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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 우에노에 있는 국립서양박물관을 방문했다.

17세기 이태리프랑스의 판화작가인 자크 칼롯(Jacques Callot)의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다.
(그는 바로크 시대의 판화가로 1400여점의 동판화(etchings)를 남겼다. 로마에서 사사하고 피렌체의 메디치 궁정에서 일했다고 한다. 그 때문에 그가 이태리 출신이라고 혼자 착각을... 그의 작품들은 따로 올려볼까 한다.)

특별전+상설전 모두에 일반 입장료 600엔. 이것도 비싸지 않지만 중고등학생은 공짜고, 65세 노인들도 공짜다. 덕분에 미술관에는 아이들과 노인들이 항상 많은 것 같다.

오랜만에 차분하게 그림을 보는데 시간이 훌쩍 갔다. 

오전 11시반에 입장에서 3시반에 나왔으니, 4시간 정도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림이 많아서 지루하기 보다는 시간이 모자랐다. 전시되는 그림들이 상설전이라 하더라도 몇 점씩은 바뀐다. 

새로 구입하는 그림도 있고, 다른 곳에 전시를 위해 빠져나가는 그림도 있는 것 같다.


일본인이 좋아하는 화가라서 그런지 르느와르, 모네의 그림이 특히 많다. 모네의 경우에는 일본미술에 관심이 많았고 실제로 일본 여성과 교류한 사진도 남아 있다. 그래서 일본인들이 그의 작품을 더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본래 그림을 볼 때에는 사진을 찍지 않는다. 마음에 담아야 할 것 같아서 그렇다. 혹시 다른 사람들의 감상에 방해가 될 것도 같고. 그러나 오늘은 사진을 좀 많이 찍었다. 아이들 이외에 관람객이 적은 편이었고, 그림을 찍어다가 따로 사용하려고 생각한 용처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왕 찍은 사진이라 블로그를 통해 공유한다. 동경 우에노의 국립서양미술관에는 이런 그림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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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회 동경모터쇼 다녀왔습니다.

이야기는 따로 드릴 것이 없고, 조금 생각한 것들이 있지만 천천히 꺼내 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궁금하실 것 같아, 사진부터 올립니다.

대략 200여장의 사진을 찍었습니다... 제가 동경역에서 셔틀 버스를 타고 들어간 연유로, 마지막에는 동경역 사진도 몇 장 들어갔습니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피곤하네요. 차는 보이지도 않고 사람만 구경하고 오는 줄로 알았습니다. 

내일이 끝날이라서 그러는 것일까요?

이번 모터쇼에서 단연 주인공은 역시 EV(전기자동차) 같습니다. 실제로 전시장 안에서 짧은 구간을 직접 시승해 운전해보는 코너가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곧 우리의 생활에서 내연기관이 전기자동차로 빠르게 대체될 것이라는 예감을 받았습니다.

동경모터쇼 공식 홈페이지 : 
http://www.tokyo-motorshow.com/

(일본어가 난감한 분들을 위하여 영문 페이지)
http://www.tokyo-motorshow.com/en/


모터쇼 사진앨범 : (215장)
http://j.mp/18dgbf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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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에 들어섰다... ^^

네리마 구약소(구청)의 공식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네리마구에는 모두 9개의 추천 산보코스가 있다. 


그 중에서 우리집에서 바로 시작되는 산보코스가 시미즈야마(清水山)코스이다. 
산보 가이드가 PDF로 제공되고 있다. [링크]  (편의를 위해 아래 첨부해 두었다)

shimizuyama-1.pdf

shimizuyama-2.pdf


가이드북에는 7.2킬로라고 나오는데,
집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구글맵에 찍어 보았더니 대략 8.5킬로 / 1시간46분이 찍였다.


구글맵 링크 :: http://j.mp/1byeqMX


출발해서 주택가를 지나는 길은 생각보다 좋지 못했다.

낮에도 차량 통행이 많고, 길도 그냥 주택가의 동네 길이어서 아기자기한 산보로를 기대했던 마음은 실망으로 가라앉았다.

하지만 햇살 좋고 바람도 간간히 불어 걷는 재미는 길의 왜소함을 보충했다.

중간에 하천을 끼고 이어지는 길로부터 조금은 산보의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전경들이 이어졌다.


오래된 주택가에는 중간중간 생산녹지가 많아서 여러 작물들이 재배되고 있었는데,

귤도, 감도, 포도도 자라고 있었다.

네리마에서 귤이 생산된다는 사실은 이번에 처음 알았다... ^^

더욱 정겨운 풍경은, 군데군데 자기 밭에서 생산한 작물을 좌판으로 풀어놓고 동네 사람들에게 판매하는 상점들이 있다는 점이다. 저렴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신기하고 흥미 있었다.


주택가 안쪽으로 조그만 가계들이 많았다.

한국의 주택가의 경우, 대부분이 음식점들이다.

그러나 일본의 주택가에는 설비, 중장비, 목공, 조경, 파이프, 수공업체, 디자인, 연구소 등이 다양하게 보였다.

작은 가계를 운영하더라도 큰 위기 없이 지속적인 안정을 약속 받을 수 있다는 것은 일본 사회의 저력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참 부러운 현실이다...


산보코스의 만족도는 5점 만점에 3점 주겠다.

일단 길이 어려웠다. 대부분이 차도와 골목길을 가는 것이라 지도만 보고서 걷기에는 좀 불안했다.

그리고 길이 심심하다. 딱히 길에서 발걸음을 잡는 스팟이 없다.

가이드북에 나온 스팟들이 실제로는 부실하기 그지 없고, 별로 관리도 되고 있지 않아 보였다.

좀 더 아기자기하고 일본스러운 산보코스를 알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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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에노 공원에서 몇 년째 계속 만나게 되는 거리공연팀입니다.
복장을 보니 페루에서 오셨다고 하네요.
남미의 민속악기를 들고 우리에게 익숙한 음악들을 즉석 연주합니다.
이번에는 엘 콘도르 파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요즘 준혁이가 사이먼 앤 가펑클의 곡을 학교에서 공연한다고 연습을 합니다.
엘 콘도르 파사를 사이먼 앤 가펑클이 앨범에 담았던 것이 1970년이군요.
좋은 노래는 역시 그 생명이 끝나지 않는 것 같습니다.


I'd rather be a sparrow than a snail.
Yes I would,
If I could,
I surely would.

I'd rather be a hammer than a nail.
Yes I would,
If I only could,
I surely would.

CHORUS
Away, I'd rather sail away
Like a swan that's here and gone
A man gets tied up to the ground
He gives the world
Its saddest sound,
Its saddest sound.

I'd rather be a forest than a street.
Yes I would.
If I could,
I surely woud.

I'd rather feel the earth beneath my feet,
Yes I would.
If I only could,
I surely would.


달팽이보다는 참새가 되겠어
할 수만 있다면 꼭 그럴거야
못보다는 망치가 될거야
할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하겠어
꼭 그럴거야

멀리, 차라리 멀리 항해를 떠나겠어
여기에 머물다 떠나간 백조처럼
인간은 땅에 머물러 있다가
가장 슬픈 소리를 세상에 들려 주지
가장 처량한 소리를

도심의 거리보다는 숲이 되겠어
할 수만 있다면 그럴거야, 꼭 그럴거야
차라리 내 발아래 흙을 느끼고 싶어
할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하겠어
꼭 그럴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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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우에노에 나갔다. 

엘 그레코(El Greco) 전시회를 한다고 해서, 동경도미술관에 들려봤다.
웃긴 얘기지만 다음 약속으로 인해 시간이 없어 그림 구경은 못하고 미술관 구경만 하고 왔다.

엘 그레코는 르네상스 시대를 대표하는 스페인의 화가, 조각가, 건축가이다. (한 사람이 종합적이네! 뭐 이렇게 잘났어!)
위키페디아 http://en.wikipedia.org/wiki/El_Greco


최근에 고야의 그림에 대한 책을 보고 있는데, 스페인 미술에 나름 관심이 생겼다.
그래서 나중에 시간 내서 한 번 가볼까 한다... 
스페인은 참 역동적인 나라인 것 같다.
투우, 집시, 플라멩고... 그리고 가우디 성당... 겨우 고야의 그림을 알기 시작하는 초보의 눈으로, 엘 그레코의 르네상스는 어떻게 다가올까? 궁금해진다.


동경도 미술관 http://www.tobikan.jp/
엘 그레코전 소개 http://www.tobikan.jp/museum/2013/elgreco2013.html
엘 그레코전 공식 http://www.el-greco.jp/index.html

 


아래는 미술관 내부의 게단이다. 좁은 계단이 또 하나의 미술이더라.
로비가 깨끗하고 한가로와서 앉아 쉬었다. 미술에 관련된 책을 보거나 미술관에 관련된 자료를 컴퓨터로 검색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예술에 대한 사회적인 투자와 관리는 정말 부럽다. 일본의 좋은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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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바(そば:메밀국수)의 나라 일본… 일본은 계절을 가리지 않고 소바를 즐긴다.

가는 곳마다 소바 전문점이 자리하고 있는데, 공장이 아닌 손으로 만드는 소바는 만드는 사람의 자부심의 대상이기도 하다.

오늘은 그 소바 이야기를 좀 하려고 한다.

 

 

지난 주일에 부름을 받아 섬겼던, 나가노교회(長野教会)에서 한 권사님을 만났다.

일본인이신 남편 분이 평생 소바 기술자로 살아오신 분이라 한다. 경기가 침체되면서 소바 전문점들도 인건비 절감을 위하여 사람들을 해고하기 시작했고, 그래서 소바의 질이 떨어지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소바의 맛을 최고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소바를 만드는 사람뿐 아니라 그것을 끓이는 사람도 기술자를 써야 한다는 것이다.

그 남편께서 직접 추천해 주신 소바 전문점이 두 개 뿐인데, 그 중의 하나에서 소바를 맛보게 되었다.

가게의 이름은 소바노미(そばの実)이다.

 

 

오전 11시부터 오픈인데, 10시 50분 정도에 도착을 했다.

이미 대기표에 이름을 쓰고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주차장이 꽤 넓어서 한적한 시골식당을 생각했지만, 정작 식사를 할 때가 되니 빈자리가 남지 않고 대기하는 사람들이 줄을 섰다.

역시 한국이나 일본이나 맛있는 음식점은 인기가 좋다. 기다려서라도 기꺼이 좋은 음식을 먹으려는 것이 사람들의 마음인가보다.

교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내부는 정갈했다.

종업원의 표정도 밝고 친절하다. 어디를 가나 그렇지만, 친절한 손님접대는 참 일본에서 배울 점이 아닌가 한다.

내부는 천정이 높은 목조건물로 실링팬이 돌아가고 있었는데,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시원했다. 창 밖으로는 푸른 숲이 보여서 시야를 맑게 하는 곳이었다.

권사님의 추천을 따라 자루소바 (ざるそば)와 튀김을 주문했다.

 

 

개인적으로는 소바를 좋아한다. 그래서 여름이면 집에서 자주 먹는 음식이다.

동경에서 몇몇 소바 전문점을 찾아 보았는데, 개인적으로는 실패였다. 간장(つゆ)가 너무 짜거나 면이 입에 맞지 않아서 가격에 비하여 실망스러운 음식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집의 소바, 정말 맛있다. 가까이 살았으면 자주 왔을 것 같다. 먹어볼 수 있도록 기회를 얻은 것이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맛에 매력이 있었다.

 

백문불여일견이라. 맛을 어찌 글로 표현하랴. 다만 갈 수 있는 사람들은 가보라고 권하는 것이 제격이다.

 

 

나가노에 가면 꼭 한 번 맛을 보기를 권한다. 특히, 소바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아울러 좋은 구경 시켜 주시고, 맛있는 음식까지 대접해 주신 나가노교회의 조수진 권사님께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린다.

모든 것이 풍성하신 주님의 은혜이다…

 

Posted by makari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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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18 

7월 18일은 일본의 휴일인 ‘바다의 날’이다.

덕분에 토, 일, 월의 3일 연휴가 만들어졌다. 여행하기 좋은 기회가 생긴 것이다.

우리 동네인 ‘히까리가오까(빛의 언덕)’에서는 3일 동안 마쯔리(지역축제)가 열리기도 했다.

일본에 올 때에, 아이들이 초등학교 3학년, 5학년 이었다.

벌써 5년의 세월이 흘러, 이제는 중학교2학년, 고등학교1학년이 되어 있다.

이곳에 잘 적응해서, 지금은 친구도 많고 학교생활도 잘하고 있다.

 

찬혁이가 월요일에 계획을 하나 잡았다.

집에서 출발하여 동경 시내에 있는 ‘스카이트리’에 다녀오겠다는 것이다.

스카이트리는 동경타워를 대신하는 새로운 동경의 랜드마크다.

내년 봄에 완성되는데, 그 높이가 634m로 방송탑으로서는 세계 최고의 높이란다.

가는 것은 좋은데… 요즘 동경 날씨가 장난이 아니다.

낮기온이 무려 36~37를 오가는데, 그것도 한낮에는 도시가 달구어져서 훨씬 더 높다.

그리고 집에서 거리가 작지 않다.

직선 거리로 18Km 정도 찍히는데, 우에노공원과 아사쿠사를 경우하기로 코스를 잡으니 왕복 40Km가 훌쩍 넘는 코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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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걱정을 했지만,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아서 내가 지지했다.

벌써 학교에서 함께 갈 아이들을 두 명 섭외했는가보다. 그런데 다른 녀석이 그 계획을 듣더니 “너희들 미쳤다!”고 하더란다.

오기가 생긴 찬혁이와 친구들이 그 녀석을 설득했다. 결국 그 녀석도 이번 모험에 같이 가기로 했단다… (같이 미친거지, ㅋㅋㅋ)

 

주모자로서 나름 부담이 되었던 것일까?

찬혁이가 전날 잠을 못 잤다. 교회에서 주일 뒷정리를 하다가 잠시 잠이 들었는데, 새벽 5시에 문자가 왔다.

카메라를 가져가고 싶으니 가져다 달라는 것이었다.

아이들 출발시간을 8시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부랴부랴 7시에 집에 들어갔다.

그런데 찬혁이가 없다. 아내의 말을 들으니, 뜬눈으로 밤을 새우고 새벽 6시 반에 집을 나갔다고 한다.

조금 걱정이 되었다…


** 찬혁이가 찍은 미명. 요즘 동경은 4시 직전에 해가 뜬다. 정말 날을 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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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를 했더니, 네리마가스가쵸에서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기다리는 중이라고 한다.

카메라는 그냥 핸드폰으로 사용하겠다고 한다.

잘 다녀오라고 격려하고, 혹시라도 무슨 일이 있으면 즉시 연락하라고 했다.

스쿠터를 타고서라도 출동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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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아이들이 출발했다. 대략 7 조금 넘어서 출발 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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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시20분에 문자가 도착했다. 우에노 도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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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일단 서양미술관으로 향한다. 
동경시내가 모두 절전으로 몸살을 앓고 있지만 미술관은 춥다.
아마도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림을 위해서 그런 것이 아닌가 한다.

일본은 중학생까지 모든 미술관 관람이 무료이다. 
상설전도 그렇지만, 특별전 역시 마찬가지라서… (부럽다!) 아이들은 예술작품을 만나는 것이 아주 즐겁고 쉽게 되어 있다.

우에노에 있는 국립서양미술관을 찾았는데, 대영박물관 초대전으로 [고대의 그리스전]이 열리고 있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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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뎅이랑 같이 기념촬영도 하고… 땀냄새 물씬~

아직도 생생하네. 역시 아이들이군. 그런데 한 녀석은 그림자처럼 잘 등장하지 않는다.

우에노에는 호수가 있다. 그리고 보트장도 있다.

예전에 데려갔을 때에, 보트를 태워주었더니… 찬혁이가 좋았던가보다.

미술관에서 나와서는 보트장으로… (안 덥니? 아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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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출출하다. 뭔가 먹어야 하겠지.

친구들과 함께 조나산(Jonathan; 일본에서는 절대 조나단이라고 발음하지 않는다!)에 갔다.

훼미리 레스토랑이다. (오후12시17분)

메뉴는 스파게티와 팬케익.

이거 먹고 되겠냐만… 아이들의 선택이니까. (용돈 넉넉하게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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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시 자전거를 달려서 스카이트리에 도착(오후 1시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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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기념촬영… 목표는 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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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길에는 아사쿠사를 들렸다.

일본인들이 1월1일에 제일 많이 찾는 긴자가 있는 곳이다. 그곳의 뇌문(雷門)은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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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로는 갔던 길을 열심히 달려서 집으로 돌아왔다.

저녁 6시 반에 도착. 무려 12시간의 대장정… 하지만 다행히도 구름이 끼어서 날씨도 도와주었고,

아이들은 모두 생생하게 돌아왔다…

아사쿠사에서 오미야게(여행선물)로 만쥬도 사왔다. (멋진 놈이야!)

 

그런데 이 녀석, 저녁을 먹더니.. 또 나간단다.

오늘이 마쯔리 마지막 날이라고 친구들 만나기로 했단다.

결국 30분 집에 있다가 7시에 나갔다. 아마도 열시는 넘어 들어왔을꺼다.

그리고도 이번 주인가, 다음주에 다시 친구들과 영화 보기로 했다나.

트랜스포머가 일본에서 이번에 개봉하는데, 그걸 보기로 했다고… 에휴~

또 뜯기게 생겼다! ^^ 행복한 비명~

우리 아들은 절대 돈을 달라고 하지를 않는다. 다만 자꾸 내 앞에서 돈을 센다.

그래서 용돈을 줘야 하냐고 물으면 “괜찮아요!”라고 대답한다.

몹시 맘이 불편하다… 결국 내 밥값이라도 주고 만다.

차라리 달라고 하면 꿀밤이라도 줄텐데… 역시 아들은 고단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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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경 국립신미술관에서 워싱턴 내셔널 갤러리전을 보다.

아침부터 시내에 나갈 일이 있어서 외출한김에 녹본기(六本木)에 있는 국립신(新)미술관에 다녀왔다.
모르고 갔지만, 오늘의 메인 기획전은 [워싱턴 내셔널 캘러리전]이다.



물론 서양미술은 유럽이 그 중심이지만, 돈 많은 나라인 미국에 가치 있는 작품들이 의외로 많이 수집되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다.
그리고 오늘 그것을 확인했다.
이번에 일본에 들어온 작품은 모두 83점이다. 작품의 분류는 인상파, 포스트 인상파의 작품들이다.

마네, 모네, 드가, 르누와르… 그리고 고흐의 그림이 걸렸다.
하나같이 쉽게 보지 못했던 작품들이다.
특히, 좋아하는 고흐의 그림 두 점은 완전히 첫만남이다. 나는 그 앞에서 다리가 붙어 버렸다.



고흐의 초상화 중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은 아무래도 프랑스의 오르세 미술관에 소장된 위의 작품이 아닐까 한다.
1890년 7월에 권총으로 자살했던 고흐가 1889년 9월 즈음에 생레미의 정신병원에서 그린 그림이다.
사람들은 지중해의 물결을 연상시키는 배경의 무늬와 색감에서, 그리고 마르고 강렬한 눈빛의 표정에서 고흐의 정신과 조우한다.
그런데 오늘 이 작품과 거의 같은 시기에, 거의 같은 구도로 그려진 다른 그림을 보게 되었다.



이 작품도 역시 1889년9월 즈음, 그러니까 생레미 정신병원에서 그린 자화상이다.
컴퓨터 사진으로는 표현이 되지 않는데…
음, 이 그림의 느낌을 말로 표현 할 수가 없다.
아마도 이래서 사람들이 진품을 보기 위해 멀리 유럽까지 가는가 보다.
보지 않으면 느낄 수 없는, 그냥 그림 앞에서 숨을 죽이게 하는… 작품이다.

고흐는 1889년 5월8일에 스스로 생레미 정신병원에 들어갔다고 한다.
지독한 우울증 때문이었다.
파리에서 고갱과 싸우고 자신의 귀를 자른 사건은 그 이전이다.
이후로 그의 우울증이 점점 심해져 갔던 것 같다.
생레미의 정신병원에 들어가서도 고흐는 그림을 놓지 않았다.
모델을 구할 수 없었던 고흐는, 이 시기에 자신의 자화상을 집중적으로 그렸다.
그래서 무려 40여 점 이상의 자화상을 남겼다.
고흐는 이 시절에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 다음과 같이 썼다.

“한 사람에게서 여러 성격의 모습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다.”

자화상을 통해 고흐가 그렸던 것은, 자기의 얼굴이 아니라 자아였다는 생각이 든다.
점점 잃어가는 자신을 그림을 통해 붙잡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붓의 터치가 굵었다. 어깨는 산맥처럼 뻗어 내렸다.
그는 왼손에 팔레트를 들고 있다.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 있다.
눈동자도 파랑이다.
곱쓸의 머리는 마치 태양의 이글거림을 연상시킨다.
무엇보다 그 눈빛이 강렬하면서도 우울하게 빛나고 있다.
마른 얼굴과 강조된 광대뼈가 창백한 푸른 빛의 안색과 조화되고 있다.
굳게 다문 입은 오래 말을 하지 않았을 것 같다.
그러나 눈은 계속 무언가를 말하고 있는 것만 같다.
배경에는, 지워진 주변의 일렁거림… 그건 시간처럼 느껴진다.
겹겹이 고흐를 덮고 눌렀던 시간… 그리고 그 텁텁한 우울함.

나는 한 시간은 이 그림을 보았던 것 같다.
평일인데도 사람들이 많았다.
나이 지긋한 부부가 무더위에도 불구하고 미술관을 찾아 함께 그림을 보는 풍경은 부럽기만 하다.
그러나 이 전시회에는 젊고, 어린 사람들도 많았다.
그 군중 속에 멈춰서 그림 속의 고흐와 눈을 마주치고. 묻고 대답하고… 한참을 생각했다.
다리가 아팠다. 그렇지 않았다면 하루 종일이라도 거기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붙들렸다.
아직은 고흐와의 이야기를 끝내지 못했다.
그래서 이 글을 쓰지만, 아직 무슨 말도 하지 못하겠다.
한참을 그의 자화상 앞에 서 있을 때, 나도 모르게 눈물이 일렁였다.
알 것 같으면서도 알 수 없는 말들,
아마도 다시 고흐의 책을 읽으며 그와의 대화를 시작해야 할 것 같다.
^^

 

빈센트 반 고흐 (1853.3.30 ~ 1890.7.29)

1853년 - 3월30일 네덜란드의 흐로트쥔데르트지역 목사의 아들로 태어남
1857년 - 5월1일 동생 테오가 태어남. 반 고흐는 테오와 아주 가깝게 지냈으며, 평생 테오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음
1869년 - 8월 고흐는 구필 화랑의 헤이그 지점에 들어가 일하게 됨
1873년 - 1월에 고흐의 동생 테오도 구필 화랑의 뻴기에 지점에서 일하게 되었는데 반고흐는 런던 지점으로 옮겨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2년간 일함
1875년 - 반고흐는 구필 화랑의 지점에서 파리 지점으로 또 다시 자리를 옮김. 그러나 그는 파리에서 미술관을 다니고 책과 성경을 읽느라 화랑의 일을 소홀히 함
1876년 - 구필화랑에서 해고를 당하고 영국으로 감, 그리고 12월에 부모님이 계신 네덜란드의 에덴으로 돌아감
1877년 - 도르트레히트에 있는 서점에서 일하다가 신학공부를 하려고 5월에 암스테르담으로 떠남
1878년 - 목사가 되려고 신학을 공부하던 반 고흐는 이 계획을 포기하고 브뤼셀에서 3개월간 복음 전도사 교육을 받음. 그러나 그는 복음 전도사로 임명받지 못했고 벨기에의 탄광지대인 보리나주로 가서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을 돌보며 선교 활동을 했음
1880년 - 보리나주에서 열심히 선교 활동을 했으나 종교권위층에서 그의 지나친 열의를 달가워 하지 않아 그는 선교 활동을 그만둠 . 그래서 그는 브뤼셀로 갔고 그곳에서 네덜란드 화가 안톤 반 라파드를 만나고 친구가 됨. 그 당시에 동생 테오가 조금씩 보내주는 돈으로 생활함
1881년 - 고흐는 헤이그로 감. 그리고 다음해 그곳에서 창녀인 시엥을 알게 되지만 동생 테오의 반대로 헤어짐
1883년 - 고흐는 드렡네에서 몇 달간 머무르다가 아버지가 새로 옮겨 간 누에넨으로 가서 작품활동을 시작함
1885년 - 3월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남. 고흐는 그림의 모델이었던 한 여인과 연애설이 퍼지자 누에넨을 떠나 벨기에의 안트베르펜으로 가게 되었고, 다시는 네덜란드로 돌아가지 않음
1886년 - 안트베르펜에 있는 동안 고흐는 미술 아카데미에 들어가 작품 공부를 몰두, 그러나 전통 아카데미의 화풍과 달랐던 그의 작품음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함.
그는 결국 동생 테오가 있는 파리로 가서 코르몽의 화실을 다니며 에밀 베르나르,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레크, 루이 앙크탱 등을 알게 됨
1887년 - 친구가 된 베르나르와 함께 파리에서 멀지 않은 아니에르에 가서 센강의 풍경을 자주 그림. 그는 드가의 그림 모델이기도했던 이탈리아 인 아고스티나 세가토리를 알게 되어 사귀게 됨 . 또한 고흐의 미술품이 널리 알려지게 된 계기가 된 미술재료 상인인 페르탕기와도 친구가 되었음
1888 - 파리가 싫어진 반 고흐는 프로방스의 아를로 감, 그리고 그곳에서 예술가들의 모임을 만들 생각으로 <노란집>을 빌려 장식했음. 10월에 폴고갱도 아를로와서 노란집에서 머뭄. 그러나 고흐와 고갱은 성격이 많이 달랐기 때문에 자주 싸웠으며, 결국 성탄절 전날밤에 고흐는 고갱과 싸운후 자신의 한쪽귀를 잘라 버리는 사건이 발생함
1889년 - 테오의 친구인 여동생 요한나 봉거와 결혼했으며 아들을 낳아 반 고흐의 이름을 따 빈센트라고 이름을 지음.
그해 5월8일 고흐는 스스로 생레미에 있는 정신 병원에 입원함
1890년 - 동생 테오의 노력으로 고흐는 파리 근교에 있는 오베르로 옮기게 되었고 가셰 박사에게 치료를 받음. 그러나 7월27일 권총으로 자신을 쏘고 마지막으로 동생 테오를 만난후 7월29일 세상을 떠남
1891년 - 1월25일 고흐가 세상을 떠난지 6개월 후에 동생 테오도 세상을 떠남 , 그리고 오베르에 있는 반 고흐의 묘지 옆에 묻힘
* 살아 생전에 이름을 알리지 못했던 반고흐의 그림은 화랑에서 일하는 동생 테오에게 보내졌고 테오는 고흐와 고갱의 그림을 미술 재료 상인인 페르 탕기에게 싼값게 팔게 되면서 후에 고흐가 죽고 나서 페르탕기에 의해 많은 고흐의 그림들이 깨끗한 상태로 소장이 되어있었다고 하는군요.

Posted by makari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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