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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하기에 앞서, 이 게시물은 입문자용 입니다.  클래식을 입문하는데 있어서 모음집을 많이
건네주지만,  전 좀 다른 입장이라서 제대로 된 앨범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피아노 독주곡위주로  소개합니다.

"제대로 된 좋은 연주가의 좋은 음반 위주로 소개합니다"

또한 다른 음반을 초보자에게 추천하시고 싶은 분은 댓글로 부탁드립니다.
정말 환영합니다.

유튜브 링크라던가, 아니면 자켓 사진이라던가, 정도만 추가해줘도 많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그럼 시작할께요. 









이건 첫번째 녹음 후입니다. 앨범은 2 번째 녹음입니다.


*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의 변주곡. Bach Goldberg Variationos / Andras Schiff *

1742년 "클라비어 연습곡" 제4권으로 출판된 작품으로 바흐 자신이 붙인 제목은 "2단 건반 클라비쳄발로를 위한 아리아와 변주곡들"이지만, 흔히 바흐의 제자였다는 골드베르크와의 얽힌 일화에 의해서 골드베르크 변주곡이라 불린다.

그 일화인즉슨, 바흐에게 제자인 골드베르크에게 작센의 영주이자 신성 로마 제국의 주 러시아 대사였던 카이저링 공작이아 씨바 잠이 안온다. 나 잠오게 곡좀 써다오.라고 청탁을 했는데 골드베르크가 아무리 머리를 쥐어 짜내도 도무지기 카이저링 공작의 불면증을 고칠만한 곡이 나오지 않았다. 

이렇게 되자 골드베르크는 스승에게 찾아가서 " 헬프미 "를 외쳤고 바흐가 친히 제자를 위해서 아리아와 30곡의 변주곡으로 구성된 이 곡을 써주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일화는 사실성에 의혹을 받고 있다. 이 곡이 출판될 당시에 골드베르크의 나이가 불과 14살에 불과했다는게 알려지면서 과연 14살 소년에게 불면증을 고칠 음악을 청탁하는 귀족이 있었을까라는 의구심이 들었던 것. 

게다가 이 곡의 난이도가 보통 이상인 탓에 웬만한 건반 악기 연주자가 아니고서는 연주가 힘들다는 점도 이 일화의 신빙성을 의심받게 하는 요인이다.

바흐 자신의 제목에서도 알수 있듯이 원래 피아노가 나오기 이전의 건반악기였던 클라비쳄발로를 위한 작품이라 바흐에 대한 재평가 붐이 일었던 19세기에도 이 작품은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다가 20세기에 이르러 쳄발로를 복원한 모던 쳄발로가 등장하면서 쳄발로를 위한 연주곡들이 발굴되었고 그런 과정에서 골드베르크 변주곡도 주목을 받게 되었다. 

20세기의 대표적인 쳄발로 연주자인 반다 란도프스카가 쳄발로로 연주한 녹음이 대표적인 녹음으로 알려졌었다.

이것을 뒤집었던 것이 글렌 굴드로, 굴드는 1955년 이 곡을 피아노로 연주해서 녹음하려 했다. 음반사는 여기에 반대했지만 굴드의 고집을 꺾지 못해 결국 녹음을 하게 되었는데 크게 히트를 치게 되었고 

골드베르크 변주곡 하면 다들 먼저 굴드를 떠올릴 정도가 되었다. 굴드도 이 곡에 애착이 있었던지 같은곡을 두번 녹음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깨고 1981년에 다시 재녹음을 하기도 했다.

건반악기 연주 외에 여러 형태의 편곡도 있다. 러시아 출신의 영국 바이올리니스트 겸 지휘자 드미트리 시트코베츠키는 1980년대 초반에 현악 3중주를 위한 편곡을 만들었는데, 이후 현악 합주를 위한 편곡판도 발표했다. 후자의 경우 2단 건반을 가진 하프시코드 특유의 구조를 반영해 전후반의 아리아와 1단 만으로 연주하는 변주들은 단촐한 현악 5중주 편성으로, 1단과 2단을 모두 사용하는 변주들은 좀 더 풍성한 울림의 현악 합주로 연주하도록 했다.

여러가지로 보았을때 디트리히 북스테후데의 "라 카프리치오사" 주제에 의한 32개의 변주곡과 유사한 측면이 있는데 아리아가 g장조로 시작한다는점, 변주곡의 개수가 30개라는 점에서 북스테후데를 참조한것으로 보인다.

워낙 유명한 음악이라 대중문화에서도 자주 활용된다. 

1.영화 양들의 침묵에서는 한니발 렉터가 경관을 죽일때 이 곡의 아리아 부분이 흘렀고

2.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극장판 애니메이션 시간을 달리는 소녀에서는 제1변주가 여러번 흘러 나온다. 

3. 그 남자! 그 여자!의 애니메이션 판에서 주인공 커플이 첫 섹스를 할 때도 아리아가 배경음악으로 나온다. 

4. 한편 게임 히어로즈 오브 마이트 앤 매직 2편의 위저드 성 배경음악은 제1변주를 변형한 곡이다. 

5. 드라마 눈의 여왕에서는 한태웅(현빈)이 죽은 친구 정규를 그리워하며 간혹 듣던 곡이다. 정규가 가장 좋아했던 곡으로 기억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6.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2013년작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에서는 아예 굴드의 연주로 엔딩 크레딧에 흘러나오고, 작품 여기저기에서도 연주된다.

from 엔하위키

클래식을 접하려는 분은 글드를 피하시고 시프를 들으시는것을 추천합니다. 결국 나중에는 시프를 더 듣게 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시프도 2 번을 녹음했느느데요. 이 음반은 2 번째 녹음으로 머리가 백발이 된 외모 만큼이나 성숙함이 묻어나오는 연주입니다. 골드베르그의 최고의 연주중 하나임이 틀림없습니다.
(사실 굴드는 여기 게시다보면 1 주일에 한번씩 올라옵니다. 쉬프도 자주 올라오지만 굴드가 가장 자주인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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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youtu.be/jL2lFqo_b0c
미드나잇~~ 블루~~~~ 하는 그 노래
비창

이 소나타는 베토벤 자신이 "비창적 대 소나타(Grande Sonate pathetique)"라고 명명한 작품이다. 처음 듣는 순간부터 곡이 끝날 때 까지 한 순간도 귀를 뗄 수 없을 정도로 매력적인 내용을 가지고 있지만 사실 8번 소나타의 작곡양식 자체가 대단히 충격적인 것이다.8번 소나타는 그의 모든 작품들 중에서 가장 호모포닉(단선율을 위주로하는 화성진행)한 곡이다. 선율은 명쾌하고 왼손의 반주도 극히 단순하다. 두터운 화음도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곡의 구성이 너무나 극적이고, 맹렬한 분위기와 감미로운 노래, 연주하는데 필요로 하는 기교를 훨씬 상회하는 압도적인 연주효과로 인해 극히 산뜻한 효과를 얻어 내었고 나아가 대중적인 인기까지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8번 소나타가 파격적이라고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이러한 작곡양식의 변화가 아니고 1악장의 제시부 앞에 커다란 서주가 붙어 있기 때문이다. 가장 느린 속도를 지시하는 Grave라는 악상기호와 곡을 개시하는 c단조의 으뜸화음은 그야말로 충격적이다. 이 곡의 제목인 '비창 (혹은 비애)'라는 말은 이 서주의 분위기에 의한 것이다. 서주는 점차 고조되어 오른손의 레치타티보, 빠르게 하강하는 선율로 변화하면서 Allegro di molto e con brio의 소나타형식 제시부로 돌입하게 된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서주의 재료가 소나타형식의 발전부와 코다에 다시 등장한다는 점이다. 왼손의 맹렬한 트레몰로를 타고 등장하는 1주제는 그 예가 없을정도로 공격적이며, 이 주제를 발전시키는 과정은 더욱 극적이다. 2주제는 1주제의 분위기와 대조적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강한 긴장감을 가지고 있으며, 정석대로라면 C단조의 관계장조인 E-flat장조로 작곡되어야 하지만 e-flat단조를 취해 어두운 느낌을 지속시키고 있어 소나타 작곡양식의 전형적인 형태를 조금 벗어나 있다. 하지만 2주제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결국 E-flat장조가 나타나게 된다. 곡의 마무리부분에 다시 서주의 주제가 등장하고 제 1주제만을 이용해 악장을 끝맺는다.

2악장은 전형적인 가요 형식의 악장으로 나른하고 아름다운 멜로디가 인상적이다. A-B-A의 전형적인 세도막형식, 주제의 멜로디는 대중음악에서도 자주 인용하는 친근한 것이다.3악장 역시 전형적인 론도이다. A-B-A-C-A-B-A-coda라는 명확하고 교과서적인 론도이며 첫 악장과 같은 조성이지만 어둡고 비극적인 느낌은 찾아볼 수 없다. 선율은 어떤 것이나 쉽고, 화성적으로 교묘한 지연(delay)이 이루어져있기는 하지만 이 사실을 눈치채지 못해도 음악을 감상하는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 from 고클래식)



1악장

    드라마 어느 멋진 날에서 서하늘 (성유리)가 부모의 강권으로 만든 자리인 피아노 독주회에서 연주하다 울면서 뛰쳐나갔을 때 연주하던 곡. 참고로 성유리는 이 곡을 대역 없이 소화하기 위해 한 달동안 이 곡을 연습했다고 한다.


2악장

    일본드라마 노다메 칸타빌레에서 주인공 노다메가 치는 곡이기도 하다. 노다메의 연주를 듣고 치아키가 흥미를 가지게 된다.
    기동경찰 패트레이버 극장판 폐기물 13호에서 폐기물 13호를 유도하는 카세트 테이프의 음악으로 쓰였다.
    메모리즈 오프 2nd에서 시라카와 호타루가 피아노로 연주하는 곡 중 하나로 등장한다.
    공지영과 츠지 히토나리의 소설 사랑 후에 오는 것들에서 둘이 서로 사랑했던 추억을 상징하는 소재로 중요하게 언급된다. 작가 양반들이 소설의 영상화를 노린 듯 하지만 냉정과 열정 사이 때문에 안 될거야
 
   각종 대중가요 샘플링
        휘성 - 사랑은 맛있다
        7공주 - 소중한 사랑
        마리아 - 내 영혼을 그대에게 (Feat. G.고릴라)
        Louise Turker - Midnight Blue
        Key's Piano - Remember
        J-walk - 일년째 프로포즈
        Chen Min - Phoenix
        Noela - Happiness
        Joseph McManners - Music of the Angels
        스즈키 아이 - そっと。


3악장

    그 유명한 베토벤 바이러스의 원곡이다.
    동방 프로젝트에서 레밀리아 스칼렛의 BGM인 죽은 왕녀를 위한 셉텟[1]이 이 곡의 편곡이다.
    홍성흔 선수가 롯데 자이언츠에서 뛰던 시절, 이 소나타를 빠른 리듬으로 변형한 음악을 타석에 등장할 때 사용하였다.


 출처:엔하위키미러




월광

루트비히 판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32곡 중 이른바 <3대 소나타(8번 비창, 14번 월광, 23번 열정)>로 손꼽히는 세 작품 중의 하나이다.

'월광(月光, Moonlight)소나타'는 별칭이고, 원제는 피아노 소나타 14번 c#단조 "환상곡풍으로(Quasi una fantasia)", 작품번호 27의 2이다. 이 표제는 같은 해에 작곡된 피아노 소나타 제13번 E#장조(작품번호 27의 1)도 함께 붙어 있는데, 낭만파의 몽상적인 것이 아닌 즉흥적인 성격을 지님으로서 당시의 소나타 형식을 타파한 새로운 작품으로 알려져 있고 많은 음악에 큰 영향을 준 것으로 추정된다.

    1악장 (올림 다단조): 음을 끌면서 매우 느리게 (2악장 속행), Adagio sostenuto (attacca)
    2악장 (내림 라장조): 조금 빠르게, Allegretto
    3악장 (올림 다단조): 매우 빠르고 격렬하게, Presto agitato

1801년에 작곡되어 애인 줄리에타 귀치아르디에게 선물로 주었다. 작곡 배경에 대해서는 음악을 사랑하는 눈먼 처녀를 위해서, 빈 교외 귀족의 저택에서 달빛에 감동하여, 연인에 대한 이별의 편지로 작곡한 곡이라는 등의 일화가 붙어 있다. 그러나 '월광'이라는 이름은 베를린의 음악평론가 렐슈타프[1]가 베토벤 사후에 "제1악장의 분위기가 스위스 루체른 호수의 달빛과 같다" 하여 붙인 것이다. 즉, "월광"이라는 제목과 베토벤의 개인적 경험은 관계가 없다.

그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악장은 단연 1악장. 분위기가 웅장하면서도 비극적인 성향을 띠고 있고 비극적인 대치, 소중한 사람의 죽음, 공포스러운 장면이 나올 때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다. 격한 분위기의 3악장도 그에 못지않게 널리 알려져있으나 1악장에 비하면 콩라인이다. 반면 2악장은 콩라인도 되지 못하고 아무도 찾지 않는 공기라인.


2. 이 곡이 쓰인 곳들 

    검은방 - 오프닝으로 쓰였는데, 1편은 원곡을 사용하였고 2편부터는 약간 어레인지화 시켰다.
    공익광고협의회 - 마약추방(2002) 꽤나 공포감이 드는 광고다.
    노다메 칸타빌레 애니메이션 - 갈등상황등에서 많이 쓰인다.
    리듬스타
    리턴 투 캐슬 울펜슈타인 - Assult 맵에서 벌어지는 멀티플레이 미션의 총탄과 수류탄이 작렬하는 어두운 전장을 배경으로 1악장이 계속 반복되면서 흐른다.
    메탈 맥스 4 월광의 디바
    명탐정 코난 - 월광소나타 살인사건
    바이오하자드 1편 - 질 발렌타인이 피아노 연습으로 쳤다.
    드라마 카이스트 - 호러 컨셉의 에피소드인 <초대받지 않은 손님> 편에 이은주(구지원 역)의 어린 시절 환영이 끊임없이 연주하는 곡으로 등장한다.
    어스웜 짐 2편
    크라잉 넛 2집 수록곡인 '다죽자' - 도입부에서 멀쩡하게 이 곡을 치다가 건반을 한꺼번에 눌러서 불협화음을 내버린 다음에 본 곡으로 넘어간다,
    크림슨 타이드 - 램지 함장이 부장 후보인 헌터 소령을 면접할 때 배경음악으로 쓰였다.
    테그저
    파이어 호크
    Sweetbox - 'Don't Push Me'에서 빠른 비트로 연주된 이 곡이 샘플링되었다. 이 노래는 이효리 돼지바 CF나 여러 예능 프로그램의 댄스 타임 단골 BGM으로 널리 애용되었다.
    K-19 - 함내 방송으로 연주되면서 함내 승무원들의 모습을 보여주다가 원자로 냉각수 파이프가 파열되는 장면과 함께 제1악장이 끝난다.


출처 엔하위키미러



열정 소나타

베토벤의 모든 피아노 소나타가운데에서 가장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이 작품이다. 반면 그 내용이 쉽게 다가오는 것은 아니어서 처음 베토벤의 소나타를 접하는 사람에게 있어 8번이나 14번처럼 빨리 친해질 수 있는 곡도 아니다.이 곡은 연주하기도 무척 어렵다. 이 곡을 칠 때는 건반도 별나게 무겁게 느껴지고(느낌만이 아닌 것 같다) 요구되는 손가락 기교도 상당히 고도의 것이다. 1악장과 3악장의 폭발하는 듯 한 코다는 상당한 팔힘을 필요로 하며 무엇보다 이 곡이 가지고 있는 불타는 듯한 에너지에 압도되지 않을 수 없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게 된다. 정말 고결한 마음을 가진 사람만이 이 곡을 연주해낼수 있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지게 할 정도로 이 소나타는 훌륭하다. 연주하는 사람에게나 듣는 사람에게나 금욕적일 정도의 마음가짐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출처 고클래식



연주자 Freddy Kempf 는 나중에 특집으로 따로 다루겠습니다.
좋은 연주자임이 틀림 없습니다.
21세기 호로비츠라는 엄청난 연주자입니다.
한국에 또와주세요.ㅠ.ㅠ 꼭갈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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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은 루빈스타인입니다. 본문의 연주자와 다른 사람입니다.



쇼팽

1810년 3월 1일 생으로 알려졌으나, 젤라조바 볼라 마을의 성당 기록에는 2월 22일에 유아세례를 받은걸로 나와있기 때문에 아마 실제 생일은 2월 중인걸로 보인다. 아버지는 프랑스인으로 폴란드에 와서 귀족의 가정교사를 하고 있었고, 어머니는 원래 귀족이었지만 집안이 몰락하여 다른 귀족의 집안에서 일하던중 가정교사와 만나 결혼하게 된 사이였다.

쇼팽은 위로 누나 셋이 있었고 아버지를 제외하면 집안에 남자는 쇼팽 한사람뿐이었다. 이런 환경은 쇼팽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는지 남성임에도 어딘지 모르게 섬세하고 연약해보이는 쇼팽의 기질과 스타일이 여기에서 유래했다고 볼수있다.

어릴때부터 피아노에 재능을 보였으며 7살때는 두개의 폴로네이즈를 작곡할 정도였다. 어린 쇼팽의 재능은 바르샤바의 귀족들에게 까지 알려져 그들 앞에서 공연을 하기도 했다. 하도 잘쳤는지 그 당시 폴란드 언론은, "천재는 독일이나 오스트리아에서만 태어나는줄 알았지만 우리나라에도 드디어 천재가 태어났다."라고 했을 정도였다.

정식으로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한것은 1816년으로 지브니라는 피아니스트에게 배우게 되었다.지브니는 보드카 중독자에 엄청난 꼴초였지만 쇼팽의 첫연주를 듣자마자 그를 천재로 보고 의욕적으로 가르쳐주게 되었다. 훗날 쇼팽이 말하기를 "지브니 선생님 앞이라면 노새도 천재가 될껍니다."라고 했었을 정도. 1818년에 기로체프의 협주곡을 완벽하게 연주하는 쇼팽을 보고 지브니는 더이상 가르칠게 없다면서 쇼팽이 자유롭게 성장하도록 거의 손을 대지 않았다.

이후 1822년, 바르샤바 음악원의 창설자인 엘스너에게서 본격적으로 음악을 배우게 되고 중학생때는 러시아 황제앞에서 연주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이후 피아니스트 뷔르너를 사사하며 바르샤바 음악원을 다녔다. 바르샤바 음악원을 졸업한 후, 1828~29년 이탈리아와 오스트리아를 여행하면서 음악의 중심지인 빈으로 가서 피아니스트로서 대단한 성공을 거둔다.

1830년 다시 한 번 빈에 간다. 이 때 그를 위한 고별 연주회에 그가 연모했던 콘스탄티아 그라도코프스카가 찬조 출연하는데 사실 그가 빈에 유학가는 이유는 그녀에게 고백하지 못하자 고민 끝에 그녀가 없는 곳으로 가기 위해서라는데 그대로 믿긴 좀 어렵고 아마 부가적인 이유가 아닐까 싶다. 쇼팽이 무슨 3류 순정만화 주인공도 아니고 그의 곡 중 에튀드 3번 '이별의 곡'과 협주곡 1,2번은 사실 그녀를 위해 작곡한 곡이라는 소문이 있다.

빈에 다시 한번 가서 카를 체르니, 훔멜등과 교류했지만 빈의 청중들은 쇼팽에게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그러던중 폴란드에서 러시아에 대항해 혁명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고 빈을 떠나 슈트트가르트에 도착했을때 러시아군의 잔혹한 진압으로 혁명이 실패로 끝났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이 때 겪은 분노와 조국과 집에 있는 가족들에 대한 걱정등이 뒤엉켜서 쓰게된 곡이 에튀드 "혁명"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쇼팽은 프랑스 파리에 도착했다. 그러나 파리에서도 신통치 않은 결과만을 얻었고 당대 최고의 피아니스트로 불리던자칭 칼크브렌너에게 피아노를 더 배울까 생각했지만 칼크브렌너의 피상적인 연주 스타일이 쇼팽의 개성을 상실할까 우려한 친구 프란츠 리스트와 펠릭스 멘델스존, 힐러 등이 만류하였고, 3년이나 배워야 한다는 말에 그만두게 되었다.

파리에서도 별 소득이 없자 쇼팽은 미국으로 건너갈 생각을 하게 되었다. 만약 파리 길거리에서 고향의 귀족을 만나지 못했다면 쇼팽은 미국으로 건너갔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고향 귀족을 만난 일로 귀족들과 당대 유명인사들이 드나드는 살롱에 소개되었고 살롱에서의 연주회로 호평을 받아 쇼팽은 파리에 정착하기로 결심하고 본격적으로 후대에 널리 알려진 많은 피아노곡을 작곡하게 되었다. 쇼팽은 꽤나 베스트 드레서였다고 하며명품중독자였으며 이따금씩 건반에 피아노 헝겊을 덮고 연주를 하는 묘기도 보여주었다고 한다.(하지만 본인은 이런걸 별로 좋아하진 않았다고도 한다.)

1836년, 드레스덴을 여행하던중 바르샤바에서 사귀었던 여자친구 마리아 보진스카와 다시 만나게 된 쇼팽은 보진스카와 비밀리에 약혼했지만 쇼팽의 건강이 나쁜것을 눈치챈 보진스카 주변의 반대로 결국 파혼하고 만다.

이후 마리아 다구백작부인이 주최한 파티에서 당대 화제의 인물이었던 여류 소설가 조르주 상드(1804~1876)를 만나게 되고 그녀와 사랑에 빠져 수년간 그녀와 연인이 된다.상드는 그 시대에 성공한 소설가로, 여성인권옹호자였으며, 남자처럼 차려입고 살롱에 출입하며, 남편 외에도 많은 남자들과 염문을 벌인 여러가지 일로 화제가 되던 인물이었는데 보수적인 성향이 있던 쇼팽은 그런 상드의 보이쉬함을 보고 처음에는 혐오했지만 점점 그녀에게 마음을 열게 된다. 병으로 인해 성적인 능력은 상실한 쇼팽이었지만 상드의 모성애적인 돌봄으로 그녀와의 관계는 약 10여년간 유지되었다.

쇼팽의 건강이 좋지 않자, 쇼팽과 상드는 요양차 1838년 지중해의 마요르카섬으로 가게 된다. 버려진 발데모사 수도원 근처의 오두막집에서 보냈는데 하필 그곳에 유례없는 추위가 몰려온 탓에(...) 쇼팽의 건강은 더 악화되고 말았다. 오두막의 환경이 최악으로 지하실 내지 다락을 방불케 했을 정도였다. 심지어 사육제에 코스튬을 한 사람들을 보고 진짜로 몬스터로 착각할 정도. 그런 중에도 쇼팽은 파리에서 마요르카까지 피아노를 옮겨와 수도원에서 피아노를 치며 작곡을 했다.

그러나 상드와의 관계는 점점 악화된다. 자유분방한 상드는 쇼팽과의 연애를 좋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타인들의 시선을 무시했지만 쇼팽은 그렇지가 못했다. 그런 와중에 쇼팽의 건강이 악화되고 상드의 큰 딸 결혼문제를 둘러싸고 두 사람은 크게 다투게 되었다. 결국 상드는 쇼팽을 떠났고 두 사람의 관계는 끝나고 만다.

파리에서의 쇼팽의 입지도 많이 좁아져있었고 경제적으로도 사정이 좋지 않아 쇼팽은 제자의 초청을 받아 영국과 스코틀랜드로 여행을 가게된다. 그러나 영국에서도 쇼팽은 큰 굴욕을 당해야만 했다. 영국 왕과 귀족,명사들이 참석한 파티에서 연주를 하게 되었지만 쇼팽 혼자 어두운 옆방에서 연주해야 했고 왕과 귀족들은 쇼팽의 연주에 관심조차 두지 않았다. 쇼팽 정도의 음악가가 한마디로 배경음악 취급을 받은 굴욕을 당한 셈이다.

더욱이 영국의 기후는 쇼팽에겐 치명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쇼팽은 런던에서 어렵게 사는 폴란드인들을 위해 열린 자선연주회에 참여하기도 했다. 파리로 돌아온 쇼팽은 개인교수말고는 일체 다른 연주활동도 못할만큼 중병에 걸려있었다. 침대에서 화장실까지 가는것도 힘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면도와 옷매무새만큼은 단정히 했을 정도.

결국 1849년 10월 17일 쇼팽은 결핵 으로 세상을 떠났다. 죽으면서 쇼팽은 "어머니...나의 어머니..."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하는데 일각에선 어머니를 조국 폴란드로 해석하기도 한다.

쇼팽의 소망대로 지인들은 쇼팽의 장례식때 모차르트의 레퀴엠을 연주하려 했지만 쇼팽의 장례식을 치룰 예정이었던 성 마들렌 성당에서 여자가수가 성당안에서 연주할 수 없다라고 반대하여 2주동안 장례가 미뤄졌지만 쇼팽의 간절한 마지막 소원이라는 지인들의 적극적인 설득에 성당측이 양보하여 모차르트의 레퀴엠이 연주되는 가운데 쇼팽의 장례식이 치뤄졌다. 쇼팽의 묘에는 쇼팽이 폴란드를 떠나기 전 은잔에 담아온 폴란드의 흙이 뿌려졌고,후에 쇼팽의 심장은 바르샤바로 보내져 바르샤바의 성당에 안치되었다. 이 부분은 11월 30일자 신비한TV 서프라이즈에서 다뤘다.


3. 음악 성향 

쇼팽은 일평생 거의 피아노를 위한 곡만을 작곡했다. 물론 가곡이나 다른 악기의 솔로 곡 같은 다른 장르의 작품도 있긴 하지만 피아노곡이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당대는 낭만주의 음악의 시대였음에도 쇼팽은 자신의 음악이 낭만주의로 평가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심지어 초기에는 몇몇 사람들에겐 낭만주의자로도 인정받지 못했다. 그의 대담한 전조나 그 당시 절대 허용되지 않았다시피 한 불협화음, 기교 등은 그를 음악사에서 완전한 돌연변이로 만들다시피 했고, 심지어 때로는 그를 아마추어 음악가로 오해하고 착각하게 만들 정도였다. 그의 음악은 당시에도 완전히 이해되지 않을 정도의 음악이어서 그와 비슷한 곡을 작곡한 몇 사람은 쇼팽 사후 쇼팽에겐 불명예스럽겠지만 그와 대등한 명성을 얻기도 했다(대표적으로 고트샬크(가초크)와 스테판 헬러 정도가 있다. 그렇지만 오늘날엔 낭만주의 작품의 대명사처럼 불리며, 대중들이 가장 잘 아는 낭만주의 피아노 작곡가 중의 한 사람으로 알려진다.

그의 작품에선 피아노로 다양한 음색의 창조를 위한 페달을 적극적으로 사용했다. 지휘자나 연주자의 재량에 따라 템포를 의도적으로 조금 빠르거나 느린 듯이 연주하는 기법인 루바토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기도 했으며, 당시 장식음이 대부분 기교적이기만 한 악절 정도로 취급됐다면 쇼팽은 장식음을 기능적으로 사용하여 선율의 하나로서 취급하기도 했다.

동시대의 작곡가이자 쇼팽의 동료이기도 했던 리스트의 음악에 비해 난이도 면에서는 왠지 모르게 어렵다는 평가를 하지 않는 듯하지만 피아노를 치다가 피아노를 박살내고싶을정도로 "애매하게" "왠지모르게" 어려운 페시지가 눈에 엄청 자주 띈다. 리스트와는 다르게 왠지 어렵게 들리지는 않으나 상당히 어려운 곡들이 많다. 이유를 따지기에 먼저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리스트의 작곡 스타일 자체가 웅장한 효과, 화려함만을 부각시키기 위한 악절들을 상당히 많이 썼다. 즉 나쁘게 말하자면 곡 전체에 있어서 안 써도 될 부분을 남발했다는 점이다. 쇼팽은 그런 악절들을 거의 쓰지 않았고 기교 자체를 중시하는게 아니라 내용적인 측면에서 기교적인 악절을 단순히 도구로 취급하는 스타일이었기 때문에 리스트보단 기교적인 효과를 중시하는 악절들이 상대적으로 눈에 덜 띄거나, 어떤 부분은 단순하게 봐선 어려운 악절인지 아닌지 파악하기 어렵게도 쓰여있다. 그런 면에서 슈만이나 쇼팽의 몇몇 곡들은 리스트보다 훨씬 치기 어려운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단지 악보를 읽고 손놀리는 부분을 익히는 데에서만 어려움을 느끼는 것으로 테크닉적인 난이도를 평가하는건 절대 금물이다.


4. 쇼팽이 피아노사에 있어서 가졌던 그의 업적

그는 작곡 면에서는 베버 등의 영향을 받았을 진 몰라도 피아니스트적인 면(기교적인 부분으로도 해석가능함)에서는 그는 누구의 도움도 거의 받지 않고 당시 세대의 아무도 상상치 못한 혁신을 일으켰다.

그의 에튀드에서 볼 수 있듯이 과거의 곡과는 거의 완전히 다른 기법과 기교를 넣어 구세대식 교육을 받긴 했지만 훌륭한 예술가였던 모셀레스는 한 때 그의 에튀드를 쳐보곤'기교적으로 어렵고 비예술적인 부분에서 나의 손가락은 돌아가지 않았다.'라고 썼다.
그러나 쇼팽은 그의 곡을 자신이 직접 연주하면서 악기로서의 피아노 연주방식을 고려하지 않아 불가능해 보이는 부분과 비예술적으로 보이는 부분이 어떤 식으로 가능하게 연주할 수 있고 비예술적인 부분이 아니라는걸 증명해 보였고,  슈만 같은 훌륭한 음악가들이 그의 음악의 우수성을 끊임없이 주장하면서 평론가와 음악가들은 서서히 돌아섰고, 이 후 그가 완성하고 제시한 테크닉은 리스트에 의해 보급되고 향상되어 금세 낭만주의의 중추 역할을 하게 되었다. 이후 드뷔시와 프로코피예프가 등장하기 전까지 피아노 기교와 페달링 면에서는 본질적인 혁신은 일어나지 못할 정도로 쇼팽에 의해 거의 피아노에 의한 모든 근본적인 것들이 정립되었다.

출처 엔하위키


Andrzej Wasowski 의 녹턴은 당대의 어떤 피아니스트의 녹턴에 뒤지지 않는
절대 서정성을 가진 녹음입니다.
손수건을 준비하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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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영상은 다른분이에요. 곡이 더 중요해서 곡위주로 올립니다.

모차르트 터키행진곡 K .331 

원제는 '피아노 소나타 11번 A장조 3악장 KV 331'이고, 별명인 '터키 행진곡'은 지시어 Rondo Alla Turca(터키풍으로)에서 비롯되었다. 여기서 터키란 익히 알려진 그 터키가 아니고 오스만 제국 전반을 일컬으며, 당시 유행하던 예니체리 군단의 행진이 모티브이다. 1990년대 후반에 코레일 수도권 전철의 종착역 안내방송 배경음악으로 쓰인 적이 있다. 
그외에 정말 엄청나게 여기 저기 쓰인곡 3 악장을 들으면 바로 알 수 있다.




반짝반짝 작은별  K.265
(아 어머니께 말씀 드릴께요)

연주여행을 다니던 모차르트가 1778년 프랑스 파리에 도착했을 때 프랑스의 민요인 이 노래를 듣고 이 노래의 멜로디를 바탕으로 12곡으로 이루어진 변주곡을 작곡한것이다.

그런데 모차르트가 이 변주곡을 작곡하면서 멜로디가 유명해졌고 영어권의 동시 반짝반짝 작은 별이 이 변주곡의 주제가 되는 멜로디에 동시를 가사로 붙이면서 동아시아에는 반짝반짝 작은별 변주곡, 혹은 작은별 변주곡으로 알려지게 된것이다.

쉽게 접할 수 있는 모차르트의 페이크곡 중 하나로, 듣기엔 "아 이거 뭐 쉽네" 싶지만 실제로 쳐보면 만만치 않다. 변주곡이 원래 간단한 멜로디에서 출발해서 온갖 기교를 더해 복잡하게 전개되는 것인 만큼 이 곡도 멜로디는 단순하지만 테마를 바탕으로 다양하고 복잡하게 전개되어 나가는 게 백미라고 할 수 있다. 특히 6변주는 왼손 연습이 충분히 되어 있지 않으면 와장창!!하게 된다


출처 엔하위키

Kristian Bezuidenhout 의 포르테 피아노로 듣는 모차르트는 현대의 피아노보다 더 모차르트
본연의 느낌을 잘 전달해준다고 할 수 있어요.
보통 포르테 피아노는 먼가 좀 답답한 면이 있는데
그런 부분을 싸그리 날려버리는 하모니아문디의 녹음과 그의 실력이 돋 보입니다.
한마디로 짱 좋은 앨범
기회가 된다면 나머지 앨범도 소개할게요.


Mozart Keyboard Music Vol. 5 and 6.jpg


Posted by makari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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