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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27 목양칼럼  :: 이것이 진정한 응답입니다



하나님께 응답을 받았다고 너무 가볍게 말하는 사람들의 본심에는 ‘응답’을 믿지 못하는 깊은 실망감이 자리하고 있을 때가 많습니다. 어쩌면 말이라도 그렇게 해서, 하나님께 응답을 받아 보려는 은밀한 강요가 내포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내가 이렇게 하나님에 대하여 이미 떠들어 놓았는데, 하나님이 계시다면(!) 응답하지 않으실 수는 없을 것이라는, 꼬인 심리가 엿보이기도 합니다.

믿고자 하는 것과 믿어지는 것은 다릅니다.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믿고자 하는 것(의지)을 믿어지는 것(은혜)과 혼동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혼동은, 처음에는 매우 의욕이 넘쳐 보여도 결국에는 깊은 실망감으로 끝날 때가 많습니다.

솔직히 하나님께 여쭈고 싶습니다. 왜 이런 사람들의 손을 잡아 주시지 않느냐고요. 대담하게 ‘응답’을 떠들고 다닐 때에, 조금 유치하기는 하지만, 하나님께서 즉시 응답의 손으로 나타나 주시면 그들이 변할 수 있지 않을까요? 적어도 믿음을 가지게 되지 않을까요?

그러나 저의 경험과 묵상으로 말씀을 드린다면, 하나님께서는 결코 그런 식으로 일하시지 않습니다. 목사로서 늘 주의를 환기시켜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우리가 생각하는 응답은 어떤 문제의 ‘해결’이라면, 하나님께서 생각하시는 응답은 ‘변화’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감히 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응답에 대하여 깐깐하게(?) 구시는 이유도 아마 이 때문일 것입니다. 잦은 기분 변화에 술렁거리고, 말이 많은 사람은 일단 자기를 변화시키려고 하지 않습니다. 은혜로운 말만 많이 하는 것이 아니라, 변명도 잘하지요. 그리고 그런 방식의 신앙생활은 한 번의 응답(해결)으로 기분이 좋아진다 하더라도, 궁극적인 응답(변화)으로 나아갈 희망이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기도를 하나님과의 교제라고 말씀들 하시지요. 틀렸습니다. 대부분의 기도는, 야곱의 씨름입니다. 내 욕구(해결)와 하나님의 응답(은혜) 사이의 줄다리기이지요. 그 과정을 지나, 우리의 환도뼈가 부러진 이후에야 우리는 다리를 절며 응답의 저편으로 갈 수 있습니다.

그러니, 기도를 옆집 아저씨에게 만원쯤 꾸어 오는 것처럼 간단히 생각하지 마십시오. 이건 나를 죽이고, 다시 새롭게 살리는 심각한 과정입니다. 그 자리에 앉도록 온갖 미끼를 던지기도 하지만, 기도를 가볍게 여기면 반드시 깊은 영적인 대가를 치르게 됩니다.

오래 기도하라는 말은, 깊이 생각하라는 말입니다. 같은 말로 시간만 보내는 것은, 중언부언 하는 기도이고, 예수님께서 이미 금지하신 기도의 방법입니다. 중요한 것은 기도의 자리에서 철저하게 나의 현실, 나의 실체와 마주하고 절망하는 것입니다. 나의 환도뼈가 부러져야 합니다. 그게 뭔지는 저보다 여러분이 잘 아실 겁니다. 아니, 아셔야만 합니다.

그 이후에 하나님께서 나를 부축해 주십니다. 진정한 응답이 영혼에 임하는 순간이지요. 말할 수 없는 평강과 위로가 있습니다. 찬송가 가사로 표현을 한다면, 세상과 나는 간 곳 없고 구속한 주만 보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응답입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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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20 목양칼럼 :: 우리의 왕이 되신 그리스도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 요즘 다시 주목을 받는다고 합니다.

새로운 책들이 무수히 저작되고 있는 현실에서, 사람들이 꾸준히 고전으로 눈을 돌리는 것은, 역시나 전도서의 말씀과 같이 '해 아래 새것은 없다'는 사실을 깨우쳐 주는 것 같습니다.

강력한 군주의 등장을 열망하는 내용으로 저작된 <군주론>은 아직 중세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해 여러 공국으로 분열되어 있었던 마키아벨리의 조국, 이태리를 위해 저작된 책입니다. 

당시 독일과 프랑스 등은 이미 강력한 국왕의 등장으로 나라가 통일되어 강력한 국가를 일으키고 있었지만, 이태리는 중세적인 구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외세의 침략을 자주 받았고, 그런 사회 속에서 외교관으로 살았던 마키아벨리는 강력한 조국에 대한 열망을 마음에 품게 되었던 것입니다.

<군주론>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권력을 쟁취하고 사용하는 비정한 리더를 그리고 있는 것 같지만, 실상 그 안에는 피폐한 이태리 민중을 구해줄 영웅을 갈망하는 기다림이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과연 그의 생각이 옳은 것이었는가에 대하여는 아직까지도 회의를 남깁니다. 영웅의 탄생이 비탄에 빠진 대중을 구원하기는커녕 오히려 외세의 침략보다 더 깊은 수렁으로 이끌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수 차례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사사기에 나오는 바와 같이, 사람은 '왕'의 자리를 감당할 수 없습니다. 

절대적인 권력의 왕은 절대적인 부패를 낳기 마련이고, 부패한 권력은 그 권력의 크기 만큼 사람들에게 커다란 해를 끼치게 됩니다.

그래서 완전한 것은 아니지만, 현실적으로 서로의 권력을 견제하는 역할을 분담하여 아무도 왕이 되지 못하게 만든 민주주의 정치제도가 인류로서는 최선의 선택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그러나 이 또한 지나갈 것입니다. 이 세상의 진정한 왕이신 그리스도가 나타나시는 날에, 세상의 모든 정치는 마땅히 무대 뒤로 사라져야 할 한시적인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날이 오기 전에, 이미 우리의 마음은 그분을 왕으로 모시고 살아야 합니다. 

잊지 맙시다.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는 이미 왕이 있습니다. 그분을 향한 충성이 먼저이고, 그 나머지는 다음이라는 것을 항상 명심하며 살아가는 삶의 질서를 항상 마음에 새기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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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주가 다르게 아이가 커 갑니다.
놀랍고 감사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더욱 지혜와 총명을 더하시고 건강으로 지켜 주시기를 기원합니다.

유진아,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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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마르크 카페에서



어스름한 저녁에 

동네를 어슬렁거리다가 들어간 카페에서

새처럼 재잘거리는 아이와

우아한 표정으로 차를 마시는 여인과

피곤에 찌든 남자와

깊은 주름 속에 빛나는 노인과

손톱을 칠하는 소녀와

어설픈 외국어를 구사하는 나를 보았다


산 마르크,

예수의 제자였던 그는 오늘

무슨 빵을 먹었을까?

행복한 하늘 저편에서

창가에 앉은 내 찻잔 위로 흐르는

어색한 낙엽의 춤

그래, 삶은 언제나 아름답다

이해할 수 없는 순간에도


어둠이 시야를 방해할 즈음에야

분위기 좋은 등이 켜진다

카페를 나서려고 할 때에야

듣고 싶었던 음악이 나오기 시작한다

만나고 싶은 사람은

약속을 해도 만나지지 않고

피하고 싶었던 사람은

간발의 차이로 내 앞을 가로 막는다

그래, 싫어하지 말자

그러면 두리번 거리며 문을 나설

일도 없지 않으랴


오늘도 우리 동네는

맛 있는 빵과 구수한 커피로

가을처럼 붉게 익어간다

참 좋은 저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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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풀에게 물어라



생명이란 얼마나 모질도록 간절한가

대리석 보도블럭의 틈새로 자라난 풀이 말을 건다

이렇게 해볼 수 있겠냐고? 

천 근 돌에 눌리고 하늘은 보이지도 않아도

틈새로 스미는 햇살, 바람, 빗물을 아껴 먹고 

마침내 뿌리를 뻗어 자라난 이 고상한 풀이

나처럼 해보라고 말을 걸고 다리를 잡는다


들의 풀만도 못하다, 사람이

산다는 것의 찬란함을 겸손하게 배우고 보면

존재의 매일이 기적이고 은총인데

그걸 모르고 돌로 떡을 만들어 달라고 아우성만 친다

아서라, 돌은 떡이 되어도 달라질 것이 없단다

맘이 변해야 비로소 변하지

풀에게 말을 걸어라, 너는 어째서 거기 태어났냐고

너는 어떻게 그토록 간절하게 살았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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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13 목양칼럼 :: 교회는 결코 넘어지지 않는다


중세시대 유럽은 이미 종교적 기득권을 독차지하는 로얄 계층이 등장 했습니다. 말하자면 ‘교회귀족’인 이들은, 교회의 권력과 엄청난 재산을 상속해 갔습니다.

이러한 부조리를 타파하기 위하여 교회는 사제들의 독신제도를 강화하게 됩니다. 사제들이 본래의 계율을 지켜 독신으로 일생을 마치면 일어날 수 없는 타락에 당황했던 것이지요. 

그러나 역사가 보여주는 현실은 참담합니다. 아무리 탁월하고 합리적인 제도도 인간의 탐욕을 가두지는 못한다는 것이지요. 결국 교회의 권징은 하급사제들에 국한되고, 역시나 대부분의 ‘교회귀족’들은 음흉한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자기들의 왕국을 계속해 갔습니다. 

16세기 프랑스에서는, 국왕 프랑수와 1세와 교황 클레멘트 7세의 담합으로 주교와 수도원장 같은 고위층 사제들의 임명권을 왕이 가지게 됩니다. 그 결과 국왕에게 줄서기를 하는 사제들이 교회의 고위직에 오르게 되고, 그들은 자신들이 뇌물을 바친 만큼 최선을 다해(?) 교회를 노략질 했습니다. 또한 그 노략질한 재물과 권력을 자신들의 숨겨진 피붙이들에게 대물림 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타락의 패턴은 비슷합니다. 처음에는 재산을 탐하고, 다음에는 그것을 자기 자손에게 넘겨서 영원히 소유하려 합니다. 이 과정에서 탐욕과 함께 방탕과 거짓, 음모, 술수가 미친 굿판을 벌이게 됩니다.

이러한 시대를 개탄하는 것은 신앙과 양식이 있는 사람들로서는 당연한 반응이 아닐까 합니다. 하지만 절망할 필요까지는 없어 보입니다. 왜냐하면 이런 타락이 해일처럼 밀려와 교회를 넘어뜨리려고 했던 적이 과거에도 수없이 많았지만, 그것을 통과하고 여전히 빛나는 십자가가 우리 앞에 세워져 있기 때문입니다.

확신하는 바는, 이 참담한 시대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승리할 것입니다. 교묘한 술수와 탐욕이 오히려 다윗 앞의 골리앗처럼 쓰러지고, 연약해 보였던 교회의 신앙이 시대를 넘어 예수 그리스도를 고대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성경의 약속을 믿어야 합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직접 하셨던 말씀입니다. 음부의 권세가 결코 교회를 이길 수 없다는. 비록 주어진 현실이 참담하다 하더라도 그것은 우리가 헤아릴 수 없는 하나님의 경륜 속에서 잠시 필요해서 허락하시는 것일 뿐, 영원한 패배가 아닙니다.

교회는 재산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신앙을 지켜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진흙탕에 함께 뒹굴며 망가지기 보다는, 여러분의 근간이 되는 신앙을 붙들고 승부하십시오. 그것이 승리의 비결입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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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과이 페스티벌 인 도쿄 (히까리가오까공원 光が丘公園)



이번 주일(10월13일) 히까리가오까공원에서 파라과이 페스티벌이 열린다고 합니다.

동경에 계신 분들은 한 번 구경 오셔도 좋을 것 같네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이번 주일에 예배 마치고 나가서 둘러봤으면 합니다.

아침에 동경드림교회에서 함께 예배 드리고 찾아보면 더 좋을 것도 같네요... ^^

혹시라도 의향이 있는 분들은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맛있는 점심과 간단한 가이드 제공합니다. 또한 동경에서 함께 살아가는 좋은 분들을 만나실 수 있습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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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있을까요?


오늘 주일을 보내며, 사모님은 계속 웃어서 얼굴 근육이 어색하다고 하더이다.

이유는 유진이 때문입니다. 

유진이가 낯을 덜 가리기 시작하면서 이 품에도 가고 저 품에도 가니, 아이를 안고 어르다가 어른들이 웃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딸, 하윤이를 한국에 보낸 장수호 집사님은 유진이의 옹알이가 옛날 생각을 하게 만드나 봅니다. 

평소 우리 교회 공식 사진사는 유진이 아빠입니다. 

그러나 스님이 제 머리 못 깎듯이 아무리 아빠가 사진을 잘 찍어도 아빠와 유진이가 함께 있는 사진은 드물 것 같아서 얼른 카메라를 들어 봤습니다.

맑게 생긴 유진이도 참 좋지만, 엄마와 아빠의 모습도 너무 좋습니다. 사람들에게서 햇살 냄새가 납니다.

앞으로도 더욱 행복하게 행복하게... 예쁜 모습 기대하겠습니다.

유진이네 파이팅~


## (사진을 클릭하면 원본크기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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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06 목양칼럼 :: 위험한 영적 비만


사람은 아주 적게 먹고도 살고, 아주 많이 먹고도 삽니다. 

음식을 지나치게 적게 먹을 경우에는 영양실조가 나타나고, 또한 지나치게 많이 먹을 경우에는 비만이 찾아오게 됩니다. 그 양편은 모두 건강에 해로우며, 극단적으로는 생명을 위협하기까지 할 수 있습니다.

건강을 위해 가장 좋은 생활은, 먹은 음식을 적당한 운동으로 잘 소비하는 생활을 해나가는 것입니다. 먹는 것과 운동 하는 것의 균형을 찾는 일이 곧 건강의 비결이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몸에는 ‘본능적 건강성’이 있다고 합니다. 이 말은, 몸이 살 길을 스스로 찾는다는 것입니다. 몸에 이상이 생겼을 때에, 의학을 잘 알지 못하더라도, 몸이 가르쳐 주는 신호대로  잘 좇아가면 병을 고치고 회복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식욕은 이 본능적 건강성이 잘 작동하지 못하는 부분입니다. 그것은 먹는 것이 단지 몸을 유지하는 수단이 아니라, 바로 욕심을 채우는 수단으로 변질하기 때문에 생겨나는 일입니다. 다시 말해서 식욕이 음식에 대한 욕망을 지나 음식에 대한 탐욕이 될 때에 몸은 먹는 기능을 통해 망가지는 것입니다.


신앙에 있어서도 마찬가지 원리가 적용될 수 있습니다. 

신앙을 건강하게 하는 비결은, 우리가 아는 것과 행하는 것에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듣고 행하지 않으면 신앙은 모래 위에 짓는 집과 같이 위태하고 참담한 결과를 낳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반드시 그 양편(input & output)을 잘 살피고 균형을 찾아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반드시 탈이 나고 부작용을 만들게 됩니다.

오늘날 신자들은, 듣기는 많이 하지만 정작 행하는 것에서 부실하여 영적인 비만이 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설교를 평가하기는 하지만, 정작 자신이 얼마나 부실하게 신앙의 삶을 살고 있는지는 잘 반성하지 않습니다. 더 좋은 설교에 대한 욕망은 넘치는 반면에, 정작 그 설교에  부합하는 삶을 사는 것에 대한 고민은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이것은 결코 사는 길이 아닙니다. 건강할 수 없는 양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귀를 즐겁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주어졌다는 사실을 명심하십시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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