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9-16 진정한 용기
2007-09-16
독일계 신학자로서 미국에서 활약하였던 폴 틸리히(Paul Tillich,1886-1965)란 분이 있다. 틸리히 교수가 한 말 중에 내가 좋아하는 말이 있다. 용기에 대한 말이다. 진정한 용기란 무엇인가?
“가장 중요한 것을 위해 보다 덜 중요한 것을 버릴 수 있는 것이 용기이다!”
옳은 말이다. 인생은 어차피 모든 것을 다 누릴 수가 없고 다 가질 수가 없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는 다른 무언가를 버릴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가장 소중한 것을 얻기 위해서는 보다 덜 중요한 것은 기꺼이 버릴 수 있어야 한다.
예수님을 좇기 위해서는 배와 그물을 버려야 한다. 심지어 어떤 청년은 모든 소유를 버리고 예수님을 따르도록 초대되었다. 베드로와 요한이 버렸기 때문에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던 것과는 반대로 부자였던 청년은 버리지 못했기 때문에 근심하며 예수님을 떠나갔다.
그가 율법을 준행하고 선을 행하였지만, 그의 내면에서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보다 소유에 대한 애착이 더 컸던 까닭이다.
버릴 수 있다는 것이 영성이다. 특히 세상에서 귀히 여기는 것을 하나님을 위해 버리고 포기할 수 있을 때 신자의 영성은 무르익는다. 이러한 버림은 억지로 아깝게 버리는 것이 아니라, 정말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는 은혜의 깨달음 속에서 일어난다. 바울이 세상의 모든 지식과 명예를 배설물로 여겼던 것은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다는 깨달음 때문이었다.
중국 사람들이 원숭이를 잡는 방법이 있다. 원숭이가 땅콩을 좋아하기에 원숭이가 다니는 숲속 길목에 땅콩이 든 옹기 항아리를 하나 묶어 둔다. 그 항아리의 주둥이는 겨우 원숭이의 편 손이 들어갈 만한 크기로 되어있다. 땅콩 냄새를 맡은 원숭이는 항아리 속에 손을 넣어 땅콩을 한 움큼 잡는다. 그리고 손을 빼려한다. 그러나 손에 든 땅콩 때문에 손이 빠지지 않는다. 그때 가서 원숭이를 잡는다.
원숭이가 살려면 손바닥 안에 든 땅콩을 버리면 손이 빠져나와 살게 되지만 원숭이는 땅콩이 아까워 차마 버리지 못하고 잡혀 죽게 된다. 원숭이만 그런 것이 아니다.
사람도 이와 같을 때가 얼마나 많은가? 살게 하시기 위하여 버리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의심하고 조롱한다. 버려야 비로소 더 좋은 것을 주실 터인데 끝까지 자기 몫을 스스로 지키겠다고 고집하고 아우성친다.
지금 우리에겐 무엇이 가장 중요한가? 그것을 붙잡기 위하여 우리는 어떤 것이라도 포기할 용기가 있는가? 부족하다면 은혜의 깨달음과 용기를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할 일이다. 버려야 할 때에 버리지 못하면 인생은 변하지 않는다. 신앙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용기 있는 자만이 승리를 차지한다고 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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