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라앉는 배에서 승객을 버리고 도망한 승무원들과 선장을 향해 대한민국 모두가 분노했다. 심지어 대통령도 '살인자'라는 극단적인 정죄를 서슴치 않았다.
그러나 사실, 생사의 기로에서 자기 살 길을 먼저 생각하는 비겁함은 인간에게 보편적인 것이다. 그렇지 않고 죽음을 불사하고 다른 사람을 위해 헌신하는 것이야말로, 사실은 특별하고 대단한 것이다.
최근에 아사히 신문이 입수하여 발표한 요시다 조서(후쿠시마 원전 소장의 사고조사 답변기록)에 의하면, 후쿠시마 원전사고 당시 원전 직원의 90%가 명령을 위반하고 도피했다고 한다. 얼마나 어디까지 도망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원전은 폭발을 향해 치닫고 있었는데 사람도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다를까? 원전 종사원들이 훨씬 더 강한 애국심과 살신성인의 정신으로 무장해서 자기를 버려서라도 원전을 안전하게 지킬까? 어림도 없는 소리다. 개인주의 전성시대인 지금에 그런 것을 기대하는 것이 어불성설이고, 과도한 명령이다.
그런 점에서, 원전사고는 '관리'가 아니라 '방지'로 목표가 전환되어야 마땅하다. 되도록 빨리 원전을 없애서 사람이 책임질 수 없는 사고로부터 우리의 미래를 지키는 것이 옳다는 말이다.
부디, 일본의 실패가 의미있는 교훈으로 승화되기를 기대한다.
아사히신문 기사 http://goo.gl/6EBUIy
도쿄전력 후쿠시마 제1원전 소장이자 사고대응의 책임자였던 요시다 마사오(吉田昌郞)씨(2013년 사망)가 정부 사고조사∙검증위원회(이하 사고위)의 조사에서 답변한 내용을 담은 ‘청취결과서’(요시다 조서)를 아사히신문이 입수했다.
요시다 조서에 따르면 동일본대지진이 발생한 지 4일이 지난 2011년 3월 15일 아침, 제1원전에 있던 직원의 90%에 해당하는 약 650명이 요시다 씨의 대기 명령을 위반하고 남쪽으로 10킬로미터 떨어진 후쿠시마 제2원전으로 도피했다. 그 후 방사선량이 급상승했는데 이에 대한 사고대응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 이처럼 직원이 명령을 위반하고 현장을 이탈한 사실을 도쿄전력은 3년 이상 숨겨왔다.
●지진 발생 4일 뒤, 후쿠시마 제2원전으로
요시다 조서와 도쿄전력의 내부자료에 따르면 15일 오전 6시 15분경, 요시다 씨가 사고 수습 작업을 지휘하는 제1원전 면진중요동 2층 비상시대책실에 중대한 보고가 들어왔다. 2호기 쪽에서 충격음이 들렸고, 원자로 압력억제실의 압력이 ‘0’이 됐다는 것이다. 2호기 격납용기가 파괴돼 직원 약 720명이 대량 피폭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현장에 감돌았다. 그러나 긴급시대책실 내 방사선량은 거의 상승하지 않았고, 이 시점에서 격납용기는 파손돼 있지 않다고 요시다 씨는 판단했다.
오전 6시 42분, 요시다 씨는 전날 밤에 생각해둔 대로 “제2원전으로 도피”가 아닌 “방사선량이 높은 곳으로부터 일시적으로 대피했다가 즉시 현장으로 돌아갈 수 있는 제1원전 부지 내에서 대기할 것”을 사내 화상회의로 명령했다. “부지 내 선량이 낮은 구역에서 대피할 것. 그 후 이상 없다는 것이 확인되면 돌아올 것.”
대기 구역은 “남, 북쪽에 위치한 구역 중 선량이 안정적인 곳”이라고 조서에 기록돼 있었다. 안전이 확인되는 대로 현장에 돌아와 계속해서 사고대응을 하겠다고 결단했던 것이다.
도쿄전력이 2012년에 공개한 화상회의 녹화 영상에는 긴급시대책실에서 요시다 씨의 명령을 듣는 많은 직원이 있었고 그중에는 간부 직원의 모습도 보였다. 도쿄전력은 이 장면을 “녹음하지 않았다”고 하고 있어, 요시다 씨가 명령한 내용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알 수 없었다.
요시다 씨의 증언에 따르면 직원 가운데 누군가가 면진중요동 앞에 준비된 버스 운전사에게 “제2원전으로 가라”고 지시해 오전 7시경 출발했다고 한다. 자가용으로 이동한 직원도 있었다. 도로가 지진으로 훼손된 데다, 제2원전에 출입할 때는 방호복과 마스크를 입고 벗는 절차가 필요하기 때문에 제1원전으로 돌아가는데도 시간이 걸렸다. 결국, 직원 90%가 즉시 돌아갈 수 없는 장소에 있었던 것이다.
그중에는 사고대응을 지휘해야 하는 그룹매니저(GM)라 불리는 부∙과장급 직원도 있었다. 과혹사고 발생 시 원자로 운전과 제어를 지원해야 한다는 GM들의 역할을 규정한 도쿄전력 내규를 위반했을 가능성이 있다.
요시다 씨는 정부 사고위의 청취조사에서 “사실 나는 2F(후쿠시마 제2원전)에 가라고 말하지 않았다. 제1원전 부근에서 부지 내외를 불문하고 선량이 낮은 곳에 일시적으로 대피한 뒤 지시를 기다리라고 말한 건데 그들이 2F에 도착한 뒤 연락해서 우선은 GM부터 돌아오라고 하게 된 것이다”고 말했다.
제1원전에 남아 있었던 사람은 요시다 씨를 포함해 69명. 제2원전에서 직원이 돌아오기 시작한 것은 같은 날 점심나절이었다. 그 사이 제1원전에서는 2호기에서 흰색 연기가 분출했고, 4호기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정문 부근의 방사선량은 최고치를 기록했다.
(기무라 히데아키=木村英昭)
■모든 자료를 공개해야 한다
〈해설〉요시다 씨가 사망한 지금, ‘요시다 조서’는 원전사고 직후의 현장 지휘관이 그 내용에 관해 말한 유일한 공식 조서다. 육성을 그대로 옮겨 적었으며 대화 내용은 녹음돼있다. 분량은 A4용지로 400페이지가 넘는다. 사고대응을 검증해 향후 안전대책에 활용할 수 있는 일급 역사적 자료다.
그러나 정부 사고위는 보고서 일부만을 소개하고 많은 중요한 사실을 공개하지 않았다. 그중에서도 핵심이 되는 ‘직원 90%가 대기 명령을 위반하고 도피했다’는 사실도 숨겼다.
사고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장면 하나하나를 구체적 증언을 통해 재현∙검증할 필요가 있다. 정부는 원전 재가동을 서두르기 전에 정부 사고위가 수집한 자료를 모두 공개하고 ‘후쿠시마의 교훈’을 안전대책 및 피난계획에 활용해야 할 것이다.
요시다 조서에는 이 밖에도 정부와 도쿄전력이 숨기고 있는 많은 사실을 포함하고 있어 반성해야 할 내용이 담겨 있다. 우리는 정부와 도쿄전력의 사고대응을 계속해서 검증해 나갈 것이다.
(宮崎知己=미야자키 토모미)
◇키워드
‘요시다 조서’
정부 사고위가 요시다 씨를 청취한 내용을 일문일답 방식으로 남긴 기록이다. 청취시간은 29시간 16분(휴식 1시간 8분 포함)으로, 2011년 7월 22일부터 11월 6일까지 총 13회 걸쳐 기록했다. 그중 사고원인과 초기대응을 둘러싼 청취는 11회로, 사무국에 파견됐던 검사가 청취역할을 맡았다. 축구시설인 J빌리지와 면진중요동에서 진행됐다. 또한, 정부 사고위는 772명에 대해 총 1479시간(한 사람당 약 1.9시간)에 걸쳐 청취했다. 원본은 내각관방에 보관돼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