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12-23 고향과 사람
2007-12-23
제법 매서운 날씨 속에 동경의 겨울이 깊어가고 있다. 연말이 늘 그렇지만, 가족들의 품으로 고국에 들어가는 지체들도 있고, 여기 남겨지는 지체들도 있다. 든 사람은 몰라도 난 사람은 안다고, 아마도 교회는 떠난 지체들의 빈자리가 제법 크게 느껴질 것이다. 또한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는 지체들의 심정이 다소 쓸쓸하고 우울할 법도 하다.
사람은 어떤 환경에서든지 적응하고 살아남는다. 그러나 사람만큼 환경에 까탈을 부리고, 불평하는 동물도 아마 없을 것이다. 백 가지가 좋고 하나가 부족해도 그 부족한 하나에 몰입하고 불평하는 것이 사람의 속성이다. 그래서 감사는 노력과 각성을 필요로 하지만, 불평은 저절로 쉽게 나온다.
이국의 나그네 생활에 어찌 서러움이 없으랴! 일본이 좋다고 열을 올리는 사람들도 가끔은 만나지만, 그들이 입에 거품을 물며 일본생활을 찬양하면 할수록 그렇게 믿고 싶고, 그래야만 억울하지 않을 것 같은 자기 암시의 냄새가 짙게 배어나곤 한다.
사는데 필요한 것은 빵만이 아니다. 시설이 좋고 시스템이 잘 되어 있어도 사람끼리 정서가 다르고 말이 통하지 않으면 사는 재미를 찾기 힘들다. 그런 의미에서 동경에서의 삶은 나름 편하면서도 피곤하다. 항상 귀를 기울여야 하고, 정서적 긴장감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일본인들 속에 스며들어 본인이 밝히지 않는 이상은 그들과 똑같은 색깔을 위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아무리 연습하고 숙달되어도 사람의 본성은 쉽게 변하지 못하고 피는 물보다 진하다.
연말을 보내며 이런저런 생각을 한다. 어른들을 뵙고 싶은 생각도 간절하고, 가족들과 단란하게 먹던 명절 음식도 그립다. 그러나 이것저것 다른 무엇보다 그저 내가 태어나고, 자라난 그 땅을 밟고, 그 공기를 호흡하고, 사람들 속에 묻혀 익숙했던 곳들을 배회하고 싶다. 그러면 굳이 무엇을 먹지 않아도 배부르고 좋을 것 같다. 조금은 나이가 먹어가니 ‘고향’이라는 말의 의미를 배우게 되는가 보다.
성탄절이 목전이다. 우리가 다 알듯이 예수님은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다. 그곳이 바로 예수님의 고향 마을인데, 아주 작은 산골마을이다. 그래서 아모스 선지자가 베들레헴을 향하여 ‘너는 결코 작지 않다’고 노래했다. 말하자면 작은 마을이지만 거기서 유대의 왕이신 예수님이 태어나시기 때문에 작지 않다는 뜻이니, 아모스 시절에도 작기는 작았나보다.
히브리어 ‘벧’은 ‘집’을 의미한다. 그리고 ‘레헴’이란 그들의 말로 ‘떡’이다. 베들레헴이라는 이름 자체가 아주 촌스러운데 그 뜻은 의미심장하게도 ‘떡집’이라는 뜻이다. 로마의 식민지 변방, 유대 땅에서 깊은 시골, 촌스러운 동네 ‘베들레헴’에서 아기가 되신 하나님이 태어나셨다. 거기가 그분의 고향이 되었다.
성탄절마다 그 베들레헴의 작은 마구간과 구유를 경배하게 되면서 그런 생각이 든다. 고향이란 거기 어떤 건물과 풍경보다도 그곳에서 태어난 사람의 가치를 통해 세상에 의미를 던지는 이름이라고... 예수님 덕분에 베들레헴이 빛을 보았다. 그렇다면 나는? 내 고향은?
이곳 일본에서 어떻게 살지에 더 신중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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