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1-10 온전한 한 사람
온전한 한 사람
2010-1-10
문학은 사색과 삶을 반영한다. 문학을 통해 우리가 읽는 것은 단순한 문자의 의미가 아니라, 그 시대의 고민과 삶의 현실이다. 그런 점에서 이 시대의 작가들 중에 아주 우울한 분위기의 글이 많다는 것은 참 슬픈 일이다.
특별히 젊은 작가들의 글에서 무력감과 우울함이 묻어난다. 인류의 역사상 가장 번성하고 풍요로운 문명을 누리는 오늘이지만, 오히려 젊은이들의 가슴에는 패배주의와 절망이 멍들어 있다는 것을 그들의 글이 외치고 있는 것이다.
지금은 인간의 의미가 모호해지고 위기를 겪는 시대이다.
우리는 유전자의 복제를 통해 ‘유일한 자기(Only myself)’에 대하여 혼돈을 겪고 있으며, 또한 점차 늘어가는 인공장기와 기계화에 의해 ‘인간(human Being)’으로 존재하는 것에 대하여 도전 받고 있다.
더구나 교육은 건전한 시민을 만드는 본래의 목적에 실패했다. 과도한 지식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공격적으로 변하는 청년들이 많다는 것은 그것을 증명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교육을 과신하는 광증에는 빠져있다. 심지어 신앙까지 교육을 통해 주입하려고 하는 터무니 없는 열정이 교회에 나타나는 것은 이러한 시대상을 잘 반영한다.
2010년을 열면서 개인적으로 사색하는 바가 있다. 과연 이 우울한 시대 가운데 ‘복음’이란 무엇이란 말인가? 복음은 이 시대에도 기쁨의 소식이 될 수 있는가? 우리가 가진 이 복잡하고 터무니 없는 문제들에 대하여 명백하고 시원한 대답을 줄 수 있는가?
그리스도인의 복음이 역사를 이끌어왔던 동력은, 결코 그것이 개인과 그 내면의 차원에서뿐만이 아니라 공동체와 사회, 그리고 시대와 역사적 차원에서 소통했기 때문이다.
식민지의 시대에는 자유와 자결의 원칙이 성경에서 나왔고, 노예의 시대에는 해방과 평등의 원칙이 바로 그 복음에서 꽃피웠다. 우리의 선배들은, 단지 가만히 골방에서 내세를 기다렸던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그 내세를 믿기에, 지금의 시대를 용감하게 진단하고 더 성경적인 세상을 위하여 기꺼이 고난의 길을 걸었던 순교자들이었다.
그들의 시대에서 그들은 잃은 자(loser)였지만, 그러나 그들의 선택이 옳았다는 것을 역사가 증명했다. 그들의 피를 먹고 세상의 부조리가 해결되고, 새로운 시대가 열려 왔기 때문이다.
결국 복음을 복음 되게 하는 것은 지식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성경의 진리가 분명히 이 시대에도 우리 문제에 대한 대답이 되고, 기쁨의 원천이 되겠지만, 그것은 말만으로는 되지 않으며 우리 자신의 변화와 헌신을 원하고 있는 것이다.
뭘 믿는가는 어떻게 사는가에 나타난다. 그런 점에서 우리 시대의 믿음은 참 불량이 많다고 생각된다. 시대의 등불이 되는 청년들을 키워야 한다. 그리스도인을 자청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려지는 사람들을 만들어야 한다. 그 방법을 찾고, 길을 걸어가는 것이 바로 나의 사명이요, 숙제이다.
많은 숫자가 아니라 온전한 한 사람에 집중하는 목회자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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