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2-31 내 마음의 성전
2009-12-31 :: 목양칼럼
아직 이른 감이 있지만, 하나님께서 동경드림교회에 예배당을 주신다면 과연 어떤 예배당을 세울까 생각을 해봤다. 너무 화려하지 않게, 그러나 단아하고 아름다운 성전을 만들어서 동경의 명물이 되고 안식처가 되게 하고 싶다는 소망을 품었다.
요즘은 예배당을 극장식으로 많이 짓는다고 한다. 그래서 콘서트도 열고, 세미나도 빌려주어서 1년 365일 쉬지 않고 사용하게 하는 것이다. 은행이 고객을 위해 문턱을 없애는 것처럼 교회도 사람들이 부담을 느끼지 않고 찾아올 수 있도록 만들자는 것이다. 그래서 북카페와 서점과 영화관이 예배당의 부속으로 패키지화 되고 있다.
이러한 실용주의가 과연 성경적인가? 나에게는 뭔가 주객이 전도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예배당을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고 정의하셨다. 물론 사람들이 부담감 없이 쉽게 찾을 수 있으면 좋겠으나, 그러나 그렇게 편안한 예배당이 본질은 아니라는 것이다. 예배당을 예배당 되게 하는 것은 십자가의 표식이 아니라, 거기서 드려지는 예배와 기도에 있다.
과거의 경험이다. 한 큰 교회로 새벽예배를 나갔는데, 늦게까지 기도하게 되었다.
5시에 시작된 새벽예배를 5시 반에 마치고, 7시가 넘어서까지 기도하며 있었다. 그러자 그 교회의 집사님이 슬며시 찾아와 등을 두드렸다. 8시부터는 지역 사람들을 위한 행사를 개최하기 때문에 예배당을 준비해야 하니 그만 나가 달라는 것이었다. 조용히 자리를 정리하고 나오면서 뭔가 씁쓸했다. 예배당에서 기도하는 사람을 내보내고 다른 행사를 준비한다면, 내가 예배당에 있었던 것인가? 아니면 행사용 강당에 있었던 것인가?
거룩을 히브리어로 ‘카도쉬’라고 한다. 이 말은 원래 칼로 잘라낸다는 뜻이다. 거룩함의 본질이 세상과 구별되는 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거룩’이라는 말이야말로 거룩한 낭비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구별된 칼은 식사를 준비하는 것에 사용하지 않는다. 오직 제사를 위해 사용된다. 그 칼이 식사를 위해 사용될 때에는 식칼이지만, 제사만을 위해 사용될 때에 그것은 성물(聖物)이다. 모든 것이 그러하다. 하나님께 바쳐진 것은 그분만을 위해 존재하는 무엇이 되어야 한다.
그렇다고 일주일에 한 번만 예배에 사용하고, 그냥 비워두는 것이 성전을 성전 되게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되도록 이면 사람들이 부담감을 느끼지 않고 찾아올 수 있고, 또한 1년 365일 항상 사람들의 발걸음이 계속되는 곳으로 만들어야 한다.
다만 그러한 사람들의 발걸음이 편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정말 하나님을 만나고, 그분의 임재 가운데 교제하며, 더 큰 은혜와 축복을 누리도록 하는 것에 초점을 두어야 하겠다는 것이다.
예배당은 중심은 기도하는 집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나머지를 갖추고 이루어 가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기도하는 집을 포기하고 다른 용도를 먼저 생각한다면 그것은 뭔가 잘못된 생각이 아닐까 한다.
일본의 기독교 인구가 0.3%라고 들었다. 가끔 예쁘게 지어진 예배당은 보이는데, 그 예배당이 예배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결혼식으로 유지된다고 한다. 그래서 더욱 슬프고 안타깝다.
나는 소망한다. 동경에 그분의 집이 생기기를.
언제나 그분을 향한 뜨거운 예배의 불길이 피워올라, 번제처럼 오직 나의 하나님만을 위해 존재하는 집이 세워지기를. 신자들은 언제나 눈물과 기쁨으로 기도하고, 기도하는 사람이 최고의 예우를 받고, 기도하는 사람들을 위해 존재하는 집이 동경에 세워지기를 원한다.
그 예배당은 장식보다 찬양으로 아름다울 것이고, 조명보다 말씀의 빛으로 빛날 것이며, 사람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 세워질 것이다. 어디에나 쉼이 있고, 자연이 있고, 사람들이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바로 그 한 가지 목적을 위해 세울 것이다. 생각만 해도 멋지지 않는가? 가슴 뛰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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