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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30 목양칼럼

 

신앙은 영원을 사모하는 일이다. 만약 사람이 태어나고, 살고, 죽는 것으로 모든 것이 끝이 난다고 믿는다면, 신앙의 모든 일은 부질 없는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죽음 이후에도 우리가 존재한다면, 신앙은 그 영원을 준비하는 과정이다.

성경은 사람이 죽은 이후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다고 말한다. 창조주요, 생명의 아버지가 되시는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이 주신 생명을 가지고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았는가를 되돌아보게 된다는 것이다.

나는 이 가르침이 맘에 든다. 만약 이런 일(하나님의 심판)이 없다면 세상의 부조리들, 사람들이 살며 저지르는 수많은 과오와 잘못들에 대하여 어떻게 정의를 세울 것인가? 

악하고 끔찍한 일을 저지르고도 막대한 권력과 재물을 소유해서 죽을 때까지 영화를 누리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죽은 이후에 역사의 심판을 받기도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뭔가 부족하다. 죽어서 이미 흙이 되어버린 사람을 비판한다는 것이 과연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단지 그것뿐이라면 과연 악한 사람들이 자신들이 받을 심판을 두려워나 하겠는가?

그러나 우리에겐 하나님이 계시다. 그분이 죽음 너머에서 모든 사람을 기다리며, 각자 자기의 삶에 대하여 책임지게 하실 것이다. 그래서 악한 사람이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이 의인으로 인정 받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시편1:5)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 이외에는 정의를 실현하는 방법도, 의인으로 살아가는 것에 대하여 낙심하지 않는 방법도 없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할 때에, 우리는 단지 우연의 산물(産物)이다. 그래서 개인적인 행복이 최상의 가치가 되고, 나의 행복을 위해 못할 일이 없다. 

실제로 역사 속에는 그런 가치관으로 살았던 사람들이 꽤 많이 있다. 그들은 자기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하여 남을 짓밟고 죽이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전혀 양심의 가책조차 받지 않는다. 왜냐하면 스스로 자기 행복을 위하여 살아가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도덕이나 양심, 희생과 헌신의 삶은 위선이며 이해될 수 없는 바보짓이다. 본능이 전부이며, 그 본능적인 인생 이후에는 아무 것도 없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사람은 살고, 죽고, 그 이후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된다. 우리는 각자 자기의 삶에 대하여 돌아보게 될 것이다. 그 자리에서 진정한 승자와 패자가 갈릴 것이다. 영광의 면류관을 차지하는 사람도 있고, 부끄러움을 당하는 사람도 있으며, 영원한 저주와 형벌에 처해지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이 모든 심판을 통해 정의가 실현될 것이다. 세상이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 가운데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드러낼 것이다.

그러니 신자들이여,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라. 남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슬퍼하지 말라. 당장 열매가 보이지 않는다고 조급하지 말라. 하나님께서 보시고 있다. 지금이 아니라면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서 갚아주실 것이다. 그분의 정의는 쇠하지 않는다. 실수하지 않으신다. 사람은 누구나 심은 대로 거둘 것이다. 이 사실을 믿고 살아가는 사람은 복이 있다. 

(갈 6: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아멘!


Japanese Version



神様の正義 を信頼しなさい

2011-01-30


信仰とは永遠に思望することだ。たとえば人が生まれて、人生を生きて、死ぬことですべてが終わると信じるのなら、信仰の全てはことはおろかな行為に過ぎない。だが死んだ後にも私たちが存在するのなら、その永遠を準備する過程が信仰である。

聖書は人が死んだ後は神様の審判を受けるといっている。創造主であり、生命の父になる神様の前で神様がくださった生命を持ってなんのためにどうやって生きたかを振り返るということになるということだ。私はこの教えが心に響く。万が一神様の審判がないのならこの世の中の矛盾や、人々が犯す数々の過誤や間違いに対してどうやって正義を貫くというのか?

極悪で非人間的なことを起こしてるのにも関わらず莫大な権力や財産を所有し死ぬまで栄華に浸る人々がいる。彼らが死んだ以後、歴史の審判を受ける事もあるが、これだけでは不足である。もう死んで土に返った人を批判するという事に何の意義があるだろうか?ただそれだけなら本当に極悪な人々が自分達が受ける審判について恐れるだろうか?

だが私たちには神様がいる。神様は死後の世界で全ての人々を待ち構え、各自自分の人生について責任をとるようにするだろう。だから極悪な人が審判に耐えることはできず、罪人が善人と認定されることも決してない。(詩篇1:5)

神様を信頼すること以外正義を実現する方法も、善人として生きていくことに落胆しない方法もないと思う。神様がいないと考えたとき、私たちは単に偶然の産物である。だから個人的な幸福が最上の価値になり、自分の幸福のためにはできない事がない。

実際に歴史の中でそのような価値観で生きてきた人々はたくさんいる。彼らは自分の既得権を得るために他人を踏みにじり、殺すことに躊躇しなかった。それなのに自分の心はなんともない。なぜなら自分の幸福のために生きていくことは当然だと考えているからだ。道徳や良心、犠牲や献身は人生の偽善であり理解できない愚かなことだ。本能が全てで、その本能的な人生以後には何もないと信じている。だがそうではない。人は生き、死に、その以後神様の審判を受ける。私たちは各自自分の人生を振り返るようになる。そしてその場で真の勝者や敗者がわかれるようになる。栄光の王冠を与えられる人もいれば、辱めを受ける人もいて、永遠ののろいや刑罰にさらされる人もいるだろう。この審判を通して正義が実現される。この世は偶然の産物ではなく、神様の統治の中にあるということが確実に表れるだろう。だから信者達よ、善を行っていて落心するな。他人が認めてくれないからといって悲しむな。今すぐに実が実らないといって焦るな。神様が見ている。今ではなく永遠の神様の国で応酬を下さるだろう。神様の正義は錆びることがない。失敗することがない。人は誰もが働いただけ応酬を受けるだろう。この事実を信じて生きていく人には福があるだろう。

(ガラテヤ6:9) 「わたしたちは、善を行うことに、うみ疲れてはならない。たゆまないでいると、時が来れば刈り取るようになる。」アーメ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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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23 목양칼럼

 


척박한 삶의 행복이란 기적과 같다. 행복을 사소하게 생각하고 뭔가 거창한 비전과 목적을 따로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나는 이런 의견에 반대한다. 한 사람의 행복은 충분히 존중 받아 마땅하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은 스스로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신다.

(요 10:10)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더 풍성한 생명, 이것이 바로 ‘행복’이다. 예수님은 단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가치를 실현하고, 만족을 누리며, 기뻐하는 생명에 대하여 말씀하시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행복한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은 사명적이다. 그 말은 우리가 삶에서 실현해야 하는 궁극적인 목표를 표현하는 여러 표현 중의 하나이다. 이를테면, 거룩한 그리스도인이나 예수님을 닮은 그리스도인, 좋은 그리스도인이라는 표현과 행복한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이 결과적으로는 하나라는 말이다.

행복은 이상한 기적(strange miracle)이다. 아무리 좋은 환경에서도 스스로 불행에 빠지는 사람이 있고, 정말 척박하고 열악(劣惡)한 상황에서도 행복을 누리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말한다면, 행복의 실현은 외적인 것에서 보다는 내적인 것에서 그 길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실은 충분히 행복하지 못하다. 

성공한 가수가, 유명한 영화배우가, 최고의 권력을 가진 정치인이, 대기업의 오너가 불행을 이유로 자살하는 사건들이 우리에게 충격을 주지 않던가?

반대로 저소득층에 속하고, 고단한 직업을 가지고 있으며, 심각한 불행을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조금 나아진 현실을 감사하고 ‘행복’이라는 말로 자기를 표현하는 긍정적인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신기하고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결국 행복은 마음의 문제이고, 마음은 신앙의 문제로 귀결된다. 그리스도인의 마음에 올바른 믿음이 자리하고 있다면, 그 믿음은 환경을 바꾸기 이전에 우리 마음을 변화시킬 것이 틀림없다. 그러면 지금 당장 한 사람의 행복한 그리스도인이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모든 것에서 불행하게 느끼는 마음과 싸우라. 불행은 어쩔 수 없는 감정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이 극복해야 하는 감정이다. 불안, 두려움, 미움과 같은 독소들 중의 하나이다. 때문에 불행하게 느끼는 마음은 결코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다.

미소를 보여주라. 자주 소리 내어 웃으라. 가라앉는 감정을 조심하라. 우울한 느낌으로 주님의 일을 하지 말라. 할 수 있는 건강과 재능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라. 지금 내가 주님의 이름으로 누군가를 섬길 수 있다는 사실에 행복해 하라. 

우리의 마음은 분명히 키를 가지고 있다. 방향이 정해지면 정말로 그렇게 느끼고 생각하게 된다. 모든 것을 그 방향에 맞추어 해석한다. 때문에 행복한 그리스도인은 철저하게 실존의 문제이다. 그러니 오늘의 행복을 내일로 미루지 말라! 샬롬~


Japanese Version


幸福なクリスチャン

2011-01-23 牧羊コラム


寂寞な人生に幸福とは奇跡のようなものです。幸福を粗末に考え、何かもっと大きなビジョンや目的を持たなければいけないと考える人たちも居ますが、私はこのような意見に対して反対です。一人の幸福は充分に尊重されるに等しいと思います。ヨハネによるイエス・キリストの福音にイエス様は自らをこう仰られます。

「盗人の目的は、羊を盗んだり、殺すことですが、私の目的は羊に命を与え、しかも豊かに与えることです。すなわち、人に本当の命を与え、それによって豊かな生活を送らせることです。」

(ヨハンの福音10:10)

豊かな命、これこそがまさに「幸福」です。イエス様はただ存在するだけではなく、価値を実現し、満足感を味わい、楽しむ命について仰られているのです。

なので「幸福なクリスチャン」という言葉は使命的です。その言葉は私たちが人生で実現するべき究極的な目標を表現する多くの表現の一つなのです。言ってみれば、神聖なクリスチャン、イエス様に似たクリスチャン、善いクリスチャンといった表現が結果的には幸福なクリスチャン一つだというのです。

幸福は不思議な奇跡(strange miracle)です。どんなに良い環境でも自ら不幸に落ちる人も居れば、本当に寂寞で劣悪な状況でも幸福を味わう人も居るからです。結果的に言えば、幸福の実現は外部的なものより内面的なものでその道を探すべきだと考えています。多くの人たちが幸せだろうと考える大部分の人たちは本当は充分に幸せではありません。

人気歌手や有名な俳優、最高の権力を持つ政治家、大企業のオーナー不幸を理由に自殺をするなどの事件は私たちに大きな衝撃を与えたではありませんか?

逆に低所得層に属し、苦難な職業を持ち、深刻な不幸を経験したにも関わらず少しでも良くなった現実に感謝し「幸福」という言葉で自分を表現する前向きな人達も居ることには驚きを隠せません。

結局幸福は心の問題であり、心は信仰の問題に帰結される。クリスチャンの心に正しい信仰心があれば、それは環境を変える以前に私達の心を変化させるに違いありません。そうしたら今、ここで一人の幸福なクリスチャンが誕生します。

全てにおいて不幸と感じる心と戦ってください。不幸はどうしようもない感情ではなくクリスチャンが克服するべき感情です。不安、恐怖、憎しみなどの毒の中の一つなのです。なので不幸と感じるのは決して自然な物ではないのです。

微笑を浮かべましょう。常に声を出し笑ってください。沈んでしまう感情を警戒してください。悲しい感情で神様の仕事に仕えないで下さい。仕事をすることが出来る健康と才能を下さった神様を称えましょう。今、自分が主の名前を背負い誰かのために何か出来るという事実に幸福を覚えてください。

私たちの心の中には舵(handle)を持っています。方向が定まったら実際にそう感じ考えるようになります。全てをその方向にあわせ解釈します。だから幸福なクリスチャンは徹底して実存の問題なのです。

だから今日の幸福を後回しにしないように! シャロー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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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16 목양칼럼


생각은 말이 되고, 말은 행동을 만들며, 행동은 인격으로 굳어진다. 그래서 사람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사느냐가 중요하다. 그의 생각이 부실하면 재능과 기회가 있어도 소용이 없고, 그의 생각이 강인하고 바르면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마침내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야 마는 것이다. 

이 점은 성경이 무릇 지킬 만한 모든 것보다 더욱 ‘마음’을 잘 지키라고 충고하는 것에서도 드러난다. 마음은 생각의 바탕이며, 생각의 뿌리이기 때문이다.

2011년을 시작하며, 무슨 생각을 품었는가? 물론 365일의 시간은 다른 해와 동일하겠지만, 그 시간을 살아갈 우리의 마음은 결코 과거와 동일하지 말아야 한다.

기대와 소망을 품고 목표를 생각하는 사람은 벌써 언어부터 변화가 엿보인다. 

뭔가 긍정적인 힘이 충만해 있고, 눈빛이 설렘으로 반짝거리고 있다. 

미리 속단하는 것은 경솔한 일일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나는 목회자로서 이런 사람들을 기대한다. 그의 생각과 말이 변했다는 것은, 그의 행동과 인격에도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성경은 사람이 나무와 같다고 했다.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지 못하고, 나쁜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한다. 이 말은 변화된 사람만이 하나님이 기대하시는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뜻이다. 

세상에서는 눈속임을 유발하고, 가끔 나쁜 사람이 선한 사람으로 행세하기도 하지만, 신앙 안에서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우주의 창조주 되시는 하나님이 불꽃 같은 시선으로 모든 것을 보시기 때문에 결국에는 심은 대로 거두고야 만다. 

그러니 신앙 안에서의 좋은 열매는 사람이 변해야만 맺을 수 있다. 내 인격이 예수님의 인격을 닮아가지 않고서는 성경이 말하는 목표에 그 누구도 도달할 수 없다.

피상적인 신앙생활, 그러니까 겉으로는 전혀 문제가 없으면서도 알맹이가 빠져버린 신앙생활을 조심하라. 말라기 선지자는 이런 신앙의 사람들을 성전의 마당만 밟는 사람들이라고 표현했다. 구체적인 변화가 따르지 않는 신앙생활은 그 만큼 허무하다.

2011년에 소망을 품으라. 바라는 것들을 다 수첩에 적으라. 어린 아이 같은 유치한 소원이라도 좋다. 그래도 없는 것 보다는 소원이 있는 것이 건강한 것이다. 그리고 그 소원과 함께 격에 맞는 자신을 꿈꾸라. 변화된 자신을 디자인 하라.

성공을 꿈꾸는 사람은 실패에 저항한다. 행복을 꿈꾸는 사람은 불행에 면역이 생긴다. 성장을 꿈꾸는 사람은 노력하게 된다. 실력을 꿈꾸는 사람은 연습한다. 부흥을 꿈꾸는 사람은 전심으로 예배하고 기도한다.

꿈이 죽으면 사람의 생각이 죽는다. 죽은 생각은 죽은 말을 쏟아내고, 그 말은 제일 먼저 자신을 죽인다. 자살을 실천하지 않아도 이런 사람은 이미 죽은 것과 다름 없다. 뿐만 아니라, 그로 인하여 주변의 사람들까지 죽어간다.

변하라. 변해야 산다. 변해야 우리가 바라는 교회를 세울 수 있다. 변해야 당신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다. 지금이 바로 변화를 위해 나설 때이다. 지금이 아니면 영원히 변하지 못할 지도 모른다… 샬롬!



Japanese Version [日本語]


夢を見ているか?変われ!


2010-01-16 牧羊コラム

考えが言葉になり、言葉は行動を作り、行動は人格として確立します。だから人がどんな考えを持って生きているかが重要です。人の考えが浅はかなものだったら才能や機会があってもどうしようもなく、人の考えが強靭で正しければ苦難と逆境の中でも結果的に実を結びます。この点は聖書が「守らなくてはならないすべての物より自分の心をもっとよく守れ」と忠告したことにもよく表れています。それは心は考えの背景であり、考えの根本であるからです。2011年を迎えて、どんな考えを持ちましたか?もちろん365日という時間は他の年と同じでありますが、その時間を生きていく私たちの心は決して同一であってはなりません。期待と願望を持ち目標を考えている人は言葉から変化が見られます。何か肯定的な力で満ち溢れていて、眼差しは期待で輝いています。早く即断してしまうことは軽率かもしれませんが、私は牧会者としてこんな人たちに期待します。その人の考えと言葉が変わったということは、その人の行動や人格にも変化が始まっているという意味だからです。聖書は人を木に例えました、「いい樹木が悪い実を結ぶことはなく、悪い樹木がいい実を結ぶこともない。」この言葉は変化された人だけが神様が期待する肯定的な結果をもたらすという意味です。この世には人の目を欺き、時に悪人が善人のように振る舞いますが、信仰の中では有り得ないことです。宇宙の創造主である神様が炎のような視線で全てを見渡していて結局は全て自分の身に帰ってきます。だから信仰の中でいい実は人が変わらなくては結ぶ事はできません。自分の人格がイエス様の人格に似ていかなくては聖書がいう目標には絶対に到達できません。悲傷的な信仰生活、外から見れば何の問題もないが実のない信仰生活を気をつけなくてはなりません。マラキ伝道者はこのような信仰の人々は聖殿の庭だけを踏む人と表現しました。具体的な変化が伴わない信仰生活はそれくらい虚無なものであるのです。2011年には願望を持ってください。願うことを全部手帳に書いてください。子供のような幼稚な願望でも良いです。それでもないよりは願望があった方が健康的です。そしてその願望と格の合う自分を夢見てください。変化された自分をデザインしてください。成功を夢見る人は失敗に抵抗します。幸福を夢見る人には不幸に免疫ができます。成長を夢見る人は努力するようになります。実力を夢見る人は練習するようになります。復興を夢見る人は全身で礼拝し祈るようになります。嫁が死ねば人の考えも死にます。死んだ考えは死んだ言葉を生み出し、その言葉は一番最初に自分を殺します。自殺を行わないといってもそんな人はもう死んだの同然です。それだけではなく、それによって周りの人も死んでいきます。変化しなさい。変化しなければ生きれません。変化すれば私たちが望む教会を建てることができます。変化すればあなたに対しての神様の意思が行われます。今がまさに変化する時です。今でなければ一生変れないかもしれません。

シャローム~

Posted by makari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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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의 즐거움

2011-01-09 목양칼럼

 

내가 어린 시절, 교육은 항상 엄중(嚴重)했다. 선생님은 언제나 손에 매를 들고 다녔고, 이런저런 이유로 벌을 세우거나 매를 때리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멀리서라도 선생님을 보면, 몸을 숨기거나 도망하는 아이들이 많았다. 솔직히 만나봐야 좋을 일이 별로 없었으니까…

그러나 지금은 시절이 변했다. 체벌을 금지하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교육 자체에 대한 시선이 변했다는 느낌이 든다. 말하자면, 엄중한 교육에서 재미있는 교육으로 교육의 전략이 변했다는 것이다.

물론 교육의 근본적인 목표는 인격(人格)의 실현이다. 여기에 그가 속한 사회와의 관계를 원활하게 하고, 나아가 사회에 이바지 하는 사람을 양성하는 목표가 더해진다.

인격의 실현이라는 근간은 변하지 않지만, 인간이 살아가는 사회는 시대마다 빠르게 변하고 있다. 그래서 교육도 그 전략을 수정하고 다양한 시도를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를 테면, 조선시대의 교육을 생각해 보자. 대표적인 교과서가 사서삼경(四書三經)이었다. 어렵고 심오한 책이지만, 이 책이 어린 아이로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기본적인 텍스트가 되었다는 점에서 오늘날에 비하여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단순하다. 일본에 와서 생활하면서 경험하니, 한자의 극복이라는 것도 쉽지는 않다. 하지만 생활언어 이상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은 극히 소수에 불과하다. 결국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느 정도 교육을 받으면 자연스럽게 멈추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시대는 그야말로 평생교육의 시대이다.

금융과 IT관련 기업들이 전체 사원들에게 공짜로 아이폰을 지급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밖에서 보기에는 좋아만 보이겠지만, 과연 그럴까? 그 회사에도 분명히 40~60대의 사원들이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아이폰이나, 트위터나, 페이스북이 모두 공부의 대상일 뿐이다.

솔직히 그냥 핸드폰이 핸드폰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꽤 많을 것이다.

사회는 사회의 변화에 적응된 사람들을 지속적으로 필요로 한다. 이 과정을 담당하는 것이 교육이다. 그래서 교육은 필연적으로 계속적인(ING) 교육을 지향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요즘의 많은 사람들이 ‘공부하지 않는다’는 것을 ‘죄를 짓다’와 비슷하게 느끼는 것도 이런 사회적 암시가 사람들의 무의식을 지배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압박감만 주는 것은 부작용이 많다. 오히려 자포자기(自暴自棄)하게 하거나, 도무지 효율이 없는 교육을 계속하게 만든다. 그래서 오래 공부를 지속시키면서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찾았을 때, 놀랍게도 공부와는 완전히 반대라고 생각했던 ‘놀이’를 발견하게 되었던 것이다.

재미있는 공부, 이것이 새로운 교육의 화두(話頭)이다. 왜냐하면 오늘날의 공부라는 것은 한 번 시작하면 죽을 때까지 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아주 효율적으로 따라가야 한다. 폭발하듯이 팽창하는 과학과 인문학의 지식들을 되도록 자연스럽게 흡수하는 과정을 교육이 ‘재미’를 통해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공부를 잘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두려움을 버리고, 재미를 느껴라. 어떻게 하면 재미있게 공부에 다가갈 수 있는지 생각해보라. 지금은 재미있게 공부해야 하는 때이다. 샬롬~


Japanese Version [日本語]


勉強の楽しさ

2011-01-09 牧羊コラム

 

私が幼いころ、教育はいつの時も厳重なものでありました。先生は常に手に鞭を持ち様々な理由で子供に体罰を与える人でした 。なので、先生がやってくると、隠れたり逃げる生徒もいるほどでした。会ってもいい事なんてなかったから...

ですが、今は世代が変わりました。体罰を禁止する社会的雰囲気のせいでもありますが、ある意味では教育自体に対する視線が変わったという気もします。言ってみれば、厳重な教育から楽しい教育へと教育の戦略が変わったとも言えます。

もちろん教育の根本的な目標は人格の実現であります。ここにその人が属する社会との関係を円滑にし、進んでは「社会を支える人を養成すること」という目標が足されます。

人格の実現とはその根本は変わらないのですが、人間が生きていく社会は時代に沿って素早く変わっています。だから、教育もその戦略も修正し様々な試みをやりかねないのです。

例えば、朝鮮時代(14世紀~19世紀)の教育を考えてみましょう。代表的な教科書は「四書三経」という本でした。この本はとても難しく深悟なものでしたが、子供から老人にかけて基本的な教科書となっていたという点は、今の時代に比較してみるととても単純でした。日本に来て生活しながら経験してみると、漢字を克服 するということも容易ではありません。ですが、生活言語以上のもの必要とする人はごく少数に過ぎません。結局、大半の人はある程度の教育を受けたら自然と止まってしまうのです。

ですが、今の時代は一生教育の時代です。

金融とIT関連企業が社員全体にi-phoneを無償で支給したという記事を目にしました。外部で見るにはとても羨ましい様に見えますが、果たしてそうでしょうか?その会社の40~60代の社員にとってはi-phone、ツイッター、フェイスブックなどがすべて勉強の対象になります。

正直、携帯電話は電話であればいいという考え方をする人もかなりいることでしょう。

社会は社会の変化に適応する事ができる人を持続的に必要とします。この過程を担当するのが教育です。だから教育は必然的に継続的な教育を指向しかねません。最近の多数の人達が「勉強をしない」ということを「罪を犯す」と似ているように感じるのもこういった社会的な暗示が人を無意識に支配しているからなのかも知れません。

ですが、圧迫だけを掛けることには副作用も多く自暴自棄にしてしまったり、まったく効率の無い教育を続けさせてしまう事があります。だから、長く勉強を持続させ一番効率よく勉強探した時、まったく違うと考えられた「遊び」という方法を発見したのです。

楽しい勉強、これこそが新しい教育の話頭です。何故かというと、今の時代の勉強は一度始めたら死ぬまで続けなければいけない物だからです、しかもとても効率的に...爆発的に膨張する科学と人文学の知識をできるだけ自然と吸収する過程を教育が「楽しさ」を通じて追及しているのです。

勉強が出来るようになりたいですか?そしたら怖がらず楽しんでください。どうすれば楽しく勉強に近づけるか考えてください。今こそ楽しく勉強をする時なのです。シャロー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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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는 이번 세월호 침몰 사고로 아이를 잃은 유가족입니다.

저희는 그나마 아이의 시신이라도 안아보고 보냈지만 아직도 아이를 만나게 해달라고 비통한 울음으로 진도에서 기다리는 분들을 위해 먼저 기도 부탁드립니다.

또한 함께 희생당한 승무원들과 교사들, 아르바이트생, 일반인 승객들에게도 조의를 표하며 저희의 애절한 마음이 전달되기를 바랍니다.

사고로 아이를 잃고 경황이 없는 중에 전국민 장례축제처럼 전국 분향소 설치에 이런저런 햇빛대안을 내놓고 생색을 내는 사고대책본부 및 관할정부들의 행태에 엄청난 사기극을 보는 것 같아, 자식 잃은 슬픔만을 나눌 수 있는 처지가 못됩니다.

사고 첫날부터 구조할 수 있음에도 안하고, 회의만 하고 브리핑만 하고, 사진만 찍어대는 이 정부를 저희는 믿고 기다렸습니다. 

당시의 언론은 최선의 구조라고 했습니다.

현장에 저희 부모들이 두 눈 뜨고 보고 있었지만 아무 것도 안했습니다. 내 가족을 위해 일하러 나가고 꼬박꼬박 세금 내고 정부를 믿고 있던 저희는 무력한 서민입니다.

자식을 잃은 엄청난 슬픔과 희생을 안겨주고 졸지에 유족이 된 저희들에게 심리지원이니, 생활안정대책이니 언론에 유포하고 국민들의 마음을 잡으려는 이들은... 나머지 애들을 수습하는 것은 뒷전이 되어버렸네요. 

아직 못찾은 시신도 있는데 … 

오히려 유족끼리 위로하며, 진실 왜곡에 분노하는 국민들과 자원봉사자들에게 미안해 합니다.

동영상속의 내 천진한 아이들

“엄마아빠 사랑해요. 내동생 어떡하지?”

“야~헬리콥터 보인다”

가만 있으라는 방송에 천진하게 “네”라고 대답하며 오히려 선생님을 걱정했던 내 새끼들!

저희는 동영상을 보며 피가 거꾸로 솟는 고통을 느꼈습니다.

아직도 믿어지지 않습니다. 여러분 저희는 궁금합니다.

암초니 뭐니 하더니, 선장을 제물로 내세우고, 과적이 문제라고 하시는데, 대체 무엇 때문에 어른들을 믿고 기다리던 아이들을 구조하지 않고 카메라만 들이대고 언론플레이만 하셨는지…

그 아이들을 버려두고 탈출해서 나타나지 않는 선생과 길 잃은 학부모들에게 대안이나 위로조차 하지 않는 단원고 교직원들…

방송에는 학교정상화를 얘기하는데 저희는 아침마다 건강하게 등교하는 아이들을 보며 비통하고 부러운 심정입니다.

재학중인 아이들도 저희 아이들입니다. 저희는 아직도 학부모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고유업무를 망각하고 책임회피만 하는 교직원들에게 남은 아이들을 맡겨두는 것도 용서할 수는 없습니다.

저희도 학교정상화는 되어야 된다고는 생각합니다.

단지 제 아이들이 하늘에서나마 다같이 활짝 웃을 수 있도록 사고의 진상을 규명해 주세요.

그럴 수 있도록 여러분들이 힘을 실어주세요. 믿을 수 있는 분들의 특검을 요구합니다.

저희는 시위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땅의 국민으로서 내 새끼를 잃은 유족으로서 당연히 요구할 수 있는 권리입니다.

마지막으로 저희 아이들을 찾아주셔서 감사드리며, 우리 아이들의 천진한 얼굴 하나하나 꼭 기억해 주십시오.


2014.5.3 단원고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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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양칼럼의 목적

2011-01-02 목양칼럼

 


매주 규칙적으로 글을 쓰는 일이 쉽지는 않다. 신앙에 대한 이슈들을 오래 생각하고 공부해서 글을 쓰기도 하고, 갑작스럽게 떠오른 아이디어로 글을 쓰기도 한다. 시간이 좀 넉넉할 때에는, 쓰고 싶은 글제목을 미리 잡아두는데, 이렇게 하지 않으면 마감시간에 쫓겨서 애를 태우는 경우가 생기게 된다.

목양칼럼은 목회자로서 교우들에게 띄우는 편지이기도 하지만, 공명(共鳴)을 위한 노력이기도 하다. 신앙뿐 아니라 다양한 생각의 바탕을 함께 공유하여서, 내가 목사로서 느끼는 것을 같이 느끼고 생각하게 하려는 것이 이 칼럼을 계속해서 연재하는 개인적 목적이다.

그래서 나는 신앙의 이야기뿐 아니라, 내가 관심 가지는 것과 나의 문학적인 창작물까지 다양하게 이 칼럼의 공간에 채워왔다. 설교만큼이나 고민의 흔적이 역력하고, 때로는 일기장과 같은 정서의 진솔한 고백이 담긴 것도 그 때문이다.

글은 말과 함께 의사를 전달하는 수단이다. 그러나 단순히 그것만은 아니다. 음식이 생존의 조건이면서 또한 ‘요리’라는 문화도 되는 것처럼, 글도 생각을 전달할 뿐 아니라 인간이 공유하는 정서적 감동과 자극의 통로가 된다. 더구나 말과 달리 글은 쉽게 사라지지 않고 오래 남아 영향력을 미치기 때문에 더 책임감이 따르는 섬세한 작업이 아닐 수 없다.

2011년에는 특별히 이 칼럼을 한국어와 일본어로 발행할 예정이다. 그간에 얼마간 테스트를 해왔는데, 현재로서는 80~90% 정도로 만족한다. 바라는 바는, 한국어로 쓰여지는 칼럼의 미세한 표현들이 일본어로 보다 유연하게, 그리고 감동적으로 전달되는 것이다.

이러한 칼럼은 단순히 매주 주보와 홈페이지를 채우는 콘텐츠로 한정되지 않고, 결국에는 책으로 묶이고 발간하게 되는 것이 개인적인 바램이다.

그래서 앞으로는 더 다양하고 심도 깊은 글을 쓰려고 노력할 생각이다. 설교 한 편을 완성하는 만큼이나 정성을 기울여서 글이 부실하거나 후회스럽지 않도록 하고 싶다.

다행스럽게도 올해에는 집사님들이 교회의 사역을 많이 담당하고 조력해 주면서 목회자로서 이러한 소망을 위해 좀 더 집중할 수 있는 상황들이 만들어질 것 같다. 하나님께 감사하고, 함께 동역하는 집사님들에게도 감사한 일이다.

목사로서의 이러한 도전은 결국에 교회의 모든 교우들에게 유익이 돌아가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글이 다듬어진다는 것은 생각이 정리되고 메시지가 명확하게 된다는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글을 쓰는 훈련은 설교를 변화시킬 것이다. 어쩌면 이런 훈련이 설교를 풍요롭게 하는 가장 훌륭한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새해가 밝았다. 올해 목사로서 나의 비전은 동역자를 세우는 것이다. 그래서 더 많이 권한을 위임하고 역할을 분담하려고 한다. 그리고 그렇게 얻은 소중한 시간과 여유를 가지고, 목사로서 가장 본질적인 부분을 성장시키기 위하여 집중할 것이다.

동경드림교회가 세워지고 있다. 내 힘이 아니라, 주님의 능력과 모두의 힘으로 세워지고 있다. 가슴이 설레인다. 올해는 왠지 모든 것이 잘 될 것만 같다. 기대가 생긴다…



Japanese Version  [日本語]



牧羊コラムの目的


2011-01-02 牧羊コラム

 

毎週規則的に文を書くことは易しくない。信仰についての問題について深く考え勉強して文を書いたり、急に思い出されたアイデアを文に書いたりする。時間に少し余裕がある時は、書きたい文の題名を先に決めておくが、このようにしないと期限に追われて心を焦らせる事が多々ある。

牧羊コラムは牧会者として教友に向けてのメッセージでもあるが、共鳴するための努力でもあるのだ。信仰だけではなく多様な思考の背景を一緒に共有し、私が牧師として感じることを一緒に感じて考えてもらおうとする事がこのコラムを続けて連載する個人的目的だ。

だから私は信仰の話だけではなく、わたしが興味を持っていることや私の文化的な創作物まで多種多様にこのコラムの空間を埋めてきた。説教のように悩みの痕跡が残り、時には日記のように情緒の真率な告白が込められている事もそのせいだ。

文は言葉と一緒に意志を伝達する手段だ。だが単純にそれだけではない。食べ物が生存の条件でありまた‘料理’という文化になるように、文も考えを伝達するだけではなく人間が共有する情緒的感動と刺激の通路になる。そのうえ言葉と違って文は簡単に消えず、長く残り影響力を及ぼすためもっと責任感が伴う繊細な作業であるのだ。

2011年度には特にこのコラムを韓国語と日本語で発行する予定だ。これまで短い間テストをしてきたが、現在としては80~90%程満足している。願わくは、韓国語として書かれるコラムの微妙な表現まで日本語でもっとスムーズに、感動的に伝達されることだ。

このようなコラムは単純に毎週、週報とホームページを埋めるコンテンツとして限定されず、 結局、本として編集され発刊されることが個人的な望みだ。

だからこれからはもっと多様で芯が深い文を書こうと怒力する考えだ。説教一遍を完成するほど努力を尽くして文が不悉で後悔しないようにしたいと思っている。

今年は執事(教会役員)の方々が教会の使役をたくさん担当し助力して下さい牧会者としてこのような所望のためにもっと集中できる状況を作ることができそうだ。神様に感謝し、一緒に同役する執事の方々にも感謝しなくてはならない。

牧師としてこのような挑戦は結局教会のすべての教友達にも有意義なことだと思う。なぜなら文が纏まるという事は考えが整理されメッセージが明確になることと違いがないからだ。文を書く訓練は説教を変化させるだろう。このような訓練は説教を豊かにする最も素晴らしい過程かもしれない。

新年が明けた。今年牧師としての私のヴィジョンは同役者を立てることだ。だからもっと多くの権限を委任して役割を分担しようと思う。そしてそのように得た貴重な時間と余裕を持って、牧師として最も本質的な部分を成長させることに集中しようと思う。

東京ドリーム教会が建てられている。私の力ではなく、神様の能力と皆の力で立てられている。

心が躍る。今年はなんだか全ての事が上手くいく予感がする。期待が沸いてく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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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26 별이 빛나던 밤 (2)



마리아가 오랜만에 웃었다. 나도 행복했다……

봄기운이 한참이던 날, 우리는 결혼의 꿈에 부풀어 있었다. 곧 마리아와 가정을 이루게 될 것을 생각하니 행복하기만 했다. 더 열심히 일해서 좋은 남편과 아버지가 되어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녀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라면 언제나 최선을 다하리라.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마리아의 얼굴이 어두웠다. 마침내 그녀가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사실을 말해 주었을 때, 나는 혼란스러웠다. 마리아에게 천사가 나타났다는 말, 그리고 그녀의 몸 속에 아기가 생겼다는 이야기. 나는 그녀를 믿는다. 마리아는 적어도 이런 식의 거짓말로 나를 속일 여자가 아니다. 하지만 믿는 것과 받아들이는 것 사이에는 아직도 큰 강물이 흐르고 있었다.

밤을 새워 기도하고, 고민했다. 그리고 나는 며칠 후에 그녀에게 이별을 통보했다. 그녀를 믿지 못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에게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특별한 그녀와 그녀의 아기를 지켜주기에는 나라는 인간이 적당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마음이 넓지도, 형편이 넉넉하지도 않은 내가 어떻게 그녀를 예전과 같이 사랑할 수 있을까?

그러나 하나님은 끈질기셨다. 마침내 나의 꿈에도 천사가 나타났다. 천사는 두려워서 망설이는 나의 마음에 확신을 주었다. 갑자기 모든 것이 명백해졌다. 비록 내가 충분하지는 않더라도, 하나님은 내게 그것을 원하신다. 마리아를 사랑하고, 아기를 지켜주는 것이 나의 사명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주신 아기, ‘예수’ 말이다.

비록 초라해도 나 역시 다윗의 후손이다. 다윗 왕이 품었던 이상과 꿈은 여전히 내 핏속에도 흐르고 있다. 그것은 권력이 아니라 평강의 왕국에 대한 꿈이다. 하나님이 왕이 되셔서 모든 이스라엘을 평강으로 다스리시는 꿈, 나는 그것을 믿었다.

로마의 황제 아우구스도가 호적령을 내렸다. 모두 자기 고향에 돌아가 가족을 신고해야 한다.

나는 이미 만삭이 된 마리아와 함께 여행을 했다. 계절은 겨울에 들어서고 있었다. 낮이면 온화한 날씨에 견딜 만 하였지만 밤이면 매서운 추위가 몰려왔다. 만삭의 마리아를 데리고 여행하기에는 모든 것이 적당하지 않았다.

베들레헴은 작은 마을이다. 갑자기 사방에서 몰려든 여행객들로 인하여 여관은 만원(滿員)이었다. 마리아를 위해 열심히 방을 찾았지만 빈방은 없었다. 매서운 밤이 다시 찾아오고 있었다.

갑자기 산통(産痛)이 찾아왔다. 마리아는 겁에 질린 표정으로 아기를 낳을 것 같다고 말했다. 항상 어려운 일은 한꺼번에 몰려온다. 나는 필사적이었다. 마리아가 길거리에서 아기를 낳게 할 수는 없었다. 하나님께 마음으로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한 여관 주인이 마구간을 빌려주었다. 건초를 깔아 마리아의 자리를 마련하고, 물을 끓여서 해산(解産)을 준비했다. 결국 아무도 우리에게 관심을 주지 않았던 그 밤, 내 손으로 아기를 받았다. 천사가 말했던 하나님의 아들, 내 조상 다윗이 꿈꾸었던 그 왕국을 이루어줄 아기는 그렇게 세상에 태어났다. 빨간 피부의 아기가 눈을 감고 울었다. 아니, 울음이 아니라 세상에 무사히 도착했음을 알리는 고운 노래 소리 같았다.

마리아와 나는 감격에 가득 차서 아기를 보고 또 보았다. 밖에는 거친 바람이 불고 있었지만, 아기의 평화가 마구간을 덮고 있었다. 별이 유난히도 빛나던 밤이었다….



星が輝いた夜に

2010-12-26 牧羊コラム

 

マリアが久々に笑った。私も幸せだった…

春の気配が特に感じられる頃、私たちは結婚の夢にふくらんでいた。もうすぐマリアと家庭を築くことを思うとただただ幸せだった。もっとしっかり働いて良い夫と父になろうと思っていた。彼女を幸せにするものなら常に最善を尽くそう。

だがいつからかマリアの表情が暗くなった。ついに彼女が無花果の木の下で事実を言ってくれた時、

私は混乱していた。マリアの前に天使が現れたこと、そして彼女が子供を身ごもったという話。

私は彼女を信じる。マリアは少なくともこんなふうに嘘をつく女性ではない。だが信じることと受け入れることの間にはまだ大きな溝があった。

夜を更かして祈り、悩んだ。そして私は何日後に彼女に別れを告げた。彼女を信じられないからではなく、私自身に自信がなかったからだ。特別な彼女と彼女の子供を守るには私という人間が適切ではないと思ったからだ。

心が広い訳でもなく、財産が多いわけでもない私がどうやって彼女を昔の様に愛せるだろうか?

だが神様は根気強かった。ついに私の夢の中にも天使が現れた。天使は恐れて戸惑う私の心に確信を持たせた。突然全てが明確になった。私が充分でなくても、神様は私にそれを望んでいるのだと。

マリアを愛し、子供を守るのが私の使命だと。神様がイスラエルのためにくださった子供「イエス」だと。

何の取り柄もない私だが私はダヴィデの子孫だ。ダヴィデ王が抱いた理想と夢は変わらず私の血の中に流れ続けている。それは権力ではなく平安な王国に対しての夢だ。神様が王になりすべてのイスラエルを平安に治めるという夢、私はそれを信じた。

ローマの皇帝アウグストが戸籍令を出した。皆自分の故郷に戻り家族を申告し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

私はもう出産を控えたマリアと旅に出た。季節は冬に差し掛かっていた。昼は温暖な天気で耐えることができたが夜は厳しい寒さが訪れた。出産を前にしたマリアを連れて旅に出ることはすべて適切ではなかった。

ベツレヘムは小さい村だった。いきなり四方からやってくる旅行客のせいで旅館は満員だった。マリアのために必死に部屋を探したが空き部屋はなかった。厳しい夜がやってきていた。

いきなり産痛がやってきた。マリアはこわばった顔で子供が生まれそうだと言った。いつだって苦難はいっきにやってくる。わたしは必死だった。マリアに道端で子供を産ます訳にはいかなかった。神様に心の中で祈りまた祈った。

一人の旅館の主人が馬小屋を貸してくれた。乾草を敷きマリアが寝る場所を作り、水を沸騰させ解産を準備した。結局だれも私たちに関心を向けなかった夜、私の手で子供を受け取った。天使が言っていた子供、私の祖先ダヴィデが夢見ていた王国をかなえてくれる子供はそうしてこの世に生まれた。

赤い皮膚の子供が目をつぶり泣いていた。いや、泣き声ではなくこの世に無事に到着したことを告げる歌声のようだった。マリアと私は感激して子供を何度も見直した。外には冷たい風が吹いていたが、子供の平和が馬小屋を包んでいた。星が特に輝く夜だっ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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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19 별이 빛나던 밤 (1)


공기는 맑고 바람은 시원했다. 별이 보석처럼 빛나는 밤이었다. 결혼을 앞둔 마리아는 되도록 외출을 삼가고, 집안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았다.

정숙한 여인들은 모두 그렇게 한다. 결혼식을 올리고 한 남자의 아내가 되기까지 가장 행복하고 순결한 신부가 되기 위하여 준비하고 또 준비했다.

남편이 될 요셉은 고요한 사람이었다. 몇 번을 만났지만, 요셉은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와 함께 같은 공간을 공유하며 옆에 있는 것 만으로도, 마리아의 마음은 설레었다.

마리아는 특히 요셉의 옆얼굴이 맘에 들었다.

마리아가 이런저런 일상들을 말 할 때에, 고요하게 허공을 응시하며 살짝 미소를 짓는 요셉의 옆 얼굴은 따뜻하고 부드러웠다. 백 마디의 말 보다 더 신뢰가 가는 얼굴이었다.

이런 사람의 아내가 되어 한 평생을 산다면 행복하리라…

마리아는 요셉과 함께 살아갈 미래가 이미 눈에 보이는 것 같았다. 따뜻한 사랑이 가득 하고,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라가는 가정, 늙어서도 결코 후회하지 않을 가정을 가지게 된다는 것은 모든 여인들의 꿈이었다. 마리아는 그런 가정을 지금 자신에게 주시려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그래서 그녀의 기도는 평소보다 깊고 진했다.

바로 그 때에 천사가 나타났다. 빛의 옷을 입은 천사는 아주 가까운 이웃이 예고 없이 문을 열고 방문하는 것처럼 그렇게 마리아 앞에 나타났다. 언제나 그렇게 해왔다는 것처럼, 모든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오히려 이상했다.

천사가 말했다. 당신은 하나님의 은혜를 이미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당신과 함께 하십니다. 그러니 평안하십시오.

천사가 평안이라는 말을 했을 때에, 그 말은 부드러운 양털처럼 마리아의 두려운 마음과 떨리는 어깨를 덮어주었다. 마리아는 아무 것도 염려할 필요가 없다는 믿음의 말을 되뇌었다.

천사가 다시 말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큰 은혜를 주시려고 합니다. 당신은 이제 아이를 가지게 될 것입니다. 그 아이가 태어나면 이름을 ‘예수’라고 하십시오. 그분은 장차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려질 것이며, 다윗 왕의 영광과 권세를 가지실 것입니다. 그리고 영원히 이스라엘을 다스리실 것이며, 그분의 나라는 무궁할 것입니다.

마리아는 하나님이 너무 급하시다고 생각했다. 아직 결혼식도 올리지 않았는데… 요셉을 남편으로 맞은 이후에야 있을 일을 벌써 말씀하시다니… 부끄러움을 느끼며 마리아는 조용히 혼잣말처럼 속삭였다.

그러나 천사는 그 말에도 대답했다. 결혼 후가 아니라 지금의 일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한이 없으십니다. 당신의 친척인 늙은 엘리사벳이 아이를 가지는 것이나, 처녀인 당신이 아이를 가지는 일은 모두 하나님께는 지극히 작은 일에 불과합니다.

마리아는 귀를 의심했다. 하나님이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 분이라는 사실은 이미 믿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이 기적은 그녀가 원한 것도 아니며, 기도한 것도 아니었다. 더구나 이제 곧 있을 그녀의 결혼식은 어떻게 한단 말인가? 아이를 가진 몸으로 요셉을 어떻게 다시 본다는 말인가?

눈물이 나왔다. 그녀는 간신히 입을 열고 마른 입으로 대답했다.

나는 하나님 앞에 계집종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면 그 일은 무엇이든 내게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리고는 천사는 떠났다. 빛이 사라진 방에는 마리아의 흐느낌만이 오래 남았다.

어둠 속에서 별은 여전히 빛나고 있었다.



星が輝いた夜に

2010-12-19 牧羊コラム

 

空気は澄んでいて風は涼しかった。星が宝石のように輝く夜だった。

結婚を控えていたマリアはなるべく外出を控え、家の中で過ごす時間が多かった。

しっかりしている女は全員ぞのように行う。結婚式を挙げ一人の男の女になるまで一番幸福で純潔な新婦になるように準備しまた準備した。

夫になるヨセフはほとんどしゃべらない無口な人だった。だが彼と一緒の空間を共有し、横に居るだけでマリアの心はドキドキした。マリアは特にヨセフの横顔が好きだった。マリアがいろいろな日常のことを言うときに、静かに空を凝視し少し微笑むヨセフの横顔は温かく優しかった。百の言葉より信頼がある表情だった。

こんな人の妻になり一生を過ごしていけたら幸福かな…

マリアはヨセフと一緒に生きていく未来が目に見えているようだった。温かい愛に満ち、子供たちが健康に育っていく家庭、老人になっても後悔しないような家庭を持てるようになることはすべての女性の夢だった。マリアはそんな家庭を自分に与えようとしている神様に感謝しまた感謝した。だから彼女のお祈りはいつもより深かった。

まさにその時、天使が現れた。光の服を着た天使はとても親しい近所の人が訪れるようにマリアの前に現れた。いつもこんなふうにしてきたかのようにすべては自然で逆に変だった。

天使が言った。あなたは神様の恩恵をもう受けました。神様はいつもあなたと一緒に居ます。だから平安してください。天使が平安ということを言った時、その言葉は柔らかい羊毛のようにマリアの恐れる気持ちと震える方を抱きかかえた。マリアはなにも心配する必要はないという神様を信じる言葉を思い返した。

天使がまた言った。怖がらないで下さい。神様があなたに大きな恩恵を与えようとしています。あなたは今から子供を持つようになります。その子供が生まれたら「イエス」と名付けて下さい。その方は将来神様の子と呼ばれるようになり、ダヴィデ王の栄光と権勢を持つでしょう。そして永遠にイスラエルを治め、その方の国は無窮になるでしょう。

マリアは神様が速すぎると思った。まだ結婚式もあげてないのに… ヨセフを夫として迎えた後にあるようなことをもう言われるとは… マリアは静かに独り言のように呟いた。

だが天使はその言葉にも答えた。結婚の後ではなく今のことを言っています。神様の能力には限りがありますん。あなたの親戚の老いたエリサベツ子供を持つような事や、処女のあなたが子供を持つことは神様にはすべて小さいことに過ぎません。

マリアは耳を疑った。マリアは神様が奇跡を起こせる方だともう信じていた。だが今のこのような奇跡は彼女が望むものでもなく、お祈りしたものでもなかった。そのうえもうすぐにある結婚式はどうするというのか。子供を持った体でどうやってもう一度ヨセフの顔を見ることができるのか。

涙があふれた。彼女はやっと口をあけ渇いた口で答えた。

私は神様の前では一人の下女に過ぎません。神様が願うのであればそのことは何であろうと私に起こるでしょう… 天使は去って行った。光が消えた部屋の中にはマリアの鳴き声だけが響いていた。星は変わらず静かに光り輝いてい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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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12 끝까지 순결한 교회가 되기를


어깨가 시리다. 옷을 덮어도 따뜻하지 않다. 한밤의 한기(寒氣)는 몸을 찌르는 바늘처럼 깊이 스미고 떨게 한다. 한 마디의 기도가 힘겹다. 새벽이 오려면 아직 멀었는가? 그러나 예배당의 창가에는 무심한 어둠만이 서성거리고 있다.

이번 토요일이 내가 동경드림교회에 부임한지 5년을 채우는 날이다.

한 해가 가고 새해를 맞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지만, 5년이라는 세월을 채운다고 생각하니 더욱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돌이켜 보면, 참 길었던 세월이었다.

일본에 와서 매해를 넘길 때마다 마음 편하게 희망만을 생각한 적이 없는 것 같다. 교회와 교인들로 인하여 늘 무거운 짐을 지고 지냈다. 한 걸음의 앞도 보이지 않는 지독한 현실 속에서 목사라는 자리는 무겁고 외로웠다.

그 날들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오직 기도하는 힘이 아니었나 한다.

기도는 내 마음의 고민과 슬픔과 두려움으로부터 도피할 수 있는 유일한 피난처였다. 식어가는 가슴을 다시 열정으로 채우고, 보이지 않는 희망을 믿으며, 다시 강단에 올라갈 수 있었던 것은 오직 기도의 능력 때문이었다.

내 자신만의 기도를 자랑하기 위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사실 동경드림교회를 위해 기도해주는 분들은 많이 있다. 또한 예전에 비하여 동경드림교회의 식구들도 더 간절히, 더 많이 기도하게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들의 기도가 하나가 되어, 우리들의 교회를 지켜온 것이다.

목사로서 동경드림교회를 향한 바램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앞으로 교회가 커지고 부유하게 되어도 이 가난한 시절의 기도와 마음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그래서 교회를 지키는 것이 결코 조직이나 돈의 힘이 아니라, 바로 춥고 깊은 밤을 지새우며 간절하게 기도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의 기도 때문이라는 것을 기억했으면 한다.

점점 교회의 순수성이 지켜지기 어려운 시대가 되고 있다. 이제 사람들은 사업(business)을 하는 교회에 익숙해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선택할 때에 신앙과 비전보다 편리함을 더 앞세운다는 것은 참 씁쓸한 현실이다.

사람은 환경을 지배하기도 하지만, 환경의 영향을 받기도 한다. 그래서 이런 시대를 살아가다 보면, 점점 순수함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늘어간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결코 이런 모습을 기뻐하시지 않으신다.

교회는 순수해야 한다. 부흥해야 하지만, 순결함을 지키는 것이 더 우선이다. 그리고 성경은 순결한 교회에 결국에는 하나님께서 부흥을 부으신다고 약속하고 있다.

서로 사랑하고, 모이면 예배하고, 모든 것에 대하여 기도하고,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고 살아가자. 그러면 추운 밤도 이겨낼 수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주신 그 소망의 교회를 동경에 세울 수 있다. 후회하지 않을 수 있다.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으신다. 아멘!



最後まで純潔な教会になるように

2010-12-12 牧羊コラム


肩に寒さがしみる。服を着ても温かくならない。夜中の寒気は体を刺す針のように深くしみ、ふるえさせる。一語のお祈りさえ辛い。夜明けが来るにはまだ早いのか。礼拝堂の窓辺には心無き闇だけが行き来している。今週の土曜日が私が東京ドリ-ム教会に赴任して5年を満たす日だ。

一年が過ぎ新年を迎えることも意味のあることだが、5年という月日を満たすと考えるとよりたくさんの考えが頭の中を駆け巡る。振り返ってみると、とても長い歳月だった。

日本に来て毎年を越すたびに心安らかに希望がけを考えていたことがなかつたようだ。教会と教員達のせいでいつも重荷を背負って生きた。一歩の先も見えない真っ暗な現実の中で牧師という場所は重く孤独だった。そんな日々を耐えることができたのは唯一お祈りする力があったからではないかと思う。お祈りは私の心の悩みや悲しみ、恐怖から逃れる事ができる唯一の救いだった。冷めていく心をまた熱情で満たし、見えない希望を信じ、また講壇に登ることができたのは唯一お祈りの力だった。

私自信のお祈りを自慢するために言っている言葉ではない。事実、東京ドリ-ム教会のためにお祈りしてくださる方は沢山いる。また以前に比べ、東京ドリ-ム教会の家族たちももっと切実に、もっと多くお祈りするようになっていると思う。だから私たちのお祈りが一つになり、私たちの教会を守ってきたのだ。

牧師として東京ドリ-ム教会に向けての願いが一つあるとすれば、それはこれから教会が大きくなり、裕福になってもこの貧しい時期のお祈りと心を忘れないでほしいということだ。教会を守ることが決して組織や金の力ではなく、寒く長い夜を過ごしながら切実にお祈りする人一人、一人のお祈りのおかげだということを記憶してほしい。

どんどん教会の純粋さを守ることが難しい時代になりつつある。もう人々はビジネスをする教会に慣れてきている。沢山の人々が教会を選ぶときに信仰やビジョンより便利さを追求するということは本当に苦い現実だ。

人は環境を支配するが、環境の影響も受ける。だからこんな時代を生きていくと、どんどん純粋さを失う人が増えていく。だが神様は決してこのような姿は喜ばない。

教会は純粋でなければならない。リバイバルしなければならないが、純潔さを守ることの方が優先でなければならない。そして聖書には純潔な教会はリバイバルすると約束されている。互いに愛し、集まれば礼拝をし、すべての事に対してお祈りし、いつも喜び、何事にも感謝しながら生きていこう。そうすれば寒い夜も耐えることができる。神様は私たちの心にその所望する教会を東京に建てる事ができる。

神様は決して私たちを失望させることがない。

ア-メ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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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05 사라에게 배웁시다



아브라함은 성경에서 ‘믿음의 아버지’라고 불려지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도 결코 완전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아브라함에 대한 성경의 기록을 읽어보면, 많은 실수와 허물이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허물은 누구보다 아브라함의 아내였던 사라에게 잘 보였을 것입니다.

특별히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닥친 지독한 가뭄을 피해 이집트로 피난을 갔을 때에, 그는 아내에게 큰 실수를 했습니다. 위험을 모면하기 위해 아내를 누이동생이라고 거짓말 했고, 이로 인하여 아브라함은 이집트의 왕에게 잠시 아내를 빼앗겼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개입하셔서 사라가 다시 무사히 돌아오기는 하였지만, 사라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무척이나 속상하고 두려운 경험이었을 것입니다.

아내들은 누구나 자기 남편이 어떤 위기에서도 용감하게 아내를 보호해 줄 사람이라고 기대를 합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그 기대를 실망시키고 잠시나마 아주 비겁하게 행동했습니다. 충분히 사라가 항의할 수 있고, 가정에 불화가 생겨날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사라는 이런 과정 속에서도 불평하지 않았고, 남편과 불화(不和)하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성경은 사라에 대하여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벧전3:6)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여 순종한 것 같이 너희는 선을 행하고 아무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아니하면 그의 딸이 된 것이니라

 

사라는 많은 실수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을 ‘주’라고 불렀습니다. 그 호칭은 아내로서 남편에게 주는 소망의 언어였습니다. 이러한 지혜로운 행동으로 인하여, 사라는 아브라함을 ‘믿음의 아버지’로 만들어갔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사람을 통해 사람을 세우십니다. 그래서 성경을 읽어보면, 훌륭한 사람의 옆에는 항상 훌륭한 조력자(helper)들이 같이 하고 있습니다. 빛나는 조연(助演)으로 인하여 주인공이 더욱 멋지게 보이게 되었던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도 완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실수를 덮어주고 소망을 심을 때에, 사람의 가능성이 자라나게 되고 마침내 좋은 열매를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 다음으로 아브라함에게 많은 영향력을 미친 사람은 그의 아내였던 사라가 아닌가 합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남의 허물을 함부로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겸손하여 항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부족한 사람에게도 사라와 같이 소망의 언어를 심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그리스도인을 통해 세상에 은혜를 주시고, 절망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구원하십니다.

우리 모두 사라에게 배웁시다. 그녀의 지혜가 역사에 빛나고 있습니다. 4000년이 지나도 지혜로운 여인은 진주처럼 소중하게 다가옵니다. 샬롬~


2010-12-05

 

アブラハムは聖書で「信仰の父」と呼ばれる人です。だが彼も完璧な人ではありませんでした。逆にアブラハムについての聖書の記録を見ると、たくさんの失敗や足りない部分があったことを知ることができます。このような足りない部分は誰よりも妻のサラがよく感じたでしょう。

特にアブラハムは[ガナアン]の地にやってきた酷い飢饉を逃れエジプトに非難したとき、彼は妻に大きな過ちを犯しました。危険を回避するために妻を妹だと嘘をつき、このせいでアブラハムはエジプトの王に少しの間妻を奪われたのです。神様が介入してくださってサラが無事に戻ることができましたが、サラの立場から考えるととても傷つき恐ろしい経験であったと思います。

妻は誰もが自分の夫がどんな危機でも勇敢に妻を守ってくれる人だと期待します。だがアブラハムはその期待を裏切り、少しの間とても卑怯な行動をとりました。充分に皿が抗議することもできるし、家庭にもひびが入る可能性もありました。

だがサラはこのような過程の中でも不満を言わず、夫と不和することもありませんでした。聖書はサラについてこのように記録しています。

(ペテロの手紙Ⅰ 3:6)たとえば、サラは夫アブラハムに心から従った。あなた方もどんなことをも恐れずに善いことを行えば、サラの信仰を受け継ぐことができるのである。

サラはたくさんの失敗にも関わらずアブラハムを主と呼びました。その呼び名は妻として夫にあげる希望の言葉でした。このような知恵のある行動を通してサラはアブラハムを「信仰の父」として作って行ったのです。

神様はいつも人を通して人を立てていきます。だから聖書を読んでみると、素晴らしい人の横には素晴らしい助っ人(helper)が一緒にいます。輝く助演として主人公をもっと輝かせたのです。

人の中に誰も完璧な人はいません。だが失敗を攻めず、希望を与えたとき、人の可能性は伸び、最後は結果が実るのです。このような意味で神様の次にアブラハムに多くの影響を与えたのは彼の妻、サラではないかと思います。

あなたたちはキリスト人です。キリスト人は他人の不足な部分を勝手に言ったりしません。逆に謙虚に自分を他人より低く思い、不足な人にもサラのように希望を与える人です。神様はこのような人を通して世界に恩恵を授け、絶望の人を救います。私たち全員サラに習いましょう。彼女の知恵が歴史に残り輝いています。4000年が過ぎても知恵のある女性は真珠のように大事なものです。 

シャロ~ム


Posted by makari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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