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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씨와 건달들.
1920년대 미국의 뉴욕을 배경으로 뒷골목에서 도박으로 살아가는 건달들과 그들의 아가씨들의 러브 스토리를 그린 브로드웨이 뮤지컬.
이 이야기 속에는 사라라는 구세군 아가씨가 등장한다. 그녀의 선교회는 '실적'이 없어 문을 닫을 위기에 처한다. 그 때에 스카이 매스터슨이라는 도박의 귀재(?)가 그녀에게 접근하여 한 가지 제안을 하게 되는데, 그것은 그와 함께 그날 밤에 하바나(쿠바)에 가서 저녁 식사를 하면 다음 날까지 '순수한 죄인들' 12명을 그녀의 선교회에 제공 하겠다는 제안이다. 물론 스카이는 이 저녁 식사에 이미 그의 친구, 나싼과 1,000달러의 내기를 걸어놓은 상태였다.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유쾌함으로 이야기는 인간적이고 모두 행복하게 끝이 난다.

 

jazza_guys-and-dolls

 

그러나 현실에서도 그러할까? 구령의 열정으로 무장한 구세군 아가씨 사라와 도박사 스카이의 사랑은, 현실에서는 대단히 희귀한 경우임에 틀림없다. 사실, 평범하다면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소재가 되지도 못하겠지.
사랑은 순수하다. 그러나 사랑을 하는 사람이 순수하지 못할 때에, 사랑은 대단히 위험한 흉기가 될 수 있다. 그 순수함에 빠져 그야말로 '순수한 죄인들'을 구령의 열정만으로 끌어 안으려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모험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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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앞둔 청년들에게 권한다. 비둘기처럼 순수해야 하지만, 또한 뱀처럼 지혜로워야 한다. 세상을, 특히 사람을 만만하게 여기지 말라. 사람이 내 맘대로 되었으면 고생할 부모가 없을 것이다. 배 아파서 낳은 부모도 맘대로 하지 못하는 자녀를, 나는 애인이기 때문에 맘대로 요리하고 변화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은 다소 어리석어 보인다. 사랑을 포기하라는 절대 명령은 아니지만, 좀 더 신중하고 사려 깊을 필요가 있겠다.

 

그러나 교회는 이런 '순수한 죄인들'에 대한 관심을 더욱 기울여야 한다. 그것은 사라 같은 여린 아가씨가 품고 책임져야 할 사명이 아니라, 사실은 교회 공동체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관심과 역량을 집중해야 할 문제이다.
교회는 본래 누가 보아도 죄인인 사람들을 회심시키는 능력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해 왔다. 술 주정뱅이, 노름꾼, 아내를 때리는 폭력남편, 빚쟁이, 좀도둑, 창녀, 노숙자... 누가 보아도 재생의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사람들에게 복음이 들어가고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을 때에 그들 자신이 교회의 역동적인 힘의 바탕이 되었으며, 사회가 놀라고 경외하는 이유가 되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교회와 교회의 수평 이동만을 염려할 상태가 아니다. 더 큰 문제는 교회가 '순수한 죄인들'을 잃어버리고 말았다는 것이다.

 

prayer


교회는 '보통'의 사람들에게 길들여졌으며, 마치 인스턴트 식품만 먹다가 이빨이 빠진 맹수처럼 구령의 열정으로 도전하고 싸우는 치열한 영적 상황을 잃게 되었다.
더 이상 예배 중에 뛰어들어 아내를 끌고 가는 남편도, 며느리를 욕하는 시어머니도, 술 취한 알코올 중독자도, 사기를 치러 오는 허름한 사기꾼도 없다. 왜냐하면 교회가 이런 사람들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지금 교회의 신자들은 이런 사람들을 보면서 구령의 열정을 느끼는 '사라' 같은 구세군이 아니다. 그들은 단지 자기들만의 교회에서 안전하게 예배하고 싶을 뿐이다.

교회는 영혼을 구원하는 사명을 가지고 있다. 그 본질적인 바탕을 잃어버리면, 교회는 더 이상 교회가 아니다. 그야말로 아가씨와 건달들에 나오는 묘사처럼, 고객이 없어 폐점해야 하는 지점일지 모른다.
상상해보라. 주방장에 서빙, 지배인까지 수 십 명이 북적거리는 레스토랑에 고객이 달랑 하나, 둘 뿐이라면... 그 레스토랑은 곧 문 닫는 것이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080731_prayer_태안아웃리치_중보기도_lovelysuns


교회가 직분자를 세우고 교인들을 훈련하는 것은, 자기들끼리 잘난 척을 하라는 뜻이 아니라, 구령의 열정으로 부족한 사람들을 돌보고 섬기라는 뜻이다.
교회의 대표적인 직분을 처음부터 '집사(디아코노스)'라고 불렀던 것을 살핀다면 이것은 너무도 자명하다. 그 말의 의미가 머리에 수건을 쓰다, 식사에 수종을 들다는 뜻이 아니던가? 그것은 목사를 섬기라는 뜻이 아니다. 제발 오해하지 말라.

 

말씀도 그러하다. 죄인과 분리된 교회의 강단은, 야성(野性)이 없다.
당연하다. 별로 죄를 짓지 않는 대부분의 사람들을 모셔두고 어떻게 신랄한 죄에 대한 설교를 계속할 수 있겠는가?
교회가 죄에 대한 날 선 말씀을 계속 듣고 회심을 일으키기 위해서도 '순수한 죄인들'의 존재는 반드시 필요하다. 그 부대낌과 불편함을 영적 전쟁으로 승화시키고, 말씀과 기도로 싸워 나가는 교회야말로 제대로 성장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그 비율이 70:30이라고 생각한다. 80:20이면 좀 안정적이고, 60:40이면 좀 위태스럽다. 그러나 말도 안 되는 말을 일삼는, 혹은 사사건건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들이 30% 수준이라면, 교회는 건강한 것이다.
때문에 그 문제되는 사람들을 해결하고 100%의 교회를 지향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비율의 건강한 유지를 위해 기도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목회자에게도, 성도들에게 바른 인식이 필요한 일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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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아들, 찬혁이가 고입 입시를 앞두고 있다.

지난 주일에는 특별전형을 위해 오이즈미 고등학교에 가서 면담과 집단토론, 논술고사를 봤다. 만약 그것에 합격을 하게 된다면 입시를 패스하게 되겠지만, 아니면 2월 22일에 시험을 치루게 된다. 시험과목은 5과목, 국어, 수학, 영어, 사회, 과학이다. 

입시를 위해 요즘 모의고사를 계속 보는데, 생각처럼 성적이 잘 나오지 않아서 고생이다. 시험날의 컨디션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요즘에는 힘들더라도 50분 시험 후에 10분 쉬고 다시 50분 시험을 보는 방식의 훈련을 계속하고 있다. 

나중에 채점을 해서 복습할 때에는, 영어는 아빠가 도와주고, 수학과 국어는 형이 도와준다. 틀렸던 문제를 다시 풀고, 비슷한 유형의 문제에 대하여 무엇을 주의해야 하는지 살피는 과정은 역시나 힘이 들었다.

공부가 쉽지 않다. 어쩌면 아이의 인생에서 처음 대하는 역경의 고개일 것이다. 처음에는 만만하게만 생각하더니 요즘에는 차츰 신중한 모습을 보이면서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아이가 실력만이 아니라 마음이 자라는구나 생각하며 사랑으로 지켜보고 있다.


주일에 나서는 아이에게 편지를 주었다.
시험 치루기 전에 읽어보라고. 그 편지를 하루 전 새벽에, 밝아오는 미명을 보며 썼다.

나중에 나이를 먹었을 때에도, 아들이 아빠에 대한 추억으로 간직해주면 좋겠다. 나에게도 기념이 될 것 같아서, 블로그에 포스팅을 해둔다. 좋은 소식이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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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SET 2013,

큐티강의 네 번째입니다.

큐티의 각론으로 실제 큐티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 구절 묵상법
- 질문법

두 가지 방법이면서 한 가지로 사용할 수 있는 대표적인 큐티 방법입니다.
잘 이해하시면, 큐티를 규모있게 하시는 것에 매우 유용할 것입니다.


컴퓨터에서 강의 녹화하는 프로그램이 문제를 일으켜서 같은 강의를 네 번 했습니다.
(더 잘 하라는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 
겨우 원인을 찾아내서 해결했습니다. 앞으로는 좀 쉬워지겠지요...

목사의 정성을 보아서라도 꼭 큐티를 실천하고, 하나님의 말씀과 동행하는 하루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
샬롬~

2013.01.28.
동경드림교회 김종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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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27 오전예배설교

제목 :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신앙생활의 지식 :: RESET 2013 설교)

본문 : 에베소서 1:17~19


(1:1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1:18)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1:19)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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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트너 중보기도


할렐루야!

RESET 2013, 새로운 과제를 발표합니다.

파트너 중보기도. 한 명의 파트너를 뽑아서 중보기도 하는 훈련입니다.

7가지 원칙이 있고요, 위의 기록카드를 사용하여 기록했다가 마지막에 자기 파트너에게 주어야 합니다.

간략히 소개하면,


1) 반드시 매일 기도해야 합니다.

2) 하루를 빼먹으면 3일이 늘어납니다. *

3) 아침, 점심, 저녁의 세 번을 권장합니다.

4) 중보대상을 위해 반드시 10분 이상 기도해야 합니다.

5) 중보기간 중에 1회는 가능하면 만나야 합니다.

6) 중보기도를 한 소감을 매일 간략하게 기록해야 합니다. **

7) 중보기도를 마친 후에, 기록한 것을 자신이 중보했던 사람에게 선물합니다.


* 기록장에서 1일부터 14일을 채우면 완성됩니다. 그러나 제 5일의 기도를 빼먹은 경우, 기록장에서 5일은 빈칸으로 놔두고 대신에 15일, 16일, 17일을 채워야 합니다. 전체 미션 기간은 1월28일 ~2월28일까지입니다. 


**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01일  감기가 빨리 낫고 건강해지기를 위해 기도했어요. 힘내세요. ^^

02일  가족들이 화목하고 00(딸)가 더욱 지혜롭게 자라기를 위해 기도합니다.

03일  직장생활 가운데 은혜 주시기를. 사람들과의 관계가 원만하기를.

04일  한국에 계신 부모님과 형제들을 위해서. 특별히 구원받지 못한 가족을 위해 기도 합니다.


P.S. --- RESET 2013 은 1월 둘째주부터 시작되어 2월 마지막주까지 계속됩니다.

매주 과제가 있고, 그 과제는 못한 경우 패스하는 것이 아니라 숙제로 나중에라도 해야 합니다.


1) 1월13일 과제 : 마태복음 통독하기

2) 1월20일 과제 : 에베소서 큐티하기 (PC버전 / 모바일버전)

3) 1월27일 과제 : 파트너 중보기도하기.


큐티 교재와 함께 김종선 목사의 큐티강의도 유튜브 동영상으로 제공되고 있습니다.

학교 다닐 때도 그러했지만, 밀리면 나중에 감당하기 힘들어집니다.

꼭 매주 성실하게 임하셔서, 이번 기회를 통해 큰 신앙의 유익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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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27 목양칼럼


살다 보면, 항상 좋은 날만 있을 수는 없습니다.

어렵고 힘든 날이 있듯이, 신앙생활에도 침체기(沈滯期)가 찾아옵니다.

사실 여기까지는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상태를 방치해서 신앙의 근간이 흔들리는 것은 결코 자연스러운 일이 아닙니다.

성경도 시험에 대하여 많이 말해 줍니다. 그것은 시험이 그만큼 신자의 일생에 흔히 경험하는 문제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 어디에도, 시험에 빠지는 것을 합리화시키는 말씀은 찾을 수 없습니다. 오히려 시험을 극복하는 일을 우리 신앙생활의 한 중요한 과제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신앙적 침체기 속에서 자기를 지키기 위해서는 어떤 도움이 필요할까요?

저는 목사로서, 신앙생활의 원칙을 사수하라고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건강을 위해 운동을 하는 분들은, 다소 무리를 해도 별다른 지장이 생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질병으로 인해 회복을 위해 운동을 하는 분들은, 운동을 잘못 하는 것이 오히려 병을 악화시키는 원인이 됩니다. 때문에 회복을 위해 운동을 할 때에는 의사의 주의사항을 듣고, 환자로서의 원칙을 반드시 지켜야만 합니다.

신앙의 회복도 마찬가지라고 설명 드릴 수 있습니다.

내가 좋은 신앙으로 하나님을 향해 불타 오르는 동안에는, 가는 곳마다 예배당이고, 앉는 곳마다 기도의 자리가 됩니다. 마치 젊은이를 향하여 돌이라도 씹어 먹겠다!”고 말하는 것처럼, 이런 신자는 모든 것에서 은혜를 받습니다.

그러나 영적 침체기 속에서는 예전에 은혜를 받았던 것들에서 더 이상 아무런 감동을 얻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은혜가 모두 나를 떠난 것도, 하나님께서 나를 멀리 하시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그것은 내 약함과 육체적 기질로 인하여 나타나는 영적인 독감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시기를 오히려 잘 이겨내는 법을 반드시 배워야 하며, 그것이 좋은 신앙을 유지하고 성장해가는 중요한 비결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영적 침체기 속에서는 다음의 원칙을 지켜 보기를 권합니다.

첫째, 주일은 주님의 날입니다. 공적 예배를 빼먹지 마십시오. 둘째, 불평은 멈추어야 합니다. 불평하는 습관은 무익하며 은혜를 사라지게 합니다. 셋째, 연보를 정성 들여 하십시오. 하나님께 헌신하고자 하는 마음이 사라지게 놔둬서는 안 됩니다. 넷째, 은혜로운 사람들을 가까이 하십시오. 불평도 전염되고 열심도 전염될 수 있습니다. 다섯째, 하나님을 신뢰하십시오. 내가 변덕이지 하나님은 흔들리지 않는 분입니다.

이 다섯 가지의 원칙을 사수하면, 반드시 영적 침체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다섯 가지 원칙을 무시하면, 영적 침체는 사소한 것에서 시작되어 매우 큰 영적 질병으로 발전할 수도 있습니다.

건강할 때 건강을 지켜야 하는 것처럼 평소에 바른 신앙의 습관을 기르기를 바랍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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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에 말씀 드린 바와 같이,

에베소서의 큐티교재를 완성하여 PDF 파일로 제공하여 드립니다.


Reset2013.QT(에베소서).pdf


모두 16일 동안에 에베소서 전체를 큐티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혹시라도 몰라서, 잊어서, 바빠서... 등으로 못하신 분을 위해 준비해 드리니까, 지금이라도 마음 새롭게 다잡고 시작하시면 괜찮습니다. 주일에 시작해서 2주후, 월요일에 끝나도록 되어 있습니다.


다시 한 번 말씀 드립니다. 신앙은 날마다 개혁되어야 합니다.

RESET 2013 은, 우리 신앙을 기본기로부터 다시 점검하고 새롭게 시작하자는 신앙 캠페인입니다.

좋은 기회를 구경꾼의 마음으로 허비하지 마시고, 꼭 진심으로 목회자의 인도를 따라 함께 노력해 주셔서 여러분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누리시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더불어, 큐티와 함께 제가 제공하는 큐티강의를 들으시면 더욱 도움이 되겠습니다.

핸폰으로도 충분히 보실 수 있습니다. 


2013.01.27.

주일 새벽을 맞으며... 

김종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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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SET 2013,


큐티강의 세번째 동영상을 올립니다.

이제부터 성경을 해석하고 묵상하는 구체적인 방법들을 설명합니다.


큐티교재의 도움을 받아야만 하는 것이 아닌,

성경만 가지고서도 큐티를 할 수 있는 방법을 강의 드립니다.

성경해석의 기초적인 원리를 다루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없이 좋은 신앙은 불가능합니다.

부디, 말씀에 대한 열심과 충성을 회복하시기를 기도하겠습니다.

샬롬~


2013.01.24.

동경드림교회 김종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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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SET 2013, 

큐티강의 두번째 동영상을 올립니다.
여기까지 두 번의 강의가 큐티에 대한 기초반에 해당합니다.

큐티에 대한 주의할 점,
큐티와 다른 경건훈련과의 차이점,
그리고 큐티의 실제에 대하여 다루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실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 동행하는 노력을 멈추지 마시기를 당부드립니다.
다소 어렵더라도 그러해야 합니다.
<말씀>을 포기하는 순간, 
신앙은 망망대해 위의 나침반 없는 배처럼 유리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에게,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말씀을 열어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샬롬~

2013.01.23.
동경드림교회 김종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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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눅 9:26)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자기와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으로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예수님은 왜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 그것도 설교 중에...

일단 두 가지 사실을 생각하게 된다.

첫째,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 실제로 그런 생각이나 행동을 하는 자들이 존재했다. 예수님은 언제나 사람의 생각을, 특별히 제자들의 생각을 통찰하셨으니까. 이 말씀은 결국 누군가 들을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하신 말씀이다.

둘째, 누가가 이 예수님의 말씀을 복음서에 기록하여 교회에 읽게 했다는 것은, 초대교회 안에서도 역시 그런 '부끄러움'을 가지는 신자들이 존재했다는 것을 암시한다. 복음서는 교회를 위한, 특별히 예수 그리스도를 직접적으로 목격하지 못한 신자들을 위한 기록이었다. 그렇다면 그 기록에는 분명히 기록의 의도가 숨어 있다고 보아 마땅하다.



02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 그리고 초대 교회의 신자들 사이에 예수님에 대하여, 혹은 예수님의 말씀에 대하여 부끄러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었다면, 그들은 왜 그랬을까?

여기서도 몇 가지 추리가 가능하다. 

일단, 예수님은 갈릴리 나사렛 사람으로 불려졌고, 요한복음에 등장하는 나다나엘과의 만남을 떠올리더라도 그러한 예수님의 출신은 대중에게 호감을 주지 못했다. 결국 학벌도, 가문도 없는 예수님의 모습은 당시의 혼란한 시대 속에서 '자랑스러운 스승'이 되기에는 한없이 허술해 보였다. 

이사야 선지자는 예수님에 대하여 예고하면서 이렇게 노래했다.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사 53:2)

그의 예언이 사실이었음을 우리는 안다. 오늘날에야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인구가 예수를 '주님(Load)'이라고 부르고, 또한 그분을 위하여 거대한 성전들이 지어져 있지만, 그 시절에는 결코 그렇지 않았다. 

예수는 무명(無名)에 불과했다. 교회가 아직 사회적으로 마이너(minor)에 불과했을 때에, 신자들이 공개적으로 예수를 시인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그리고 중요한 신앙적 행위에 분명했다. 그러니 그것을 뒤집어 본다면, 당시에는 예수를 부끄러워 하기가 매우 쉬웠다는 뜻이 된다.



03

또한, 누가복음을 통하여 한 가지 더 특별한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나와 내 말'이라고 언급하신 예수님의 목소리 속에 드러나 있다. 다시 말해서, 예수를 향한 믿음은 곧 예수의 말씀에 대한 실천을 내포했다는 사실이다.

오늘날에는 신학이 발달하고, 다양한 체계가 개발되었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들과 초대교회에 그런 복잡하고 세련된 지식의 구조와 조직이 있었다고 볼 수 없다. 오히려 예배의 모임과 믿음의 내용에 있어 매우 단순했을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처음의 교회는 무엇에 주목하고 집중했을까? 당연히 예수님의 가르침이다. 복음서 중에서도 바로 예수님의 목소리가 담겨진 부분들이 더욱 집중적인 조명을 받았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가 읽어도, 예수님의 가르침은 그리 수월하지 않다. 우리가 예수님의 가르침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여러 가지 다양한 해석을 시도하는 것은, 어쩌면 그 말씀을 그대로 실천하는 것이 아직도 우리에게 난감한 일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를테면 모든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를 나누어 주고 나를 따르라거나, 원수를 위하여 사랑하고 기도하라거나, 예수님보다 자기 집안 식구들을 더 사랑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는 말씀은, 지금도 우리를 충분히 당혹스럽게 만든다.

그 당혹감의 반응이, 일정 부분 '부끄러움'이라고 표현된 것이 아닐까?



04

부끄러움(수치심)은 결국 이성의 반응이다.

때문에 이성적으로 그것은 합리화 될 수 있으며, 또한 이해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이성의 수준에 머물러 있는 동안, 믿음은 '저편의 무엇'에 지나지 않을 수밖에 없다. 믿음은 반(反) 이성적인 것은 아니지만, 이성을 초월하는 무엇이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초대 교회의 신자들도 결단이 필요했다. 그것은 그들의 눈으로 보는 현실, 그들의 상식, 그들이 받았던 교육의 내용과 대비되는 예수 앞에서도 예수와 예수의 말씀을 선택할 수 있느냐는 문제였다. 

제법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며, 또한 자기의 틀을 깨뜨리는 파격을 필요로 하는 일이기도 했을 것이다. 때문에 사실 누가복음의 본문 속에서 나타나는 '부끄러움'이 이상한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것이고, 오히려 예수와 예수의 말씀을 부끄러워 하지 않는 태도야말로 그 시대에 매우 부자연스러운, 혹은 특별한 것이었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05

이제 기독교는 지구상에 메이저(major)가 되었다. 왠만하면 어디서도 예수의 이름이 수치심을 자극하는 초라한 행색을 가지지는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흔히 십자가 목걸이를 걸고 다니고, 심지어 기독교적 문양을 문신으로 피부에 새기기도 한다. 집집마다 문패와 함께 예수의 이름을 내걸고 아이에게도 예수와 관련된 이름을 지어준다.

하지만 이게 과연 누가복음에서 예수께서 말씀하셨던 부끄러움을 극복한 현실일까? 

전혀 아니다. 여전히 예수의 말씀은 받아들이기 힘든 무엇, 사람들이 일부러 귀를 막고 외면하는 무엇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아직도 상식의 수준에서 보는 예수의 언행과 가르침은 촌스럽기만 하다. 그것은 전혀 매력적이 아니다. 화끈한 복수를 해도 시원찮은 판에 원수를 사랑하고 위해서 기도해 주라니! 

 


06 

그러나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이 촌스러운 가르침에 귀를 기울일 것이다. 자기 경험과 상식, 세상이 돌아가는 법칙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은 예수의 말씀에 기꺼이 자기 인생을 걸어볼 것이다. 어차피 그런 결단이 아니라면, 그는 그리스도인이 아닌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간단한 이름이 결코 아니다.

그것은 예수의 발 앞에서 설교를 들었던 청중들도 그러했고, 베드로와 사도 바울의 설교를 들었던 초대 교회의 신자들에게도 그러했으며, 지금 우리에게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 사실은 우리를 무척 당혹스럽거나 슬프게 한다. 그러나 그것이 분명한 사실이다.



07

세상은 언젠가 뒤집어진다. 촌스럽다고 조롱했던 바로 그 예고된 장면, 예수가 천사들과 함께 영광으로 나타나는 날이 올 것이다. 그리고 그 이후로는, 예수와 예수의 가르침을 비웃었던 그 모든 사람들, 논리들, 주장들이 모두 추락할 것이다. 그 날에는 예수와 예수의 말씀 앞에서 결단하지 못했던 사람들이 부끄러움을 당할 것이다.

실로 통쾌한 복수가 아닐 수 없다! 뿐만 아니라, 허세를 부리며 꾸미고 포장했던 모든 것의 실체가 드러날 것이다. 그 날의 부끄러움은 우리가 스스로 느끼는 것이 아니라, 예수가 퍼붓는 것이다. 

예수는 그럴 자격이 충분히 있다. 십자가의 조롱을 참고 인내했으며, 뿐만 아니라 자기를 부끄러워 하는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도 조용히 침묵했다. 그러나 예수의 침묵이 납득이나 수용은 아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예고하셨고, 누가를 통해 그 사실을 분명하게 기록하게 하신 것이다. 예수와 예수의 말씀을 부끄러워 했던 자들, 그것을 개나 줘버렸던 자들에게 의로운 복수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이것 역시 우리가 받아들이고 싶지 않을지 모르지만...




Posted by makari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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