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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25 목양칼럼


공감(共感)은 특별한 능력입니다. 상대방의 입장에 자기를 대입시켜서 생각하는 것을 통해 느끼는 감정입니다. 사람은 이 능력을 통해 다른 사람의 고통이나 기쁨을 함께 가질 수 있고, 그 결과 거대한 감정의 일치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감정의 힘은 생각보다 크고 강합니다. 때문에 공감의 연대는 약자들이 강자를 이겨내는 기초입니다. 약자들이 공감을 통해 하나로 묶여졌을 때, 비로소 강자를 이길 수 있는 힘을 행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공감은 쉽지 않습니다. 사람은 각각 다르기 때문입니다. 자기를 남의 입장에 대입시키는 생각은 말처럼 간단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동서를 막론하고 도덕의 가장 높은 경지로 ‘역지사지(易地思之)’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공감의 가장 정점을 보여주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그분은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을 하시는 정도가 아니라 직접 사람이 되셨습니다. 그래서 ‘성육신’을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메시지는 ‘내가 널 이해하고 공감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예수님의 모범을 따르도록 명령을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셨을 때, 그 명령은 예수님과 같은 낮아짐과 헌신을 통해 서로 공감할 것을 명령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공감은, 단순한 미덕(美德)이 아니라 제자됨의 사명입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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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면 어찌하여?

본문 : 사사기 6:11~14

(6:11) 여호와의 사자가 아비에셀 사람 요아스에게 속한 오브라에 이르러 상수리나무 아래에 앉으니라 마침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이 미디안 사람에게 알리지 아니하려 하여 밀을 포도주 틀에서 타작하더니

(6:12)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나 이르되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하매

(6:13)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오 나의 주여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면 어찌하여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일어났나이까 또 우리 조상들이 일찍이 우리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애굽에서 올라오게 하신 것이 아니냐 한 그 모든 이적이 어디 있나이까 이제 여호와께서 우리를 버리사 미디안의 손에 우리를 넘겨 주셨나이다 하니

(6:14) 여호와께서 그를 향하여 이르시되 너는 가서 이 너의 힘으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라 내가 너를 보낸 것이 아니냐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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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제는 게편인가?



김동호 목사님이 일본요한교회의 김규동 목사의 회개를 언급했다.
금요철야에 무릎 꿇고 앉아 죄를 인정하고 회개하는 장문의 글을 낭독했다는 것이다.
대단히 격앙된 논조로 '회개'를 환영했다.
그런데 이런 '퍼포먼스'가 과연 회개일까? 아니면 사건을 무마하고 없던 일로 돌리기 위한 작업일까?

김동호 목사님 글에서도 언급했다. 
이 사건을 죽기살기로 방어해 주겠다고 나서는 사람들이 요한 교회에서 나왔다고. 그리고 오히려 상대방을 공격할 힘도 목사에게 있었다고.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았으니... (대단하다는건가? 다행이라는건가?)

요한교회의 일탈은 이미 동경에서는 오래 묵은 문제였다.
단순히 노방전도의 강제성 때문만이 아니다. 대학 유학을 위해 온 청년들을 '사역'이라는 울타리로 가두어서 학업을 포기하고 '사역자'로 남게 하는 것이 그 교회의 전략이었다. 
심지어 사역자로 지목된 사람은 결혼도 함부로 못한다. 목사가 인정해주는 사람과만 사귈 수 있다. 안 그럴 경우, 교회에서 사역을 내려놓고 왕따를 당한다. 일종의 근신처분이다.
청년들이 아르바이트를 하는 곳에 순장이 찾아와서 월급의 십일조를 강제하기도 한다. 
이런 강제성이 먹혀들었던 이유는, 외국이라는 환경 때문이다. 
대부분의 유학생이 언어도 서툴고, 환경도 낯설다. 더구나 일본은 유학생의 아르바이트가 허용되는 얼마 안 되는 나라 중의 하나이기 때문에, 부유한 유학생이 아니라 정말 가난한 유학생이 많다. 그런 아이들이 유학 초기의 긴장 상태 속에서 거의 반항도 못하고 붙잡혔던 곳이 요한교회였다.

과거로만 한정할 일은 아니다. 지금 요한교회는 여행사를 운영하여 교인들의 항공권을 거래하고, 일본어학교를 통해 유학비자를 해결해 주고, 기숙사를 만들어서 학생들을 단속하고 있다. 심지어 핸드폰 개통이나 한국의 070 전화 판매도 교회의 인프라를 통해 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교회'라는 울타리 안에서 교인들의 숫자(규모)를 가지고 감당하는 일이다.

김동호 목사님이 코스타 강사로 어떤 교제를 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 관계가 점잖은 것이었을 것임에는 분명하다. 
하지만 유학생 사회에서는, 이미 10년이 넘도록 요한교회의 횡포와 무성한 이탈의 소문으로 시끄러워 왔다.
심지어 한국에서 유학원이 유학생을 모집하여 동경으로 보낼 때는, "요한(요도바시)교회를 조심하라. 거기 걸리면 유학생활이 끝장난다."라는 경고를 했다고 할 정도다.
이런 문제에도 불구하고, 일본 코스타의 주최교회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그 교회가 가지고 있는 규모와 동원하는 인력의 힘이었다. 건전한 신학이나, 교회의 신앙적인 색깔은 애초부터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다.

애큐매니칼 관점으로 보았을 때에, 기독교가 미미한 일본에서 분리가 아니라 연합이 중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 때문에 얼마간의 문제에도 불구하고 요한교회를 끌어 안았다면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10년이 넘은 관계 속에서도 '문제'를 전혀 몰랐다니... 이건 놀라운 맹신이 아닌가! 
이제라도 무시했던 문제들에 대하여 반성해야 할 코스타의 목사가, 아직 아무 것도 내려놓지 않은, 아직도 무시무시한 힘과 권력을 여전히 가지고 있는 다른 목사의 눈물 한 방울에 이토록 호응하는 것은 당혹스럽다.
그렇다면 그 여성 사역자들이 성적 수치심을 느끼고, 심지어 폭행을 당했다고 고백하며 흘렸던 눈물의 값은 어디 있나? 그 눈물을 너무 헐값으로 퉁치고 있다고 여겨지지 않는가...

요한교회의 문제는, 신학의 부재와 신앙의 탈이성, 그리고 교우들을 목사의 홍위병으로 훈련했다는 것, 목사가 과도한 권력을 독점하는 점, 교회의 비지니스 모델을 지속적으로 개발한 점... 등이다.
이런 문제에 대한 인식을 가지지 못하고, 그 열매로 나타난 성추행 사건을 우발적인 일탈로 보려는 관점이 우려스럽다.
제대로 된 회개를 보여주기를 나 또한 바란다. 그리고 기도하겠다. 그러나 아직은 아니다. 갈 길이 멀고, 드러난 문제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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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22 목양칼럼


갈등 속에서, 우리는 대체로 포기하지 않고 계속 대화를 시도하는 것이 옳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갈등의 실마리가 풀리지 않은 상황에서의 대화는 오히려 더 많은 오해를 불러오거나 갈등을 심화하는 과정이 되기 쉬운 것 같습니다. 그런 대화는 양편 모두를 더 깊이 상처 받게 하고, 오히려 화해할 여지를 줄여 버립니다.

대화가 가능하면 대화를 하십시오. 그러나 대화할 수 없을 때는 기다리는 것이 지혜로운 일일 것입니다. 아무 것도 안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대처법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과 사람의 간격은 좁고도 깊습니다. 혼자서는 살 수 없는 것이 사람이면서도 늘 외로운 것이 사람입니다. 아무도 타인을 완전히 이해하거나 충분히 사랑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 한계를 겸손히 인정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과 사람의 화목에는 반드시 예수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은혜 없이 우리는 '나'의 울타리를 넘어설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갈등 속에서 제일 필요한 것은 기도 같습니다. 기도를 통해 갈등에 대한 내적 성찰을 얻고, 또한 예수님의 도우심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충분히 기도하면, 분명히 실마리를 풀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될 것입니다. 대화의 노력은 그 때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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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재합의를 거부하며 

대통령과 국회에 호소합니다. 



우리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 가족들은 이제 어디로 가야 합니까?


실종자 10명은 아직도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 하고 있고,

유민이 아빠는 사십일 가까이 죽음의 단식을 이어가고 있는데

우리 가족들 보고 정치의 한가운데에서 흥정을 하라고 강요합니다.


우리는 지치고 고통스러운 몸과 마음을 이끌고 약 130일을 버텨왔습니다.

우리 아이들, 우리 가족들은 왜 죽을 수밖에 없는지를 알고 싶었습니다. 

일상으로 다시 돌아가기 위해서는 가슴에 맺힌 한을 풀어야 했습니다. 

다시는 세월호 참사와 같은 참사가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

앞으로 한 명의 소중한 생명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

청와대 국회 광화문 등지에서 성역없는 철저한 진상규명을 외쳤고

서울에서 제주까지 전국 곳곳을 돌며 400만의 서명을 모아 

4.16 참사 진실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안을 입법 청원하였습니다. 


5월 16일 청와대에서 우리 가족들을 만나 특별법 제정과 관련하여 "국회에서 애끓는 유족 여러분들의 마음이 잘 반영이 되도록 지원"할 것이라고 했고, 5월 19일 대국민 담화문을 통해 "고귀한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대한민국이 다시 태어나는 계기"로 반드시 만들겠다고 눈물로써 했던 대통령의 약속을 우리는 믿었습니다. 그러나 대통령과 청와대는 국정조사에서 요청된 자료의 5% 미만 만을 공개하고, 청와대가 재난컨트롤타워는 아니라는 말만을 반복하고, 대통령을 만나고자 하는 가족들의 절규에 답하지 않고 청와대 2000미터 밖에서 가족들을 가로막음으로써 답했습니다. 


4월 29일 본회의 결의를 통해 "세월호 침몰 사고에 대한 철저한 규명을 통해 사고의 원인과 진상을 명명백백히 밝혀내기 위한 노력을 다할 것을 다짐하며, 또한 정부는 이번 사고와 관련된 불법 행위이자 전원과 직무를 태만히 한 공직자에 대해서도 엄중하게 처벌할 것을 촉구"하였던 국회의 약속을 우리는 믿었습니다. 그러나 참사 초기 그 어떠한 적극적인 역할도 전혀 하지 않았던 국회는 즉각적인 진도 방문, 관련 모든 증인의 채택, 가족들과의 협의체 구성 등 가족들과의 거의 모든 약속을 어기고 국정조사를 파행으로 이끌었고, 4.16 참사 특별법안 논의에서 정치적 이해득실을 따지며 국민의 생명을 정치적 흥정거리로 삼는 것으로 답했습니다. 


어떤 분들은 '세월호 피로감'을 이야기하며 이제 그만 죽은 넋들을 놔주라고 합니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도 지치고 힘든 우리들은 여기서 주저앉는 것이 죽은 넋들을 두 번 죽이고, 앞으로 있을지도 모르는 또 다른 죽음들에 눈 감는 것임을 압니다. 


어떤 분들은 민생을 챙기고 경제를 살리기 위해 세월호를 극복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 누구보다도 민생고, 생계고에 시달려왔고 시달리고 있는 우리들은 세월호를 제대로 해결하는 것만이 참으로 인간다운 삶의 출발점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압니다. 


또 어떤 분들은 우리들이 '시체 장사'를 하고 있다느니 몇십억을 받았다느니하며 마타도 어와 유언비어를 퍼뜨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철저한 진상조사를 끝까지 주장하는  것이 배보상 측면에서는 불리할 수도 있다는 것과, 근거없이 돈 이야기를 꺼내는 분들은  진상규명을 원치 않는다는 것을 압니다. 


그리고 우리는 압니다. 

대통령과 청와대, 정부와 국회가 그 동안 '세월호 피로감', 경제 활성화, 무리한 배보상 이야기를 퍼뜨리는 데 앞장서거나 우리들에 대한 근거 없는 비난에 침묵하여 왔음을. 


우리는 단지 특별법 제정 등을 통해 4.16 참사에 대한 성역 없는 철저한 진상조사가 이루어지고 국민의 생명이 존중되는 안전한 나라가 건설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우리는 이를 위해 책임 있는 모든 사람과 기관이 조사되어야 하고, 관련 있는 모든 정보가 공개되어야 하며, 이것이 가능하게 하기 위하여 독립성, 전문성, 강제적 권한, 다양한 조사 방법, 충분한 시간과 인력을 갖춘 위원회가 필요하고 강제적 권한의 핵심은 기소권과 수사권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이 앞으로 유사한 참사를 예방하고, 설사 참사가 발생하더라도 국민을 단 한 명이라도 더 살릴 수 있는 길이라 믿습니다. 


그러나 대통령과 청와대, 여당과 야당, 정부의 주장 혹은 우리 특별법안에 대한 비난들 속에서 더 철저한 진상규명은 어떻게 가능한지, 국민을 더 살릴 수 있는 길은 어떤 것인지를 이야기하는 경우를 본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 특별법안의 상당 부분을 후퇴시킨 후 이제 와서 여야 원내대표가 합의했다는 잘 이해하기도 힘든 정치기술적 언어에 답하라고, 동의하라고 강요합니다. 참으로 잔인하고 비겁합니다. 


우리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 가족들은 이제 어디로 가야 합니까?


답해야 할 사람은 우리들이 아니라 대통령과 청와대, 국회와 정부입니다. 


하나. 대통령과 청와대는 가족들을 직접 만나 지난 3개월 동안 대통령의 약속이 어떻게 지켜졌는지 답해야 합니다. 만약 지켜지지 않았다면 사과와 함께 즉각적인 약속 이행에 나서야 합니다. 


둘. 국회는, 여당과 야당은 함께 본인들의 논의와 합의가 가족들과 국민들의 목소리를 어떻게 반영하여 왔는지를 밝히고, 본인들의 논의와 합의 내용이 가족들의 특별법안에 비해 어떻게 더 철저한 진상규명과 안전사회 건설에 기여할 수 있는지를 가족들과 국민들에게 납득할 수 있게 설명해야 합니다. 


셋. 국정조사 과정 등에서 수차례 약속했던 여당, 야당, 4.16 참사 피해 가족들간의 안정적이고 실질적인 3자 협의체를 즉각 구성, 가동하고, 국정조사, 특별법 제정, 특별법상  4.16참사 특별위원회 구성 및 운영, 진상조사, 수사와 기소 등의 전반적인 활동에서 긴밀하게 협력하여야 합니다. 


기다리겠습니다. 이번이 마지막 기다림이 될 것입니다. 더 이상 기다리지 않겠습니다. 


2014년 8월 20일

세월호 참사 일반인 희생자 유가족 대책위원회

세월호 참사 희생자/실종자/생존자 가족 대책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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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20 목양칼럼


그리스도인이 돈을 버는 것에 모든 정성과 노력을 기울이면 안 됩니다. 

그러나 현실은 언제나 이런 경고를 초라하게 만듭니다. 많은 사람들이 ‘돈’을 위해 시간과 체력은 물론 정신과 마음까지 아낌없이 소모합니다. 심지어 자기 생명을 상하게 하여 마침내 건강에 문제가 생길 때까지 달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요즘 시대에는 이 무모하고 어리석은 삶을 ‘열심’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이런 삶을 스스로 대견해 하고, 자부심을 느끼기까지 합니다.


열심 자체도 중요하지만, 무엇을 위한 열심인가를 생각하는 것은 보다 근본적인 것입니다.

돈은 수단이지 목적이 아닙니다. 돈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들의 대부분은, 사실 돈으로 얻는 것이 아니라 지혜로 얻는 것들입니다. 그것을 모르고 돈을 위해 인생을 다 소진한 후에야, 비로소 뒤늦게 잘못 판단한 것을 후회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돈을 사랑하는 것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는 성경의 가르침을 항상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돈을 경계하고, 돈에 이끌리는 우리 자신의 욕망을 조심해야 합니다. 돈보다 귀한 가치를 항상 묵상하고 추구해야 합니다. 돈이 마음의 주인이 되도록 내버려 두어서는 마침내 신앙에서도 파선하게 된다는 것을 늘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돈은, 내 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이 되어야 안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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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17 목양칼럼


빙하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해수면 상승은, 물가에 있는 많은 도시들에게 적극적인 위협입니다. 또한 이로 인하여 파생될 기후변화도 예측 불가능한 지구의 대재앙일지 모릅니다.

최근 국제적인 연구팀의 조사에 의하면, 빙하가 사라지는 원인의 70%가 인간 때문이라고 합니다.  산업화의 결과로 이산화탄소가 늘고, 그것이 지구 온난화를 가중시키고 있다는 이론은 아직 확증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이해로는 그것이 가장 유력한 후보이며, 이를 방치하면 인류가 공멸하게 될 것이라는 경고는 이미 어느 정도 현실이 되고 있습니다. 

인류는 ’전쟁’이라는 공멸의 위협을 경계해 왔습니다. 사실 전쟁 이외에는 인류에게 별다른 위협이 없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 이후의 시대에 있어, 가장 강력한 인류의 천적은 ‘자연’이 될지도 모릅니다.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아도 핵무기에 못지 않은 사상자가 생겨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일본의 대지진을 통해 배우지 않았습니까.

안일한 삶을 살기에는 세상이 너무 위태롭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의 일상만 잘 챙기면 여전히 미래가 저절로 열려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 안일함에서 깨어나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는 것이 부디 너무 늦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아이들의 눈을 보면서, 미래를 생각해야 할 요즘입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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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고 존경하는 교황님. 저희의 이 글을 꼭 읽어주십시오.


‘세월’은 한국말로 ‘흘러가는 시간’이라는 뜻입니다. 이러한 이름을 가진 배가 2014년 4월 16일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했습니다. 그러나 세월호 침몰 이후 우리 가족들 시간은 흐르지 못하고 멈추었습니다.


글을 쓰는 우리는 세월호 참사로 죽은 단원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의 부모입니다. 하루에도 수십 번 이 상황이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할 수 없는 시간을 살고 있습니다. 한 숨을 쉴 때마다 “보고 싶다” 한탄 하지만 돌아오지 않는 자식은 이름밖에 부를 수 없습니다. 딱 한번만이라도 만지고 싶고, 보고 싶고, 안아주고 싶습니다. 그러나 바닷물에 불어 차가운 시신으로 돌아온 아이들은 시신이 상할까봐 제대로 안아줄 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금도 실종되어 바다에서 돌아오지 못하는 이들도 10명이 됩니다. 우리는 죽은 아이라도 찾았지만 그들은 DNA확인이 아니고서는 알아볼 수도 없게 된 자식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가족 4명이 배를 탔다가, 엄마는 시신으로 돌아오고, 아빠와 7살 아들은 아직 바다에서 돌아오지 못해, 5살 딸만 살아남은 가족도 있습니다. 5살 딸은 “엄마 아빠, 오빠가 나만 두고 이사 갔다”고 울고 있습니다.


교황님이 아르헨티나 추기경이었을 때, 부에노스아이레스 화재 현장에 직접 달려가 구조 활동을 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소방차보다 먼저 달려가 법원이 판결 내렸을 때도 어영부영 넘어간 정부와 검찰을 강력히 비판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 결과 상급심으로 올라갈수록 화재의 숨은 원인이 드러났고 피의자들은 호된 심판을 받아야 했다 들었습니다.


한국 천주교회도 저희에게 큰 힘이 됩니다. 참사 이후 진도 팽목항과 안산에서 매일 미사를 집전해 주셨습니다. 수 백 명 신부님 수녀님이 광화문 광장에서 가족들과 시민들과 함께 단식 농성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모든 노력이 쓸모 없도록 한국 정부와 수사기관, 사법기관과 국회, 심지어 언론은 가족들 요구에 대해 아는 척하지 않습니다.


우리 요구는 단순합니다. 가족들이 죽어간 이유를 알고 싶다는 것입니다. 왜 위험한 배를 바다에 띄웠는지, 왜 한 명도 구조하지 못했는지 알고 싶습니다.


왜 방송은 전원 구조라는 오보를 내고, 해양경찰들이 제대로 구조도 하지 않는데 대대적인 구조작업 중이라 거짓 방송 했는지 알고 싶습니다.


사고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대통령과 많은 정치인들은 다시는 이런 일이 없게 해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모든 책임은 대통령에게 있고 특별법을 만들어서 진실을 밝혀주겠다 했습니다. 대통령의 약속이 거짓말일 수 있다는 생각은 미처 못 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니 가족을 무시합니다. 언제든지 찾아오라더니 청와대 가는 길을 경찰이 막습니다. 두려운 것이 있나 봅니다.


대통령은 사고 당일 7시간 동안 행적이 불분명했다고 합니다. 바로 우리 가족들이 죽어가던… 그런데 청와대와 여당은 그조차 알려 하지 말라 합니다.


참사를 조사하는 책임 여당 국회의원은 가족을 모욕하는 문자를 돌리기도 했습니다. 경찰은 항의하는 가족에게 폭력을 휘둘러 크게 다치고 있습니다. 사고에는 무능했던 정부와 여당, 공권력은 우리 가족들을 괴롭히기만 할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습니다. 온통 거짓말과 기만으로 일관된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가족들은 참사의 진상규명을 위해서 기소권, 수사권이 있는 조사위원회를 만들 수 있는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특별법은 돈을 달라는 것도, 특혜를 달라는 것도 아니고, 부정부패의 원인을, 사랑하는 나의 가족이 죽어간 이유를 밝혀달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철저히 조사하고 처벌하여 참사의 원인이 된 부정부패가 바로잡혀 다시는 우리처럼 가족과 이별하는 아픔을 겪는 이가 없도록 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한 해에도 몇 개씩 벌어지는 참사가 반복되지 않는 안전한 나라를 만들기 위한 법이기도 합니다. 그걸 잘 아는 국민들이 나의 일이라 생각하고 우리 가족들과 함께 해주셨습니다. 우리가 잃어버린 나라에서 힘없는 국민들만이 우리에게 ‘국가’였습니다.


죽은 아이들 중에는 교황님을 존경하고 그렇게 살고 싶어 하는 소년이 있었습니다. 사제가 되어 아프리카에서 봉사하다 생을 마감한 이태석 신부님처럼 되고 싶다고 한 박성호가 그 아이입니다. 성인 집안의 김웅기도 예비사제였습니다. 장준형 학생도 사제의 꿈을 꾸었습니다.


외동아들이었던 최성호, 엄마가 새로운 직장을 잡도록 같이 공부하자고 했던 건호도 외동아들이었습니다. 이혼 이후 두 딸을 어렵게 키우던 유민아빠는 유민이를 잃고서 30일 넘는 단식으로 온 몸이 말라가고 있습니다.


더 이상 사랑한다고 말 할 수 없는 보석 같은 내 아이들, 눈앞에서 잃어버린 아이들, 교황님 우리 가족의 소원을 들어 주십시오. 다시 살릴 수는 없지만 왜 죽었는지는 밝혀야 죽어서라도 아이들 얼굴을 볼 수 있겠습니다. 꿈에라도 보고 싶은데, 진실을 밝히지 못해서 그런지 꿈에도 잘 나오지 않습니다. 보고 싶어서 아이들이 입던 옷을 입고 양말을 신고 다니지만 그마저도 다 낡으면 어떻게 할지 모르겠습니다.


생존한 아이들은 자기들이 친구를 두고 왔다면서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친구들과 같이 생활했던 교실에 찾아와 책상 줄을 맞추고, 앉아 있기도 합니다. 그 아이들을 위해서도 진실을 찾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지옥 같은 세월호에서 탈출하지 못한 채 죄책감에 시달리며 살아갈 것입니다. 세월호 이후 멈춘 시간 속에서 우리 모두 하루하루가 죽음 같은 고통이고 뼈가 아프고 심장이 녹습니다.


저희는 우리 아이들이 다시는 못난 부모의 자식으로 태어나지 말라 기도했습니다. 지켜주지 못하고 살려내지 못해서 미안하고 부끄럽고 우리 자신들이 너무 원망스럽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망가진 몸과 마음을 이끌고 용기를 내고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거대한 권력과 싸우려고 합니다. 이 싸움은 우리만이 아닌 안전한 나라를 위한 국민 모두의 싸움이 되고 있습니다.


교황님. 진실을 찾는 길만이 저희들에게 멈춘 시간이 흐르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우리들이 용기를 잃지 않도록 기도해주십시오. 죽어간 아이들이 좋은 곳에서 엄마 아빠를 기다리도록 살펴주십시오. 저희가 이 모든 부정부패와 냉담한 현실 속에서 싸워나갈 수 있는 힘을 주십시오.


세월호 가족 일동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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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15  목양칼럼


교황의 방문으로 한국 매스컴이 뜨겁다.

부끄럽다. 짧은 일정 속에서도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소통하며, 위로하려는 노력을 보여주었다. 그렇다면 나의 개신교는 무엇을 했던가?

위로의 자리에 목사님들이 없었다는 것이 아니다. 젊은 목사님들이 지금도 유족들과 함께 금식하며 최선을 다하시고 있는 것을 안다. 

그러나 한국의 개신교에는 적어도, 교황과 같은 어른이 없었다. 오히려 대형교회의 목사들이 유족들을 욕보이는 언행을 일삼아 논란이 일었다. 그것은 신앙의 차원을 떠나서, 사람이라면 마땅히 조심해야 할 언행이며, 인격의 차원에서도 하지 말아야 할 무형의 폭력이었다. 


비약된 관점이지만, 나는 교황의 방문을 통해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가 떠오른다. 

사마리아인은 모세오경만을 성경으로 가지고 있었으며, 그리심산에서 예배를 드렸다. 그들이 이런 방식을 취한 것에는 정치적 흑역사가 자리하고 있다. 

유대인과 하나될 수 없는 입장에서 사마리아인들은 자기들만의 독립을 추진했고, 그 결과 유대교로부터 종교적 분리를 선언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억지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들은 유대교와 다른 방식으로 '야훼' 하나님을 섬기는 새로운 종교를 표방해야 했다.

사마리아인의 종교가 갈리면서, 유대인들의 분노는 하늘을 찔렀다. 그것은 아마도 타종교보다 '이단'에 훨씬 큰 적대감을 느끼는 우리의 정서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강도 만난 자의 비유(누가복음10장)에서 이 사마리아인을 '선한 이웃'으로 등장시키셨다. 

예수님의 이 설교는 적지 않은 사람들을 당혹스럽게 했을 것이 분명하다. 

그것은 마치 '일베(일간베스트)'에서 설교하면서 '전라도 좌빨종북'이라 일컬어지는 사람을 '선한 이웃'으로 설교한 것과 같기 때문이다. 

당시에도 '논객'이 있었다면, 아마도 예수님의 이 설교를 두고두고 씹었으리라. 

이 설교가 더욱 자극적인 까닭은, 유대인 중에서도 가장 종교적인 부류였던 제사장과 레위인이 그냥 지나가는 인물로 그려진 것에 있다. 이 정도 설정이라면, 이는 다분히 의도적이며 또한 반유대적인 공격이라고 오해하기 딱 좋다.


하지만 예수님은, 유대주의자도 아니고 반유대주의자도 아니다. 

좌도 아니고 우도 아니다. 예수님은 민주주의나 자본주의를 옹호하지도 않으시며, 전제주의나 공산주의를 지향하시지도 않는다. 

정치적 신념과 제도는 역사의 산물이다. 그것은 끊임없이 변혁된다. 발전과 퇴보를 거듭하며, 좋아질 때도 있고 나빠질 때도 있다. 완전해질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이 ‘진리’는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 점에서, 예수님의 비유는 적절하다. 유대주의 역시 한시적인 것이다. 그것은 ‘복음’의 보편적 부르심이 있기 전에 하나님께서 임시로 사용하신 포장이다. 그렇다면 알맹이는 무엇인가? 

예수님은 그것을 ‘선량함’이라고 부르셨다. 유대인이든, 사마리아인이든… 선량한 마음을 가지고 위기에 처한 사람을 구해주고 위하여 손해를 감수할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율법을 실천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목사로서, 나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경신학에 무한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나의 지성은 개혁신학을 옳다고 확신한다. 나는 그것을 평생 믿고, 가르치기로 결심했다. 그것이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오늘 교황의 방문 속에서, 나는 예수님의 설교를 다시 듣는다. 

한국 교회에 훌륭한 신학과 성경에 대한 해박한 깨달음은 풍성한데, 실천은 어디 있느냐고 물으시는 예수님의 음성을 듣는다. 

그렇게 감동적인 책을 저술하고 많은 신자들을 뭉클하게 설교했던 사람들이 과연 예배당 밖의 사건, 상처 받은 세상, 버려진 사람들, 다 죽어가는 강도 만난 자에 대하여는 어떻게 대우했던가? 

그들이 하나님께 드린 제물이 제단에서 다 불타기도 전에, 그들은 죽어가는 사람을 방관하고 자기 발걸음을 바쁘게 가지는 않았을까… 

그래서 예수님께서 교황을 통해, 어쩌면 한국의 개신교를 꾸짖고 당혹스럽게 만드시는 것은 아닐지 생각해 보았다.


타산지석(他山之石)이라 했다. 공자는 함께 길을 걷는 세 사람 중에 한 명은 반드시 나에게 스승이 된다고 하였다. 천주교의 역사에 그야말로 ‘아니올시다’ 이었던 교황도 많았다. 

그러나 지금의 교황은 나름 훌륭하지 않은가! 그 신학과 역사의 색안경을 통해 보기 전에, 그래도 이 정도면 과연 대화하고 선한 경쟁을 해볼만한 빼어난 인물이 아닌가 말이다.

그에게 배울 것은 배우고 인정할 것은 인정한 후에, 지금은 무엇보다 우리 실체의 부재를 따져봐야 할 때가 아닐까? 교황이 문제가 아니라 개신교 교회가 문제다. 한국교회가 문제다. 이것이 양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말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인 것이다.


교황의 선행을 보며, 누군가는 사탄도 광명의 천사로 자기를 위장한다고 하더라.

좋다. 그러는 당신은 누군가? 하나님의 자녀라고.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훌륭하다. 그럼, 사탄도 광명의 천사를 위장하는데, 하나님의 자녀인 당신은 도대체 뭘 하고 있는가? 사탄이 광명의 천사로 위장하니, 당신은 사탄을 흉내내기로 작정이라도 했단 말인가…… 코스플레이도 아니고, 할로윈 분장파티도 아닌데 뭐 하는 짓인가? 그 비방과 모욕, 그 무례함이 과연 옳은 신앙의 뿌리에서 나온 것일까?

언제부터인가 교회는 비판만 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필요한 사람은, 다른 종교의 약점을 잘 물어뜯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 믿음을 잘 보여줄 사람이다. 우리가 믿는 기독교가 과연 무엇인지 우리가 직접 몸으로 말해야 할 차례이다. 세상이 그것을 기다리고 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샬롬~



Posted by makari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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