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3-09 내려놓음과 채우심
2008-03-09
한국에서 가족과 함께 일본으로 오던 날, 네 식구는 유학생 가방 2개와 배낭을 메고 있었습니다. 이불과 옷가지 몇 개, 그리고 아내가 그렇게 애착을 보였던 작은 휴지통 2개(지금도 책상에 놓고 사용합니다.^^), 신발 몇 켤레를 가지고 일본으로 왔습니다. 도착하는 날에 찬비가 조금씩 내렸는데, 무거운 가방에 몸도 마음도 물 먹은 솜처럼 되었던 아내는 끝내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그런 엄마를 아이들이 위로했고, 저는 묵묵히 앞장서 걷고 또 걸었습니다.
유학생으로 일본에 와서 고생했던 이야기들을 많이 합니다. 그들에 비하면 그래도 우리는 처음부터 혼자가 아니었고, 가진 것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함께였기 때문에 더 아프고 쓰린 기억도 사실은 많았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입장을 바꾸어 저의 나이에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저와 같은 처지에 놓인다고 가정을 해보신다면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시작했던 일본에서의 생활이 만 2년을 지나 3년을 채워가고 있습니다. 그동안 아내는 자전거를 배웠고, 아르바이트를 했으며, 아이들은 일본어를 습득하고 일본의 학생들과 동등하게 경쟁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일본으로 올 때도 24평 아파트에 가득하던 살림살이를 남겨두고 왔는데, 어느새 2년여의 세월 동안 다시 집 하나를 가득 채울 만큼의 ‘무언가’를 장만하고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이번에 이사를 하면서 그 하나하나를 보니, 모두가 누군가의 손길과 사랑을 통해 주어진 것들입니다. 빈집만 덩그러니 있던 목사를 위해 밤새워 인터넷을 뒤져 일본형 살림살이를 주문해 주었던 박소연 집사님, 어느 날 갑자기 자기도 없는 ‘코타쯔’를 사택으로 배달시킨 박성윤 권찰, 목사의 생일에 어울리지 않는 전기밥솥을 사서 서커스 하는 자세로 오토바이에 싣고 온 장수호, 이선경 부부...
물론 돈으로 산 물건도 많이 있지만, 돈으로 살 수 없는 소중한 추억과 사랑의 살림살이들이 지금의 사택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내려놓게 하신 이후에 하나님께서는 그 빈자리를 성도들의 사랑으로 채우시고 있다는 것입니다. 필요한 모든 것을 나의 스타일이 아닌, 그분의 스타일로 채우시고 있습니다. 그래서 전혀 다른 것으로 어울리지 않는 것 같으면서도 사실은 모든 것이 항상 적당합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는 그렇게 질문하고 문학적 설득을 통해 대답합니다. 빵이 아니라 사랑으로, 현실이 아니라 소망으로 사람이 사람답게 산다는 것을 말입니다. 저는 그의 말을 이제 알 것 같습니다. 제 평생에 지금이 가장 가난하지만, 또한 지금이 가장 부유합니다. 그것은 제게 현실만이 아니라, 그 너머를 바랄 수 있는 소망과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여러분의 덕분입니다. 여러분이 바로 제가 일본에 있는 이유이며, 저의 미래입니다. 그래서 그동안 함께해준 사랑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부족한 저를 목사로, 저의 가족을 자신의 가족으로 생각해준 여러분의 섬김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사람이 살다 떠나면, 남는 재산은 살림살이가 아니라 ‘기억’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래서 행복한 사람은 지금 죽어도 좋다고 말하는데, 그런 고백은 결코 소유에서는 나오지 않습니다.
인생의 진정한 가치, 저는 그것을 동경드림교회를 목회하면서 배우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그러기를 바랍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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