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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눅 9:26)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자기와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으로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예수님은 왜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 그것도 설교 중에...

일단 두 가지 사실을 생각하게 된다.

첫째,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 실제로 그런 생각이나 행동을 하는 자들이 존재했다. 예수님은 언제나 사람의 생각을, 특별히 제자들의 생각을 통찰하셨으니까. 이 말씀은 결국 누군가 들을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하신 말씀이다.

둘째, 누가가 이 예수님의 말씀을 복음서에 기록하여 교회에 읽게 했다는 것은, 초대교회 안에서도 역시 그런 '부끄러움'을 가지는 신자들이 존재했다는 것을 암시한다. 복음서는 교회를 위한, 특별히 예수 그리스도를 직접적으로 목격하지 못한 신자들을 위한 기록이었다. 그렇다면 그 기록에는 분명히 기록의 의도가 숨어 있다고 보아 마땅하다.



02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 그리고 초대 교회의 신자들 사이에 예수님에 대하여, 혹은 예수님의 말씀에 대하여 부끄러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었다면, 그들은 왜 그랬을까?

여기서도 몇 가지 추리가 가능하다. 

일단, 예수님은 갈릴리 나사렛 사람으로 불려졌고, 요한복음에 등장하는 나다나엘과의 만남을 떠올리더라도 그러한 예수님의 출신은 대중에게 호감을 주지 못했다. 결국 학벌도, 가문도 없는 예수님의 모습은 당시의 혼란한 시대 속에서 '자랑스러운 스승'이 되기에는 한없이 허술해 보였다. 

이사야 선지자는 예수님에 대하여 예고하면서 이렇게 노래했다.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사 53:2)

그의 예언이 사실이었음을 우리는 안다. 오늘날에야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인구가 예수를 '주님(Load)'이라고 부르고, 또한 그분을 위하여 거대한 성전들이 지어져 있지만, 그 시절에는 결코 그렇지 않았다. 

예수는 무명(無名)에 불과했다. 교회가 아직 사회적으로 마이너(minor)에 불과했을 때에, 신자들이 공개적으로 예수를 시인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그리고 중요한 신앙적 행위에 분명했다. 그러니 그것을 뒤집어 본다면, 당시에는 예수를 부끄러워 하기가 매우 쉬웠다는 뜻이 된다.



03

또한, 누가복음을 통하여 한 가지 더 특별한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나와 내 말'이라고 언급하신 예수님의 목소리 속에 드러나 있다. 다시 말해서, 예수를 향한 믿음은 곧 예수의 말씀에 대한 실천을 내포했다는 사실이다.

오늘날에는 신학이 발달하고, 다양한 체계가 개발되었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들과 초대교회에 그런 복잡하고 세련된 지식의 구조와 조직이 있었다고 볼 수 없다. 오히려 예배의 모임과 믿음의 내용에 있어 매우 단순했을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처음의 교회는 무엇에 주목하고 집중했을까? 당연히 예수님의 가르침이다. 복음서 중에서도 바로 예수님의 목소리가 담겨진 부분들이 더욱 집중적인 조명을 받았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가 읽어도, 예수님의 가르침은 그리 수월하지 않다. 우리가 예수님의 가르침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여러 가지 다양한 해석을 시도하는 것은, 어쩌면 그 말씀을 그대로 실천하는 것이 아직도 우리에게 난감한 일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를테면 모든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를 나누어 주고 나를 따르라거나, 원수를 위하여 사랑하고 기도하라거나, 예수님보다 자기 집안 식구들을 더 사랑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는 말씀은, 지금도 우리를 충분히 당혹스럽게 만든다.

그 당혹감의 반응이, 일정 부분 '부끄러움'이라고 표현된 것이 아닐까?



04

부끄러움(수치심)은 결국 이성의 반응이다.

때문에 이성적으로 그것은 합리화 될 수 있으며, 또한 이해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이성의 수준에 머물러 있는 동안, 믿음은 '저편의 무엇'에 지나지 않을 수밖에 없다. 믿음은 반(反) 이성적인 것은 아니지만, 이성을 초월하는 무엇이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초대 교회의 신자들도 결단이 필요했다. 그것은 그들의 눈으로 보는 현실, 그들의 상식, 그들이 받았던 교육의 내용과 대비되는 예수 앞에서도 예수와 예수의 말씀을 선택할 수 있느냐는 문제였다. 

제법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며, 또한 자기의 틀을 깨뜨리는 파격을 필요로 하는 일이기도 했을 것이다. 때문에 사실 누가복음의 본문 속에서 나타나는 '부끄러움'이 이상한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것이고, 오히려 예수와 예수의 말씀을 부끄러워 하지 않는 태도야말로 그 시대에 매우 부자연스러운, 혹은 특별한 것이었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05

이제 기독교는 지구상에 메이저(major)가 되었다. 왠만하면 어디서도 예수의 이름이 수치심을 자극하는 초라한 행색을 가지지는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흔히 십자가 목걸이를 걸고 다니고, 심지어 기독교적 문양을 문신으로 피부에 새기기도 한다. 집집마다 문패와 함께 예수의 이름을 내걸고 아이에게도 예수와 관련된 이름을 지어준다.

하지만 이게 과연 누가복음에서 예수께서 말씀하셨던 부끄러움을 극복한 현실일까? 

전혀 아니다. 여전히 예수의 말씀은 받아들이기 힘든 무엇, 사람들이 일부러 귀를 막고 외면하는 무엇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아직도 상식의 수준에서 보는 예수의 언행과 가르침은 촌스럽기만 하다. 그것은 전혀 매력적이 아니다. 화끈한 복수를 해도 시원찮은 판에 원수를 사랑하고 위해서 기도해 주라니! 

 


06 

그러나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이 촌스러운 가르침에 귀를 기울일 것이다. 자기 경험과 상식, 세상이 돌아가는 법칙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은 예수의 말씀에 기꺼이 자기 인생을 걸어볼 것이다. 어차피 그런 결단이 아니라면, 그는 그리스도인이 아닌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간단한 이름이 결코 아니다.

그것은 예수의 발 앞에서 설교를 들었던 청중들도 그러했고, 베드로와 사도 바울의 설교를 들었던 초대 교회의 신자들에게도 그러했으며, 지금 우리에게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 사실은 우리를 무척 당혹스럽거나 슬프게 한다. 그러나 그것이 분명한 사실이다.



07

세상은 언젠가 뒤집어진다. 촌스럽다고 조롱했던 바로 그 예고된 장면, 예수가 천사들과 함께 영광으로 나타나는 날이 올 것이다. 그리고 그 이후로는, 예수와 예수의 가르침을 비웃었던 그 모든 사람들, 논리들, 주장들이 모두 추락할 것이다. 그 날에는 예수와 예수의 말씀 앞에서 결단하지 못했던 사람들이 부끄러움을 당할 것이다.

실로 통쾌한 복수가 아닐 수 없다! 뿐만 아니라, 허세를 부리며 꾸미고 포장했던 모든 것의 실체가 드러날 것이다. 그 날의 부끄러움은 우리가 스스로 느끼는 것이 아니라, 예수가 퍼붓는 것이다. 

예수는 그럴 자격이 충분히 있다. 십자가의 조롱을 참고 인내했으며, 뿐만 아니라 자기를 부끄러워 하는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도 조용히 침묵했다. 그러나 예수의 침묵이 납득이나 수용은 아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예고하셨고, 누가를 통해 그 사실을 분명하게 기록하게 하신 것이다. 예수와 예수의 말씀을 부끄러워 했던 자들, 그것을 개나 줘버렸던 자들에게 의로운 복수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이것 역시 우리가 받아들이고 싶지 않을지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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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SET 2013, 새로운 출발을 위한 신앙초기화


할렐루야!

이번 주에는 에베소서 큐티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말씀 드린 바와 같이, 말씀을 항상 곁에 두고서 읽고 또 읽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며 자신을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세우는 훈련을 함께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큐티에 대한 강의를 올립니다.

컴퓨터를 윈도우8로 업그레이드 했더니, 여러 가지로 프로그램 환경이 바뀌어서 녹화에 고생을 좀 했습니다.

강의를 본래 30분 단위로 자르려고 했는데, 그만 이번에도 오버해서 45분이 되고 말았네요.

그러나 녹화 실패와 새로운 세팅을 반복했기 때문에, 이 강의 동영상을 만드는 것에 3~4시간이 넘게 걸렸습니다. 

목사가 고생한 것을 봐서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큐티, 반드시 필요한 경건훈련입니다. 

포기하거나, 소홀하게 여기시지 마시고 꼭 이번 기회를 통해 다시 새출발 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갈망하는 마음을 하나님께서 받으시고, 충만한 은혜로 복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샬롬~


2013.01.22.

동경드림교회 김종선 목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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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set2013.QT.pdf :: Click, Downlo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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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set 2013,

"신앙의 초보를 점검하라!"


동경드림교회는 1월~2월 동안, 우리 신앙의 기본을 다시 점검하고 초심으로 돌아가 새롭게 시작하자는 신앙 캠페인을 진행합니다.

이 기간 동안, 모든 직분과 사역을 잠시 내려놓게 되고 매주 과제를 부여받게 됩니다.

이 과제들을 수행하면서, 그 안에서 자기의 신앙을 점검하는 것입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지난 주에는 '마태복음 통독'이 과제였습니다. 되도록이면 단번에 전체를 통으로 읽는 것이 좋고, 여러번 읽는 것이 좋습니다. 최소한으로는 주중에 한 번은 마태복음을 완독하셔야 합니다.

만약, 읽다가 멈춘 분이 있다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셔야 합니다. 계속 이어서 완독하는 것이 아니라, 이번 주일 안에서 한 번 이상을 완독하는 것이 첫 번째 과제입니다.


이제, 이번 주 과제를 발표합니다.

이번 주 과제는 에베소서 큐티입니다. 오늘 예배에서 큐티 교재를 나누어 드렸습니다만, 받지 못하시거나 챙겨가지 못한 분들은 상단에서 PDF 파일을 다운하셔서 인쇄하시면 되겠습니다.

내용은 에베소서 1장부터 시작되고 있습니다. 본래 에베소서 1~3장이 구원에 대한 설명으로, 그리고 4~6장이 생활에 대한 교훈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3장까지 하려고 했습니다만, 우선 오늘(주일)부터 시작해서 토요일까지의 일주일 기간을 끊어서 조금 더 묵상하게 교재를 준비했습니다.

계속 하기를 원하시는 분들이 있다면, 나머지 내용도 준비해서 에베소서 큐티를 완주할 수 있도록 준비하겠습니다. 대략 2주 정도의 시간이면 에베소서 전체를 큐티할 수 있습니다.


큐티의 본질은 '묵상'입니다.

그리고 성경적 묵상은 크게 두 부분으로 되어 있는데, 하나는 소리 내어 읽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것을 깊이 생각하는 것입니다. 글을 쓰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읽히려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묵상한 것을 메모하여 기억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일기장을 쓰듯이 개인적으로 쓰시면 됩니다. 굳이 수려한 문장이나 유식한 어구를 사용할 필요가 없으며, 관련하여 기억나는 요절을 정확하게 쓸 필요도 없습니다. 

내 생각이 중심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중심이 되도록 읽고, 생각하고, 쓰는 것이 큐티하는 가장 올바른 방법이라고 하겠습니다.


좋은 그리스도인은 목양을 잘 받습니다. 자기 생각을 고집하거나, 자기 견해를 피력하고 비판하는 것은 바람직한 신자의 태도가 아닙니다. 목회적 설명을 잘 듣고, 순종하는 것이야말로 하나님께 은혜를 받는 좋은 태도입니다. 이번 기회를 통하여 여러분에게 신앙적으로 큰 유익이 있기를 소망합니다.

샬롬~


2013.01.20.

동경드림교회 김종선 목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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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20 목양칼럼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왜 사랑하는 자녀들을 울게 하는 일을 허락하실까요?

성경은 그리스도인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있으며, 그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는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않으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고후4:8)

은혜가 고통보다 크니까요. 그래서 고통을 이겨내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도 듭니다. 아예 처음부터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는 일을, 답답한 일을 허락하지 않으시면 좋지 않을까? 꼭 그런 일을 허락하셔야 할까? 나를 누구보다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신데? 날 사랑하시면서도 내게 고통을 허락하실까?

여기 가치의 충돌이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들은 행복을 최상의 가치로 추구합니다. 때문에 행복을 파괴하거나 침해하는 모든 것을 악한 것으로 간주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행복하고 싶고, 심지어 행복하기 위해서 하나님도 이용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믿음을 최상의 가치라 말씀하십니다. 참된 믿음을 얻는 것은 십자가의 고난을 감수하면서라도 추구할만한 일입니다. 제자도의 부르심을 생각해 보세요.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어떤 행복도 약속하시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들에게 한 가지 비전을 주셨는데, 그것은 하나님을 알게 하고 제대로 믿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믿음의 가치를 제대로 발견하지 못하면 하나님의 정서가 이해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큰 능력과 무한한 지혜를 가지셨으면서도 단번에 악을 징벌하지 않고 왜 그토록 드라마틱한 역사를 운영하시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것은 다른 목적이 아닙니다. 그 과정을 통해 사람을 연단하고 믿음을 얻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흔히 학문에는 왕도(Royal Load)가 없다고 합니다.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학문의 과정은 모두 힘들어서 겸손하게 합니다. 고생하지 않고 얻는 방법이 없으니까요.

마찬가지로 믿음이야말로 모든 인간을 하나님 앞에 평등하게 합니다. 고난의 십자가 없이 믿음의 영광을 얻은 사람이 있습니까? 고통의 눈물을 경험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참된 믿음에 이른 순례자가 과연 있습니까?

결국 하나님께서 우리를 잠시 울게 하시는 것은, 나중에 부자가 되거나 이 세상에서 명예로 보상하시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런 것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지극히 작고 보잘것없는 것에 불과합니다. 헛된 세상의 그림자이지요.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영원한 상급을 얻게 하시고자 합니다. 그것이 바로 눈물 속에서 정련된, 순금 같은 믿음입니다. 그 믿음을 얻으면, 고통이 아니라 고통 속에서도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으니까요.

우리 낙심의 진짜 원인은 믿음이 고통보다 작기 때문입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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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둘째 찬혁이의 원서를 썼다.

벌써 이렇게 의젓하게 자랐다. 일본에 처음 데려온 것이 2006년4월18일이다.

초등학교 2학년을 마치고 3학년이 막 시작될 무렵이었다.

마냥 어리기만 했는데... 그 시절의 사진을 찾아봤다.




갑자기 목이 메인다. 세월이 그저 흐른 것은 아니었구나.

학원 한 번 보낸 적이 없이 지냈다. 공부 하라고 채근을 하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스스로 알아서 공부해서 곧잘 성적을 받아 오더니, 형이 다니는 제법 좋은 학교에 원서를 쓰게 되었다. 

늠름하게 자라준 아들이 고맙고, 그렇게 자라도록 필요한 모든 것을 채워주시고 붙들어 주신 나의 하나님이 감사하기만 하다. 

"아들, 잘 자라 주어서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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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구입하지 못했다.

한국에 들어가 서점에 가면 언제나 무게와의 싸움을 내적으로 치열하게 해야 한다. 언제나 짐이 많기 때문이다. 

때문에 구입할 책을 고르는 것은 장고(長考)를 필요로 하는 일이 된다.

마침 시간이 좀 있었기 때문에, 서점에 잠시 앉아 속독을 했다. 덕분에 이 책은 고이 서점에 놔두고 올 수 있었다.


오르한 파묵은 노벨문학상 수상자이다. 노벨 문학상에서 젊은 수상자가 나오는 것이 드문데, 그가 바로 그 예외의 젊은 수상자이다. 하지만 젊다고 하는 것이 새파란 것은 아니고, 그가 1952년생인데 2006년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했으니까 54세의 나이를 젊다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터키의 문인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것은 그가 처음으로 알고 있다. 

그에 대한 많은 찬사를 접했던 것과는 달리, 나는 그의 책을 읽지 못했다. 한국에 있었다면 당연히 읽었겠지만, 그간의 여러 가지 여건상 그러지 못했다. 

그러다가 이 책을 서점에서 발견하고 읽은 것이다.

책은 부제에 나오는 대로, 하버드대학에서 오르한 파묵이 했던 강의를 정리하고 출판한 것이다.

<소설과 소설가>에 대한 그의 설명이 간결해서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읽을 수 있었고, 한 주제에 대한 한 학기 강의를 들은 것과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 중에서 기억에 남는 것을 소개하면...

소설의 독자는 둘로 나누어진다. 소박한 독자와 성찰적인 독자.

소박한 독자는 소설의 인위적인 면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소설가가 인도하는 대로 잘 순응한다.

그러나 성찰적인 독자는 소설을 분석하며, 그 소설과 반응하는 자기 의식에도 관심을 가진다.

소설을 완전한 사실로 받아들이고 현실과 구분하지 않으려는 독자와 소설을 완전한 허구로 받아들이고 현실에 개입시키지 않으려는 독자는 모두 틀렸다.

소설이 창작의 산물인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작가의 경험을 전혀 배제하는 상상이란 불가능 하며, 또한 작가의 경험을 그대로 기술하는 것은 '소설'이라는 정체성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소설이란 결국 그 소설가의 경험과 상상의 적절한 배합이다. 그 조리법에 의하여 우리는 다양한 소설을 가지게 되고, 또한 그 소설의 중심부에 뭔가를 두게 되는 것이다.


책을 읽는 것에도 도움이 되고, 또한 책을 쓰는 것에도 도움이 되는 책이다.

여건이 된다면, 한 권 사 두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다 보니, 읽고 싶은 책이 엄청 많아졌다. 그리고 오르한 파묵의 소설을 근간에 읽어야 하겠다는 강한 의욕이 생겼다.



소설과 소설가

저자
오르한 파묵 지음
출판사
민음사 | 2012-09-14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세계적 작가 오르한 파묵과 함께 떠나는 소설 여행!노벨 문학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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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한 사람

목회/설교 / 2013. 1. 13. 21:40


2013-01-13 오전예배설교


제목 : 온전한 사람   (신앙생활의 목적 :: Reset 2013 설교)

본문 : 에베소서 4:11~14


4:11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4:12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4: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4:14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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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13 목양칼럼


“인생이 생각보다 길지 않습니다. 더 심플하게 살아야 하겠다고 깨달았습니다.”

이번 주에 반가운 연락을 받았습니다.

양 집사님이 한국에서 일본으로 출장을 들어와 같이 식사를 하자는 연락이었습니다.

부랴부랴 이케부꾸로에 나가서 잠시 백화점 위의 음식점에서 식사를 했습니다.

세월이 흘러도 잘 변하지 않는 사람이 더러 있는데, 제게는 양 집사님이 그런 사람입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안색이 다소 안돼 보였습니다. 양 집사님은 얼마 전에 어머님을 잃었습니다. 어머니는 이제 갓 환갑을 지난 분이고 얼마 전까지 일을 하시며 건강했던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담도의 암의 발견되었습니다. 수술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약물 치료와 방사능 치료를 받으며 시간을 벌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치료의 후유증이었는지, 갑자기 호흡 곤란의 증세를 보이시더니, 그야말로 급하게 세상을 떠나신 것입니다.

그 모든 과정이 미처 1년이 되지 않아서, 가족들은 모두 마음의 준비를 하지 못했습니다.

아무도 죽음을 생각하지 못하다가 너무 급히 보내드리고 만 것입니다.

치료의 과정에서 이런저런 후회가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 회한이 대화를 하는 중에도 치밀어 올라 눈시울이 붉어지고 목소리가 떨렸습니다. 아직도 어머니를 보낸 것이 실감이 나지 않는다는 말에 저도 마음이 떨렸습니다.

그 이야기의 결론처럼 앞의 말을 했습니다. 어머니를 보니, 평생 고생만 하시다가 이제 좀 일을 손에서 놓고 쉬시려고 하셨는데, 암이 발견되고 이렇게 빨리 세상을 떠나시니 모든 것이 다 덧없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남은 인생의 후반전을, 좀 더 심플하게 살아야 하겠다. 가족을 더 사랑하고, 신앙생활에 더 열심을 내야 하겠다는 말을 다짐처럼 제게 들려 주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이 가르치기를,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초상집에 가는 것이 더 낫다고 했는가 봅니다(전 7:2). 알고 있었지만, 그러면서도 무심하게 잊고 있었던 사실을 다시 배웠습니다. 인생이 짧다는 것. 그래서 허망한 일에 마음을 빼앗기고 살지 말아야 하겠다는 것. 가족을 사랑하고 신앙생활에 더 열심을 내야 하겠다는 것은, 양 집사님을 통해 제게 들려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이기도 했습니다.

아무리 친밀한 사람들을 주변에 두어도 결국 마지막에는 가족만이 남게 됩니다. 그리고 죽음 너머의 세계까지 가져갈 수 있는 것은 신앙 밖에 없습니다. 돈도, 명예도, 권세도… 언젠가는 다 내려놓고 떠나야 합니다. 

이 사실을 잊지 맙시다. 마음에 새기고 항상 기억 합시다. 가장 중요한 것을 소홀히 하다가 떠나야만 하는 시간에 주저하고 후회하는 사람이 되지 맙시다. 

우리도 더 심플하게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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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일드

저자
셰릴 스트레이드 지음
출판사
나무의철학 | 2012-10-20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누구나 한 번은 길을 잃고, 누구나 한 번은 길을 만든다!428...
가격비교


PCT ,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의 약자.

무려 도보로 산맥을 타고 4천 킬로미터의 길을 걷는 무모해 보이는 도전의 이야기이다.

그러나 이 글은 길이 아니라 자신에 대한 여행의 기록이다.

저자는 스물 예닐곱의 무렵에 있었던 여행을 무려 15년이 지난 이후에 회상하며 글을 썼다.

하지만 글은 여전히 생생하며, 마치 지금 그 노정에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 지독한 고독의 여행이 얼마나 깊이 각인되어졌는지, 그리고 그 여행의 결과가 얼마나 뚜렷하게 한 인간을 성장시켰는지 다시 되짚을 수 있다.



책을 보면서 내내, 걷고 싶다는 충동을 받았다.

나도 그렇게 걷고 또 걸으면 낯선 길에서 새로운 나를 만나게 되지 않을까? 그리고 그 새로운 내가 뭔가 대단한 희망을 세상에 던질 수 있지는 않을까? 


세릴 스트레이드의 '스트레이드'는 이혼 후에 스스로 정한 새로운 성(姓)이다. 미국에서는 부모의 성을 따르다가, 결혼과 함께 남편의 성을 가지게 되고, 다시 이혼을 하면 부모의 성으로 돌아가든가 자기가 스스로 자기의 성을 새로 선택할 수 있다고 한다.

그렇다. 세릴은 이혼을 겪었다. 그래서 그녀는 '스트레이드' 라는 성을 스스로 선택했다. 그 의미는 길을 잃고 헤맨다는 뜻이며, 그것이 그녀가 느꼈던 인생의 느낌이다. 그러나 그 스트레이드는 불행과 절망이 아니라, 바로 누구나 인생에서 그럴 수 있다는 위로로, 그리고 새로운 도전으로 승화되었다.


일단 재미있다. 시간이 빨리 가는 책이다. 제법 두껍지만 생각만큼 길지는 않다. 그리고 생각하게 한다. 

하나 더 부연한다면, 청소년에게 권할 책은 아니다. 사실적인 자기 경험의 고백이다보니, 마약과 성적인 경험에 대한 내용들도 들어 있다. 그녀가 이 책을 저작할 당시에는 두 아이의 엄마요, 한 남자의 아내가 되어 있었을텐데 이런 고백들이 쉽지는 않았을 것 같다. 미국식이라 가능한 것일까?

혹여, 재미있고, 자극(삶에 대하여)을 주며, 시간을 펌프질할 책이 필요하다면 한 번 권해 보겠다.


Posted by makari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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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과 5대 제국

저자
조병호 지음
출판사
통독원 | 2011-03-07 출간
카테고리
종교
책소개
세계역사와 성경역사를 통으로!『성경과 5대 제국: 앗수르, 바벨...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작년 12월에 한국에 들어갔을 때, 잠시 서점에 들렸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의 내용에 반해서 두 권을 주문했다. 좋은 책이 언제나 그렇듯이 이번에도 내 수중에는 남지 않았다.

한 권은 김포의 김태윤 목사에게 보냈는데 이미 봤다고 하고, 한 권은 나가노의 최화식 목사에게 보냈는데 거기는 예전에 사려고 했다가 못 산 책이라고 한다.

통(通)이라는 개념으로 접근한 조병호 박사의 저술은 성경을 역사가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에 발견할 수 있는 흥미로운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다. 

제국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성경에서 빼놓을 수 없는 국가, 이집트를 필두로 하여 성경과 함께 했던 5개의 제국, 곧 시리아(앗수르), 바벨론, 페르시아, 헬라, 로마의 다섯 제국을 성경과 묶어 설명하는 것이 이 책의 내용이다.

다만 아쉽다고 느끼는 것은, 그야말로 통으로 다루다보니 대단히 개략적이다. 그러나 전체를 조망하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기 때문에 목적에 충실했다고 할 수도 있겠다.

이 책은 무수한 관문의 입구이며, 복잡한 미로를 간략하게 정리해주는 한 장의 지도이다. 

나 같은 설교자가 성경의 내용을 더 풍부하게 설교하고자 할 때에 무엇에 대하여 더 조사를 하고 이해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며, 동시에 성경을 신화적인 구술에서 매우 역동적인 역사의 현장으로 끌어내어 이해하게 하는 놀라운 도움을 준다.

이 책을 읽으며 나름대로 정리하며 메모했던 포스트 잇이 지금 내 책상 앞에 붙어 있다. 



다음에 한국에 들어갈 때에 한 권 더 살 생각이다. 옆에 두고서 가끔 펴서 보면, 성경을 재미 있게 설명하는 것에 매우 요긴하게 쓰여질 책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간략함이 곧 허술함이 되지 않도록, 여백을 꼼꼼하게 채워야 하는 것은 역시 나 같은 목사의 몫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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