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쉬운 길로 가지 마라! makarios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896)
목회 (632)
인생 (179)
동경in일본 (35)
혼자말 (50)
추천 (0)
09-12 13:32
Total
Today
Yesterday

달력

« » 2012.12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2012/12/09'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2.12.09 죄에게도 작전이 있다
  2. 2012.12.09 돈을 부끄럽게 하는 교회

sc56-21

 

 

2012-12-16 목양칼럼

 

간염은 바이러스에 의하여 전파됩니다. 때문에 위생이 중요한 예방이 됩니다. 손을 깨끗이 자주 씻고 생활을 하면 대부분의 바이러스 전염을 막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특이한 경우도 있습니다. 간염 바이러스가 몸 안에 들어와서 감염이 되었으면서도 전혀 간염을 일으키지 않고 잠복해 있는 경우입니다. 이를 ‘건강한 보유자(보균자)’라고 부릅니다.

이런 분들은 자신이 감염자라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주변의 모든 사람들을 위험에 빠뜨리게 됩니다. 알지 못하는 사이에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간염 바이러스를 배달하게 되는 것이지요.

이것은 바이러스가 생존을 위해 습득한 방식입니다. 무조건 숙주를 공격하지 않고 오히려 얼마간 공존하는 것이 자기들을 더 많이 복제하고 전파하는 것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바이러스가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대단하지요? 바이러스는 세균보다 더 작고 원시적인 생명입니다. 유전물질인 DNA나 RNA를 단백질이 감싸고 있는 단순한 형태이지요. 그런데 그 단순한 생명 안에 이처럼 ‘작전’의 개념이 습득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정말 놀랍기만 합니다.

 

성경을 묵상하면, 죄와 질병을 연결하는 고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모든 질병이 죄의 결과라도 단정하는 것은 삼가야 합니다. 그것은 병자에 대한 정죄와 비판이라는 그릇된 결과를 낳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질병이 죄와 전혀 무관한 것은 아닙니다.

적어도 질병은 죄와 매우 유사합니다. 그 파괴적 속성, 내포되어 있는 흉계(凶計), 진행의 과정 등에서 우리는 죄에 대한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죄는 사람을 파괴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 파괴적 욕망을 항상 당장 실현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면 사람과 함께 죄도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죄에게는 죄를 전파할 기회가 필요합니다. 되도록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파한 후에 이미 점령한 사람을 파괴해도 늦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현실에서는 죄인의 형통도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병원체인 바이러스와 사람의 영원한 평화가 있을 수 없듯이 죄와 죄인의 관계도 그러합니다.

결과적으로 죄는 언제나 사람을 파괴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작은 죄도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죄야말로 나를 파괴하는 대적이며, 나를 통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드는 원수입니다. 당장에 어떤 손해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하여서 죄를 가볍게 여기다가는 마침내 아주 큰 대가를 치르게 되어 있습니다.

 

죄의 작전을 이해하십시오. 그것은 이미 당신의 인격과 삶 안에 견고한 집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집이 완성되면 아무리 애를 써도 죄를 몰아내기 힘듭니다. 죄는 결과적으로 인격과 신앙을 파탄 낼 것입니다. 당신을 파괴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기 전에 우리는 돌이켜야 합니다. 내 안에 죄를 찾아내고, 그것을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어야 합니다. 손을 깨끗이 씻는 것이 바이러스를 예방하는 것처럼, 우리가 십자가의 보혈로 우리 양심을 씻는 것이 죄에 대한 가장 강력한 예방이 됩니다.

 

날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묵상하십시오. 그분의 보혈이 당신의 양심에 흐르게 하십시오. 영적으로 건강하게 살아가는 비결이 바로 그것입니다. 다른 것을 노력하지 말고, 바로 십자가와 마주하는 시간을 더욱 노력하십시오. 샬롬~

Posted by makarios
, |

돈다발사진_jolybee0504

 

2012-12-09 목양칼럼

 

교회는 불신앙과 싸워야 한다. 불신앙이란 하나님을 신앙하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을 신앙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 이것을 깊이 생각하다가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물론 교회 밖의 세상에서는 의심과 회의, 믿지 못하는 온갖 영적 장애로 인하여 하나님을 제대로 신앙하지 못하는 불행이 생겨난다.

그러나 불신앙이 교회 밖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교회의 모임에 잘 참여하고 예배를 드리면서도 여전히 하나님을 신앙하지 못하는 불행한 사람들이 보인다. 이런 사람들은 대부분 하나님의 자리를 이미 다른 것이 차지하고 있다.

 

무신론자(無神論者)를 자처하는 사람에게도, 따지고 보면 하나님은 있기 마련이다. 그에게 행복을 주고 모든 인생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누구, 혹은 어떤 것이 존재한다. 그 절대자의 자리는 모든 인간에게 필연적이다. 그래서 종교심은 인간본성의 일부인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자리를 대치하는 가장 대표적인 우상(偶像)은 무엇일까?

말할 것도 없이 돈이다. 사실 신령하고 신비한 신을 가진다는 것은 특별한 영성과 믿음을 요구하는 일이다. 그래서 어떤 시대, 어떤 지역에서나 종교인은 소수일 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믿으려고 노력하며 사는 것을 택한다. 그들은 종교를 의지하지만 종교와 거리를 둔다.

 

보이지 않는 신에 비하여 ‘돈(황금)’은 대단한 위력을 현실 세계에서 보여준다. 날마다 살아가는 삶의 자리에서 돈은 현실이다. 돈은 표면적으로 보이는 모든 행복과 불행의 원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점점 더 돈에 집착하게 되고 마침내 돈을 믿게 된다.

돈이 믿어지는 순간 하나님을 향한 신앙은 파선(破船)된다. 사실 이 사람들은 이미 자기 마음의 하나님을 가진 것이다. 그들은 불교도, 이슬람교도, 유교도 아니다. 그들의 신앙은 돈이다. 돈이 곧 축복의 모든 것이며, 돈이야말로 천국으로 통하는 구원의 문이다.

 

성경은 모세로부터 사도들까지 이 돈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다. 때문에 교회는 신자들의 영혼을 사냥하고 불신앙의 구렁텅이에 빠뜨리는 이 돈과 싸워야 마땅하다. 그것이 교회의 사명이 아니던가?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게 하는 모든 세상의 장벽을 허물고 사람들의 영혼을 자유로 이끌어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게 하는 것이 교회의 존재 이유가 아니던가?

 

결론적으로 교회는 돈과 싸워야 한다. 돈이 행복과 불행의 근본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 돈을 사소하게 만들고 돈이 가진 엄청난 위상을 그리스도께 되찾아 와야 한다. 사람들이 돈을 바라고, 믿고, 사랑하듯이 그리스도를 바라고, 믿고, 사랑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그러면 정말 기적이 상식이 되고, 교회는 막강해지지 않을까?

 

문제는 이 전선(戰線)을 교회가 까맣게 잊고 있다는 사실이다. 교회조차 돈 타령만 한다. 교회에 모여서 돈 없다고 회의 하는 것이야말로 부끄러운 일이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만 가지 악의 근원이 되고, 결국에는 믿음에서 멀어지며, 근심으로 자기를 찌르게 된다는 말씀(딤전6:10)은 얼마나 정확한가!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돈과 믿음으로 싸우는 교회가 되어야 하겠다.

확실히 하자. 우리가 불행한 것은 하나님을 제대로 신앙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부족한 것은 돈이 아니라 믿음이다. 우리가 구할 것도 돈이 아니라 하나님의 도우심과 능력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사랑이다. 아멘!

'목회 > 목양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생은 생각보다 길지 않습니다.  (0) 2013.01.13
죄에게도 작전이 있다  (0) 2012.12.09
경제적인 교회 VS 본질적인 교회  (0) 2012.12.01
간절함에 대하여  (1) 2012.11.28
그리스도인은 달라야 한다  (0) 2012.11.25
Posted by makarios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