한바탕 추운 바람 속에서 땀을 흘리고, 먹는 보쌈과 된장국은 비할 바가 없다. 한국 사람은 그렇게 김치와 마늘과 된장에 인이 박혀서 세포 하나하나 냄새 나는 한국인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어린 시절, 그 김장이 좋지만은 않았다. 어머니가 고생하는 것이 싫었고, 나도 도와야 하는 것이 귀찮았다. 하지만 어머니는 언제나 넉넉한 김장을 좋아하셨다. 그 시절에는 돈이 없어 김장을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그래서 김장을 많이 담글 수 있다는 것은 여자의 로망이었다. 그러니 일은 고되어도 싫을 리가 없다. 김장을 하는 동안 해맑게 웃으시던 어머니의 얼굴을 이제야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김장은 절반이, 아니 3/4이 남의 몫이었다. 어머니는 동생들마다 나누어 주고, 교회 식구들과도 나누어 먹었다. 매일 그렇게 퍼주다 보면, 정작 우리 입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나누어 주는 것이 더 많았다고 기억한다.
그래서였을까? 어머니 곁에는 늘 사람이 많다. 지금은 가난해지셔서 예전처럼 김장도 못 담그고, 넉넉하게 나누어 주지도 못하지만, 그래도 어머니 곁에는 늘 따뜻한 사람들이 서성거리고, 자식보다 더 지극하게 어머니를 대해준다.
난 몰랐다. 어머니가 내게 무엇을 물려 주셨는지. 그 힘들고 추웠던 김장이 내게 무엇을 가르쳤는지 모르고 마흔이 넘었다. 사람은 나누어 먹고 살아야 한다는 것, 따뜻함은 난방이 아니라 바로 마음에서 전해진다는 것을 어머니는 내게 가르치신 것이다.
시절이 변해서 김장이 사라져간다. 사람들은 공장에서 찍어낸 김치를 먹는다. 1년 내내 한결 같은 맛을 보존하는 김치 냉장고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좋아지고, 부자가 되었는데, 왜 나누는 마음은 더 가난할까? 나누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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