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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2-26


프랑스의 화가 밀레(Jean Francois Millet 1814~1875)는 노르망디의 가난한 집안에서 출생했다. 그는 지붕에 구멍이 많이 뚫린 집에서 살았는데 건강이 나빴고, 땔나무도 없었다. 그가 얼마나 어렵게 살았던지 고향에 계시는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받고도 갈 여비가 없어 자살을 시도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다시 용기를 내었으며, 이 모든 가난의 환경을 그의 작품으로 승화시켰다. 그의 대표작으로 일컬어지는 <씨 뿌리는 사람>, <추수하는 사람>, <이삭 줍기>, <만종> 등의 작품은 바로 이러한 그의 정신을 담고 있는 것이다. 가난하지만 양심적으로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사람들, 그들이 석양의 무렵에 조용히 일하던 손을 멈추고 잠시 기도하는 모습은 보는 이의 가슴을 따뜻하게 할뿐 아니라, 인생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하지 않는가?

효율적인 교육과 빠른 변화로 인하여 세상이 점점 젊어지고 있다. 예전에는 40대가 사회를 주관했고, 20대는 ‘철없는 아이’로 일컬어졌는데, 이제는 소비의 중심이 10대가 되었으며, 유망한 기업들의 동력은 20대에서 나오고 있다. 그래서 인류의 발전을 이끄는 인물들에게 수여되는 노벨상의 수상자를 보아도, 모든 분야의 수상자들이 점점 젊어지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유독 이러한 시대적 흐름과 상관없는 분야가 있단다. 바로 노벨 문학상이다. 다른 모든 업적의 분야에서는 젊은이의 약진이 두드러지지만, 아무래도 문학만큼은 연배와 경험을 넘어설 수 없는 모양이다.

나는 미래가 그리 절망적이지만은 않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기근과 자연의 재해를 극복하고 서서히 더 부유한 사회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런 세상이 되기를 바라고 기대한다. 그러나 과연 물질적 환경의 풍요가 인간의 정서적 공허함까지 채워줄 수 있을까? 성경을 빌려와 증언하지 않더라도 우리가 이미 보고 있는 세상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참으로 밝은 미래, 풍요로운 미래는 어디에 있는가? 사람다운 사람에게서 찾아야 하지 않겠는가? 고난을 이겨낸 강인한 정신의 세계를 가진 사람들이, 밀레 같은 화가가, 베토벤 같은 음악가가, 도스토예프스키 같은 문학가가 인류의 정서적 공허함을 채우고 정신을 먹여 살려야 하지 않겠는가? 

나는 신앙을 그림으로, 음악으로, 문학으로, 연극으로, 영화로, 뮤지컬로 승화시킬 수 있는 젊은이를 만나고 싶다. 그게 정말 신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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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2-05


지난 화요일에 고국의 집에 갔었습니다. 아내와의 12년 결혼생활 중에 한 달 보름을 떨어져 있었던 적은 처음이었습니다. 물론 아이들에게도 아빠가 그렇게 오래 집을 비운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그래서 과연 식구들이 어떠한지 무척이나 궁금하고 염려되는 마음으로 길을 떠났습니다. 

저렴한 비행기표를 구하다보니, 저녁 8시반 비행기를 타게 되었고, 그래서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하니 밤 11시10분이었습니다. 서둘러 마지막 버스를 타고 잠실까지 나오니, 새벽1시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마중을 나온 이모님을 만나 그 차편으로 집으로 향했습니다. 보슬보슬 밤비가 내리고 있었고, 그래서 길이 참 멀고 힘겹게 느껴졌습니다. 아무튼 남양주의 집에 도착하니 새벽2시가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두 아들과 아내가 아파트 앞 현관에 나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새벽 2시가 되도록 아빠가 오면 같이 먹겠다고 저녁 식사도 마다하고 배고픈 배를 참고 또 참으며 아빠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녀석들을 가슴에 안았을 때, 얼마나 뿌듯하고 벅차던지... 온 세상이 내 품에 있는 것 같았습니다.

아이들은 참 빨리 자랍니다. 제가 없는 동안에도 아이들은 부쩍 자라 있었습니다. 아내가 열심히 가르친 보람이 있어 아이들은 주섬주섬 일본어를 말하고  히라가나와 가타카나를 그럭저럭 읽어내고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대견하고 감사했습니다.

다음날은 아내와 함께 여기저기 볼 일을 보러 다녔습니다. 구입해야 하겠다고 생각했던 교회물품도 준비하고, 비자발급을 위하여 필요하다는 서류들도 준비했습니다. 아내는 그 와중에도 나를 위해 옷을 사 주고, 반찬을 준비했습니다. 나는 빈손으로 집에 들어갔고, 아내와 아이들을 위하여 아무 것도 준비하지 못했는데 그런 무심한 남편과 아비를 원망하기는커녕 더 이해하고 사랑으로 섬기는 모습에 잔잔한 감동을 받았습니다.

‘가정은 천국의 출장소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곳에서 평안과 쉼을 경험하고 사랑을 배우게 되기 때문입니다. 좋은 가정이 없이 어찌 좋은 신앙생활이 가능하겠습니까? 특별히 그리스도인의 가정은 아담해야 하고, 향기를 발해야 하며, 덕을 세워야 합니다. 목회자만 그런 것이 아니라, 성도 여러분 모두의 가정이 그러해야 합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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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1-29



한 여인이 낡은 바이올린을 들고 중고 악기점에 들어섰습니다. 그녀는 불쌍한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배가 고파서 그러니 이 바이올린을 제발 사 주세요!” 악기점 주인은 측은한 마음이 들어서 그녀의 바이올린을 보지도 않고 5달러에 사 주었습니다. 

그녀가 기쁜 표정으로 가게를 나선 후에, 주인은 먼지가 뽀얗게 앉고 때 묻은 바이올린을 켜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예상 외로 아주 청아하고 좋은 소리가 납니다. 놀란 주인은 이 바이올린의 정체를 알기 위하여 소리통의 안을 들여다보았습니다. 그랬더니 그곳에는 작은 글씨로 ‘아토니오 스트라디바리 1704’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그것은 무려 200년이 넘도록 모든 악기상들과 음악가들이 찾았던 스트라디바리의 작품으로 적어도 10만 달러가 넘는 바이올린이었던 것입니다. 가게의 주인은 놀라서 뛰어나가 여인을 찾아보았지만, 그 낯선 여인은 이 명품을 단돈 5달러에 팔고 어디론가 사라진 뒤였습니다.


주님은 비유하시기를, 천국은 밭에서 보물을 발견하고 그 밭을 사기 위하여 자신의 전 재산을 판 사람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그 가치를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천국은 허상이요, 먹을 수 없는 그림의 떡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어떤 이는 믿음을 쉽게 버리고, 신앙생활의 기회를 낭비하는 것입니다. 

누구의 인생에나 3번의 기회가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희망의 말이지만, 동시에 ‘기회(幾回)’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가르쳐주는 말이기도 합니다. 평생에 3번 밖에 없는 기회이기 때문에 기회를 맞고서도 그것을 잡지 못하면 쓰라린 후회가 되고, 평생의 한이 되는 것입니다.

자, 지금이 바로 기회입니다. 흔들리지 않는 신앙으로 성숙할 기회이며, 허술한 인생을 팔아 감추어진 영적 보배를 살 기회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적어도 여러분은 5달러 짜리 골동품 고물 바이올린이 아니라 진짜 스트라디바리입니다. 제대로 된 연주가, 안목이 있는 주인을 만나지 못했을 뿐입니다. 그러나 그분의 손에 여러분이 붙잡히는 순간, 세계는 놀라게 될 것입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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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1-22


‘머피의 법칙’이라는 말은 계속해서 불운한 일들이 연달아 일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이는 1949년에 미국 공군에서 근무하던 머피대위가 발견한 인생의 법칙으로 ‘잘못될 여지가 있는 일은 반드시 잘못된다(If something can go wrong, it will.)’라는 법칙입니다. 

이를테면 아이들은 항상 병원이 문 닫은 시간에 아프고, 차선은 항상 내 옆에서만 잘 빠지고, 내가 만원 버스에 간신히 올라 보니 바로 뒤에 빈 버스가 오고, 에스컬레이터에서 전철 티켙을 떨어뜨리면 꼭 기계 틈새로 들어가고, 잔뜩 비축식량을 쇼핑해서 집에 들어오니 정전으로 냉장고가 들어오지 않는 것과 같은 일들입니다. 그래서 이를 ‘설상가상(雪上加霜)의 법칙’이라고도 합니다.

반대로 ‘샐리의 법칙’이라는 것도 있습니다. 이는 영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에서 유래한 것으로 모든 것이 결국은 해피앤딩으로 끝나는 법칙입니다. 면접 전날 읽었던 신문에서 면접질문이 출제되고, 공부하기 싫은 참에 정전이 되고, 마당을 쓸었더니 돈을 줍고, 책을 빌렸더니 책갈피에 비상금이 끼워져 있는 것과 같은 일들이 일어나면 ‘샐리의 법칙’이라고 말합니다.

여러분은 자기의 인생이 어떤 법칙에 가깝다고 생각하십니까? 사도바울은 아마도 ‘샐리의 법칙’을 자신의 인생에 적용했던 것 같습니다. 그는 교인들을 향한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고전10:13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롬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설상가상의 현장에서 해피앤딩을 믿는다는 것은 쉽지 않은 선택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아침에 꿈이 불길해서 하루 종일 재수가 없다는 것은 이방인의 법칙입니다. 하나님이 조심하라고 경고하셨으니 기도하고 조심하면 오히려 복된 하루가 될 수 있습니다. 믿음은 원래가 화(禍)가 변하여 복(福)되게 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믿습니까?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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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1-08


감리교의 창시자인 웨슬리의 글을 읽다보니, 신자의 회심은 돈지갑을 여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는 말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이 말이 참 실망스러웠습니다. 개인적인 관점에서 보니 종교개혁자들도 역시 경제적인 면에서는 어쩔 수 없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신앙의 진리 앞에서 빈부와 귀천이 있을 수 없고, 그래서 거룩한 신자의 회심을 ‘돈지갑’과 같은 세속적인 이미지와 연관하는 것은 일종의 신성모독이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러나 목회를 하면서 이러한 저의 생각에 조금씩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공허한 말의 헌신에 머물러 진실로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는 무능력한 신자들을 많이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입에는 천국이 있지만, 그들의 손과 발은 아무 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교회의 부정적인 측면들만을 골라내어 말하고 또 말하며 근심하는 것이 그들이 가진 신앙의 전부였습니다.

재물은 인간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대상입니다. 적어도 매우 중요한 사랑의 대상 중에 하나인 것은 거의 모든 사람에게 예외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십일조의 계명을 주신 것이나, 예수님이 부자청년에게 모든 재산을 사회로 환원하고 나를 따르라고 하신 것이나, 웨슬리가 회심의 시작을 돈지갑에서 찾은 것은 거의 같은 의미를 품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말뿐인 신앙, 공허한 관념의 신앙에서 깨어나 구체적인 헌신과 실천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까운 것을 하나님께 드리지 못하면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기만적인 말장난인지를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2006년에는 조금 더 노력합시다. 성도들의 힘든 일을 서로 돌아보고, 빠지지 맙시다. 예배에 빠지지 않는 성도는 잘하는 성도가 아니라 ‘기본’을 하는 성도일 뿐입니다. 잘하는 성도는 돈지갑을 열어야 하고, 손과 발을 부지런히 놀려서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쓰임 받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샬롬~


[약1:22]  너희는 도를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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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1-15


삼국지에 보면, ‘읍참마속(泣斬馬謖)’이라는 고사가 나옵니다. 

때는 삼국시대의 초엽, 촉(蜀)나라 건흥(建興) 5년(227) 3월, 제갈량(諸葛亮)은 대군을 이끌고 출정하게 됩니다. 이 때 조조는 제갈량을 막기 위하여 사마의(司馬懿, 자는 中達, 179∼251)에게 20만 대군을 주어서 그 앞길을 막게 하였습니다. 제갈량은 이 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 전술을 이미 준비하고 있었으나, 이에 중요한 요건 중의 하나가 바로 보급로를 확보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고민하고 있을 때에 마속(馬謖:190-228)이 이 일을 자원하였습니다. 그는 제갈량과 문경지교(刎頸之交)를 맺은 명 참모 마량(馬良)의 동생으로, 평소 제갈량이 아끼는 재기 발랄한 장수였습니다. 제갈량은 노련한 사마의에 비하여 그가 너무 젊고 미숙하다는 사실을 염려하였으나, 마속이 간청하는 바람에 이를 허락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군령의 지엄함을 나타내기 위하여 만약 임무에 실패한다면 목을 내놓겠다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역시 마속은 사마의에게 적수가 되지 못하였습니다. 결국 제갈량의 안배를 따르지 않고 전승에 욕심을 부리다가 그는 위나라의 명장 장합(張稷)에게 패배하고 간신히 목숨만을 건져 돌아왔습니다. 이로 인하여 제갈량은 전군(全軍)을 한중(韓中)으로 후퇴시켜야 했습니다.

이듬해(228) 5월, 마침내 마속을 처형하는 날이 이르렀습니다. 마침 연락관으로 와 있던 장완은 제갈량에게 간청하기를 “마속과 같이 유능한 장수를 죽이는 것은 나라의 큰 손해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제갈량이 대답하기를, “마속은 정말 아까운 장수이지만, 사사로운 정 때문에 군율을 저버리는 것은 더 큰 죄가 됩니다. 아끼는 사람일수록 가차 없이 처벌하여야 나라의 기강이 바로 서는 법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결국 마속은 처형장으로 끌려 나갔고, 제갈량은 소매로 얼굴을 가린 뒤에 마루에 엎드려 울었다고 합니다.

교회의 중심에 서는 사람은 특별히 자기를 관리해야 합니다. 대의(大義,하나님의 뜻)를 이루기 위해서는 스스로 부끄럽지 않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교회의 리더십은 말로만 생겨나는 것이 아닙니다. 주변으로 갈수록 포용력 있게, 그러나 중심으로 갈수록 엄정하게... 그래야 건강한 교회입니다. 샬롬~

Posted by makari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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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1-01


새해가 밝았습니다. 또 하나 세월의 마디를 뒤로하며 많은 회한을 가슴에서 정리해 봅니다. 옛 어른들이 세월이 유수와 같다고 하시더니 정작 이렇게 빨리 흘러가는 것이 세월이고, 인생인지 미처 몰랐습니다.

제자촌교회에 부임한 이후, 혼자의 시간을 많이 주신 것에 대하여 주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가족을 볼 수 없는 것이 외롭고 쓸쓸하기도 하지만, 그 추운 혼자의 밤을 보내며 다시 생각하고 또 생각하며 인생과 신앙을 정리할 수 있는 것에 감사드립니다.

주님은 아마도 제가 이 동경에서 새로운 인생, 새로운 사역을 열어가기를 기대하시는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한 번도 일본땅의 목회자로 나를 헌신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가져본 일이 없었는데, 역시 나의 계획과 하나님의 계획은 이처럼 확연히 달랐던 것인가 봅니다.

하지만 막상 이 곳에 와 보니, 주님이 저를 이곳에 보내시기 위하여 참 세밀하게 준비시켜 왔다는 사실을 문득문득 깨닫곤 합니다. 지난 과거를 통하여 저에게 주셨던 성공과 실패, 그 모든 것들이 바로 이 새로운 목회의 장을 여시기 위한 주님의 훈련이었다는 생각을 하니 눈물이 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가진 계획보다 더 크고 놀라운 계획으로 우리를 인도하시길 원하십니다. 저는 주님이 앞으로 이 작은 교회를 통하여 이루어 나가실 큰 역사를 기대하는 마음에 가슴이 부풀어 오릅니다.

하나님의 섭리에는 버릴 것이 없습니다. 그러니 아픈 일도 감사로, 속상한 일도 감사로 묻어버립시다. 그러면 언젠가는 그 아픈 일과 속상한 사건으로부터 아름다운 열매가 맺혀지는 날을 보게 될 것입니다.

맺힌 것을 푸십시오. 응어리를 풀어야 영혼이 삽니다. 용서하고 관용하십시오. 그리고 새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하십시오. 과거가 미래를 침범하지 못하게 하십시오. 이전 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이제는 우리 모두 새로운 날의 주인공이 될 것입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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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07 목양칼럼


세계적인 설교가 제임스 E. 화이트는 그의 책 <하나님과 친절한 사귐>에서 다음과 같은 그의 경험을 이야기 합니다.

러시아에서 한 교회의 주일 아침 예배 설교를 부탁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설교자가 나뿐 아니라 여러 명이었습니다. 예배는 거의 세 시간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예배를 마친 뒤 나는 그 교회 목사님과 잠깐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예배가 긴 것에 놀라기도 했지만, 교인들의 열의에 더욱 놀랐던 것입니다. 3시간 내내 그들은 자리에서 이탈하지 않았고 지루한 기색도 없었습니다. 예배가 끝난 뒤에도 집에 돌아갈 마음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 내가 운을 떼었습니다. “미국에서는요, 예배가 한 시간이 넘으면 여기저기서 시계가 삑삑거립니다.” 그 목사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몇 년 전만 해도 신앙 공동체로서 함께 모여 예배를 드리는 게 허용되지 않았고, 발각되면 모두 감옥에 들어갔지요. 지금 이런 일을 공개적으로 할 수 있다는 게 도무지 믿기질 않아요. 그래서 우리는 그저 행복한 겁니다. 그리고 어떤 앞날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 장담할 수 없기에, 매주일이 이렇게 자유롭게 예배드릴 수 있는 마지막 날이라고 가정합니다. 그래서 예배를 중단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겁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혼자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동안 나는 예배를 너무 건성으로, 느긋하게, 습관적으로 드렸던 게 아닌가? 이 사람들은 예배가 무엇인지를 안다. 그렇기 때문에 고초를 당하게 되더라도 그것을 다시 감내할 의지가 있는 것이다. 예배 때문에 감옥에 들어갈 의지가 있는 것이다. 죽을 의지가 있는 것이다. 한평생 살면서 예배만큼 귀중한 것이 없다는 것을 이 사람들은 알고 있는 것이다. 


건강을 잃기 전에는 건강의 소중함을 모르고, 친구를 잃기 전에는 친구의 아쉬움을 모른다고 합니다. 그러나 잃고서야 그것의 귀중한 가치를 안다면 이 또한 얼마나 안타까운 일이겠습니까!

우리는 매주일, 우리에게 소중한 교회가 있다는 것과 아름다운 지체들이 있다는 것과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추구하는 간절한 신앙이 있다는 것을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교회는 예배 공동체입니다. 다른 것들도 중요하지만, 그러나 예배가 가장 근본적인 것입니다. 예배의 부흥으로부터 영적인 성숙과 전도와 삶의 활력이 생겨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배는 소중하게 지켜져야 하며, 또한 최선을 다해 드려야만 합니다.

사랑하는 동경드림교회 지체들에게 권합니다. 예배를 삶의 중심에 두십시오. 그리고 예배를 통해 하나님 만나기를 사모하십시오. 그 소중한 기회를 소홀함으로 잃지 마십시오. 부탁입니다. 샬롬~



2010-11-07牧羊コラム


世界的な牧師「ジェ-ムズE.ホワイト」は彼が著書した本<神様との親切な付き合い>で次のような彼の経験を語ります。

ロシアである教会の日曜日、朝の礼拝の説教を頼まれたことがありました。だけど説教者は私だけではなく数名でした。礼拝は三時間近くまで続きました。礼拝を終えた後、私はその教会の牧師さんと少し話をしました。礼拝が長いことにも驚きましたが、聖徒たちの熱意にもっと驚かされたのです。三時間の間ずっと彼らは席を立たず退屈した様子も伺えませんでした。礼拝が終わった後にも家に帰る気がないように見えました。私が話を切り出しました。「アメリカでは、礼拝が一時間を越えるとあっちこっちで時計が鳴り始めますよ。」その牧師さんはこのように言いました。「何年か前までは信仰共同体として一緒に集まり礼拝を捧げるのが許されなかったし、見つかったら監獄にいれられましたよ。今、礼拝を公開的に捧げることができるのがいまだに信じられませんよ。だから私たちは ただただ嬉しいのですよ。あと、これからどんなことが私たちを待ち構えているか知ることができないのですから、毎週このように自由に礼拝を捧げることができる最後の日だという心で礼拝をしているのですから礼拝を中断しようとは思わないのですよ。」その話を聞き私は一人でこんな事を考えました。これまで私は礼拝を適当に、ダラダラと、習慣的に捧げたのではないか。この人たちは礼拝が何かを知っているのです。だから苦難があってもそれに耐えることができる意志をもっているのです。礼拝をして監獄に入れられるなら入る意志があるのです。死んでも良いという意志があるのです。今までを生きてきて礼拝より大事なものはないという事をこの人たちは知っているのです。


健康を失う前は健康の大事さを知ることができず、友人を失う前は友人の大事さをしることができないと言われます。だが失ってからその価値に気づいてしまってはもったいないことです。私たちは毎週、私たちに大事な教会があるという事、周りの人たちに恵まれているという事、礼拝を通じて神様を求める切実な信仰があるという事に感謝しなければなりません。               

教会は礼拝共同体です。違うことも重要ですが礼拝が一番根本的な事です。礼拝の復興から、霊的な成熟と伝道の生活の活力が生まれます。だから礼拝は大事に守られなければならないし、最善を尽くさなければなりません。愛する東京ドリ-ム教会のみなさんに勧告します。礼拝を生活の中心においてください。そしてその礼拝を通じて神様に会うことを思慕してください。その貴重な機会を失わないでください。それがわたしの願望です。

シャロー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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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07 
동경드림교회 주일오후예배설교 / 김종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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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27.11~19 "마음껏 내게 축복하소서"


(27:11) 야곱이 그 어머니 리브가에게 이르되 내 형 에서는 털이 많은 사람이요 나는 매끈매끈한 사람인즉

(27:12) 아버지께서 나를 만지실진대 내가 아버지의 눈에 속이는 자로 보일지라 복은 고사하고 저주를 받을까 하나이다

(27:13) 어머니가 그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너의 저주는 내게로 돌리리니 내 말만 따르고 가서 가져오라

(27:14) 그가 가서 끌어다가 어머니에게로 가져왔더니 그의 어머니가 그의 아버지가 즐기는 별미를 만들었더라

(27:15) 리브가가 집 안 자기에게 있는 그의 맏아들 에서의 좋은 의복을 가져다가 그의 작은 아들 야곱에게 입히고

(27:16) 또 염소 새끼의 가죽을 그의 손과 목의 매끈매끈한 곳에 입히고

(27:17) 자기가 만든 별미와 떡을 자기 아들 야곱의 손에 주니

(27:18) 야곱이 아버지에게 나아가서 내 아버지여 하고 부르니 이르되 내가 여기 있노라 내 아들아 네가 누구냐

(27:19) 야곱이 아버지에게 대답하되 나는 아버지의 맏아들 에서로소이다 아버지께서 내게 명하신 대로 내가 하였사오니 원하건대 일어나 앉아서 내가 사냥한 고기를 잡수시고 아버지 마음껏 내게 축복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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