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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lentina Lisitsa - 발렌티나 리시차


유튜브에 자신의 연주 동영상을 올려 클래식 음악계에서 세계적 스타가 된 우크라이나 출신의 피아니스트 발렌티나 리시차. 화려한 기교와 힘, 집중력으로 폭풍처럼 몰아치는 연주를 보여주는 리시차는 피아노의 검투사라 불리기도 한다. 고난도의 곡을 엄청난 힘과 무서운 속도로 몰아치며 연주하여 듣는 이를 압도하고 현란한 손동작에 눈을 뗄 수가 없게 만든다.

그녀의 신작앨범 : 
일본의 아마존에 검색하니, 2014-04-08 발매예정으로 나온다.
http://goo.gl/iZ6gmj

아이튠에서도 디지털음반으로 만나볼 수 있다.
http://goo.gl/JAxGv2





들어보니, 클래식 음반이라고 보기는 어렵고 뉴에이지 정도 되는거 같다.
대중성을 생각한 것일까... 전체 런닝 타임은 1시간17분54초. 모두 25곡이다.







Posted by makari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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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미국 청년의 사려깊음이 우리에게 역사를 보존해 주었다는 사연 앞에서 다시 생각합니다.
감사와 더불어, 군인임에도 불구하고 상명하복의 강압적 분위기 아니라 고뇌하는 인간이 설 틈이 있었다는 사실에 감동을 받습니다.
그리고 덕수궁은 참 아름다운 곳입니다. 다음에 한국에 갈 때에는 덕수궁에 들려보고 싶습니다. 

--- by mAkaRIos


Posted by makari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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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들이 대학에 떨어져서 드리는 감사


맏아들 준혁이가 대학입시에 떨어졌다. 예비합격자 발표가 3차까지 끝나려면 아직 3월27일까지 남았지만, 지금으로서는 거의 기대하지 않고 있다. 인생에서 처음 '실패'라는 것을 경험하는 아들을 지켜보며, 안타까운 마음도 있었지만 감사하는 마음이 더 컸다. 무엇보다 우리 가정에 감사하는 마음이 있어 감사하다.


1. 준혁이를 임신했을 때, 반전치태반으로 진단 받았다. 임신기간 고생도 했고 결국에는 수술로 출산해야 했다. 그러나 건강하고 너무 예쁘게 태어나 감사했다.


2. 준혁이는 어린 시절에 중이염을 심하게 앓았다. 의사는 청력이 70%도 안된다는 심각한 경고를 해주었다. 아내는 둘째를 업고서도 준혁이를 위해 열심으로 병원을 다녔다. 그 헌신과 사랑 속에서 아이는 온전히 회복되었고 이후로 건강했다. 그 건강이 늘 감사했다.


3. 준혁이가 4학년에서 5학년으로 넘어가는 시기에 일본으로 왔다. 무거운 짐을 배낭으로 지우고 찬비를 맞으며 교회에 도착해서 사무실 바닥에 침낭을 깔고 잠을 재웠다. 한 두 달은 그렇게 살았다. 그리고 일본어가 전혀 안되는 아이를 일본 학교에 보냈다. 처음에는 이지메도 당했다고 한다. 그러나 아이는 묵묵히 이겨냈다. 아이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기에 감사했다.


4. 준혁이의 중학교 입시를 위해 초등학교를 방문해서 상담했을 때에, 담임교사는 말했다. 아이가 외국인이라는 것을 가끔 잊을 만큼 언어와 행동에 거리낌이 없다고 했다. 대단히 빨리 잘 적응했다고 칭찬도 했다. 우쭐해지는 마음 속에서, 아이를 보는 내 눈이 따뜻했다. 나의 주님도 웃고 계셨다.


5. 중학교에서 농구부를 했다. 아이는 덩치가 좋고 키가 커서 '센터' 포지션을 맡았다.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그 시절에 식구들은 준혁이의 땀냄새에 골머리를 앓아야 했다. 그 때 친구들을 지금도 만나고 가깝게 지낸다. 하나님이 이국 땅에서도 아이에게 좋은 친구들을 주셔서 감사했다.


6. 고등학교 입시는 치열했다. 사립학교는 경제적인 형편상 무리였고, 국립학교 중에서 갈 만한 학교는 그리 많지 않았다. 결국 아이는 '오이즈미고등학교'에 올인을 해야 했다. 보통 서너 학교에 지원을 해서 그 중에 선택하는 것이 보통인데, 오직 하나만 지원하겠다고 했더니 담임이 놀라더라. 더구나 그 시절 아내는 우울증이 와서 집안 분위기가 더 힘들었다. 아이는 불안감에 시달렸을 것이다. 그러나 묵묵히 이겨냈고 자랑스럽게 합격했다. 덕분에 둘째는 훨씬 수월하게 그 전례를 따랐다. 사교육 한 번 없이 입시를 잘 감당케 하신 은혜가 감사했다.


7. 대입을 위해서는 고2 정도부터 마음을 잡아야 했는데, 아이는 흔들렸다. 고3에 들어서서는 심지어 몰래 학교를 빼먹기도 했다. 어디 갔었냐고 물었더니 공원에 앉아 있다가 집에 돌아왔다고 한다. 무슨 방황이었을까? 나는 지난 10월에야 알고 둘이 상담을 했고, 아내에게는 최근에 입시가 끝나고서야 고백을 했다. 방황하지 않는 청춘이 어디 있으랴... 그도 잘 넘긴 것 같아 감사하다.


8. 그리 신령하지는 않지만, 나는 입시와 함께 실패를 예감했다. 아니, 입시를 준비하는 동안에 이미 예감했다. 그러나 실패도 인생의 엄연한 부분이고, 그것을 잘 이겨내는 것이 성공하는 것보다 더 중요할 수도 있다고 믿었다. 오랜 시간 '성공적인 실패'를 위해 기도했고, 아이와 얘기를 계속 나누었다. 그 소망들이 잘 심겨진 것 같다. 아이는 실패를 담담하게 받아들였고, 또한 그것을 발판으로 내일의 각오를 마음에 가졌다. 훌륭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성장이 아닐까. 이 점에 있어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9. 아내는 자신의 입시경험에 깊은 트라우마를 가지고 살았다. 그 트라우마를 아이에게 물려주게 될까봐 두려워했다. 그래서 더 간절하게 합격을 기대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아이는 떨어졌다. 하지만 주님이 다스리는 우리집은 달랐다. 실패 속에서도 매일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아무도 좌절하거나 상처 받지 않았다. 어쩌면 준혁이의 경험을 통해 아내가 내적인 치유를 받은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언제나 은혜는 고통보다 크고 놀랍다.


10. 준혁이의 실패로 둘째가 정신을 바짝 차리는 분위기다. 매일 '공부하기 싫다'를 입에 달고 시험공부를 하던 녀석이다. 그런데 요즘 시험기간이다. 아이는 매일 새벽 5시까지 스스로 공부를 하고 학교에 등교를 했다. 형의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은 것인지, 입시와 진로에 대하여도 관심이 뜨겁다. 역시 첫째는 개척자로 살고, 둘째는 눈치로 사는가보다. 아무튼 실패가 약이 되었으니 이것도 감사한 일이다.




Posted by makari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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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박두레 양의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2014년3월2일 오후1시)

멀리 있어 직접 가지는 못하지만,
마음은 더 깊이, 더 진심으로 축하하겠습니다.

일본에서 만나, 한국에서 결혼하고, 대만에서 살아가게 될
국제적이면서도 살짝 촌스러운 부부에게 
하나님께서 축복 듬뿍, 은혜 가득, 행복 억수로
주시기를 원합니다.

두레야, 내일 결혼식 때 제발 장난치지 말거라. ^^

-- by mAkaRios




Posted by makari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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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믿는다'는 말이 너무 막연합니다. 


사람들마다 각자 자기의 생각 속에서 하나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는 하나님보다 하나님의 창고를 더 좋아하고, 어떤 이는 하나님보다 하나님의 손에서 나오는 능력을 더 사모합니다. 어떤 이는 하나님을 뒷방 늙은이처럼 가만히 계신 분으로 믿는다 하고, 어떤 이는 주차부터 쇼핑까지 모든 일을 대신 처리해주는 '도우미'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이들 모두가 자기의 믿음을 확신합니다. 결코 자신을 믿음 없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그렇기 때문에 항상 하나님은 자기 편이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심지어 자신들의 바램이 이루어지지 않아 실망하는 순간에도, 믿음은 있었는데 때가 아직 아니라서 그런 것이라고 스스로 위로합니다.


하나님의 크신 은혜로 말미암아 저는 평생을 신앙 안에 살았고, 사역자로 25년을 지났으며, 목사가 된 지도 어언 10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러나 저는 지금, '믿는다'는 말이 무척이나 생소하고 두렵습니다. 왜냐하면 이 말이야말로, 내가 결정할 수 있는 단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판정해 주시는 단어라는 것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지요. 그 바라는 것이 과연 내 욕망과 같은 이름일까요?
믿음은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지요. 내가 욕망하는 것은 얼마든지 내가 마음에 그리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우리는 바라는 것이 생겼을 때에, 그것이 눈앞에 아른거리는 경험을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내가 전혀 추측도, 짐작도, 어림도 못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내 안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주어진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 생소하고 이질감이 느껴지는 소원의 실증적인 증거가 바로 믿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


믿음은 철저하게 하늘에 속한 것이며,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내가 주장하고, 확신하고, 공부하고, 의식하는 것과 상관 없습니다. 믿음은 내가 느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마지막 날에 스스로 믿음 있었다 하는 사람들이 주님과 쟁론할 것입니다. 내가 왜 믿음이 없냐고? 내 믿음이 왜 인정받지 못하냐고? 따지는 소리로 시끄러울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 소용도 없는 일입니다. 그분의 판단은 절대적이고 공의롭기 때문입니다. 

믿음 앞에서 겸손해야 합니다. 평생 헌신하고, 주의 일을 하고,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주었다 해도, 그것이 믿음 자체는 아닙니다. 지위와 거룩한 이름의 명찰은 더더욱 소용이 없습니다. 그런 것이 믿음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날마다 묵상하십시오. 믿음이 과연 무엇인가? 그것이 내게 있는가? 나는 무엇으로 나의 믿음을 확증하고 있는가? 나의 믿음을 과연 하나님께서도 인정해 주실까? 나는 믿는가? 정말 믿는가?

의심과 회의로서가 아니라, 겸손과 의뢰함으로 믿음을 고민해야 합니다. 그 고민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경험이 있기를 진심으로 축복합니다. 샬롬~

Posted by makari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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