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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15 목양칼럼

 

역시나 위기는 본질을 드러냅니다.
본래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있었는지 말로는 거창하고 그럴듯한 말을 할 수도 있었겠지만, 정말 다급한 상황이 벌어지자 여실히 그 진심이 드러나게 됩니다. 
진심은 본인도 모를 수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이 그렇게 은밀하고, 또한 남도 속이지만 자신도 속일 수 있을 만큼 교묘한 구석이 있습니다. 
그러나 급하고 어려운 때에 그 사람이 행동하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의 진심이 결국에는 드러나게 됩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지금과 같은 위기의 상황 속에서 여러분 자신에 대하여 흡족한 감동을 받고 있습니까? 아니면 여실히 평소와 다른 모습에 실망하거나 당황하고 있습니까?


사람의 마음은 거울과 같습니다. 깨끗이 닦였던 거울도 잠시 방치하면 무수한 손자국이 생기고 알 수 없는 얼룩에 흐릿해지잖아요. 우리 마음도 닦지 않으면 그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혹여 실망스런 모습이 있더라도, 아직 주저앉지 마십시오. 내가 내 마음을 살피고 닦지 못했구나 반성하고, 다시 시작하면 됩니다. 
보다 중요한 것과 덜 중요한 것을 나누고, 더 중요하고 급한 것부터 먼저 실천하고, 의미 있는 일을 앞에 두고, 사람을 귀히 여기면 됩니다. 그러면 다시 마음이 맑아져서, 하나님의 말씀이 보이고 하나님의 음성이 들릴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날마다 넘치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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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02 목양칼럼

 

온 세상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하여 난리입니다.
전염병 보다 더 슬픈 것은, 공포의 상황에서 번지고 있는 '혐오'의 감정입니다.
지난 주에 우리 동네에서 들었던 "차이니즈, 고 어웨이!"라는 헤이트 스피치가 오래 마음에 남았습니다.
일본인의 눈에는 지금, 모든 아시아계의 이민자가 다 중국인으로 보일 것입니다. 
더 심하게는 전염병을 옮기는 환자로 보일지도 모릅니다.
이런 맹목적인 혐오는 어제 오늘에 갑자기 생겨난 것은 아닙니다. 
일본은 역사적으로 지진이나 대화재의 상황에서 항상 공포의 희생양을 만들어 왔습니다. 
얌전해 보이던 일본인들이 갑자기 흉폭해지는 것은, 그들의 내면에 숨겨진 공포의 그늘이 얼마나 크고 짙은가를 역설적으로 나타내는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국경을 폐쇄하자고 하지만, 과연 그것이 가능하기나 할까요?
모든 군대를 다 동원해도 모든 사람들의 이동을 다 감시하거나 막을 수 없는 시대가 이미 되었습니다.
때문에 이제는 다 같이 살거나, 다 같이 죽거나... 둘 중의 하나입니다. 
'지구촌'이라는 말이 실제화 되어버린 오늘에, 어떤 나라나 민족을 전염병에 방치하고 우리끼리만 안전하게 살아갈 방법따위는 결코 없습니다.
우리는 혐오를 넘어서야 합니다. 
어려움 앞에서 힘을 합하는 법을 새롭게 배워가야 합니다. 
같은 민족과 나라에만 연민을 발휘할 것이 아니라, 이제 '인류'라는 공동의 운명체에 대하여 새로운 시야를 열고 함께 고민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재난이 국가간의 협력과 공조를 강화하는 새로운 기회가 되기를 소망해 봅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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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01 목양칼럼

 

미국 캘리포니아의 인요국립공원에는 해발 3,000미터 이상의 고지대에 자생하는 특별한 나무가 있습니다.
이 나무는 브리슬콘 소나무의 일종인데, 그 수령이 무려 4,900년 이상이라고 합니다. 
보통의 나무는 나이테를 통해 수령을 측정하지만, 이런 고령의 나무는 좀 더 특별한 방식을 사용해야 합니다.

1957년 애리조나 대학의 애드먼드 슐먼이라는 학자는 생장추를 이용하여 나무의 나이를 측정한 결과 이 나무가 4,900년 이상을 살아왔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래서 이 나무에게 '므두셀라'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나무는 우리의 상상 만큼 거대하지는 않습니다.
이 나무는 춥고, 바람이 많고, 강수량이 적은 환경에서 100년에 고작 3센티를 굵어지는 방식으로 성장해 왔기 때문입니다.
나무에게 혹독한 환경이 오히려 나무를 단단하게 만들어 4,900년을 살고도 여전히 건재하도록 만들어 주었던 것입니다.

'대기만성(大器晩成)'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큰 그릇은 늦게 만들어진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그릇이 아니라 사람에 대한 교훈입니다.
열악한 환경이 사람에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그 환경을 잘 견디고 생각과 인품을 가다듬으면, 오히려 더 거대하고 훌륭한 사람으로 우뚝 설 수 있습니다.

거친 비바람 속에 서 있게 되었을 때에, 므드셀라 나무를 떠올려 보시기를 권합니다.
100
년에 3센티를 크는 나무는 자기보다 앞서 거대하게 되는 수많은 나무들을 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조급하지 않고 자기만의 삶을 살아왔기 때문에, 결국에는 '므두셀라'라는 명예로운 이름을 가지고 지구를 대표하는 나무가 되었던 것입니다. 
속도 보다 중요한 것은 방향이며 성실함입니다.
무엇을 소유할 것이냐에 얽매이지 말고, 어떤 사람이 되고자 하는지 깊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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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점(終点)

목회/목양칼럼 / 2020. 3. 14. 00:58

 

2019-12-29 목양칼럼

 

"히까리가오까, 히까리가오까… 슈텐데스!"

금년의 마지막 주일입니다.
벌써 한 해가 간다는 말은 굳이 다시 하지 않겠습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세월이 빨라진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정량의 시간이 빨리 지나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그만큼 무디고 허술하게 산다는 뜻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조금은 반성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요즘 제가 정신이 없습니다.
갑작스러운 어머니의 병환 소식에 놀라기도 많이 놀랐고, 엄청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막연하게 생각했던 종점이 이렇게 가까이 있다는 사실이 나를 무척 당황하게 했습니다.

금년에 저는 오십살이 되었습니다.
스무살에 사역자의 길에 들어섰으니, 어언 나의 사역도 30년을 채운 셈입니다.
처음에는 '
목사'라는 이름이 낯설고 부담스러웠는데, 이제는 지극히 당연하게 나를 '목사'로 여기는 나를 봅니다.
제가 얼마나 더 '목사'라는 이름으로 살아갈 수 있을지 알지 못하지만, 그 나머지의 여백에 앞으로 무엇을 채울지 곰곰이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머니를 통해 저에게 각성과 변화를 요구하시고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삶은 생각보다 길지 않습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분명히 점점 가속도가 붙는 일입니다.
작년보다 올해가, 올해보다 내년이 더 빨리 지나갈 것입니다.
하던 대로 살고, 익숙한 자기 방식에 길들여지면 인생은 물처럼 손가락 사이를 빠져 나갈 것입니다.

우리 삶이 종점에 이르기 전에... 할 일도 꼭 하고, 보고 싶은 것도 많이 보고… 결국에는 모든 것이 지나가는 과정이지만, 되도록 유익하게, 후회없이 살았으면 합니다.

금년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그리고 내년도 잘 부탁드립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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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24 목양칼럼

 

올해 60세인 달린 퀸은 미국의 한 농촌에 있는 페덱스 배송 회사에서 관리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녀에게 3개월 전 쯤에 아주 곤란한 일이 생겼습니다. 그녀의 고물차가 그만 사망하고 만 것입니다.
그녀는 새벽 4시에 일어나 집에서 직장까지 19km를 걸어서 출퇴근 하기 시작했습니다.
차를 살 수 있는 여력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아무런 불평도 하지 않았고 담담하게 그녀의 처지를 이겨 나갔습니다.
동료들은 출근길에 그녀를 보면 차에 태워주고, 퇴근도 함께 해주곤 했지요.
그렇게 3개월의 시간이 흘러 갔습니다.

이 기간에 그녀의 동료인 루이스는 몰래 일을 꾸몄습니다.
그녀의 사연을 모금 사이트에 올리고 펀딩을 시작한 것입니다.
직장의 동료들은 그녀를 위하여 연대했고, 일주일만에 8300달러의 거금이 모였습니다.

결국 중고차이기는 하지만, 2014년도식 SUV를 구입하여 그녀에게 선물했다고 합니다.
달린 퀸은 지난 주에 그 선물을 받고 "당신들이 나를 울린다"고 항의(?)했다고 합니다.
그녀의 감사는 페이스북을 통해 연대했던 모든 사람들에게 전해졌습니다.


양극화가 심화되는 요즘입니다
.
우리 시대의 이 문제는 제도적 개선으로만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양극화는 결국 비인간화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서로 손을 이어 잡고 이 문제에 함께 싸워야 합니다.
그래야만 비로소 '가난한' 우리가 아니라 '행복한' 우리로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이 행동하는 힘을 얻기를 바랍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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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17 목양칼럼

 

트리나 파울루스의 책, <꽃들에게 희망을>은 오랜 시간 사랑을 받고 있는 아름다운 책입니다.
그 책에는 이런 대화가 있습니다.

“어떻게 나비가 될 수 있나요?” 하고 그녀는 생각에 잠겨 물었습니다.
“한 마리 애벌레의 상태를 기꺼이 포기할 수 있을 만큼 절실히 날기를 원할 때 가능한 일이란다.” 

소원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 같지만, 사실 진짜 소원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대부분 ‘되면 좋고 안 돼도 할 수 없는’ 무언가를 소원이라고 믿을 때가 많으니까요. 
그러나 이런 소원이 우리를 새로운 땅으로 인도하거나 애벌레에서 나비가 되도록 만들어주는 경우는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데스다’라는 연못에 도착하셨을 때에, 그 주변에는 기적을 바라는 병자들도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리고 거기 무려 38년 동안 병에 고통 받았던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에게 이렇게 물으셨습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낫기를 그저 희망하는 정도로는 예수님의 질문에 대답이 되지 못합니다.
우리는 낫기 위해서 자기의 모든 것을 던질 각오가 있어야 합니다. 
애벌레의 상태를 기꺼이 포기하고 위험한 하늘에 도전할 각오가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정말 원하는 소원은 무엇입니까? 
그것을 위하여 무엇을 포기할 수 있습니까? 
여러분 자신을 기꺼이 던질 각오가 서 있습니까? 
그토록 간절한 소원이 아니라면, 그것은 정말 소원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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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03 목양칼럼

 

한겨레에서 출판된 김선주의 책 <이별에도 예의가 필요하다>는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시작됩니다.

살면서 우리는 수많은 이별을 경험한다. 싫든 좋든 떠나야 할 때가 되면 떠나야 한다. 세상과의 영원한 이별인 죽음은 어쩔 수 없지만, 우리는 모든 크고 작은 이별의 시간과 장소, 방법을 선택할 수 있다.”

이별의 타이밍을 놓치고 허망한 미련을 두어 좋은 추억까지 다 지긋지긋한 원망으로 바꾸어 버리는 경우가 간혹 생깁니다.
추호(秋毫)의 실수도 없는 인생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지독한 이별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당연히 지혜를 얻어야 하고, 그렇게 얻게 된 지혜가 바로 이별에도 예의가 필요하다는 이 한 문장이 아닐까 합니다.

예의를 갖추기 위해서는 작가의 말처럼, 선택이 필요합니다. 어쩔 수 없는 상황까지 몰고 가서 북받치는 감정으로 충동적인 이별을 선언하기 보다는, 미리 예감하고 감정을 준비하고 절제된 언어와 방법으로 이별을 '만드는' 것이 좋습니다.

사람과 사람의 사랑이 완전하지 않은 것처럼 이별도 완전하지 않습니다.
지금은 헤어져도 어디선가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다시 만나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와 나의 시간이 얽혀 만들어진 기억은 영원히 내 안에 고스란히 남겨질 흔적이라는 점에서... 이별에 예의를 갖추는 것은 내게도 좋은 일일 것입니다.

이별 후에 뒤돌아 욕을 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초라하고 누추하다는 사실을 과연 모르는 것일까요?
그들도 누군가를 통해 이별을 겪다보면 결국은 알게 될 것입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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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20 목양칼럼

어느 날, 자공이 공자에게 물었습니다.
스승님, 온 마을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면 좋은 것입니까?”
좋지 않다.”
그러면 온 마을 사람들이 나를 싫어하면 좋은 것입니까?”
그것도 좋지 않다.”
그리고 잠시 후에 공자는 이렇게 가르침을 주었습니다.
너는 마을의 착한 사람들은 좋아하고 악한 사람들은 싫어하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한다.”

요즘 사람들은 댓글로 먹고 살기도 하고, 악플로 사람을 죽이기도 합니다.
사실, 다른 사람에 대하여 악한 말을 하는 사람들은 요즘 새롭게 생겨난 부류가 아닙니다.
우리가 아무리 조심하며 살아도 모든 사람들을 만족시킬 수는 없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래서 칭찬과 욕을 함께 먹으며 살아가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입니다.

문제는  그 외부의 목소리에 너무 흔들리고 낙심하는 연약한 우리의 마음입니다.
왜 그렇게 평화가 깨뜨려지고 불안에 떨게 되었을까요?
내면의 질서와 마음의 뿌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의 말에 흔들리기 전에, 우리 자신의 목소리를 찾아야 하고, 그 고요함 속에서만 들리는 창조주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성경에서는 이것을 경건이라 하고, 이러한 경건을 통해 쌓이는 내면의 힘을 영성이라고 합니다.
세상이 흔들 수 없는 내면의 단단함을 신앙 안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 질서와 영성을 누리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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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13 목양칼럼


아이와 어른의 차이가 무엇일까요?

사회적으로 보았을 때에, 그것은 돌봄을 받는 존재와 돌보는 존재의 차이입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자기 이외의 존재에 대하여 책임감을 느끼고 헌신할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비록 나이를 많이 먹었어도, 이기적인 유전자를 극복하지 못하고 여전히 자기만 생각하고 자기의 감정에만 충실한 사람은 ‘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과학과 기술이 발전하고 사회가 고도화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교육제도가 아이를 어른으로 성장시키는 것에서는 실패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회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는 직업의 사람들조차 단순한 충동이나 감정적인 격발을 참지 못해서 범죄에 노출됩니다. 꼭 범죄를 저지르지 않더라도, 일상의 삶에서 ‘관계’를 건강하게 가지지 못하고 단절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동양에서 예의(etiquette)의 근간은 역지사지(易地思之)입니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배려는 상대방을 존중하는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아이는 내 감정에만 충실하지만, 어른은 내 감정의 불편함을 잠시 참으면서도 상대방의 입장을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신앙적 실패가 사람과 사람의 단절로 나타난다고 진단하셨습니다.(마11.16~17 참조) 

우리에게 은혜가 없으면 다른 사람의 아픔과 곤란이 안 보이는 법입니다. 그래서 나만 아프고 나만 힘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눈을 뜨면, 다른 사람을 불쌍히 여기고 사랑하는 과정을 통해서 나의 고통이 치유됩니다.

되도록 빨리 아이에서 탈출하십시오. 영적으로 성숙한 어른이 되십시오.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일이면서 동시에 여러분 자신을 위한 일이기도 합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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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목양칼럼 / 2017. 7. 23. 10:54



2017-07-23 목양칼럼


부부가 원만한 가정생활을 하는 것은 두 사람의 케미도 좋아야 하겠지만 그 이상의 인격적 성숙을 필요로 합니다. 모든 점에 있어 완벽하게 조화로운 두 사람이 있을 수는 없습니다. 필연적으로 드러나게 되는 ‘차이’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대하여 고민이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사랑’이라는 것은, 같은 점에 이끌리는 것에서 시작되지만 다른 점을 극복해가는 과정 속에서 성숙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보통 나와 다른, 이질적인 존재를 수용하지 못합니다. 그 거부감이 만들어내는 감정의 담을 ‘오해’라고 말합니다. 오해는 대부분 정보의 오류에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감정적 거부감에서 생겨납니다. 

우리가 진심으로 나와 다른 사람과 화목하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화가 나는 것을 다스리는 법을 훈련해야만 합니다. 그 내면적 성숙의 과정이 없이는, 늘 오해는 파도처럼 일어나고 상대방을 향해 끝없이 화나게 될 것입니다.


좋은 부부관계를 위하여 개별적인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은 그런 의미입니다. 자기에 대한 성찰이 필요합니다. 자기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상대방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자기의 잘못과 부족함을 발견하지 못하는 사람은 계속해서 남의 탓을 하며 화를 내는 상태 속에 살아가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좋은 부부가 되기 위하여 먼저 스스로 성숙한 사람이 되십시오. 그것을 위하여 시간을 투자하고, 노력하십시오. 항상 자기 위주로 판단하는 정의에서 벗어나십시오. 진심으로 상대를 이해하려는 사랑을 나타내십시오.

이러한 마음을 기본으로 삼는다면, 부부는 더없이 좋은 동반자가 될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 당장은 조금 부족하더라도, 이런 마음으로 10년, 20년을 함께 살아온 부부보다 더 멋진 ‘페어’는 없을 것입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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