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2-20 험한 세상에 다리가 되어
2011-02-20 목양칼럼
부모의 사랑은 아이들이 더우면 걷어차고, 필요할 때는 언제나 끌어당겨 덮을 수 있는 이불 같은 것이어야 한다. 얼마 전에 별세한 작가 박완서의 고언(古言)이다.
돌이켜보면, 거절과 실망을 넉넉하게 감수하는 사랑은 멀기만 하다.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 때는 즉시로 실망감을 드러내거나 상처를 안긴다. 너그러움은 노력해도 쉽게 생겨나지 못하고, 옹졸함은 언제나 마음에 스며들어 나를 놀라게 한다.
언젠가 어머니와 나란히 걸으며 물은 적이 있다. 당시의 나는 아이들의 버릇 없는 행동과 집안에서의 잦은 마찰로 고민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조용히 웃으며 대답하셨다. 아이들을 너무 어른으로 보지 말라고. 아직 아이이기 때문에 버릇도 없고, 고집도 부리는 것이라고. 참아주고 기다리면 점점 좋아질 것이라고.
결국 어머니의 말씀이 옳았다. 아이들은 자라면서 내가 우려했던 것들을 대부분 극복했다.
성장하면서 더 어려운 고민들이 생겨나는 것도 사실이지만, 사실 내가 해줄 수 있는 것보다는 자신들이 경험하고 깨달으며 배워나가는 것이 대부분이 아닐까 한다.
부모란 그 성장과정에서 든든한 우군이요, 동행자가 되어주는 역할이 아닐까? 아무리 실수하고 어리석은 짓을 하더라도 항상 같은 자리에서 조용하게 지켜보며 모든 것을 내어주는, 아낌 없이 주는 나무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아이들이 나이를 먹어가도, 어머니의 음식은 항상 같은 맛이고, 아버지의 손은 항상 그렇게 따뜻했으면 한다. 그 손이 아이들을 끌어주고, 때로는 어깨를 다독거리며, 모진 세상에 위로가 되고, 쉼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한다. 유명하고 유력한 부모 보다는 평생을 따뜻한 부모일 수 있기를 원한다. 걷어차도 결코 떠나지 않는 이불 같은 존재로서 말이다.
목사의 일도 같은 일이지 싶다.
열정적인 모습과 몇 마디의 그럴싸한 말로 포장해도 사람의 바탕은 쉽게 감출 수 없다. 결국에는 드러나는 것이 사람의 바탕이다. 그리고 그 바탕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아이가 자라듯이 신앙이 자라는 과정도 세월을 필요로 한다. 그 과정 동안에 믿어주고, 사랑하고, 기다려주는 것이 목사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 아닐까?
누군가 말하기를, 아이들은 밥이 아니라 부모의 시간을 먹고 자란다고 했다. 누구에게나 시간은 소중하다. 자기를 위해 가장 쓰고 싶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보다 시간일 것이다. 그런데 자식은 그 부모의 시간을 대부분 차지한다. 그 숭고한 헌신이 없이는, 한 사람이 한 사람으로 결코 자라날 수 없는 것이다.
결국 나는 지금 모험을 하고 있다. 내 아이들과 양떼를 위해. 그렇다고 무엇을 바라는 것은 아니다. 그저 내가 자기들 편이라는 것만은 알았으면 좋겠다. 비록 부족하지만, 그래도 항상 사랑하려고, 사랑을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아버지요, 목사라는 사실만은 알았으면 좋겠다.
그것만 알아주면 그것으로 족하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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