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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7-16


여름이 깊어가고 있습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과의 전쟁이 발발하여 다시 세계는 피 냄새를 맡고 있습니다. 아프리카는 가난과 에이즈의 고통 속에서 허덕이고 있고 중동은 끓어오르는 반미정서로 인하여 언제 불이 붙을지 조마조마한 상황입니다. 반 토막의 조국은 북한에서 발사하는 장거리 미사일과 그것을 막으려는 주변국들의 갈등으로 시끄럽고, 일본은 이와 같은 상황을 최대한 이용하여 소위 ‘보통국가’로 갈려는 우익화 움직임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당장 나 살기도 바쁜데 이 모든 것이 나와 무슨 상관이냐고 물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의 행복은 세계의 틀 속에서 가꾸어지고 있고 때문에 판 자체가 깨어진다면 누구도 자신과 자신의 행복을 지킬 수 없을 것입니다.


딤전 2:2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한 중에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니라


우리는 제사장입니다. 이 사명을 잊지 말도록 합시다. 세상과 하나님 사이에서 화목을 위해 헌신하는 것이 바로 제사장의 사명입니다. 나의 기도와 헌신으로 세상은 하나님의 빛을 보아야 하고, 하나님은 세상을 용서하실 명분을 얻으셔야 합니다. 

소돔과 고모라는 의인 10사람이 없어서 멸망을 당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의인 10명만 있어도 하나님이 한 도성을 용서하시는 명분이 세워질 수 있음을 이해한 사람이었습니다. 때문에 아브라함 자신과 자기 가문의 사람들을 하나님 앞에 신앙으로 세우려는 욕심이 있었고, 그러한 욕심은 결국 ‘제사장 국가’로서의 이스라엘을 탄생시켰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영적 이스라엘’로서 현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의 일은 그 어떤 것이라도 결코 우리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바른 정치가 세워지고, 전쟁이 종식되고, 가난한 자들에게 복지가 주어지고, 바르게 인권이 확장되는 것은 남의 일이 아니라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의 일입니다. 그 일에 그리스도인들이 헌신할 때에, 세상은 하나님의 향기를 맡게 될 것이며 또한 하나님은 세상을 용서하실 명분을 찾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조국과 세계를 위한 참된 중보의 기도가 상실된 신자들과 자기의 삶에만 몰입할 뿐 이웃을 전혀 돌아보지 않는 신자들을 보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성경의 진리대로 살지 못하는 삶은 결국 신자 자신의 삶에서 풍성함을 앗아갈 뿐 아니라 그 신자를 통하여 세상에 부어질 하나님의 풍성함도 헛되게 합니다. 제사장으로서 크게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이 넘치도록 채우실 것입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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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7-09


응답에는 고비가 있습니다. 저는 실망을 경험하지 않고 하나님으로부터 응답 받은 적이 거의 없습니다. 언제나 마지막 고비가 있었습니다. 기도했음에도 불구하고 일은 더 나빠지고, 환경은 더 어려워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럴 때마다 내 안의 자아는 흔들리고 요동쳤습니다. 때론 자포자기(自暴自棄)해서 하나님을 향하여 막 나갈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경륜이 쌓이고 응답의 비밀을 배워가면서, 저는 이 모든 어둠의 과정이 오히려 유익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둠을 견디면서도 더욱 하나님을 의뢰하고 기도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믿음은 바로 그런 눈물 속에서 향기롭게 핍니다.


4:8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4:9 핍박을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고전 4:8~9)


포기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끝났다고 하기까지 아직 끝은 아닙니다. 속단하지 마십시오. 성급한 판단은 언제나 응답의 장애를 초래할 뿐입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간절한 마음으로 그저 내가 바라는 바를 계속하여 아뢰기만 하십시오. 내 예상을 버리십시오. 그 예상으로부터 실망이 자라나서는 믿음을 가로막기 때문입니다. 그저 모든 것을 선하신 하나님의 손에 맡기십시오. 내가 바라는 대로 되어가지 않아도 감사하십시오. 하나님이 내 생각보다 훨씬 더 탁월한 길로 인도하신다는 사실을 믿으십시오.

응답을 기다리는 과정은 피가 마르는 시간입니다. 특히나 결정적이고 중요한 문제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릴 때에는 더욱 그러합니다. 하지만 이 기다림의 과정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우리가 마땅히 더 근신하는 태도를 취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아기를 잉태한 여자가 몸가짐을 조심하는 것처럼, 기도를 잉태하고 응답을 낳기 위해서는 신중한 말씨, 행동, 생각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만 들으시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일상을 달아 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저울에서 믿음이 모자라 응답이 연기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떠한 경우라도 실망하지 말고 더욱 주님을 신뢰하는 모습을 가져야만 합니다. 때로 그것은 연극처럼 느껴질 때도 있지만, 그래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입니다. 되고자 하는 바로 그 모습을 연습하십시오. 기도하고 응답을 기다리는 동안에는 더욱 그러해야 합니다. 중간에 맥 빠지고 포기하려 한다면 오히려 기도를 시작하지 않은 것보다 못하게 됩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향하여 서십시오. 절대로 중간에 포기하지 마십시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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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7-02


기독교 출판계의 모든 기록을 갱신하고 있는 책이 하나 있습니다. 여러분도 읽어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바로 새들백 교회의 릭 워렌 목사가 저작한 「목적이 이끄는 삶」이라는 책입니다. 유명세를 겪는 통에 기독교 계통에서뿐 아니라 일반 언론에서도 릭 워렌 목사에게 자주 인터뷰를 요청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대부분 가장 호기심을 가지고 물어보는 질문은 과연 이 초대형 목사의 수입이 얼마나 되는가에 대한 것이랍니다. 교회에서는 얼마나 사례비를 받고, 책의 인세는 얼마나 들어오는 것일까?

릭 워렌 목사는 책을 통해 엄청난 인세가 들어오게 되자 이에 대하여 고민하다가 중요한 결정을 하게 됩니다. 그는 먼저 지난 25년 동안 교회에서 받았던 모든 사례비를 반납하였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교회에서 사례비를 받지 않겠다고 선언하였습니다.

또한 자신의 아내와 의논하여 과거의 삶의 수준을 그대로 유지하기로 하였습니다. 개조한 트럭을 그대로 타고, 과거에 살던 집에서 이사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수입에서 90%를 에이즈와 빈곤 퇴치를 위한 재단 설립에 사용하고 자신들은 1/10을 가지고 생활하기로 결정했다고 합니다.

그는 이렇게 결정하게 된 배경에 대하여 “어떠한 경우라도 목사가 돈을 위해 책을 쓰고 사역을 한다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다”라고 말했습니다. 목사로서의 대단한 자부심이 느껴지는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종교개혁자 요한 웨슬리는 자신의 경건 생활을 위하여 특별한 십일조의 법칙을 세웠다고 합니다. 그는 10달러를 벌면 1달러를 십일조를 드렸습니다. 그러다가 그의 수입이 15달러가 되어도 역시 자신을 위하여 9달러만 사용하고 6달러를 십일조로 드렸습니다. 심지어 그의 수입이 100달러가 되어도 그는 자신을 위해서는 9달러의 삶을 유지하고 91달러의 십일조를 기꺼운 마음으로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의 삶의 초점이 물질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이심을 진심으로 고백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무수한 신앙의 고백과 구호들을 듣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다 허무합니다. 주님을 위하여 작은 것도 제대로 헌신하지 못하면서 말만 번지르하게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러나 참된 믿음은 말과 함께 감동을 자아내는 행동이 있기 마련입니다.

저는 릭 워렌 목사도, 웨슬리도 진정 바울이 배웠던 바로 그 일체의 비결을 아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가난할 때도 주님의 사람이었지만, 부유할 때도 역시 주님의 사람으로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그들의 삶이 주님을 향한 목적에서 추호도 벗어남이 없다는 것을 말이 아니라 바로 생활로 보여준 것입니다. 

우리도 이런 크리스찬이 되어 주님을 영화롭게 합시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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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6-25


한국팀의 선전에도 불구하고 월드컵에서 모든 아시아팀이 탈락하고 말았습니다. 기적과 같은 승리를 기대했던 일본이나, 투지를 불태웠던 한국의 탈락은 많은 이들을 안타깝게 만들었습니다. 특히 한국팀의 마지막 경기에서는 심판의 불확실한 판정에 대한 불만의 소리가 높았습니다. 참 아쉬움이 많이 남는 경기였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지난 2002년의 4강 진출이라는 한국의 위업이 결코 주최국의 기득권에 의해서만 달성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켰다는 점에서 이번 월드컵 리그의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한국팀을 약체로 평가하는 논조가 대체적으로 사라졌고, 이제는 유럽과 의연하게 겨룰 수 있는 팀으로, 그 체력과 조직력에서, 정신력에서 인정받고 있다는 것이 매우 소중한 소득이 아닐까 합니다.

최근에 읽었던 차범근 해설위원의 칼럼이 생각납니다. 차감독이 독일의 분데스리가에 진출하여 뛰던 시절에는 매 경기마다 전투와 같은 각오가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는 그라운드의 모든 선수들이 경쟁자였고, 그래서 목숨을 거는 축구를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아들, 차두리는 똑같이 세계 무대에서 뛰지만 자기와 많이 다르다고 했습니다. 선수이면서도 지단과 같은 축구영웅의 팬이고, 경기에 나가지 못해도 상처받기 보다는 의연하고 즐겁게 축구를 하는 것이 부럽다고 했습니다. 차범근씨의 축구가 투쟁이었다면, 차두리의 축구는 행복이라고 했습니다.

시대가 변했습니다. 독일까지 대규모 응원단을 보내어 다수의 프랑스 응원단을 잠재우고 오히려 더 큰 소리로 ‘대한민국’을 연호하는 조국의 모습이 자랑스럽습니다. 응원을 마치고 뒷자리를 치우는 모습이나, 선수단을 향하여 못하는 것을 꼬집어 욕하기 보다는 격려하고 다음 월드컵을 위해 준비하자고 다독거리는 어른스러운 모습이 기쁘기도 합니다.

축구라는 하나의 종목에 세계가 열광하는 월드컵 리그에서 우리는 세계와 어깨를 대등하게 하고 비로소 자기의 몫을 감당하는 현재의 우리를 다시 발견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번 한국팀의 보배로 일컬어지는 박지성 선수는 스위스와의 게임이 끝나고 나오면서도 심판을 비난하기 보다는 “그래도 심판의 판정도 경기의 일부이다. 내가 아직 만족스럽게 플레이를 하지 못했기 때문에 더욱 열심히 노력하겠다.”는 내용의 인터뷰를 했습니다.  참 건강한 젊은이가 아닙니까!

우리에게는 히딩크가 보여주었던 좋은 리더십도 필요하고, 박지성, 이영표와 같은 신세대의 새 능력도 필요합니다. 그리고 무엇이 필요한지를 알았으니 그것을 찾고 보충하면 반드시 더 좋은 성적을 거두고 더 뛰어난 민족성을 드러낼 수 있을 것입니다. 한국인으로서의 긍지를 가지고 조국을 위해 더 기도하도록 합시다. 

다음 월드컵이 벌써부터 기대되는 것은 저만의 성급함일까요?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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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6-18


고난은 누구에게나 있다. 다만 고난을 통해 자기를 연단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나누일 뿐이다. 미국 유수의 명문대학들에 한국인 2세들의 입학률이 타 민족에 비하여 월등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중에서 졸업까지 두각을 나타내는 아이들이 적단다. 우등을 하는 동안에는 뛰어나던 아이들이 추월을 당하면 낙담을 하고 쉽게 포기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이기는 법만을 알았지 제대로 지는 법을 몰랐던 것이다. 하지만 인생에는 이기는 법을 아는 것만큼이나 제대로 지는 법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고난은 이런 능력을 키워주는 하나님의 축복이다.

나는 승리하는 법만을 아는 성도들이 불안하다. 그들은 언젠가 반드시 큰 낙담을 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인생은 만만하지 않다. 누구나 언젠가는 한 번쯤 위기에 직면하는 것이 인생이다. 잔병으로 자주 병원에 가는 사람보다 평소에 감기도 잘 걸리지 않던 사람이 큰 병으로 생사의 위기를 넘나드는 것과 같다. 인생의 성공 비결은 재능이 아니라 ‘강인한 마음’에 달려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절벽 가까이로 나를 부르셔서 다가갔습니다. 절벽 끝에 더 가까이 오라고 하셔서 더 다가갔습니다. 그랬더니 절벽에 겨우 발을 붙이고 서 있는 나를 절벽 아래로 밀어 버리시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나는 그 절벽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나는 그때까지 내가 날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 [ 로버트 슐러 ]


지금 어려움에 처해 있는가? 그렇다면 지금이 바로 자신 안에 주신 하나님의 능력을 끌어내어 승부할 때인 것이다. 

젊은 날의 실패는 실패가 아니라 연습일 뿐이다. 어린 아이가 두 발로 서서 걷기 까지 보편적으로 3천 번이 넘게 넘어진다는 사실을 아는가! 우리는 그 3천 번의 넘어짐을 통과하여 두 발로 서서 걷는 법을 배웠다. 그렇다면 지금에 와서 서너 번 더 넘어진다고 해서 무엇이 부끄러울 것인가!

중요한 것은 포기하지 않고 목표를 확실히 하는 것이다. 내 마음이 절망하지 않는다면 기회는 반드시 있다. 마음이 무너지려 할 때에는 기도를 하라. 주님께서 약속하신 새 힘을 구하라. 포기하거나 물러서지 않게 해달라고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라.

성공을 위한 인생을 살지 말고 인생을 위해 성공하라. 성공과 실패가 모두 인생의 부분이며, 때문에 그 모든 것이 어우러져 하나의 성공적인 인생을 이룬다는 사실을 생각하라. 지금의 고난은 언젠가 추억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되도록 멋있게 제대로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야 이다음에 손자들에게 해줄 이야기 꺼리라도 되지 않겠는가?  마음으로 대장부가 되라!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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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6-11


고대 인도로부터 전래되는 이야기를 하나 하겠습니다. 

네 명의 왕자가 각자 세상에 흩어져 특별한 능력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다시 모였을 때, 그들은 각자의 능력을 자랑하게 되었습니다. 

첫째는 무슨 뼈든지 한 조각만 있으면 그 모든 원래의 뼈를 회복시키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둘째는 뼈만 있으면 그 위에 힘줄과 살을 덮고 털을 자라게 할 수 있었습니다. 셋째는 그 몸통에 강력한 팔 다리를 만들어 주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넷째는 이 모든 외양이 완성된 것에다가 생명을 불어넣는 능력을 가졌습니다. 결국 그들은 각자의 능력을 자랑하기 위하여 밀림으로 들어갔고 숲에 떨어져 있는 하나의 낯선 뼈를 선택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만 그것은 사자의 뼈였습니다. 네 왕자의 능력이 합해져서 사자가 살아났을 때, 그 사자는 즉시 달려들어 네 왕자를 죽이고 유유히 사라졌다고 합니다.

이 짧은 이야기는 인간의 자만이 불러오는 불안한 미래를 예감하게 합니다. 과학자들이 핵분열의 실험에 성공했을 때, 그것이 바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그토록 많은 인명을 살상하는 극악한 무기로 변할 줄은 결코 몰랐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세상을 변화시킬 능력을 구하는 사람들은 많습니다. 그러나 간과하지 말아야 하는 중요한 사실은, 스스로 자신을 변화시키지 못한 사람은 세상을 변화시킬 능력을 결코 감당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죄인이 머리가 좋으면 오히려 교활하고 치밀한 범죄를 저지르게 됩니다. 먼저 선량한 양심과 정신을 회복해야 그 다음으로 ‘능력’이 그 본연의 목적대로 쓰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질의 축복을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물질을 다스리는 능력을 배양하십시오. 스스로 물질의 유무에 상관없이 한결같은 양심과 신앙으로 살 수 있는지를 묻고 훈련하십시오. 명예와 성공을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과연 그 자리에 합당한 내면적 성숙이 있는지 자기를 되돌아보십시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지 않는 것은 없어서가 아니라 그것이 우리에게 유익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는 목회자로 사역하며 능력이 사람을 삼키는 것을 종종 보았습니다. 빵빵한 집안이기 때문에 맘 놓고 이혼을 하고, 돈이 많기 때문에 하나님을 떠나고, 잘 생겼기 때문에 방탕하고, 유능하기 때문에 오히려 사업에서 망하는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그들의 능력은 그들의 축복이 되지 못합디다. 그래서 깨닫게 된 것이 바로 사람이 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돌로 떡을 만들라는 사탄의 유혹에 대하여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다!’라고 대답하셨습니다. 능력을 최상의 가치고 숭배하는 오늘의 우리에게 큰 메아리를 남기시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돌로 떡을 만든다고 하여서 근본적인 배고픔이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변해야 합니다. 그것만이 우리가 하나님의 참된 축복을 맘껏 누리는 유일한 길입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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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6-04



옛날 어느 농촌에서 긴 가뭄으로 인하여 위기에 처하게 되자, 마을 사람들이 특별 기도회를 선포하고 예배당에 모여 날마다 하나님께 단비를 구하는 기도를 하게 되었답니다. 

1주일의 작정한 시간이 마쳐갈 무렵, 정말로 마지막 날 기도회를 마치고 예배당을 나서려고 하니 천둥이 치고 시원한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기도가 응답 받았다고 기뻐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때 사람들의 눈에 한 꼬마가 들어왔습니다. 꼬마는 장화를 신고 우산을 받쳐 들고 있었습니다. 누군가 물었습니다.

“꼬마야, 너는 어떻게 장화와 우산을 가지고 있니?”

꼬마가 웃으면서 대답했습니다.

“비가 오게 해달라고 기도하면서 장화와 우산을 가져오지 않는다면 하나님을 의심하는 거잖아요. 저는 하나님이 비를 주실 것을 믿었어요!”


기도하는 것은 귀중한 일입니다. 아울러 주님은 우리에게 기도에 부합하는 선택과 행동을 기대하십니다. 기도와 불평을 병행하고, 기도와 근심을 병행하고, 기도와 욕심을 병행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결국 자신의 기도를 욕되게 하고, 나아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맙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막11:24)

받은 줄로 믿으라는 것은 단순한 마음의 확정이 아니라, 그 믿음의 영향력 아래에서 살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침울한 로뎀 나무의 그늘 보다는 응답의 기쁨과 기대 속에서 우리를 만나고 교제하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신자의 삶에는 근본적으로 평강과 기쁨이 있어야 합니다. 슬픔과 고민도 분명히 인생의 한 부분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잠시일 뿐입니다. 저녁에는 슬픔이 기숙해도 아침에는 즐거움이 회복되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신자의 저력이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가 그러한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지 못하는 데에는 기도하지 않는 묵은 습성과 기도와 삶을 유리시켜서 한 가지로 묶어내지 못하는 신앙적 부조리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기도하면서도 여전히 기도 밖의 사람들과 매한가지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비를 달라고 기도하러 갈 때에는 장화와 우산을 준비하십시오. 장화를 신고 우산을 들고 마른 땅을 밟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입니다. 정말 어린아이와 같은 단순한 믿음이 아니면 하기 힘든 선택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믿음에 대하여 그렇게 용감하고 실제적이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응답은 용감한 자에게 더욱 넘치게 될 것입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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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5-28


건강한 신앙의 삶은 구원의 감격으로부터 나옵니다. 때문에 신자는 구원을 묵상할 때에 경건한 삶의 동력을 얻게 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거기 드러난 하나님의 사랑을 묵상하게 하는 것이 바로 ‘말씀’입니다. 우리는 성경의 말씀을 통하여 거듭거듭 우리 자신이 걸어가야 하는 신앙의 길을 확인하게 되고, 누가 어떻게 우리를 인도하시는가에 대하여 깨닫게 됩니다.

말씀을 가까이 하지 않고 지내는 일주일은 얼마나 짧은지 모릅니다. 우리는 바쁘다는 핑계로, 사람들과의 사이에서 받는 스트레스에 치여서 하나님의 말씀에 먼지가 쌓이게 합니다. 그렇게 일주일을 보내고 나면 예배를 드리면서도 담대함이 없고, 무엇보다 우리 자신의 신앙에 대하여 그늘진 열등감을 가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무리 바빠도 걱정하는 시간은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참된 그리스도인이라면 걱정할 시간에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것이 지혜로울 것입니다. 염려와 걱정의 시간을 은혜의 시간으로 바꾸십시오. 잠이 오지 않는다면 억지로 자려고 하기보다 기도와 말씀에 헌신하십시오. 하나님을 향하여 삶의 정황을 아뢰고 지혜를 구하는 것에 투자해 보십시오.


염려가 많다는 것은 기도할 것이 많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앞으로 받을 하나님의 은혜가 많을 것이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며 너무나 가까이에 계십니다. 그분은 멀리 하늘 너머에서 우리를 쳐다만 보는 분이 아닙니다. 그분은 우리의 속삭임을 들으시고, 우리의 눈물을 닦으시며, 우리가 하는 잠꼬대를 살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손길에 자신을 맡기는 훈련을 하십시오. 핑계하지 말고 어떻게든 그분과의 관계가 당신의 삶에서 ‘먼저’가 되게 하십시오. 당신의 뜻대로 살지 말고 그분의 뜻에 순복하려고 노력하십시오. 마음을 기울여 전심으로 찾고 찾으면 하나님을 만날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을 만나는 순간에 우리가 가진 모든 혼돈과 어둠은 깨끗이 사리지고 빛을 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는 요즘 기도할 사람들이 많습니다. 귀 있는 자들은 들으십시오! 하나님께서 당신의 기도를 요구하십니다. 제발 핑계하지 말고 순복하십시오. 그분을 먼저 찾으십시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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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5-21


양배추를 사다가 배추김치를 담았습니다. 신김치가 되자 다시 그것으로 김치찌개를 끓였습니다. 훌륭했습니다. 낫또를 사다가 청국장찌개를 끓였습니다. 콩이 좀 작아서 그렇지 맛은 거의 같았습니다.  

일본에 왔으나 일본사람이 될 수는 없었습니다. 일본에서 살면서도 한국의 입맛을 찾아 이렇게 저렇게 궁리하여 적응해가고 있습니다.

요즘은 일본어 공부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새롭게 ‘가나’를 암기하고, 짧은 문장과 단어들을 암기하며 말하는 법을 다시 배우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혜공주의 모친께서는 목사랑 지혜랑 같이 그림책을 봐야 한다고 하십니다. 또 목사가 명사 다음에 ‘노’를 부치는 것도 모르더라고 걱정도 하십니다. 참 고마운 분입니다. 하지만 목사가 반년이 되어가도록 일본에 있으면서도 일본어 공부를 뒤로 미룬 것은 내심 까닭이 있답니다. 지금은 말하지 못하고 나중에 기회가 되면 말하겠습니다...


아무튼 온 가족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하여 열심히 분투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못 알아듣는 수업을 견디고 있고, 아내는 열심히 자전거를 타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가족이 같이 있고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어려운 문제야 어디나 있고, 고민과 걱정도 항상 있는 것이지만, 그러나 주님의 은혜가 우리 가족에게 풍성하여 모두들 그늘지지 않고 최선을 다하여 현실과 씨름하니 가장(家長)으로서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찬혁이가 첫 한자시험에서 20점을 받아 왔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이의 어깨를 다독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수고 많았다. 네가 언제 이런 점수를 받아 보겠냐? 세상에는 항상 1등도 있지만, 꼴등도 있게 마련이란다. 이런 기회를 통해 꼴등을 경험하고 그 심정을 배우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자. 그리고 이제부터는 네가 다시 1등이 되더라도 오늘 이 심정을 꼭 기억해서 항상 꼴등을 배려하는 사람이 되거라.”

“나 꼴등 아니예요, 아빠. 내 옆의 친구는 일본인인데도 빵점을 맞았어요.”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를 강하게 합니다. 그 은혜 가운데 살아갈 때에, 우리는 어떤 형편과 처지에서도 담대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세상이 이해할 수 없는 용기와 평강을 우리에게 약속하셨습니다. 그분과 교제하고, 그분에게 구하십시오. 하나님은 반드시 충분한 은혜를 우리에게 주십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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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5-14



저에게는 팔순이 넘으신 외할아버지가 계십니다. 제가 신학을 하고 목회자가 되도록 가장 많이 수고하시고 영향을 주신 분입니다. 제가 어린 시절에도 참 남다른 사랑을 주셨는데, 이제는 그 사랑이 저의 아이들에게로 가서 아이들을 얼마나 아끼고 사랑해 주시는지 모릅니다. 한국에 있을 때에는 아이들의 용돈을 도맡아 주셨고, 가끔은 점심시간에 아내와 아이들을 밖으로 불러 점심을 사주시고 지켜보시는 것이 낙(樂)이셨습니다.

저희 어머니는 맏딸이셨습니다. 때문에 그 맏딸이 일찍 시집가서 어렵게 낳았던 저는 신기하고 애절한 손자였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런 제가 장성하여 가정을 꾸리고 자식을 또 낳았으니, 아마도 저의 아이들이 할아버님께는 더욱 신기하고 애절한 대상인 것 같습니다.

저는 할아버님을 뵈면서, ‘내리사랑’이라는 말을 새삼 생각하곤 합니다. 사대(외할아버지, 어머니, 저, 아이들)가 한 자리에 모인 자리에서 우리는 언제나 즐겁고 감사로 충만합니다. 

사랑은 멈추지 않는다는 광고의 카피가 생각납니다. 맞습니다. 사랑은 결코 멈추지 않습니다. 한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하면 그 사람이 사랑하는 다른 대상들도 같이 사랑하게 됩니다. 때문에 사랑은 끊임없이 확장되고, 더 넓은 지경으로 우리를 인도합니다.

‘내리사랑’이라는 말도 바로 이러한 사랑의 끊임없는 확장의 하나입니다. 자식을 통해 자식의 자식을, 다시 그 후손을, 심지어 내가 죽은 이후에 태어날 누군가를 축복하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어버이주일입니다. 물론 이 하루만 섬기고 사랑할 부모님은 아니지만, 이런 날을 정한 이유는 이 날이라도 좀 더 신경 쓰고 마음을 새롭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누군가의 사랑을 통해 모진 세상에서 견디어내고 오늘날의 우리가 있음을 잊지 말았으면 합니다. 특별히 부모의 곁을 떠나 있는 우리는 ‘불효자(不孝子)’의 이름을 피하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사람은 돈이 없어 못 사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목말라 못 사는 존재입니다. 마음으로 부모님을 섬기십시오. 주님으로 인하여 여러분의 사랑을 확장하십시오. 아직 기회가 있을 때에 최선을 다하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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