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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주 루오 / 기둥에 묶인 그리스도


목양칼럼 2014-07-15


하나님은 정의로운 분이다. 그래서 그분의 질서는 심은 대로 거두는 것이다. 

이것을 불교에서는 '인과응보'라고 말했다. 다른 종교의 가르침이라 하여서 무조건 틀린 것이 아니다. 오히려 당연한 진리이기 때문에 누구라도 그것을 아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기독교에는 십자가가 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정의를 하나님의 사랑이 덮은 사건이다. 

죄로 말미암아 죽어 마땅하고, 어떤 의미에서는 이미 죽은 사람들이 너무 불쌍해서, 하나님께서 그들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죽으신 것이다.

그렇다면 정의가 깨뜨려졌는가? 아니다. 

창조주이신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그 어떤 죄라도 이보다 더 큰 형벌을 구형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정의가 충족되었다. 심지어 정의를 충족시키고도 사랑이 넘쳤으니 사랑이 정의를 덮은 셈이다. 

이것이 기독교의 역설이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에만 유일무이한 복음이다. 이 역설의 진리를 이해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면, 기독교는 '인과응보'의 보편적 질서를 넘어서지 못하는 또 하나의 종교에 불과한 것이다.


하나님 앞에 부끄럽다는 사람들을 많이 만난다. 술을 끊지 못해서, 사업에 바빠서, 심지어는 가진 것이 없어서 하나님께 죄송하단다. 그 마음이야 정말 이해한다. 그러나 그 부끄러움 때문에 하나님께 다가서지 못한다면, 당신은 아직도 복음을 모르는 것이다.

복음은 본래 선물이다. 여기에 두 가지 이유를 가지고 있는데, 하나는 어차피 그 값을 따질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선물이어야 하고, 둘째는 그 값을 하나님이 정하신다 하더라도 사람이 그 값을 치룰 능력이 없으니 선물이어야만 한다.

그런 점에서 사람은 누구나 '부끄럽게'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다. 아무리 많이 노력하고, 아무리 많은 것을 손에 들어도 '당당하게'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사람은 없는 것이다. 

히브리서는 우리를 격려한다. 우리의 모든 약함을 대신 져 주시는 대제사장(예수 그리스도)이 우리에게 있으니 그분의 은혜 안에서 하나님께 당당히 나아가자는 것이다. 

이를 절대로 오해하지 말라. 여기서 말하는 당당함은, 은혜를 깊이 자각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자발적 응답의 모습이지, 고개를 쳐들고 은혜를 당연하게 여기는 오만이 아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정의를 덮었다. 그래서 나 같은 죄인도 용납하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아래에서 우리는 자유를 얻었다. 어떤 부끄러움도 상관할 필요가 없다. 많이 부족해도 괜찮다. 하나님의 사랑이 정의를 덮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경은 미루지 말라고 말한다. 이 자비를 깨닫는다면, '지금'이 바로 회개할 기회이며, 하나님을 만날 때라는 것이다. 오히려 지금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자비를 베푸시는 하나님께 불쾌한 반역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땅도 사야 하고, 논과 밭에 나가서 할 일은 많다. 시집도 가고 장가도 가야 한다. 그러나 창조주를 만나는 일보다 더 중요하고 시급한 일은 없다. 그것이 복음이다.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라는 금언은, 오히려 부족하다. 복음은 내일이 아니라 몇 시간 후로도 미루지 말아야 한다. 무조건 지금이어야 한다. 바로 이곳이어야 한다.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수 있다면, 그것은 어떤 경우라도 당장이어야만 하는 것이다.

성령의 감동 속에서 무릎을 꿇어라. 알량한 죄의식은 십자가에 못 박아라. 부족하다고 고발하는 목소리가 들린다면 '저들의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기도하셨던 예수님을 생각하라. 

부끄럽기 때문에 기도하지 못한다면, 당신은 예수님의 기도를 헛소리로 만드는 것이다. 하나님께 도움을 빌라. 무엇을 도와달라고 할지 모른다면, 그저 나를 불쌍히 여겨 달라고 기도하라. 하나님의 사랑이 정의를 덮으셨으니, 이제 나를 정의보다 사랑의 눈으로 봐 달라고 기도하라.


하나님을 경험하면, 사람은 바뀐다. 그러나 그 경험은 결코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은혜를 맛 본 사람은 은혜를 잊을 수 없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깊은 곳을 만진다. 알지 못했던 나를 보게 한다. 생각할 수 없었던 것을 꿈꾸게 한다. 하나님의 은혜는, 거룩한 그분의 임재 가운데 영원히 살고 싶은 갈망을 자라게 한다.

무슨 말을 하는지, 맛을 본 사람은 알고 맛을 보지 못한 사람은 모를지니... 이것을 말로 설명해야 하는 것은 너무도 답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결론은 하나다. 지금 하나님께 나아가라. 미루지 말고 지금 하나님을 만나라. 만나고자 결심을 하고 당장 실천하라. 하나님의 은혜는 당신이 상상하는 것 그 이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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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13 목양칼럼


나이를 먹을수록 시간에는 가속도가 붙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하루가, 일주일이, 한 달이 빨라지다가 나중에는 한 해가 훌쩍 지나고 10년이 물 흐르듯 빠져나간다는 것입니다.

더욱 이상한 것은, 나이를 먹을수록 일상은 익숙해진다는 것입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매일매일이 거의 같은 패턴의 반복입니다. 그렇다면 더욱 지루해져야 하고, 지루하면 오히려 시간이 느리게 느껴져야 하는데, 반대로 시간이 너무 빨리 흘러가 버립니다. 

그래서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시간 자체에 대하여 무감각해지는 과정이 아닌가 생각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젊은 시절에는 시간의 경계가 뚜렷했습니다. 언제까지 통과해야 하는 시험이 있고, 이루어야 할 목표(입학, 졸업 등)가 있었습니다. 그 결승점 앞에서 시간은 압축되었습니다. 정해진 시간 앞에서 최선을 다해 노력해야 하고 자기를 독려하며 시간과 싸워야 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나이부터는 더 이상 그런 긴장감이 필요 없게 되었습니다. 

오늘 못하면 내일 하고, 내일 못하면 다음 주에 하면 됩니다. 그 막연함에 익숙해지면서, 시간 자체를 매우 허술하게 보내는 무감각이 찾아오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인생은 결국 ‘졸업’을 가지고 있습니다. 

시간은 무한정한 자원이 아닙니다. 우리는 다시 없을 오늘을 보내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때문에 성경은 세월을 아끼라고 교훈합니다. 시간 앞에 옷깃을 여미고 항상 최선을 다하라는 충고입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래야만 스스로 후회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한 번, 자신의 시간에 대하여 깊이 생각해보는 기회가 있기를 바랍니다. 나이를 그냥 먹는 것이 아니라, 그 나이에 합당하게 성장하는 사람이 되도록, 건강한 긴장감을 잃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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