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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양칼럼의 목적

2011-01-02 목양칼럼

 


매주 규칙적으로 글을 쓰는 일이 쉽지는 않다. 신앙에 대한 이슈들을 오래 생각하고 공부해서 글을 쓰기도 하고, 갑작스럽게 떠오른 아이디어로 글을 쓰기도 한다. 시간이 좀 넉넉할 때에는, 쓰고 싶은 글제목을 미리 잡아두는데, 이렇게 하지 않으면 마감시간에 쫓겨서 애를 태우는 경우가 생기게 된다.

목양칼럼은 목회자로서 교우들에게 띄우는 편지이기도 하지만, 공명(共鳴)을 위한 노력이기도 하다. 신앙뿐 아니라 다양한 생각의 바탕을 함께 공유하여서, 내가 목사로서 느끼는 것을 같이 느끼고 생각하게 하려는 것이 이 칼럼을 계속해서 연재하는 개인적 목적이다.

그래서 나는 신앙의 이야기뿐 아니라, 내가 관심 가지는 것과 나의 문학적인 창작물까지 다양하게 이 칼럼의 공간에 채워왔다. 설교만큼이나 고민의 흔적이 역력하고, 때로는 일기장과 같은 정서의 진솔한 고백이 담긴 것도 그 때문이다.

글은 말과 함께 의사를 전달하는 수단이다. 그러나 단순히 그것만은 아니다. 음식이 생존의 조건이면서 또한 ‘요리’라는 문화도 되는 것처럼, 글도 생각을 전달할 뿐 아니라 인간이 공유하는 정서적 감동과 자극의 통로가 된다. 더구나 말과 달리 글은 쉽게 사라지지 않고 오래 남아 영향력을 미치기 때문에 더 책임감이 따르는 섬세한 작업이 아닐 수 없다.

2011년에는 특별히 이 칼럼을 한국어와 일본어로 발행할 예정이다. 그간에 얼마간 테스트를 해왔는데, 현재로서는 80~90% 정도로 만족한다. 바라는 바는, 한국어로 쓰여지는 칼럼의 미세한 표현들이 일본어로 보다 유연하게, 그리고 감동적으로 전달되는 것이다.

이러한 칼럼은 단순히 매주 주보와 홈페이지를 채우는 콘텐츠로 한정되지 않고, 결국에는 책으로 묶이고 발간하게 되는 것이 개인적인 바램이다.

그래서 앞으로는 더 다양하고 심도 깊은 글을 쓰려고 노력할 생각이다. 설교 한 편을 완성하는 만큼이나 정성을 기울여서 글이 부실하거나 후회스럽지 않도록 하고 싶다.

다행스럽게도 올해에는 집사님들이 교회의 사역을 많이 담당하고 조력해 주면서 목회자로서 이러한 소망을 위해 좀 더 집중할 수 있는 상황들이 만들어질 것 같다. 하나님께 감사하고, 함께 동역하는 집사님들에게도 감사한 일이다.

목사로서의 이러한 도전은 결국에 교회의 모든 교우들에게 유익이 돌아가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글이 다듬어진다는 것은 생각이 정리되고 메시지가 명확하게 된다는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글을 쓰는 훈련은 설교를 변화시킬 것이다. 어쩌면 이런 훈련이 설교를 풍요롭게 하는 가장 훌륭한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새해가 밝았다. 올해 목사로서 나의 비전은 동역자를 세우는 것이다. 그래서 더 많이 권한을 위임하고 역할을 분담하려고 한다. 그리고 그렇게 얻은 소중한 시간과 여유를 가지고, 목사로서 가장 본질적인 부분을 성장시키기 위하여 집중할 것이다.

동경드림교회가 세워지고 있다. 내 힘이 아니라, 주님의 능력과 모두의 힘으로 세워지고 있다. 가슴이 설레인다. 올해는 왠지 모든 것이 잘 될 것만 같다. 기대가 생긴다…



Japanese Version  [日本語]



牧羊コラムの目的


2011-01-02 牧羊コラム

 

毎週規則的に文を書くことは易しくない。信仰についての問題について深く考え勉強して文を書いたり、急に思い出されたアイデアを文に書いたりする。時間に少し余裕がある時は、書きたい文の題名を先に決めておくが、このようにしないと期限に追われて心を焦らせる事が多々ある。

牧羊コラムは牧会者として教友に向けてのメッセージでもあるが、共鳴するための努力でもあるのだ。信仰だけではなく多様な思考の背景を一緒に共有し、私が牧師として感じることを一緒に感じて考えてもらおうとする事がこのコラムを続けて連載する個人的目的だ。

だから私は信仰の話だけではなく、わたしが興味を持っていることや私の文化的な創作物まで多種多様にこのコラムの空間を埋めてきた。説教のように悩みの痕跡が残り、時には日記のように情緒の真率な告白が込められている事もそのせいだ。

文は言葉と一緒に意志を伝達する手段だ。だが単純にそれだけではない。食べ物が生存の条件でありまた‘料理’という文化になるように、文も考えを伝達するだけではなく人間が共有する情緒的感動と刺激の通路になる。そのうえ言葉と違って文は簡単に消えず、長く残り影響力を及ぼすためもっと責任感が伴う繊細な作業であるのだ。

2011年度には特にこのコラムを韓国語と日本語で発行する予定だ。これまで短い間テストをしてきたが、現在としては80~90%程満足している。願わくは、韓国語として書かれるコラムの微妙な表現まで日本語でもっとスムーズに、感動的に伝達されることだ。

このようなコラムは単純に毎週、週報とホームページを埋めるコンテンツとして限定されず、 結局、本として編集され発刊されることが個人的な望みだ。

だからこれからはもっと多様で芯が深い文を書こうと怒力する考えだ。説教一遍を完成するほど努力を尽くして文が不悉で後悔しないようにしたいと思っている。

今年は執事(教会役員)の方々が教会の使役をたくさん担当し助力して下さい牧会者としてこのような所望のためにもっと集中できる状況を作ることができそうだ。神様に感謝し、一緒に同役する執事の方々にも感謝しなくてはならない。

牧師としてこのような挑戦は結局教会のすべての教友達にも有意義なことだと思う。なぜなら文が纏まるという事は考えが整理されメッセージが明確になることと違いがないからだ。文を書く訓練は説教を変化させるだろう。このような訓練は説教を豊かにする最も素晴らしい過程かもしれない。

新年が明けた。今年牧師としての私のヴィジョンは同役者を立てることだ。だからもっと多くの権限を委任して役割を分担しようと思う。そしてそのように得た貴重な時間と余裕を持って、牧師として最も本質的な部分を成長させることに集中しようと思う。

東京ドリーム教会が建てられている。私の力ではなく、神様の能力と皆の力で立てられている。

心が躍る。今年はなんだか全ての事が上手くいく予感がする。期待が沸いてく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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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26 별이 빛나던 밤 (2)



마리아가 오랜만에 웃었다. 나도 행복했다……

봄기운이 한참이던 날, 우리는 결혼의 꿈에 부풀어 있었다. 곧 마리아와 가정을 이루게 될 것을 생각하니 행복하기만 했다. 더 열심히 일해서 좋은 남편과 아버지가 되어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녀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라면 언제나 최선을 다하리라.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마리아의 얼굴이 어두웠다. 마침내 그녀가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사실을 말해 주었을 때, 나는 혼란스러웠다. 마리아에게 천사가 나타났다는 말, 그리고 그녀의 몸 속에 아기가 생겼다는 이야기. 나는 그녀를 믿는다. 마리아는 적어도 이런 식의 거짓말로 나를 속일 여자가 아니다. 하지만 믿는 것과 받아들이는 것 사이에는 아직도 큰 강물이 흐르고 있었다.

밤을 새워 기도하고, 고민했다. 그리고 나는 며칠 후에 그녀에게 이별을 통보했다. 그녀를 믿지 못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에게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특별한 그녀와 그녀의 아기를 지켜주기에는 나라는 인간이 적당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마음이 넓지도, 형편이 넉넉하지도 않은 내가 어떻게 그녀를 예전과 같이 사랑할 수 있을까?

그러나 하나님은 끈질기셨다. 마침내 나의 꿈에도 천사가 나타났다. 천사는 두려워서 망설이는 나의 마음에 확신을 주었다. 갑자기 모든 것이 명백해졌다. 비록 내가 충분하지는 않더라도, 하나님은 내게 그것을 원하신다. 마리아를 사랑하고, 아기를 지켜주는 것이 나의 사명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주신 아기, ‘예수’ 말이다.

비록 초라해도 나 역시 다윗의 후손이다. 다윗 왕이 품었던 이상과 꿈은 여전히 내 핏속에도 흐르고 있다. 그것은 권력이 아니라 평강의 왕국에 대한 꿈이다. 하나님이 왕이 되셔서 모든 이스라엘을 평강으로 다스리시는 꿈, 나는 그것을 믿었다.

로마의 황제 아우구스도가 호적령을 내렸다. 모두 자기 고향에 돌아가 가족을 신고해야 한다.

나는 이미 만삭이 된 마리아와 함께 여행을 했다. 계절은 겨울에 들어서고 있었다. 낮이면 온화한 날씨에 견딜 만 하였지만 밤이면 매서운 추위가 몰려왔다. 만삭의 마리아를 데리고 여행하기에는 모든 것이 적당하지 않았다.

베들레헴은 작은 마을이다. 갑자기 사방에서 몰려든 여행객들로 인하여 여관은 만원(滿員)이었다. 마리아를 위해 열심히 방을 찾았지만 빈방은 없었다. 매서운 밤이 다시 찾아오고 있었다.

갑자기 산통(産痛)이 찾아왔다. 마리아는 겁에 질린 표정으로 아기를 낳을 것 같다고 말했다. 항상 어려운 일은 한꺼번에 몰려온다. 나는 필사적이었다. 마리아가 길거리에서 아기를 낳게 할 수는 없었다. 하나님께 마음으로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한 여관 주인이 마구간을 빌려주었다. 건초를 깔아 마리아의 자리를 마련하고, 물을 끓여서 해산(解産)을 준비했다. 결국 아무도 우리에게 관심을 주지 않았던 그 밤, 내 손으로 아기를 받았다. 천사가 말했던 하나님의 아들, 내 조상 다윗이 꿈꾸었던 그 왕국을 이루어줄 아기는 그렇게 세상에 태어났다. 빨간 피부의 아기가 눈을 감고 울었다. 아니, 울음이 아니라 세상에 무사히 도착했음을 알리는 고운 노래 소리 같았다.

마리아와 나는 감격에 가득 차서 아기를 보고 또 보았다. 밖에는 거친 바람이 불고 있었지만, 아기의 평화가 마구간을 덮고 있었다. 별이 유난히도 빛나던 밤이었다….



星が輝いた夜に

2010-12-26 牧羊コラム

 

マリアが久々に笑った。私も幸せだった…

春の気配が特に感じられる頃、私たちは結婚の夢にふくらんでいた。もうすぐマリアと家庭を築くことを思うとただただ幸せだった。もっとしっかり働いて良い夫と父になろうと思っていた。彼女を幸せにするものなら常に最善を尽くそう。

だがいつからかマリアの表情が暗くなった。ついに彼女が無花果の木の下で事実を言ってくれた時、

私は混乱していた。マリアの前に天使が現れたこと、そして彼女が子供を身ごもったという話。

私は彼女を信じる。マリアは少なくともこんなふうに嘘をつく女性ではない。だが信じることと受け入れることの間にはまだ大きな溝があった。

夜を更かして祈り、悩んだ。そして私は何日後に彼女に別れを告げた。彼女を信じられないからではなく、私自身に自信がなかったからだ。特別な彼女と彼女の子供を守るには私という人間が適切ではないと思ったからだ。

心が広い訳でもなく、財産が多いわけでもない私がどうやって彼女を昔の様に愛せるだろうか?

だが神様は根気強かった。ついに私の夢の中にも天使が現れた。天使は恐れて戸惑う私の心に確信を持たせた。突然全てが明確になった。私が充分でなくても、神様は私にそれを望んでいるのだと。

マリアを愛し、子供を守るのが私の使命だと。神様がイスラエルのためにくださった子供「イエス」だと。

何の取り柄もない私だが私はダヴィデの子孫だ。ダヴィデ王が抱いた理想と夢は変わらず私の血の中に流れ続けている。それは権力ではなく平安な王国に対しての夢だ。神様が王になりすべてのイスラエルを平安に治めるという夢、私はそれを信じた。

ローマの皇帝アウグストが戸籍令を出した。皆自分の故郷に戻り家族を申告し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

私はもう出産を控えたマリアと旅に出た。季節は冬に差し掛かっていた。昼は温暖な天気で耐えることができたが夜は厳しい寒さが訪れた。出産を前にしたマリアを連れて旅に出ることはすべて適切ではなかった。

ベツレヘムは小さい村だった。いきなり四方からやってくる旅行客のせいで旅館は満員だった。マリアのために必死に部屋を探したが空き部屋はなかった。厳しい夜がやってきていた。

いきなり産痛がやってきた。マリアはこわばった顔で子供が生まれそうだと言った。いつだって苦難はいっきにやってくる。わたしは必死だった。マリアに道端で子供を産ます訳にはいかなかった。神様に心の中で祈りまた祈った。

一人の旅館の主人が馬小屋を貸してくれた。乾草を敷きマリアが寝る場所を作り、水を沸騰させ解産を準備した。結局だれも私たちに関心を向けなかった夜、私の手で子供を受け取った。天使が言っていた子供、私の祖先ダヴィデが夢見ていた王国をかなえてくれる子供はそうしてこの世に生まれた。

赤い皮膚の子供が目をつぶり泣いていた。いや、泣き声ではなくこの世に無事に到着したことを告げる歌声のようだった。マリアと私は感激して子供を何度も見直した。外には冷たい風が吹いていたが、子供の平和が馬小屋を包んでいた。星が特に輝く夜だっ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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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19 별이 빛나던 밤 (1)


공기는 맑고 바람은 시원했다. 별이 보석처럼 빛나는 밤이었다. 결혼을 앞둔 마리아는 되도록 외출을 삼가고, 집안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았다.

정숙한 여인들은 모두 그렇게 한다. 결혼식을 올리고 한 남자의 아내가 되기까지 가장 행복하고 순결한 신부가 되기 위하여 준비하고 또 준비했다.

남편이 될 요셉은 고요한 사람이었다. 몇 번을 만났지만, 요셉은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와 함께 같은 공간을 공유하며 옆에 있는 것 만으로도, 마리아의 마음은 설레었다.

마리아는 특히 요셉의 옆얼굴이 맘에 들었다.

마리아가 이런저런 일상들을 말 할 때에, 고요하게 허공을 응시하며 살짝 미소를 짓는 요셉의 옆 얼굴은 따뜻하고 부드러웠다. 백 마디의 말 보다 더 신뢰가 가는 얼굴이었다.

이런 사람의 아내가 되어 한 평생을 산다면 행복하리라…

마리아는 요셉과 함께 살아갈 미래가 이미 눈에 보이는 것 같았다. 따뜻한 사랑이 가득 하고,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라가는 가정, 늙어서도 결코 후회하지 않을 가정을 가지게 된다는 것은 모든 여인들의 꿈이었다. 마리아는 그런 가정을 지금 자신에게 주시려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그래서 그녀의 기도는 평소보다 깊고 진했다.

바로 그 때에 천사가 나타났다. 빛의 옷을 입은 천사는 아주 가까운 이웃이 예고 없이 문을 열고 방문하는 것처럼 그렇게 마리아 앞에 나타났다. 언제나 그렇게 해왔다는 것처럼, 모든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오히려 이상했다.

천사가 말했다. 당신은 하나님의 은혜를 이미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당신과 함께 하십니다. 그러니 평안하십시오.

천사가 평안이라는 말을 했을 때에, 그 말은 부드러운 양털처럼 마리아의 두려운 마음과 떨리는 어깨를 덮어주었다. 마리아는 아무 것도 염려할 필요가 없다는 믿음의 말을 되뇌었다.

천사가 다시 말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큰 은혜를 주시려고 합니다. 당신은 이제 아이를 가지게 될 것입니다. 그 아이가 태어나면 이름을 ‘예수’라고 하십시오. 그분은 장차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려질 것이며, 다윗 왕의 영광과 권세를 가지실 것입니다. 그리고 영원히 이스라엘을 다스리실 것이며, 그분의 나라는 무궁할 것입니다.

마리아는 하나님이 너무 급하시다고 생각했다. 아직 결혼식도 올리지 않았는데… 요셉을 남편으로 맞은 이후에야 있을 일을 벌써 말씀하시다니… 부끄러움을 느끼며 마리아는 조용히 혼잣말처럼 속삭였다.

그러나 천사는 그 말에도 대답했다. 결혼 후가 아니라 지금의 일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한이 없으십니다. 당신의 친척인 늙은 엘리사벳이 아이를 가지는 것이나, 처녀인 당신이 아이를 가지는 일은 모두 하나님께는 지극히 작은 일에 불과합니다.

마리아는 귀를 의심했다. 하나님이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 분이라는 사실은 이미 믿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이 기적은 그녀가 원한 것도 아니며, 기도한 것도 아니었다. 더구나 이제 곧 있을 그녀의 결혼식은 어떻게 한단 말인가? 아이를 가진 몸으로 요셉을 어떻게 다시 본다는 말인가?

눈물이 나왔다. 그녀는 간신히 입을 열고 마른 입으로 대답했다.

나는 하나님 앞에 계집종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면 그 일은 무엇이든 내게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리고는 천사는 떠났다. 빛이 사라진 방에는 마리아의 흐느낌만이 오래 남았다.

어둠 속에서 별은 여전히 빛나고 있었다.



星が輝いた夜に

2010-12-19 牧羊コラム

 

空気は澄んでいて風は涼しかった。星が宝石のように輝く夜だった。

結婚を控えていたマリアはなるべく外出を控え、家の中で過ごす時間が多かった。

しっかりしている女は全員ぞのように行う。結婚式を挙げ一人の男の女になるまで一番幸福で純潔な新婦になるように準備しまた準備した。

夫になるヨセフはほとんどしゃべらない無口な人だった。だが彼と一緒の空間を共有し、横に居るだけでマリアの心はドキドキした。マリアは特にヨセフの横顔が好きだった。マリアがいろいろな日常のことを言うときに、静かに空を凝視し少し微笑むヨセフの横顔は温かく優しかった。百の言葉より信頼がある表情だった。

こんな人の妻になり一生を過ごしていけたら幸福かな…

マリアはヨセフと一緒に生きていく未来が目に見えているようだった。温かい愛に満ち、子供たちが健康に育っていく家庭、老人になっても後悔しないような家庭を持てるようになることはすべての女性の夢だった。マリアはそんな家庭を自分に与えようとしている神様に感謝しまた感謝した。だから彼女のお祈りはいつもより深かった。

まさにその時、天使が現れた。光の服を着た天使はとても親しい近所の人が訪れるようにマリアの前に現れた。いつもこんなふうにしてきたかのようにすべては自然で逆に変だった。

天使が言った。あなたは神様の恩恵をもう受けました。神様はいつもあなたと一緒に居ます。だから平安してください。天使が平安ということを言った時、その言葉は柔らかい羊毛のようにマリアの恐れる気持ちと震える方を抱きかかえた。マリアはなにも心配する必要はないという神様を信じる言葉を思い返した。

天使がまた言った。怖がらないで下さい。神様があなたに大きな恩恵を与えようとしています。あなたは今から子供を持つようになります。その子供が生まれたら「イエス」と名付けて下さい。その方は将来神様の子と呼ばれるようになり、ダヴィデ王の栄光と権勢を持つでしょう。そして永遠にイスラエルを治め、その方の国は無窮になるでしょう。

マリアは神様が速すぎると思った。まだ結婚式もあげてないのに… ヨセフを夫として迎えた後にあるようなことをもう言われるとは… マリアは静かに独り言のように呟いた。

だが天使はその言葉にも答えた。結婚の後ではなく今のことを言っています。神様の能力には限りがありますん。あなたの親戚の老いたエリサベツ子供を持つような事や、処女のあなたが子供を持つことは神様にはすべて小さいことに過ぎません。

マリアは耳を疑った。マリアは神様が奇跡を起こせる方だともう信じていた。だが今のこのような奇跡は彼女が望むものでもなく、お祈りしたものでもなかった。そのうえもうすぐにある結婚式はどうするというのか。子供を持った体でどうやってもう一度ヨセフの顔を見ることができるのか。

涙があふれた。彼女はやっと口をあけ渇いた口で答えた。

私は神様の前では一人の下女に過ぎません。神様が願うのであればそのことは何であろうと私に起こるでしょう… 天使は去って行った。光が消えた部屋の中にはマリアの鳴き声だけが響いていた。星は変わらず静かに光り輝いてい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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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12 끝까지 순결한 교회가 되기를


어깨가 시리다. 옷을 덮어도 따뜻하지 않다. 한밤의 한기(寒氣)는 몸을 찌르는 바늘처럼 깊이 스미고 떨게 한다. 한 마디의 기도가 힘겹다. 새벽이 오려면 아직 멀었는가? 그러나 예배당의 창가에는 무심한 어둠만이 서성거리고 있다.

이번 토요일이 내가 동경드림교회에 부임한지 5년을 채우는 날이다.

한 해가 가고 새해를 맞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지만, 5년이라는 세월을 채운다고 생각하니 더욱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돌이켜 보면, 참 길었던 세월이었다.

일본에 와서 매해를 넘길 때마다 마음 편하게 희망만을 생각한 적이 없는 것 같다. 교회와 교인들로 인하여 늘 무거운 짐을 지고 지냈다. 한 걸음의 앞도 보이지 않는 지독한 현실 속에서 목사라는 자리는 무겁고 외로웠다.

그 날들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오직 기도하는 힘이 아니었나 한다.

기도는 내 마음의 고민과 슬픔과 두려움으로부터 도피할 수 있는 유일한 피난처였다. 식어가는 가슴을 다시 열정으로 채우고, 보이지 않는 희망을 믿으며, 다시 강단에 올라갈 수 있었던 것은 오직 기도의 능력 때문이었다.

내 자신만의 기도를 자랑하기 위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사실 동경드림교회를 위해 기도해주는 분들은 많이 있다. 또한 예전에 비하여 동경드림교회의 식구들도 더 간절히, 더 많이 기도하게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들의 기도가 하나가 되어, 우리들의 교회를 지켜온 것이다.

목사로서 동경드림교회를 향한 바램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앞으로 교회가 커지고 부유하게 되어도 이 가난한 시절의 기도와 마음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그래서 교회를 지키는 것이 결코 조직이나 돈의 힘이 아니라, 바로 춥고 깊은 밤을 지새우며 간절하게 기도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의 기도 때문이라는 것을 기억했으면 한다.

점점 교회의 순수성이 지켜지기 어려운 시대가 되고 있다. 이제 사람들은 사업(business)을 하는 교회에 익숙해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선택할 때에 신앙과 비전보다 편리함을 더 앞세운다는 것은 참 씁쓸한 현실이다.

사람은 환경을 지배하기도 하지만, 환경의 영향을 받기도 한다. 그래서 이런 시대를 살아가다 보면, 점점 순수함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늘어간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결코 이런 모습을 기뻐하시지 않으신다.

교회는 순수해야 한다. 부흥해야 하지만, 순결함을 지키는 것이 더 우선이다. 그리고 성경은 순결한 교회에 결국에는 하나님께서 부흥을 부으신다고 약속하고 있다.

서로 사랑하고, 모이면 예배하고, 모든 것에 대하여 기도하고,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고 살아가자. 그러면 추운 밤도 이겨낼 수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주신 그 소망의 교회를 동경에 세울 수 있다. 후회하지 않을 수 있다.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으신다. 아멘!



最後まで純潔な教会になるように

2010-12-12 牧羊コラム


肩に寒さがしみる。服を着ても温かくならない。夜中の寒気は体を刺す針のように深くしみ、ふるえさせる。一語のお祈りさえ辛い。夜明けが来るにはまだ早いのか。礼拝堂の窓辺には心無き闇だけが行き来している。今週の土曜日が私が東京ドリ-ム教会に赴任して5年を満たす日だ。

一年が過ぎ新年を迎えることも意味のあることだが、5年という月日を満たすと考えるとよりたくさんの考えが頭の中を駆け巡る。振り返ってみると、とても長い歳月だった。

日本に来て毎年を越すたびに心安らかに希望がけを考えていたことがなかつたようだ。教会と教員達のせいでいつも重荷を背負って生きた。一歩の先も見えない真っ暗な現実の中で牧師という場所は重く孤独だった。そんな日々を耐えることができたのは唯一お祈りする力があったからではないかと思う。お祈りは私の心の悩みや悲しみ、恐怖から逃れる事ができる唯一の救いだった。冷めていく心をまた熱情で満たし、見えない希望を信じ、また講壇に登ることができたのは唯一お祈りの力だった。

私自信のお祈りを自慢するために言っている言葉ではない。事実、東京ドリ-ム教会のためにお祈りしてくださる方は沢山いる。また以前に比べ、東京ドリ-ム教会の家族たちももっと切実に、もっと多くお祈りするようになっていると思う。だから私たちのお祈りが一つになり、私たちの教会を守ってきたのだ。

牧師として東京ドリ-ム教会に向けての願いが一つあるとすれば、それはこれから教会が大きくなり、裕福になってもこの貧しい時期のお祈りと心を忘れないでほしいということだ。教会を守ることが決して組織や金の力ではなく、寒く長い夜を過ごしながら切実にお祈りする人一人、一人のお祈りのおかげだということを記憶してほしい。

どんどん教会の純粋さを守ることが難しい時代になりつつある。もう人々はビジネスをする教会に慣れてきている。沢山の人々が教会を選ぶときに信仰やビジョンより便利さを追求するということは本当に苦い現実だ。

人は環境を支配するが、環境の影響も受ける。だからこんな時代を生きていくと、どんどん純粋さを失う人が増えていく。だが神様は決してこのような姿は喜ばない。

教会は純粋でなければならない。リバイバルしなければならないが、純潔さを守ることの方が優先でなければならない。そして聖書には純潔な教会はリバイバルすると約束されている。互いに愛し、集まれば礼拝をし、すべての事に対してお祈りし、いつも喜び、何事にも感謝しながら生きていこう。そうすれば寒い夜も耐えることができる。神様は私たちの心にその所望する教会を東京に建てる事ができる。

神様は決して私たちを失望させることがない。

ア-メ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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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05 사라에게 배웁시다



아브라함은 성경에서 ‘믿음의 아버지’라고 불려지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도 결코 완전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아브라함에 대한 성경의 기록을 읽어보면, 많은 실수와 허물이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허물은 누구보다 아브라함의 아내였던 사라에게 잘 보였을 것입니다.

특별히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닥친 지독한 가뭄을 피해 이집트로 피난을 갔을 때에, 그는 아내에게 큰 실수를 했습니다. 위험을 모면하기 위해 아내를 누이동생이라고 거짓말 했고, 이로 인하여 아브라함은 이집트의 왕에게 잠시 아내를 빼앗겼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개입하셔서 사라가 다시 무사히 돌아오기는 하였지만, 사라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무척이나 속상하고 두려운 경험이었을 것입니다.

아내들은 누구나 자기 남편이 어떤 위기에서도 용감하게 아내를 보호해 줄 사람이라고 기대를 합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그 기대를 실망시키고 잠시나마 아주 비겁하게 행동했습니다. 충분히 사라가 항의할 수 있고, 가정에 불화가 생겨날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사라는 이런 과정 속에서도 불평하지 않았고, 남편과 불화(不和)하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성경은 사라에 대하여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벧전3:6)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여 순종한 것 같이 너희는 선을 행하고 아무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아니하면 그의 딸이 된 것이니라

 

사라는 많은 실수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을 ‘주’라고 불렀습니다. 그 호칭은 아내로서 남편에게 주는 소망의 언어였습니다. 이러한 지혜로운 행동으로 인하여, 사라는 아브라함을 ‘믿음의 아버지’로 만들어갔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사람을 통해 사람을 세우십니다. 그래서 성경을 읽어보면, 훌륭한 사람의 옆에는 항상 훌륭한 조력자(helper)들이 같이 하고 있습니다. 빛나는 조연(助演)으로 인하여 주인공이 더욱 멋지게 보이게 되었던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도 완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실수를 덮어주고 소망을 심을 때에, 사람의 가능성이 자라나게 되고 마침내 좋은 열매를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 다음으로 아브라함에게 많은 영향력을 미친 사람은 그의 아내였던 사라가 아닌가 합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남의 허물을 함부로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겸손하여 항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부족한 사람에게도 사라와 같이 소망의 언어를 심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그리스도인을 통해 세상에 은혜를 주시고, 절망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구원하십니다.

우리 모두 사라에게 배웁시다. 그녀의 지혜가 역사에 빛나고 있습니다. 4000년이 지나도 지혜로운 여인은 진주처럼 소중하게 다가옵니다. 샬롬~


2010-12-05

 

アブラハムは聖書で「信仰の父」と呼ばれる人です。だが彼も完璧な人ではありませんでした。逆にアブラハムについての聖書の記録を見ると、たくさんの失敗や足りない部分があったことを知ることができます。このような足りない部分は誰よりも妻のサラがよく感じたでしょう。

特にアブラハムは[ガナアン]の地にやってきた酷い飢饉を逃れエジプトに非難したとき、彼は妻に大きな過ちを犯しました。危険を回避するために妻を妹だと嘘をつき、このせいでアブラハムはエジプトの王に少しの間妻を奪われたのです。神様が介入してくださってサラが無事に戻ることができましたが、サラの立場から考えるととても傷つき恐ろしい経験であったと思います。

妻は誰もが自分の夫がどんな危機でも勇敢に妻を守ってくれる人だと期待します。だがアブラハムはその期待を裏切り、少しの間とても卑怯な行動をとりました。充分に皿が抗議することもできるし、家庭にもひびが入る可能性もありました。

だがサラはこのような過程の中でも不満を言わず、夫と不和することもありませんでした。聖書はサラについてこのように記録しています。

(ペテロの手紙Ⅰ 3:6)たとえば、サラは夫アブラハムに心から従った。あなた方もどんなことをも恐れずに善いことを行えば、サラの信仰を受け継ぐことができるのである。

サラはたくさんの失敗にも関わらずアブラハムを主と呼びました。その呼び名は妻として夫にあげる希望の言葉でした。このような知恵のある行動を通してサラはアブラハムを「信仰の父」として作って行ったのです。

神様はいつも人を通して人を立てていきます。だから聖書を読んでみると、素晴らしい人の横には素晴らしい助っ人(helper)が一緒にいます。輝く助演として主人公をもっと輝かせたのです。

人の中に誰も完璧な人はいません。だが失敗を攻めず、希望を与えたとき、人の可能性は伸び、最後は結果が実るのです。このような意味で神様の次にアブラハムに多くの影響を与えたのは彼の妻、サラではないかと思います。

あなたたちはキリスト人です。キリスト人は他人の不足な部分を勝手に言ったりしません。逆に謙虚に自分を他人より低く思い、不足な人にもサラのように希望を与える人です。神様はこのような人を通して世界に恩恵を授け、絶望の人を救います。私たち全員サラに習いましょう。彼女の知恵が歴史に残り輝いています。4000年が過ぎても知恵のある女性は真珠のように大事なものです。 

シャロ~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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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28 흔들리는 내 조국의 평화를 지켜 주소서



밖에는 비가 오고 있다.

점점 겨울이 깊어가는 것을 느낀다. 더구나 한국에서 들려오는 차가운 소식은 더욱 마음을 춥게 만든다. 평화롭던 어촌(漁村)에 갑자기 포탄이 떨어지고, 영화 속에서나 보던 일들이 생겨났다. 민간인도 죽고, 젊은 군인도 목숨을 잃었다. 모든 것은 순식간이었다.

그래도 사람들은 ‘설마 전쟁이 일어나겠는가?’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어차피 전쟁은 이성의 결과였던 적이 없다. 증오와 분노의 광기(狂氣)가 사람들을 몰아가면 아무리 단단하던 평화도 깨어지고 사람들은 서로를 죽이는 야만(野蠻)의 시대를 맞았던 것이다.

지금 한반도는 지구상에서 제일 위험한 도화선(導火線)이 되어 있다. 한국과 북한의 대치 이면에는 미국과 일본, 중국과 러시아가 서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들 나라 중에서 아무도 전쟁을 바라지는 않는다. 심지어 제일 영향력이 있는 중국도 그러하다. 중국이 이제 개방의 봄바람을 통해 자본의 맛을 알아가는 중인데, 전쟁으로 이 소중한 성장의 기회를 잃고 싶겠는가!

그러나 문제는 중국도 북한을 제대로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북한의 연평도 포격이 있었던 직후(11월25일),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자매지인 환구시보(環球時報)는 1면 머리기사에서 이례적으로 북한을 ‘성난 짐승’이라고 표현하고, 중국은 사자춤을 앞에서 리드하는 춤꾼이 아니라고 했다. 북한의 영원한 우방을 자처했던 중국도 이번 북한의 행동에 대하여는 당황했던 것이 틀림없다. 또한 중국의 말도 듣지 않는 북한에 대하여 어떻게 해보라고 원망하는 서방의 태도가 억울했던 모양이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은 세계의 늪이 될 가능성이 있다. 만약 북한이 실제로 중국과 논의 없이 대규모 전투를 감행한다면, 한국에 병력이 주둔하고 있는 미국은 자연히 참전하게 되고, 그 미군의 후방기지가 있는 일본도 구경만 할 수는 없게 될 것이다. 그러면 세계의 군사적 균형을 위해서라도 중국과 러시아는 무언가 행동을 강요 받게 되는 것이다.

아프카니스탄과 이라크와는 많이 다르다. 어쩌면 정말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미래가 우리 앞에 놓여 있는 것이다. 그것을 생각하니 잠이 오지 않는다. 어떻게 하면 지금의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수 있는 것인지 솔직히 모르겠다.

얼마나 시간이 흘러야 이 불안의 근원이 치유되고, 내 조국 대한민국이 하나로 통일 될 수 있을까? 적어도 내게는 어머니 같은 한반도가 세계를 파멸의 구렁텅이로 몰아가는 전쟁의 늪이 될지도 모른다는 이 불명예의 가능성에서 탈출할 수 있을까? 이 땅이 평화를 얻기에는 그토록 많은 순교자의 피를 흘리고도 아직 부족하다는 말인가……

분명한 사실은 지금이 기도할 때이라는 것이다. 사실 그것 밖에는 달리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 떠들어야 소용 없고, 화를 내는 것은 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지금은 이 땅에, 이 시대에 하나님의 자비가 임하도록 기도하고 기도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하나님, 내 조국 대한민국을 긍휼히 여기소서. 그 땅의 흔들리는 평화를 지켜 주소서. 제발 지켜 주소서. 제발 지켜 주소서. 아멘!”


2010-11-28 牧羊コラム


外には雨が降っています。

だんだん冬に移り変わっていくことを風の冷たさから感じます。また韓国から聞こえてくる冷たい 知らせはいっそう心を冷たくさせます。平和だった漁村にいきなり砲弾が落ち、映画の中で目にしていたようなことが起きました。

民間人も死に、若い兵士も命を失いました。すべては一瞬でした。 

それでも人々は「まさか戦争など起きるだろうか。」と考えているようです。

だがどうせ戦争とは 理性の結果だった敵などいません。憎悪と憤怒の狂気が人々に侵食すればどんなに固い平和でも儚く消え人々は互いを殺す野蛮の時代を迎えてしまいます。

今の朝鮮半島は地球上で一番危険な導火線となっています。韓国と北朝鮮の対立の裏にはアメリカと日本、中国とロシアがいるからです。もちろんこの国の中でどの国も戦争は望みません。また一番影響力のある中国でさえそうです。中国がやっと開放の春風を通して資本の味を味わっていく中なのに、戦争でこの貴重な成長の機会を失いたくはないはずです。

だが問題は中国も北朝鮮をしっかり統制できないということです。北朝鮮のヨンピョン島砲撃があった直後(11月25日)、中国共産党の機関紙、<人民日報>の姉妹紙である<環球時報>の一面記事で異例的に北朝鮮を怒り狂った獣と表現し、中国は獅子踊りを前でリードする踊り人ではないと書いた。北朝鮮の永遠の味方だち言っていた中国も今回の北朝鮮の行動に対しては驚いたのに違いない。

また中国の話しさえ聞かない北朝鮮に対してどうかしてみろという他人任せな態度にも抑鬱だった模様だ。

このような理由で北朝鮮は世界にとって底なしの沼になる可能性がある。本当に北朝鮮が中国と論議もなく大規模な戦争を強行するのなら、韓国に兵力を駐屯させているアメリカは自然に参戦することになり、その米軍の後衛基地がある日本も見ているだけでは終わらないであろう。そんなことが起きたら世界の軍事的な均衡を保つためにも中国とロシアはなにか行動を強要されるようになるであろう。

アフガニスタンやイラクとは大きく違う。今、私たちの前には一歩先も見えない未来が置かれてあるのかも知れない。そのことを考えるとなかなか寝付けない。どうしたら今の状況に私ができる最善のことができるのか正直分からない。どのくらい時間が過ぎればこの不安の根源が治癒され、私の祖国の大韓民国がひとつに統一されるのだろうか。私にとっては母親のような朝鮮半島が世界を破滅の落とし穴に向かわせる戦争の沼になるかもしれないというこの不名誉な可能性から脱出できるのだろうか。この地が平和を得るにはたくさんの殉教者が流した血では不足だというのか……

今、私たちが知ることができるのは今がお祈りする時であるということだ。事実それ以外、私たちにはできることがないのだ。騒いでみてもどうしようもないし、怒ってみることはそれ以上に役に立たない。今はこの地へ、この時代へ神様の慈悲が注がれるようにお祈りしまたお祈りするしかないようだ。

「神様、私の祖国韓国を恩恵で満ちさせてください。その地の揺らぐ平和お守りください。お守りください。お守りください。アーメ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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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통(成長痛)

2010-11-21 목양칼럼


간혹 아이들이 이상한 아픔을 호소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무릎 관절이나 종아리 근육이 아프다는 것입니다. 종아리가 아픈 것은 많이 뛰어 놀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노인도 아닌 어린 아이가 무릎의 관절이 아프다고 하는 것은 쉽게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그래서 부모들은 아이가 혹시나 다친 것은 아닐까 걱정을 하기도 합니다.

성장기에 있는 아이라면 이런 통증은 성장통(成長痛)일 수 있습니다. 몸이 자라나는 속도가 너무 빨라지면 관절과 같은 부분들이 일시적으로 약해지게 됩니다. 이 때에 아이는 통증을 느껴서 밤에 일어나 울기도 하지만 그것은 병이 아닙니다. 잘 먹고 쉬면 몸은 곧 정상을 회복하여 오히려 성장한 모습으로 튼튼해지게 됩니다.

영적으로도 성장통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답게 좋은 그리스도인이 되기로 결심했을 때에, 그 성장은 때로 급진적으로 이루어집니다. 서서히 변화가 나타날수록 변화에 따르는 충격은 작아집니다. 그러나 만약 아주 급히 변화가 나타나게 된다면, 우리는 삶의 여기저기에서 일어나는 성장통을 경험하게 됩니다. 때때로 예수를 믿고 신앙생활을 시작한 사람들이 오히려 더 큰 혼란에 싸이게 되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기 이전에, 우리는 모든 결정에 있어 우리 자신이 결정자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은 이후에는 성경말씀에 따라서 예수님이 해주시는 결정들을 따르게 됩니다. 이러한 결정들은 우리가 내리던 것과는 너무도 달라서, 주변에 오해를 불러 일으키기도 하고, 때로는 잠시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오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나빠지는 것이 아니라 좋아지는 과정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신뢰하고 변화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점진적으로 생활 속에 새로운 질서가 생겨나고, 우리가 좀 더 성장된 모습이 되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분명히 말씀을 드립니다만, 신앙생활은 쉬운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런 대가를 치러도 결코 손해보지 않는 훌륭한 결과들을 가져옵니다. 좋은 그리스도인이 되는 과정은 잠시 고통이 따르더라도 영원한 기쁨과 행복을 얻을 수 있는 참으로 복된 길이라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에 대하여 좀 더 열심을 가져 보십시오. 잠시 어려움이 있다고 하여서 포기하려고 들지 말고, 오히려 하나님이 주실 열매들을 생각하십시오. 당신이 믿음을 얻고 신앙 안에서 성장하게 된다면, 당신의 나머지 인생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 가치를 귀중하게 생각한다면 우리는 결코 물러설 수 없을 것입니다.

샬롬~


(롬 8:18)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2010-11-21牧羊コラム


時々子供たちが変な痛みをうったえることがあります。膝の関節かふくらはぎの筋肉が痛いというのです。ふくらはぎが痛いのはたくさん走り回って遊んだからといえますが、老人でもない小さい子供が膝の関節が痛いというのは理解するのが難しいです。だから親は子供が怪我をしたのではないかと心配したりします。                                    

成長期である子供ならこのような痛みは成長痛かみしれません。体が育つ速さがとても速くなると 関節のような部分が一時的に弱くなります。この時期には子供は痛みを感じ夜中にも起きて泣いたりしますが、それは病気ではありません。ちゃんと食べて休めば体はすぐに正常に回復し、かえって 成長した姿となり、健康になります。                            

霊的にも成長痛があります。私たちが神様の子供のように良いキリスト人になることを決心した時、その成長は飛躍的なものになります。徐々に変化が現れるほど変化に対する衝撃が小さくなります。だが、とても急に変化が現れるなら、私たちは生活の中で色んな成長痛を経験する事になります。 

時々、イエスを信じ、信仰生活を始めた人が逆に混乱してしまう事がありますがその理由がこれです。イエスを信じる以前は、私たちはすべての決定において私たち自身が決定者でした。だがイエスを信じ以後は聖書のとおりイエス様が決めてくれる決定に従うことなります。このような決定は私たちが決めていたこととは違いすぎて、周囲に誤解を招くこともあるし、時には、少しの間、否定的な結果をもたらす事もあります。                      

だが、これは断じて悪くなっていいくのではなく、良くなっていく過程です。私たちがイエス様を 信頼し、変化する事を諦めないなら、一つ一つ生活の中に新しい秩序が生まれ、私たちがもっと成長した姿になったということに気づくことができるようになるでしょう。             

ハッキリと言いますが、信仰生活は易しいものではありません。だが、私たちがこのような対象を 払っても絶対に損ではない素晴らしい結果を持ってきます。良いキリスト人になる過程はすこし苦痛が伴うが、永遠の幸せと幸福を得ることができる真に恵まれた道なのです。           

信仰生活にもっと熱心になってみて下さい。少しの間難があるかるといって諦めようとしないで、 神様がくれるであろうものを考えてみて下さい。あなたが信仰心を持ち、信仰のなかで成長するようになれば、あなたの残された人生を変えることができます。その価値を重要視するなら、私たちは 決して引くことができません。

シャロ~ム~


(ローマ8:18)「私はこのように考えている。今の時のいろいろな苦しみは、将来私たちに与えられる栄光に比べるなら、全く取るに足りないものであ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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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14 아직은 늦지 않았습니다.



살아있는 모든 사람에게는 새 출발의 기회가 있습니다. 너무 늦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매우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너무 늦었다고 생각할 바로 그 때가, 사실은 자기가 원하는 새 출발을 하기에 가장 적당한 시간일지도 모릅니다.

성경에 나오는 아브라함은 75세에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고향과 친척과 유산을 포기하고 하나님께서 지시하시는 새 땅으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의 길을 인도하시고 축복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이 약속에 자기의 인생을 걸었고, 하나님은 그의 순종에 축복으로 보상해 주셨습니다.

모세는 80살의 노인이 되어서야 하나님께 사명을 받았습니다. 그(모세)도 처음에는 우리처럼 약한 마음으로 망설였지만, 하나님을 믿고 이집트의 파라오에 대항하였고, 결국에는 노예로 살아가던 200만 명의 이스라엘 백성들을 해방하여 가나안 땅까지 이끌었습니다.

성경에는 이 밖에도 나이를 뛰어 넘은 이야기가 참 많습니다. 이 분들이 나이를 뛰어 넘을 수 있었던 것은 물론 이 분들에게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너무 늙거나 무능력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자기를 부르신 하나님을 완전히 신뢰한 것입니다. 그 믿음이 다른 사람들은 모두 늦었다고 할 만한 나이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사명에 도전할 수 있도록 힘을 주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혼자가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우리를 사랑하시고 도와주시는 하나님께서 항상 함께 계십니다. 이것을 히브리어로 ‘임마누엘’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단지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만이 아니라 때를 따라 도와 주시고 새 힘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혼자라서 외롭다고요? 자신은 너무 늙었다고요? 벌써 머리가 바보가 되었다고요? 도와 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요? 우리가 이런 말을 할 때에 하나님은 우리 곁에서 매우 슬퍼하십니다. 우리가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아브라함과 모세에게 배워야 합니다. 그들이 보여주었던 용기를 본받아야 합니다. 

우리도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나를 도와 주시는 하나님과 함께라면 불가능한 것은 없습니다. 

예전에는 나 혼자라서 약했지만, 이제는 믿음이 있고, 하나님께서 도와 주시니 다를 것입니다.

용기를 가지고 도전해 보십시오. 하나님께 힘을 달라고 기도해 보십시오. 우리에게 진정한 믿음이 있다면, 산이라도 옮길 수 있습니다.

오늘은 좋은 날입니다. 나의 인생에 새 출발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을 내일로 미루지 마십시오. 지금 선언하고 시작해야 합니다. 내일로 미루다 보면 포기하게 됩니다. 당신에게 믿음이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기꺼이 지금부터 당신의 편이 되어주실 것입니다. 이것을 믿고 새로 시작하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샬롬~


まだ遅くないです

2010-11-14 牧羊コラム


生きているすべての人には再出発できるチャンスがあります。もう遅いと考えているならそれはとても愚かな考えです。もう遅いと思う時こそ実は、自分が望む新しい出発をするのに一番適切な時なのかも知れません。聖書に登場するアブラハムは75歳になってから神様の声を聞きました。 神様はアブラハムに故郷と親戚、遺産を諦めて神様が指示する新しい土地に行けと言いました。 そしたら神様は彼の行く道を祝福すると約束してくれました。アブラハムはこの約束に自分の人生を賭け、神様はアブラハムに見返りとして祝福しました。モーセは80歳の老人になってから神様の使命を受けました。モーセも最初は私たちのように弱い心で戸惑いましたが、神様を信じエジプトのファラオに対抗し、結局、奴隷として生きていた200万人のイスラエルの民を解放しカナンの地まで導きました。聖書にはこれ以外にも年のハンデを越えた話はたくさんあります。この方たちが年のハンデを越えられたのはもとろんこの方たちが神様を信じたからです。自分はもう年だ才能がないだと思わずに、逆に自分を呼んだ神様を完全に信頼したのです。その信じる心がほかの人にはもう遅いという年にも関わらず新しい使命に挑戦する力をくれたのです。キリスト人は一人ではありません。 私たちには愛し助けてくれる神様がいつも一緒にいてくれます。これをヒブライ語で「イマノエル」 と言います。神様はただ私たちと一緒にいてくれることだけではなく時によって助けてくれ新しい力をくれる方です。一人だから寂しいですか。自分はもう年だと思いますか。もう頭が馬鹿になりましたか。このような言葉を私たちがこのようなことを言うとき神様は私たちの横でとても悲しみます。 私たちがイマヌエルの神様を知らず信じていないからです。私たちはアブラハムとモーセに習わなければなりません。彼らが見せてくれた勇気を見習わなければなりません。私たちもまた始めることができます。私を助けてくれる神様と一緒なら不可能なことわありません。以前は私一人だから弱かったが今は神様を信じ、神様が助けてくれるからきっと違うでしょう。勇気を持って挑戦しましょう。 神様に力をくださいとお祈りしましょう。私たちに本当の信じる心があれば、山でも移せるでしょう。今日はいい日です。私の人生で新しい出発が必要だと感じるなら、それを明日にしないでいま宣言し始めなければなりません。明日からといっていたら諦めるようになります。あなたに信じる心があれば神様は今からあなたの味方になってくれるでしょう。これを信じ新しく始める人には幸があります。

シャロー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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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07 예배를 삶의 중심에



세계적인 설교가 제임스 E. 화이트는 그의 책 <하나님과 친절한 사귐>에서 다음과 같은 그의 경험을 이야기 합니다.

러시아에서 한 교회의 주일 아침 예배 설교를 부탁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설교자가 나뿐 아니라 여러 명이었습니다. 예배는 거의 세 시간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예배를 마친 뒤 나는 그 교회 목사님과 잠깐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예배가 긴 것에 놀라기도 했지만, 교인들의 열의에 더욱 놀랐던 것입니다. 3시간 내내 그들은 자리에서 이탈하지 않았고 지루한 기색도 없었습니다. 예배가 끝난 뒤에도 집에 돌아갈 마음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 내가 운을 떼었습니다. “미국에서는요, 예배가 한 시간이 넘으면 여기저기서 시계가 삑삑거립니다.” 그 목사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몇 년 전만 해도 신앙 공동체로서 함께 모여 예배를 드리는 게 허용되지 않았고, 발각되면 모두 감옥에 들어갔지요. 지금 이런 일을 공개적으로 할 수 있다는 게 도무지 믿기질 않아요. 그래서 우리는 그저 행복한 겁니다. 그리고 어떤 앞날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 장담할 수 없기에, 매주일이 이렇게 자유롭게 예배드릴 수 있는 마지막 날이라고 가정합니다. 그래서 예배를 중단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겁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혼자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동안 나는 예배를 너무 건성으로, 느긋하게, 습관적으로 드렸던 게 아닌가? 이 사람들은 예배가 무엇인지를 안다. 그렇기 때문에 고초를 당하게 되더라도 그것을 다시 감내할 의지가 있는 것이다. 예배 때문에 감옥에 들어갈 의지가 있는 것이다. 죽을 의지가 있는 것이다. 한평생 살면서 예배만큼 귀중한 것이 없다는 것을 이 사람들은 알고 있는 것이다. 


건강을 잃기 전에는 건강의 소중함을 모르고, 친구를 잃기 전에는 친구의 아쉬움을 모른다고 합니다. 그러나 잃고서야 그것의 귀중한 가치를 안다면 이 또한 얼마나 안타까운 일이겠습니까!

우리는 매주일, 우리에게 소중한 교회가 있다는 것과 아름다운 지체들이 있다는 것과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추구하는 간절한 신앙이 있다는 것을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교회는 예배 공동체입니다. 다른 것들도 중요하지만, 그러나 예배가 가장 근본적인 것입니다. 예배의 부흥으로부터 영적인 성숙과 전도와 삶의 활력이 생겨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배는 소중하게 지켜져야 하며, 또한 최선을 다해 드려야만 합니다.

사랑하는 동경드림교회 지체들에게 권합니다. 예배를 삶의 중심에 두십시오. 그리고 예배를 통해 하나님 만나기를 사모하십시오. 그 소중한 기회를 소홀함으로 잃지 마십시오. 부탁입니다. 샬롬~


** 

개인적인 사정으로 2007년 4월 29일의 목양칼럼을 다시 게재합니다.


2010-11-07牧羊コラム


世界的な牧師「ジェ-ムズE.ホワイト」は彼が著書した本<神様との親切な付き合い>で次のような彼の経験を語ります。

ロシアである教会の日曜日、朝の礼拝の説教を頼まれたことがありました。だけど説教者は私だけではなく数名でした。礼拝は三時間近くまで続きました。礼拝を終えた後、私はその教会の牧師さんと少し話をしました。礼拝が長いことにも驚きましたが、聖徒たちの熱意にもっと驚かされたのです。三時間の間ずっと彼らは席を立たず退屈した様子も伺えませんでした。礼拝が終わった後にも家に帰る気がないように見えました。私が話を切り出しました。「アメリカでは、礼拝が一時間を越えるとあっちこっちで時計が鳴り始めますよ。」その牧師さんはこのように言いました。「何年か前までは信仰共同体として一緒に集まり礼拝を捧げるのが許されなかったし、見つかったら監獄にいれられましたよ。今、礼拝を公開的に捧げることができるのがいまだに信じられませんよ。だから私たちは ただただ嬉しいのですよ。あと、これからどんなことが私たちを待ち構えているか知ることができないのですから、毎週このように自由に礼拝を捧げることができる最後の日だという心で礼拝をしているのですから礼拝を中断しようとは思わないのですよ。」その話を聞き私は一人でこんな事を考えました。これまで私は礼拝を適当に、ダラダラと、習慣的に捧げたのではないか。この人たちは礼拝が何かを知っているのです。だから苦難があってもそれに耐えることができる意志をもっているのです。礼拝をして監獄に入れられるなら入る意志があるのです。死んでも良いという意志があるのです。今までを生きてきて礼拝より大事なものはないという事をこの人たちは知っているのです。


健康を失う前は健康の大事さを知ることができず、友人を失う前は友人の大事さをしることができないと言われます。だが失ってからその価値に気づいてしまってはもったいないことです。私たちは毎週、私たちに大事な教会があるという事、周りの人たちに恵まれているという事、礼拝を通じて神様を求める切実な信仰があるという事に感謝しなければなりません。               

教会は礼拝共同体です。違うことも重要ですが礼拝が一番根本的な事です。礼拝の復興から、霊的な成熟と伝道の生活の活力が生まれます。だから礼拝は大事に守られなければならないし、最善を尽くさなければなりません。愛する東京ドリ-ム教会のみなさんに勧告します。礼拝を生活の中心においてください。そしてその礼拝を通じて神様に会うことを思慕してください。その貴重な機会を失わないでください。それがわたしの願望です。

シャロー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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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31 영원하고 완전한 사랑



모든 사람은 사랑을 받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서로 사랑하면 함께 행복하게 됩니다. 사랑은 받는 사람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주는 사람을 위해서도 가장 좋은 선택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사실을 알면서도 서로 사랑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말썽을 부리는 청소년기의 아이가 있습니다. 아이는 부모가 말하는 것마다 일부러 거꾸로 행동합니다. 부모는 아이에게 화를 내고, 아이는 그런 부모를 보면서 더 고집을 피웁니다.

사실 마음 속을 살펴보면, 양편은 모두 사랑을 원하고 있습니다. 아이는 말썽을 부려도 이해해주는 부모님을 바라고 있고, 부모는 늘 순종하는 온순한 자녀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희망의 가장 바탕에는 상대방으로부터 사랑 받기를 원하는 마음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회로부터 격리시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가장 흉악한 범죄자들에게조차 사랑 받기를 원하는 욕구는 발견됩니다. 그들은 전혀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않으며 심지어 다른 사람을 해치면서도, 정작 자신은 중요하게 여겨지고 사랑 받기를 원합니다.

분명한 모순입니다. 그러나 이런 모순은 가장 망가진 사람에게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나타나는 일반적인 모순입니다. 지금 생각해 보십시오.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 누군가에 대하여 불평하고 있다면, 평소에 과연 당신이 그 사람에게 사랑 받을 만한 행동을 얼마나 했는가 반성해 보십시오. 분명히 별로 충분하지 못할 겁니다.

결국 우리는 사랑을 받고 싶으면서도 사랑 받을 만한 존재로 살아가지 못하는, 그러면서도 다른 사람의 모순과 부족을 이해하고 덮어줄 수 없는 양면의 약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치명적인 약점으로 인하여 우리는 행복에 이르는 가장 훌륭한 길을 알면서도 그것을 실천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그 길은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알아야만 합니다. 그것은 우리 중의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을 완전하게 사랑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도, 부부가 서로 사랑하는 것도, 아무리 오래 된 친구도 완전한 사랑을 서로에게 행할 수는 없습니다.

조건을 따지지 않는 완전한 사랑은 오직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것은 나에게 선물을 주고, 따스한 격려의 말을 하며, 나를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사랑이 아니라, 내게 잔소리를 하고, 실수투성이에, 固執不通(고집불통)인 사람에 대한 사랑입니다. 그것은 나를 기다리게 하고, 침묵으로 일관하며, 재미 없는 사람에 대한 사랑입니다.

왜냐하면 나만큼이나 그도 사랑 받기를 간절히 원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나에게는 사랑 받는 것만큼이나 그런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사랑은 내가 그런 사람들 속에서도 미움과 원망으로 자기를 망치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하나님을 믿는 자들에게 이런 사랑을 부어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사랑하기 힘든 순간에 하나님께 도움을 청하십시오. 사람을 사람으로 보고 사랑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마음을 품을 수 있도록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은 영원하고 완전한 사랑이십니다.

샬롬~



永遠で完全な愛

2010-10-31牧羊コラム

 

すべての人は愛されたいと思っています。だから互いに愛すると、一緒に幸せになります。愛は受ける人の為のものだけではなく、愛を捧げる人の為にも最も良い選択です。だが私たちはそれを知っていても互いに愛することに問題を抱えています。

話を聞かない青少年期の子供がいるとしましょう。その子供は親が何かを言う度にわざと逆に行動します。親は子供を叱り、子供はそんな親を見てもっと話を聞きません。

心の中を見てみると実は両方とも愛を求めています。子供はイタズラをしても理解してくれる親を望み、親はいつも話を聞き従う温厚な子供を願っています。

私たちが社会から隔離しなければならないと思ってしまう 凶悪な犯罪者さえ、愛されたいと願ったりします。彼らは少しも他人を配慮せず、また他の人を傷つけているにも関わらず、自分は大事にされ、愛されたいと願っているのです。

これは明らかに矛盾しています。だが、このような矛盾は心が壊れている人だけに 現れる ものではなく、私たちみんなに現れる一般的な矛盾です。今、考えてみてください。あなたは自分を愛してくれない誰かに不満を抱いているのなら、果たしてあなたは愛される行動をどのくらい行ったのかを振り返って みてください。おそらく不十分でしょう。

結局、私たちは愛されたいと思っていながら愛されるのにふさわしい存在として生きていけない、なのに他人の矛盾と不十分なところ を理解してあげられない二つの 弱点も持っています。私たちは幸福にたどり着く最も素晴らしこを知っていてもこの致命的な弱点のせいで実現できていないのです。もちろんその道にたどり着くことは互いに愛することです。 

私たちはどの人も 完全に愛することができないということを知らなければなりません。親が子供を愛し、夫婦が互いに愛する。また、幼なじみである友人の間でも、完全に愛し合うことはできないのです。条件を問わない完全な愛を行う者は唯一神様だけです。

それは自分にプレゼントをしてくれたり、温かい激励の言葉を言ってくれたり、自分 を愛してくれる者に向けての愛ではなく、自分に小言を言い、失敗ばかりで、頑固 な人に対する愛です。それは自分を待たせたり、寡黙でつまらない人に対する愛です。

なぜなら自分と同じくその人も愛されることを切実に願う人だからです。また自分が愛されるほどそういう人を愛することは重要です。そういう愛は そんな人たちの中でも憎しみと恨みで自分をダメにしない唯一の選択だからです。



Posted by makari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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