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노예)은 되어도 거지는 될 수 없다
동경에서 지진이 일어나고 한국에 들어갔을 때에, 나름 절박한 심정을 가지고 있었다. 일단 수재를 당한 이재민의 모습이 너무 비참했고, 안전을 이유로 흩어진 우리 성도들을 데리고 가야 할 앞날이 깜깜했다. 절망 앞에 선 사람들의 손을 잡아 주어야 한다는 사명감과 그러면서도 내 앞에 교회의 길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며칠이나 잠을 이루지 못하게 했다.
그러나 막상 그 많은 교회들이 있는 조국에서 나의 절박한 목소리를 외칠 방법이 없었다. 부모님을 따라 주일 예배를 드리러 갔던 교회에서는 마침 일본을 위한 헌금을 광고하고 있었지만, 목사님과의 면담은 서먹하기만 했다.
선교지에서는 늘상 '거지본성'으로 도움만을 바란다는 듯한 느낌이 어금니 물고 견디며 복음의 종으로 살려고 몸부림쳤던 나의 자존감을 상하게 했다.
목사는 누구의 종(노예)도 될 수 있지만 거지는 될 수 없다. 거지가 되는 순간, 목사 자신이 추락하는 것뿐 아니라 그의 복음도 추락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존재의 몰락이다. 몰랐던 현실의 경험은, 어떤 면에서는 대지진 못지 않게 나에게 내적인 충격을 주었다...
어려울 때에 친구가 나타난다고 했던가... 바로 그 때에 내 친구 김태윤 목사(장자교회)가 내 손을 잡아 주었다. 이상했다. 선교지에 나와 너무 오랜 시간을 떨어져 있음에도 우리는 마치 어제처럼 젊은 시절 얘기를 나누고, 말이 통했다. 그의 손에 이끌려 난 장자교회의 강단에 섰고, 거기서 내 목소리를 힘껏 외쳤다. 그 이후로 장자교회의 성도들과는 지금까지 마치 내 교회의 성도들 같은 사귐과 교제가 이어지고 있다.
선교지에는 온갖 절박한 사연들과 목소리가 존재한다. 교회가 조금만 여유를 나누면 함께 해결할 수 있는 고통, 닦아줄 수 있는 눈물, 위로할 수 있는 한숨들이 많다. 복음은 그 '나눔'과 분리될 수 없는 것이라 생각한다. 복음은 지식이 아니라 사랑이니까 말이다.
그런데 너무 잡음이 많다. 목사들의 인맥을 통해 성도들의 귀한 헌금이 엉뚱한 곳으로 흘러 들어가고, 그 덕분에 현장의 절박한 목소리는 오히려 멀어져 들리지도 않는다.
안타까운 현실이라고 생각한다. 목사들이야말로 우물 안 개구리다. 자기 학교 출신, 같은 교단, 자기교회를 거쳐간 사람들이 아니면 악수도 서먹하다. 그 좁은 시야를 깨뜨리고 현장을 깊이 보려고 하는 노력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선교지에 필요한 것은 물질이 아니라 소통이다. 의외로 선교지에 있으면 축복 받은 한국교회의 현실에서는 느낄 수 없는 광야의 경험을 하게 된다. 그걸 나눌 수 있을 때에, 비로소 물질과 신앙의 소통이 이루어지고 서로 건강해지는 은혜가 나타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일방적으로 돕는 관계가 아니라, 나누고 격려하고 함께 걸어가는 관계로 한국교회와 선교지가 새롭게 묶여지면 좋겠다.
# 장자교회는 김포에 있습니다. 궁금하신 분은 메시지 주세요~ ^^
'목회 > 목양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흉내낼 수 없는 것들 (3) | 2014.04.04 |
---|---|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0) | 2014.03.01 |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0) | 2014.01.24 |
변화 없는 내면과 무력한 신앙 (0) | 2014.01.18 |
일시적인 감동은 오히려 위험할 수 있습니다 (0) | 2014.01.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