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쉬운 길로 가지 마라! makarios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896)
목회 (632)
인생 (179)
동경in일본 (35)
혼자말 (50)
추천 (0)
02-25 06:30
Total
Today
Yesterday

달력

« » 2025.2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2008-04-27


삶이 만만하지 않다는 것은 살아본 사람이면 누구나 느끼는 사실일 것입니다. 

스무 살 어린 시절에는 겁 없는 꿈을 품고 세상을 얕잡아 보기도 하지만, 정작 나이가 들면 그런 용기가 돈키호테의 돌진처럼 무모하게 느껴집니다. 현실감이 생기면서 꿈은 줄어들고, 자신감은 소심함으로 조금씩 바뀌어 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소심함을 '신중함'이라고 포장하게 되지요.

사실은 겁이 나는 겁니다.  사회적 지위가 생기고, 가족이 생기고, 나이를 먹어 가면서 점점 모든 것에 있어 모험보다는 안정을 선호하고, 쉬운 길로 가고 싶은 우리의 마음을 나름 변명하고 싶은 거겠지요. 그것을 비난하거나 자기변절이라고 비하할 필요는 없습니다. 사람의 본능이니까요. 사람은 누구만 그런 것이 아니라, 누구나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살았고, 살고 있답니다.

그러나 진정한 꿈(Vision)은 바로 그 본능을 넘어서는 사람만이 취할 수 있습니다. 안정된 자리에서 다시 모험할 수 있는 용기, 얼마 남지 않은 인생이라도 그것을 마무리가 아니라 새로운 도전에 사용할 수 있는 사람만이 진정한 꿈의 주인일 자격이 있을 것입니다.

나는 평범한 교회를 세우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사람들이 모이고, 나름의 종교생활에 만족하는 교회를 세우려는 것이 아닙니다. 일주일에 한 번 예배에 참여하고 돌아서면 그것으로 하나님을 향한 자기 의무를 다했다는 자만심에 스스로 '크리스찬'이라는 이름 붙이기를 전혀 주저하지 않는 사람들의 교회는 제가 세우려는 교회가 아닙니다. 제가 세우기를 원하는 교회는, 날마다 말씀과 기도로 살아가는 신자들이 있고, 그런 사람들의 관계가 성경이 가르치는 사랑으로 가족과 같은 교회입니다. 또한 그들의 작은 힘이 모아져 시대를 섬기고 중보하는 교회입니다. 교회의 그늘에서는 아이들이 양심과 신앙으로 자라가고, 남편들은 존경을 받는 가장이 되며, 아내들은 부지런하게 가정과 주님을 섬기는 교회입니다.

물론 그런 교회는 쉽게 세워지지 않습니다. 1~2년의 분투로 건물은 지을 수 있어도, 제가 바라는 그런 교회를 세울 수는 없습니다. 적어도 10년의 세월이, 아니 어쩌면 한 사람의 평생이 거름처럼 드려져야 그런 교회가 하나쯤 세워질지 모릅니다. 하지만 제 가슴에는 그런 교회를 향한 꿈이 있고, 그 꿈이 있기에 지금 목회의 자리를 지키는 것입니다.

어려울 것입니다. 그 어려움의 순간마다 나름 선택의 갈림길이 주어질 것입니다. 타협과 포기, 혹은 현실적인 길을 따를 것인지 아니면 끝까지 꿈을 믿고 그 꿈에 자기를 헌신할 것인지 수없이 갈등하며 가는 길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꿈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우리 인생에 정말 아름다운 꽃 하나 피워서 주님의 기쁨과 보람이 될 수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나는 여러분이 평범한 교회가 아니라 특별한 교회를 꿈꾸기를 바랍니다. 

또한 여러분의 인생 역시 평범한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특별한 인생이 되도록 도전하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교회란 역시 거기 모인 사람들의 면면을 통해 그 색깔이 결정되는 것일 테니까요. 우리 인생은 안전하게만 살기에는 너무 짧습니다. 

안전한 것만을 생각하지 마십시오. 격려가 필요하겠지만, 격려만으로 모든 실패를 피해갈 수는 없을 것입니다. 도전하지 않는 방안의 평안 보다는 차라리 인생의 들판에서 모진 바람과 싸워본 실패가 더 영광스러운 것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 실패를 통해 우리는 손에 잡히는 것보다 더 중요한 어떤 것들을 얻을 수 있을 테니까요. 이를테면 용기, 신뢰, 관용, 인내 같은 것들을 말입니다. 샬롬~

'목회 > 목양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08-05-18 기도의 촛불을 듭시다  (0) 2014.04.30
2008-05-08 음식에도 도리가 있다  (0) 2014.04.30
2008-04-20 품어서 이기십시오  (0) 2014.04.30
2008-04-13 아름다운 말  (0) 2014.04.30
2008-04-06 소중한 기회  (0) 2014.04.30
Posted by makarios
, |

2008-04-20


영어의 표현에서 'understand'를 ‘이해한다’라고 번역합니다.

그것은 ‘알다(know)’라는 의미와는 또 다른 것입니다.

그 단어를 분해하면 ‘아래에(under) 서다(stand)'라는 뜻이 됩니다. 이해한다는 것은 그 입장에 서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입장에 서고자 할 때에는 항상, 위가 아니라 아래로 향해야 합니다. 그 겸손의 마음만이 상대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포용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역사상 많은 종교와 신의 이야기가 있었지만, 인간을 진심으로 이해하는 신의 이야기를 성경 이외에서는 만나 본 일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의 영광조차 잠시 포기하시고 한 아기로 태어나 30여년의 인생을 사심으로 사람이 되셨습니다. 그 하나님의 사람 되심이 곧 사람을 진심으로 이해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성경은 우리에게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사회는 점점 더 복잡해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문화적 구조가 복잡해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서로 얽혀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마다 자기의 입장이 있고, 그 입장과 생각이 서로 다르니 우리의 삶도 복잡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서로 충돌이 일어나고, 갈등이 생겨납니다.

사람은 각기 자기의 고집이 있기 때문에, 이러한 충돌이 일어날 때에 언제나 자기만이 옳다고 확신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나름 자기의 생각에는 분명한 논리와 타당성이 있습니다. 그것이 완전히 말도 되지 않는 것을 억지로 주장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더욱 사람과 사람의 조화가 어려운 것입니다.

주님은 화평케 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화평케 하는 자란 그러한 갈등의 현장에서 평화를 만들어내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평화를 만들기 위하여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이해심, 곧 아래에 서는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자기의 주장이 아무리 탄탄한 논리를 가지고 있더라도 상대와 다를 때에 한 번 더 생각하는 신중함은 우리 자신을 위해서도 필요합니다. 또한 그러한 태도를 통하여 우리는 적이 아니라 동지로서 함께 생각할 수 있으며, 그 공존의 과정을 통해 사람다운 평화가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섭섭한 마음이 들거나, 상대를 향하여 화가 날 때에 잠시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 그 사람 아래에 서 보십시오. 물론 당신이라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완벽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모두 나름의 모순을 안고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그 불완전함을 받아들이고, 되도록 이기려는 마음보다 함께 잘 되는 길을 찾으려고 할 때에 평화는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모범을 배웁시다. 그분은 죄인이 아니지만, 죄인과 함께 식사를 하셨습니다. 죄인이라고 상종하지 않거나 모독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모자름을 그분의 온유함으로 덮어 주시고, 과거의 잘못이 아니라 미래의 축복을 향하여 함께 나가기를 권면하셨습니다.

갈등의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 싸워서 이기려고 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결코 성령의 열매가 아닙니다. 품어서 이기십시오. 갈등의 현실을 자기의 내면을 크게 하는 기회로 사용하도록 하십시오. 

그러면 당신도 편안할 것입니다. 주님의 은혜 안에서 말입니다.

샬롬~

'목회 > 목양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08-05-08 음식에도 도리가 있다  (0) 2014.04.30
2008-04-27 특별한 교회를 꿈꾸자  (0) 2014.04.30
2008-04-13 아름다운 말  (0) 2014.04.30
2008-04-06 소중한 기회  (0) 2014.04.30
2008-03-30 네 나중은 창대하리라  (0) 2014.04.30
Posted by makarios
, |

2008-04-13


가만히 보면, 착한 행실을 하면서도 말이 덕스럽지 못해서 그 행실의 값을 까먹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정말 열심히 섬기고 입만 단속하면 모두가 감동하고 칭찬할 터인데, 스스로 공치사를 하거나 혹은 무례한 한 마디를 덧붙여 오히려 그 섬김이 욕이 되게 하는 것은 참 미련한 일입니다.

속담에 이르기를, 한 마디 말이 천 냥의 빚을 갚는다고 했거니와, 성경도 혀가 지극히 작은 지체로되 온 몸을 어거(馭車)한다 하였습니다. 그래서 말이 이쁘면 행동이 조금 모자라도 이해받고 칭찬을 들을 수 있지만, 말이 나쁘면 선한 일도 오해를 사고 주변의 친구를 적으로 만들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은 특별히 말에 정성을 담아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육신이 되신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거니와, 신자의 구원도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전함으로 말미암으니 곧 신자의 말이 구원의 방편이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입이 축복의 샘인데, 그것을 잘 관리하지 못해서 더러운 언어와 세상의 혈기로 더럽히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으십니다.

목사가 간혹 말에 대하여 권면을 하곤 합니다. 말을 단지 의사소통의 수단으로만 여기면 지금 쓰는 말도 불편하지 않은데, 왜 목사가 그렇게 집요하게 말의 품질을 가지고 따지는지 의아할 것입니다. 그러나 다시 말하거니와, 신자의 말은 단순한 의사소통의 수단이 아니라, 덕을 세우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가장 중요한 방편이 된다는 것을 깊이 이해해야 합니다.

그래서 내가 편한 말이 아니라, 남에게 좋은 영향력을 끼치는 말, 나의 생각을 전달하는 것만이 아니라 남의 입장을 배려하는 말을 연습하여 몸에 배도록 하는 것이 참 중요한 영성의 훈련이라고 생각합니다.

자기의 언어를 돌아보십시오. 신자답게 말하고 있습니까? 나의 말에는 정성이 담겨 있습니까? 아니면 부주의하게 그저 감정을 툭툭 던져내고 있습니까? 자주 주변으로부터 나의 말에 대한 지적을 받지는 않습니까? 같은 내용의 말이라도, 그 말을 전달하는 표정과 음성의 높낮이도 매우 중요합니다. 말은 단지 입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온 몸과 심지어 인격을 사용하여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무례(無禮)하다는 것은 단지 격식에 맞지 않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예의(禮義)란 본래 그 기본이 역지사지(易地思之)입니다. 다시 말하면 남의 입장에서 생각하여 그를 불편하지 않도록 배려하는 것이 예의의 기본입니다. 그래서 과례(過禮)는 비례(非禮)라고 했습니다. 너무 격식을 따져서 오히려 상대를 불편하게 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모든 것이 적절하고 아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말도 그와 같습니다. 부담스런 격식의 말을 꼭 써야 예의 바른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편한 말이 상대에게 친근감을 느끼게 해주기도 하고, 한 마디 농담이 모임의 분위기를 따뜻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지나치면 차라리 침묵하는 것보다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언어의 축복을 소중히 사용하십시오. 내 가족을 향하여 축복의 말을 하고, 타인을 향한 감사와 배려가 습관처럼 몸에 배도록 하십시오. 부주의한 말을 조심하십시오. 마음에 있는 생각이 모두 말이 되게 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을 신앙으로 잘 걸러내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말만을 꺼내는 훈련을 쌓아야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길들이기 힘든 것이 ‘혀’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평생을 우리 혀와 싸워야 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혀를 주목하시기 때문입니다. 샬롬~

'목회 > 목양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08-04-27 특별한 교회를 꿈꾸자  (0) 2014.04.30
2008-04-20 품어서 이기십시오  (0) 2014.04.30
2008-04-06 소중한 기회  (0) 2014.04.30
2008-03-30 네 나중은 창대하리라  (0) 2014.04.30
2008-03-23 부활의 의미  (0) 2014.04.30
Posted by makarios
, |

2008-04-06


사람의 인생에는 ‘기회’라는 것이 있습니다.

기회란 항상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특정한 시기에 특정한 장소에서만 그것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가 그것을 다른 시간과 구분하여 ‘기회’라는 이름으로 소중히 여기는 것입니다.

학생의 때에는 공부가 힘들게만 느껴지지만, 나이를 먹으면 그것이 젊은 날에 주어진 소중한 기회였음을 알게 됩니다. 경제적 부담 없이 젊은 생기와 기억력을 가지고 지식을 맘껏 자신 안에 담을 수 있는 기회는 일생에 그리 길지 않습니다.

또한 부모님을 모시는 것도 기회입니다. 나무가 가만히 있으려 해도 바람이 멈추지 않고, 자식이 부모를 섬기려고 해도 더 이상 곁에 계시지 않는다는 조선시대의 시조가 있습니다. 늘 부모님 사랑의 그늘 아래서 자라오며, 자식은 부모가 항상 거기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막상 자식이 철이 들어 부모에게 자식의 도리를 다하려고 하면 부모는 이미 떠나시고 곁에 계시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세월이 쏜살과 같고, 흐르는 물과 같다더니 나이를 먹을수록 같은 1년의 무게가 그리도 다른지 예전에는 미처 몰랐습니다. 맛있게 드실 수 있을 때, 아직은 걸어 구경할 수 있을 때 해드리지 못하면, 나중에는 돈과 시간이 있어도 그렇게 모실 수 없다는 것을 예전에는 미처 몰랐습니다.

신앙에도 기회가 있습니다. 우리가 교회를 세우기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서 충성할 수 있는 것, 어려운 형편에도 불구하고 기도와 열심으로 교회의 중심에 기둥처럼 설 수 있는 것은 소중한 기회입니다.

그래서 그 십자가를 부담으로만 여기고 지지 않으려 하는 것은 자신의 영적 성장을 위한 소중한 기회를 버리는 것이요, 또한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축복하실 기회를 버리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현장에서 과연 무엇이 지금의 내게 ‘기회’인지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 인생에서 2008년도가 유일한 것처럼, 무엇인가 소중히 여겨야 하고 꼭 잡아야만 하는 인생의 기회가 여러분의 오늘에도 있을 것입니다. 다만 그것을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고 무심히 흘려보낼 때에 우리는 기회를 낭비하고 후회하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인생을 아름답게 하려면 가장 소중한 것과 가장 시급한 것을 알아야 한다고 합니다. 그 둘의 긴장 속에서 가장 소중하면서도 가장 시급한 것을 먼저 할 때에, 부족한 인생의 시간을 아껴 행복을 가꿀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다른 말로 하면, ‘기회를 살려야 한다!’라는 교훈이 아닐까 합니다.

지금이 아니면 할 수 없는 것을 내일로 미루다가 결국에는 인생에서 완전히 잃어버리고 후회하는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서 바른 판단력과 결심을 가지고 하루하루를 채워가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누구나 자기 인생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유익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때로는 우리 인생에 독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기회를 살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필요하고, 때문에 우리는 항상 깨어 기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혼자서 생각만 하지 말고, 그 생각의 보따리를 기도의 자리로 가져가십시오. 그러면 주님께서 지도하실 것입니다. 그 인도하심 가운데서만이 우리가 인생의 기회를 소중하게 살려갈 수 있습니다. 샬롬~

'목회 > 목양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08-04-20 품어서 이기십시오  (0) 2014.04.30
2008-04-13 아름다운 말  (0) 2014.04.30
2008-03-30 네 나중은 창대하리라  (0) 2014.04.30
2008-03-23 부활의 의미  (0) 2014.04.30
2008-03-16 종려주일의 의미  (0) 2014.04.30
Posted by makarios
, |

2008-03-30


사랑의교회 개척사를 읽었습니다.

강남이 허허벌판이던 시절, 외진 곳의 건물 4층에서 시작된 사랑의교회는 초기에만 하여도 청년들만 모이는 교회로 알려졌었다고 합니다. 주변에 있는 교회들이 아파트 단지를 끼고 인원이 늘어갈 때에, 사랑의 교회는 그 성장세가 상대적으로 느려서 고민을 하였답니다.

그러나 초점을 흩트리지 않고 소수의 사람들이라도 바른 제자도의 신앙으로 세우는 것에 전념하였고, 그 제자들이 양육되고 교회의 중심에 서기까지 기다려야 했습니다.

교회와 함께 하는 사람들이 세워졌을 때, 교회는 지속적인 성장을 나타내기 시작하였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 동력을 잃지 않아 한국교회의 귀한 모범이 되고 있습니다. 

들풀은 한 달에도 수 십 센티가 자라지만, 나무는 더디게 자랍니다. 그러나 겨울이 오면 비로소 어느 것이 진정한 성장인지 드러나게 됩니다. 기본을 든든히 하였던 나무는 겨울의 추위를 이겨내고 다음 봄에도 성장을 이어가지만, 속이 비어있던 들풀은 추위가 스며들어 얼고 메말라 죽고 다시 시작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자연을 통하여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이러한 원리는 교회뿐 아니라 인생에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는 진리가 아닐까 합니다.

교회는 한 사람, 한 사람씩을 변화시켜가야 합니다. 

변화된 사람들의 거룩한 공동체가 될 때에만이 교회는 한 철이 아니라, 한 시대를 책임지는 하나님의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이 말해주는 바로 그 교회를 이루기 위하여 타협하지 말고, 한 길을 가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성도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살다보면, 나보다 잘나고 부자가 되는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됩니다. 그들의 성공은 때로 조바심을 일으키고, 상대적 박탈감이나 열등감에 시달리게 합니다. 그러나 그런 감정과 생각은 우리의 삶을 혼란에 빠뜨릴 뿐입니다.

당장의 성공이 아니라, 기본을 든든히 하는 성실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것은 비록 느리게 보일지라도 결코 우리를 실망시키는 법이 없습니다. 세월이 쌓일수록 경륜과 지혜가 자라가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동경드림교회의 지체들을 하나씩 생각할 때마다, 하나님께서 그 앞길을 통해 하실 일이 기대가 됩니다.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젊은 시절, 신앙으로 무장하고 하나님 앞에 살고자 하는 그 열정과 신앙이 귀하기만 합니다.

언젠가는 오늘을 회상하며 그 가치를 다시 발견하는 날이 있을 겁니다.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창대하리라는 욥기의 말씀처럼, 비록 지금의 초라한 현실이라도 그 언젠가의 창대함을 잉태하고 있던 시절이라는 것을 나중에는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개를 들고 가슴을 폅시다.

지금은 과정일 뿐입니다. 이 과정을 지나고나면 분명히 하나님의 축복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고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크고 아름다운, 놀라운 축복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동경드림교회는 일본선교뿐 아니라 세계선교의 소중한 다리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교회의 기둥으로 여러분이 쓰여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복을 주사, 여러분을 통해 그 일들을 섬기고 감당하게 하실 것입니다.

그 날을 향하여 기도하며 나아갑시다. 오늘 예배를 드리는 여러분 모두에게 주의 소망과 믿음이 충만하기를 기원합니다. 샬롬~ 

'목회 > 목양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08-04-13 아름다운 말  (0) 2014.04.30
2008-04-06 소중한 기회  (0) 2014.04.30
2008-03-23 부활의 의미  (0) 2014.04.30
2008-03-16 종려주일의 의미  (0) 2014.04.30
2008-03-09 내려놓음과 채우심  (0) 2014.04.30
Posted by makarios
, |

2008-03-23


부활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으면 우리의 신앙이 헛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만큼 부활은 우리들 신앙에 있어 중대한 의미를 가집니다.


첫째로, 부활은 죄에 대한 그리스도의 승리를 의미합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매 모든 사람이 사망에 처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죄인 된 우리들을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시고 부활하심으로써 죄의 권세인 사망이 극복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죄에 대하여 승리하신 예수님을 믿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인 자신 또한 죄에 다시 얽매일 수 없는 존재가 된다는 뜻입니다. 과거에는 우리의 연약함으로 어쩔 수 없이 죄 아래 있었지만, 그러나 이제는 그리스도의 은혜 가운데서 죄와 맞서 싸울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지금도 성령을 통해 우리 안에 역사하는 죄를 죽이고 부활의 생명으로 충만케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분의 생명이 우리 안에 가득 찰 때에 우리는 육신대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둘째로, 부활은 세상에 대한 승리를 의미합니다.

세상도 나름대로 권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권세는 우리의 몸을 죽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영혼을 어쩌지는 못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몸을 죽이는 세상의 권세와 영육을 함께 일으키시는 하나님의 권세가 어떻게 극명하게 다른지를 보여주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과거, 혹은 오늘날에도 수많은 신앙의 용사들이 복음을 위하여 기꺼이 목숨을 버리는 것은 영원한 생명을 갈망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그분처럼 되고 싶은 소망으로 순교의 잔을 감히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사람들을 세상은 감당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법정에서 심판을 받으셨으나 그 심판의 결과를 ‘부활’로 불복하심으로써 불의한 세상의 권세가 하나님의 능력 앞에서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불의한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고 정의를 실현하는 하나님의 자녀로써 용감한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셋째로, 부활은 영적인 승리를 의미합니다.

사탄은 지금도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삼킬 자를 찾습니다. 그의 교묘한 술책과 기이한 능력은 지금도 많은 사람들을 미혹에 빠지게 합니다. 어둠에 거하는 사람들을 보십시오. 그들의 궁핍함은 빵의 문제가 아니며, 그들의 염려와 고통은 인간적인 방법을 통해서는 결코 해결되지 않습니다.

주님은 사탄의 나라를 깨뜨리려고 세상에 오셨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세상에 파송하실 때에 이미 그 일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을 부어 주셨습니다. 다만 우리가 그것을 인정하고 사용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부활은 사탄이 활개를 치던 세상이 끝나고, 이제는 복음을 통해 어둠과 악한 영들을 물리치는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였음을 선포합니다. 우리는 약하지만, 우리가 그분의 이름으로 나아갈 때에 부활하신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심으로 그분이 하시던 바로 그 일을 지금도 행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동경드림교회 성도들은, 부활의 확신을 가지고 죄에 대하여, 세상에 대하여, 악한 영들에 대하여 승리를 선포하는 용사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특별히 일본의 황무한 현실에 기죽지 말고, 주님의 이름으로 담대하게 선포하고 기도로 싸우는 사람들이 되도록 합시다. 샬롬~

'목회 > 목양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08-04-06 소중한 기회  (0) 2014.04.30
2008-03-30 네 나중은 창대하리라  (0) 2014.04.30
2008-03-16 종려주일의 의미  (0) 2014.04.30
2008-03-09 내려놓음과 채우심  (0) 2014.04.30
2008-02-24 열 명이면 충분하다  (0) 2014.04.30
Posted by makarios
, |

2008-03-16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입성하시던 날에 군중들은 ‘호산나’를 외쳤습니다. 

호산나의 어원은 아람어로, ‘오, 우리를 구원하소서’라는 뜻입니다. 시편 118:25에 등장하는데, 이후로 유대인들은 초막절에 제단을 돌면서 이 함성을 외쳐서 기도와 찬양을 삼았다고 합니다. 

기독교에서 종려 주일(Palm Sunday)을 구별하는 것은 이 함성으로부터 주님의 고난이 시작되지만, 그 고난이 곧 신자의 구원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심정적으로 매우 슬프고 엄숙하면서도 영적으로는 매우 기쁘고 감격적인 날이 바로 ‘종려주일’의 의미인 것입니다.

종려주일의 이러한 이중적인 의미는, 복음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신자들의 심정을 매우 잘 상징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우리는 세상의 죄를 보면서 하나님의 마음으로 슬퍼하지만,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궁극적인 승리를 믿고 기뻐해야 합니다. 양편의 마음이 모두 신자의 마음입니다. 기쁨만 가지기에는 우리가 처한 세상이 너무 악하고, 슬픔만 가지기에는 우리가 받은 하나님의 구원이 너무 귀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호산나를 외치면서 주님의 십자가 앞으로 서서히 나아가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초라한 나귀의 새끼이기는 해도, 평생을 걸으시던 걸음을 멈추시고 처음으로 ‘탈 것’을 타셨습니다. 세상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주님이 취하셨던 이 호강(豪强)은 그분이 겸손하셨지만 왕이셨다는 사실을 세상에 선포하는 의미가 있었습니다.

나귀는 본래 짐을 지는 짐승이지만, ‘어린 나귀’란 짐을 져본 경험이 없는 미숙한 나귀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어린 나귀를 훈련하기 위하여 그 어미와 쌍을 이루어 그 뒤를 따르게 했다고 합니다. 작은 짐을 지고 어미의 뒤를 따르면서 어린 나귀는 서서히 무거운 짐을 질 수 있는 힘과 경험을 쌓아갔던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 미숙한 나귀의 가능성 위에 앉으셨습니다. 비록 서툴고 흔들리는 몸짓이지만 주님께서 그와 함께 하시면서 ‘호산나’의 찬양 속을 행진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시는 구원은, 결코 완숙하고 멋진 행진은 아닙니다. 우리는 흔들리고 실수할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의 고삐를 놓지 않으실 것이고 마침내 하나님의 성전에 이르게 하실 것입니다.

주님은 나귀처럼 고집 센 백성, 곧 우리 같은 사람들의 왕으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나귀와 같은 우리를 하나님의 영원한 성전, 천국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그 의미가 바로 종려주일의 행진이 상징하고 있는 바입니다.

이러한 의미들을 가만히 묵상하면, 매년마다 맞이하는 종려주일이지만 보다 깊은 영적 의미들을 발견하고 누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은혜 가운데서 신자의 영성을 새롭게 하기 위하여 부활절의 절기를 기념하는 것입니다.

고난주간 동안에는 오락을 금하고, 되도록 하루에 한 끼라도 금식에 참여하며, 아침과 저녁으로 기도와 말씀 묵상에 헌신하십시오. 주님께 회개의 영을 부어달라고 기도하고, 화해를 힘쓰며, 자기의 마음을 주님께 복종시키기 위하여 노력하십시오. 분쟁을 멀리하고, 농담과 상스러운 말들을 삼가십시오.

교회의 역사 속에서 고난주간은 매우 특별한 의미가 있었습니다. 신교와 구교를 막론하고 깊은 영성의 추구 속에 고난주간을 보내며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경험했던 것이 교회의 아름다운 전통입니다.

동경드림교회의 성도들을 통하여, 주님의 고난과 부활이 일본에 바르게 증거되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하려면 우리가 먼저 그것을 경험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샬롬~

Posted by makarios
, |

2008-03-09


한국에서 가족과 함께 일본으로 오던 날, 네 식구는 유학생 가방 2개와 배낭을 메고 있었습니다. 이불과 옷가지 몇 개, 그리고 아내가 그렇게 애착을 보였던 작은 휴지통 2개(지금도 책상에 놓고 사용합니다.^^), 신발 몇 켤레를 가지고 일본으로 왔습니다. 도착하는 날에 찬비가 조금씩 내렸는데, 무거운 가방에 몸도 마음도 물 먹은 솜처럼 되었던 아내는 끝내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그런 엄마를 아이들이 위로했고, 저는 묵묵히 앞장서 걷고 또 걸었습니다.

유학생으로 일본에 와서 고생했던 이야기들을 많이 합니다. 그들에 비하면 그래도 우리는 처음부터 혼자가 아니었고, 가진 것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함께였기 때문에 더 아프고 쓰린 기억도 사실은 많았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입장을 바꾸어 저의 나이에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저와 같은 처지에 놓인다고 가정을 해보신다면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시작했던 일본에서의 생활이 만 2년을 지나 3년을 채워가고 있습니다. 그동안 아내는 자전거를 배웠고, 아르바이트를 했으며, 아이들은 일본어를 습득하고 일본의 학생들과 동등하게 경쟁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일본으로 올 때도 24평 아파트에 가득하던 살림살이를 남겨두고 왔는데, 어느새 2년여의 세월 동안 다시 집 하나를 가득 채울 만큼의 ‘무언가’를 장만하고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이번에 이사를 하면서 그 하나하나를 보니, 모두가 누군가의 손길과 사랑을 통해 주어진 것들입니다. 빈집만 덩그러니 있던 목사를 위해 밤새워 인터넷을 뒤져 일본형 살림살이를 주문해 주었던 박소연 집사님, 어느 날 갑자기 자기도 없는 ‘코타쯔’를 사택으로 배달시킨 박성윤 권찰, 목사의 생일에 어울리지 않는 전기밥솥을 사서 서커스 하는 자세로 오토바이에 싣고 온 장수호, 이선경 부부... 

물론 돈으로 산 물건도 많이 있지만, 돈으로 살 수 없는 소중한 추억과 사랑의 살림살이들이 지금의 사택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내려놓게 하신 이후에 하나님께서는 그 빈자리를 성도들의 사랑으로 채우시고 있다는 것입니다. 필요한 모든 것을 나의 스타일이 아닌, 그분의 스타일로 채우시고 있습니다. 그래서 전혀 다른 것으로 어울리지 않는 것 같으면서도 사실은 모든 것이 항상 적당합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는 그렇게 질문하고 문학적 설득을 통해 대답합니다. 빵이 아니라 사랑으로, 현실이 아니라 소망으로 사람이 사람답게 산다는 것을 말입니다. 저는 그의 말을 이제 알 것 같습니다. 제 평생에 지금이 가장 가난하지만, 또한 지금이 가장 부유합니다. 그것은 제게 현실만이 아니라, 그 너머를 바랄 수 있는 소망과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여러분의 덕분입니다. 여러분이 바로 제가 일본에 있는 이유이며, 저의 미래입니다. 그래서 그동안 함께해준 사랑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부족한 저를 목사로, 저의 가족을 자신의 가족으로 생각해준 여러분의 섬김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사람이 살다 떠나면, 남는 재산은 살림살이가 아니라 ‘기억’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래서 행복한 사람은 지금 죽어도 좋다고 말하는데, 그런 고백은 결코 소유에서는 나오지 않습니다.

인생의 진정한 가치, 저는 그것을 동경드림교회를 목회하면서 배우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그러기를 바랍니다. 샬롬~ 

Posted by makarios
, |

2008-02-24


49년간 쿠바를 통치했던 피델 카스트로가 권좌에서 사임했다. 그가 남미의 혁명 영웅, 체 게바라와 함께 쿠바의 혁명을 주도한 것이 1959년의 일이니까, 참으로 오랜 세월을 권좌에서 보낸 셈이다. 그의 나이가 이미 81세이고, 작년에도 지병으로 인하여 1년6개월이나 공무를 보지 못하였으니, 그의 퇴진은 자발적이기 보다는 세월을 이기지 못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 할 수 있겠다.

그는 82명의 게릴라와 함께 쿠바의 독재자, 풀헨시오 바티스타에 대항하여 혁명을 일으켰고 마침내 쿠바혁명에 성공하여 남미에 공산주의의 교두보를 만들었다. 

미국은 지난 50년간 턱밑의 공산국가 쿠바로 인하여 속을 끓였지만, 카스트로는 중국과 소련의 전폭적인 지지를 이끌어내며 강대국의 긴장 속에서 50년을 독자적인 정치노선으로 버텨온 셈이다.

1959년 1월, 카스트로는 혁명의 마무리 중에 이런 말을 남겼다.

"나는 82명과 혁명을 시작했다. 그러나 지금 다시 혁명을 한다면 절대적 신념을 가진 열 명과 하겠다. 신념과 계획만 있으면 사람이 적어도 상관없다."

공산주의자에게 절대적 신념이란, 민중의 해방을 위하여 굶주림과 추위, 죽음을 각오하는 것이 되겠지만, 나는 그의 이 말이 우리의 신앙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신앙을 위하여 자기의 모든 것을 버릴 수 있는 사람이 열 명만 모인다면, 지금도 영적인 혁명이 가능하지 않을까?

사람들은 목사인 내게 교인이 적기 때문에 고민하지 않느냐고 묻는다. 사실 교인이 적은 교회는 교인들의 부담도 많고, 목회자의 제약도 많다. 그러나 나는 한 번도 그것을 두고 기도하지 않았고, 그것으로 고민하지도 않았다. 

내게 소원이 있다면, 나를 포함하여 이미 한 식구가 된 지금의 교우들이 진정한 신앙인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겉모양뿐 아니라 내면까지 속속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변화되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모든 것을 버릴 만큼 각오 든든한 그리스도의 제자로 세워지는 것을 본다면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

하나님 나라는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믿음의 문제이다. 아무리 큰 교회라 하더라도 그 교회를 지키고 책임지는 사람들은 언제나 소수라고 생각한다. 카스트로에게 혁명의 동지들이 있어 지금까지 쿠바를 지켜왔던 것처럼, 교회의 정체성과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는 목회자와 뜻을 같이하여 주님께 충성할 신념 있는 사람들이 필요한 것이다.

그런 사람 열 명만 있으면 동경이 아니라, 아랍의 사막에도 주님의 교회를 세울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그래서 목사가 된 이후, 가장 절절하게 기도하는 간구 중의 하나는 바로 ‘동역자’를 바르게 세워달라는 것이다.

동경에서 보낸 지난 2년의 세월 동안에, 하나님은 조금씩 내 기도에 응답을 주시고 있다. 먹고 떠들기만 좋아하는 것 같은 지체들이 섬김의 자리에서 팔을 걷어붙이고 일하는 것을 보는 목사의 마음은 뿌듯하다 못해 감격적이다. 물론 섬김을 받는 사람도 좋겠지만, 사실 섬김은 그 수혜자를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우리 신앙의 표현이며, 주님을 향한 헌신이다. 때문에 섬길 수 있다는 것은 이미 그리스도의 제자로 세워지고 있다는 표지라고 나는 믿는다.

주님께서 우리 동경드림교회를 통하여 나중에는 어떤 일을 하실까?

사랑하는 교우들의 얼굴 하나하나를 떠올리며 기도하는 목사의 마음은 소망으로 가득 찬다. 지금은 미약하지만 장차 큰일을 낼 것이다. 이 동경에서 영적인 혁명을 만들어낼 것이다. 정말 교회다운 교회 세워서, 주님의 기쁨이 되고, 사람들의 소망이 될 것이다.

그 날을 향해 가는 길이기에 지금이라도 결코 나쁘지 않다. 샬롬~

Posted by makarios
, |

2008-02-17


사람은 보려고 하는 것만을 보고, 들으려고 하는 것만을 듣는다고 합니다.

귀는 덮개가 없어서 모든 소리가 드나들고, 눈은 앞에 있는 모든 가시광선을 받아들이는 것 같지만, 실상은 본인의 마음이 주의를 기울이고, 정말 보고 싶어 하고 듣고 싶어 하는 것만을 마음에 각성한다는 것입니다.

청소년기를 보내며 아이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은 부모의 ‘잔소리’입니다. 그러나 사실 나이가 먹어 되돌아보면, 그것은 잔소리가 아니라 나를 위한 애정의 ‘말씀’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럼에도 그 시절에는 그 말씀에 마음이 열리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의 ‘소리’로, 그것도 쓸모없는 ‘잔소리’로만 들렸던 것입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이 열려야 보이고 들립니다. 애정과 관심을 기울여야 비로소 하나님께서 나를 인도하시려고 하는 푸른 초장과 맑은 시냇물가가 어렴풋이라도 보이는 것입니다. 반대로 닫힌 마음은 오히려 그 사랑에 반항하게 하고 오해를 불러일으키며 저항하게 만듭니다.

그런 의미에서 은혜에 항거하고 사랑에 저항하는 사람이야 말로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입니다. 사랑을 순수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기의 틀에 갇혀서 관심을 간섭으로 여기고, 교훈을 잔소리로 이해하는 것은 자기의 발전을 방해할 뿐 아니라 서로간의 깊은 교제를 불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일본은 참 외로운 땅입니다. 그 외로운 땅에 오래 살다보니 사람을 그리워하면서도 막상 혼자 지내기에 이미 익숙해져버린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사람이 그리워 교회에 나왔으면서도 사람의 냄새를 견디지 못하는 외톨이들을 봅니다.

강아지야 나 필요할 때에만 끌어안고 쓰다듬어줘도 꼬리를 흔들겠지만, 사람과 사람의 관계야 어찌 그렇겠습니까? 내 말을 들어주기 바란다면, 나도 그의 말을 들어줄 수 있어야 하고, 때로는 애정에서 나오는 간섭과 누군가를 가까이 하는 불편을 감수해야 서로 사귈 수 있지 않겠습니까?

프라이버시를 서로 지켜야 하지만, 그 모호한 선을 애매하게 넘나드는 긴장이 사람의 관계에는 항상 있기 마련입니다. 기분 나빠도 참고 싫은 감정을 지혜롭게 내색하되 포기하지 않는 성실함을 통해 사람은 서로 이해하고 적절한 관계를 만들어 가게 됩니다. 그리고 그 관계 안에서 비로소 혼자서는 절대로 누릴 수 없었던 평안과 행복, 감동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선한 뜻이 ‘공동체’ 안에 있다고 확신합니다.

그래서 좋은 신앙이란 좋은 공동체를 향한 헌신으로 나타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포기하고 혼자서만 잘하는 신자들을 보면 마음이 아픕니다. 그런 이들은 심지어 목회자의 조언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니, 항상 모든 것이 살얼음판을 걷는 것처럼 불안할 뿐입니다.        

신자는 듣는 법을 훈련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도 잘 들어야 하고, 또한 사람의 말도 잘 들어야 합니다. 잘 듣는다는 것은 그 의도와 본심을 파악하고 분별하여 듣는 능력을 배양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들리는 귀를 가질 수 있고, 보이는 눈을 가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시는지, 제대로 이해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귀를 닫지 마십시오. 사람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누구나 사람을 수용하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잘 참고 인내하며 노력하면 세상에서 가장 귀한 열매를 거두고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샬롬~

Posted by makarios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