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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2-02


겨울이 될수록 햇볕이 따스합니다. 

볕 아래서 눈을 감고 가만히 앉아 있으면 마치 하늘의 품에 안긴 것처럼 푸근함이 온 몸에 느껴집니다. 얇은 눈꺼풀 너머로 밝은 태양이 온기를 쏘아대고, 그래서 감은 눈 안에서도 태양이 보입니다.

벌써 12월에 들어섰습니다. 언제 그렇게 세월이 흘렀는지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얼마 전에 옛날 수첩을 꺼내 보니, 제가 일본에 온 것이 12월16일(금)이더군요. 그리고 18일에 제자촌교회의 담임목사로 첫 예배를 인도했습니다. 벌써 2년의 세월이 훌쩍 흘러간 것입니다.

참 매서웠던 겨울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 해에는 동경에 눈도 제법 왔고, 그래서 길도 꽁꽁 얼어 며칠간 녹지 않았던 것을 기억합니다. 모든 것이 낯설고 버거웠던 시절이었습니다.

목사로서의 책임이 무거웠습니다. 낙심하고 지친 지체들을 위하여 목사로서 긍정적 목소리를 높였지만 정작 나 자신은 많이 불안하고 막연했던 것 같습니다. 내색할 수도 없는 혼자만의 고민이 많았고, 처음에 가졌던 자신감은 점점 고갈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막연하고 의지할 사람도 없었기 때문에 더욱 하나님께 매달리고 절실하게 기도했던 세월이었던 것 같습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은 때마다 합당한 은혜를 주셨고, 그 은혜로 인해 정말 절실하게 기뻐하고 하나님을 느끼며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형통한 날을 통해서도 은혜를 받지만 때로는 그렇지 못한 날들을 통해서도 하나님을 만납니다. 한 모금의 햇볕처럼 추운 우리의 품에 주시는 빛나는 은혜로 인하여 우리는 막연했던 하나님을 보다 가까이 느끼고 이해하게 되곤 합니다.

지금 여러분의 자리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목사로 부름 받아 목양에 뜻을 두어 여러분을 이해하려고 나름 노력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부족하고 알지 못하는 무지와 무능력을 느끼곤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에게 내가 만난 하나님을 인해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은 삶의 정황이 어떠하든 간에 하나님께서는 신실하시며 우리를 사랑하시고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도 은혜가 있었던 것처럼 앞으로도 결코 그 은혜가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동경드림교회를 사랑하십니다. 그것은 이 건물이 아니라 바로 여러분 하나하나를 사랑하신다는 뜻입니다. 여러분의 걸음마다 주님께서 섬세한 손길로 인도하시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느끼든, 느끼지 못하든 그 느낌이나 감정과 상관없이 이것은 사실입니다.

믿고 감사합시다. 교회도 좋은 길이 열리고, 여러분의 삶도 그러할 것입니다. 기대하는 마음으로 2007년도를 정리하고 2008년을 기다리도록 합시다. 물론 기도 속에서 말입니다. ^^

주님께 모든 영광을 돌립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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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1-25


꿈을 향해 노력하는 것은 아름답다. 성공과 실패를 떠나서 그 과정 자체가 감동적이고 의미 있다. 변하고 흔들리는 세상 가운데 하나의 목표를 앞에 두고 평생 노력하는 삶을 산다는 것은 그를 지켜보는 사람들에게도 큰 영향력을 미치는 일이다. 그런 사람이 곁에 있을 때, 우리는 알게 모르게 감동 받고 우리 자신의 삶을 소중히 다루게 된다.

요즘 두레양이 만화가 데뷔를 위해 노력 중이다. 한국과 대만을 다녀오는 동안 그 흔한 인사 한 마디 없어서 내심 섭섭했는데, 그래도 본인에게는 마음을 다잡고 자기를 추스리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는가 보다. 

다녀온 이후로 룸메이트와의 관계도 잘 정리되고, 요즘은 본인의 작업에 푹 빠져서 두문불출(杜門不出)하는 모습이 대견하기만 하다. 

아마 지금은 그리고 싶은 것이 많을 것이다. 가족 이야기도 있고, 일본 유학생활도 있고, 언젠가는 우리 교회 이야기도 두레양의 손을 통해 만화의 몇몇 장면이 되어 세상에 소개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신나는 과정을 넘어서 더 멀리 가야만 꿈이 있다는 사실을 꼭 말해주고 싶다. 가진 밑천이 다 바닥나고(생각보다 훨씬 빨리 그렇게 될 것이다, 아마도), 때로는 사람들로부터 외면 받을 때도 올 것이다. 많은 사람들의 수군거림이 바람결에 들려와 마음을 아프게 할지도 모른다. 

그런 시절에는 스스로도 의심이 생긴다. 정말 내가 이 일에 맞는 사람일까? 정말 나에게 재능이 있는 것일까? 혹시나 내가 오르지도 못할 나무에 매달려 헛고생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이를 먹어갈수록 자신감은 떨어지고, 팔팔하고 재능이 뛰어난 젊은 후배들을 보며 주눅이 들기도 한다. 내가 못하는 것을 척척 해내고, 삶에도 뽀얀 기름기가 흐르는 ‘신세대’들을 보고 있노라면 ‘나’라는 사람은 전혀 ‘내꿈’과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과정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자기 안에 무엇이 있는가, 내가 누구인가를 대답하게 된다. 꿈은 언제나 그 너머에서, 다시 말해서 자기가 누구인지를 스스로에게 충분히 증명한 사람들에게서 열매가 되어 나타난다. 꿈은 언제나 그런 것이다…….

힘찬 첫걸음부터 너무 겁을 주는 말을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오히려 그런 단단한 각오가 없었기에 너무 일찍 꿈을 접고 현실에 동화되어 버리는 사람들이 많다. 나는 목사로서 나의 두레양이, 그리고 내가 목양하는 동경드림교회의 식구들이 그렇게 되지 않기를 기도한다.

형통과 축복을 바라는가? 나도 그것을 바란다. 하지만 성경이 말해주는 형통과 우리가 바라는 형통 사이에는 큰 시각차가 존재한다. 

진정한 꿈은 인생의 눈물로 영글어간다. 만약 그런 눈물의 자양분이 없다면 그건 온실의 꿈이지, 광야의 꿈은 아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가 세운 계획, 그 너머에 계신다. 그래서 나의 실패가 곧 하나님의 시작인 것이다.

절망의 바닥에서도 꿈을 포기하지 않는 자만이 꿈을 이룰 수 있다. 그리고 신앙은 바로 그런 용기와 힘을 우리에게 준다. 예수님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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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1-18


오랜만에 지혜가 집으로 놀러왔습니다. 함께 과일을 먹고, 놀이를 합니다. 나무 블록으로 탑도 쌓아 올리고, 오빠들과 나란히 앉아 게임을 하기도 하고, 함께 책상에 앉아 그림도 그립니다. 

그 모습이 너무 예뻐서 사모가 억지로 말을 걸었습니다. “촌놈아, 너는 어떻게 그렇게 이쁘냐?” 그랬더니 대뜸 지혜가 고개를 돌리면서 “うるさい!”라고 대꾸를 합니다. 그 한 마디에 모두가 배를 잡고 웃었습니다.

지금은 이 녀석이 내 앞에 앉아서 “목사님, 지금 뭐해?”라고 물으며 눈빛을 반짝이고 있습니다. 정말 기적 같은 아이입니다.

올해에만 해도 이 녀석에게 모질고 힘든 수술이 몇 번이었는지,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던 시간들, 얼마 전까지 병원에 아이를 보내며 가슴으로 울던 날들이 모두 꿈만 같습니다. 

산 넘어 산이라더니, 이제는 지혜가 조금 편안해 보이니 교회가 다급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지금 내 앞에 있는 지혜의 미소는 내가 살았던 지난 1년의 세월과 기도가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꾸만 맘 깊은 곳에서 감사가 우러납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솔로몬에게 “네 소원이 무엇이냐?”고 물으셨던 것처럼 일본을 향해 발길을 떼는 나를 향해서도 같은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그리고 그 때에, 물론 다른 소원들도 있었지만 제일 간절했던 것은 지혜로 인해 눈물 흘리던 두 집사님과 포대에 싸여 있던 갓난 아이, 지혜를 곁에서 지켜주고 싶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교회는 사람이라 믿기에, 내가 목사로서 한 사람을 세워줄 수만 있다면 그 한 사람을 통해 주님은 주님의 교회를 옳게 세우실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을 지켜 지난 2년을 살아왔던 것 같습니다.

이제는 지혜뿐 아니라 내가 생각하고 섬겨야 할 사람들이 더 많이 늘었습니다. 처음에는 타인과 손님으로 만났던 지체들이 이제는 형제보다 더 가까워져서 내가 기도해줘야 하고, 신앙을 챙겨주어야 합니다. 비록 경제적 어려움은 더해가고 있어도 그런 점에서 참 부자가 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삶에 많은 것이 필요한 것 같아도 때로는 하나면 족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미 지난 1년을 통해 가장 귀한 선물, 가장 아름다운 주님의 응답을 받았습니다. 바로 우리 앞에 있는 ‘지혜’라는 선물 말입니다. 물론 주님께서는 계속해서 응답하실 것이고, 우리와 함께 해 주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하지만 먼저 잠시 숨을 고르고 다른 것을 기도하기 전에 먼저 감사와 찬양으로 주님께 나아가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무엇이 중요한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건물이 아니라 사람을, 조직이 아니라 비전을, 겉모양이 아니라 삶의 변화를, 접대가 아니라 형제의 교제를, 돈이 아니라 건강을, 종교적 습관이 아니라 경건을 추구해야 합니다.

더디기는 하지만 저는 우리가 바르게 가고 있다고 믿습니다. 보이는 현실이 아니라 내가 기도하는 주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내가 포기하지 않는다면 주님도 포기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저는 그렇게 믿습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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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1-11


어린 시절 학교 가는 길에는 항상 노점상이 있었습니다. 문방구나 가게보다 훨씬 싸고 푸짐한 노점상의 먹을거리들은 조그만 주먹에 동전을 만지작거리게 만들며 뿌리치기 힘든 유혹의 갈등을 주곤 하였습니다.

나이가 들어 때로는 그 시절에 먹었던 그 ‘불량식품’들이 그리워지곤 합니다. 달고나, 뽑기, 쫀득이, 쭉쭉이, 본드 같은 튜브에 들어서 빨대 끝에 묻혀 풍선을 불다가는 질겅거려 씹던 이상한 껌? 등... 그 시절에는 누구나 먹었던 아이들의 이상한 음식이 있었습니다.

엄마들은 ‘불량식품’을 경계하기 위하여 아이들을 타일렀고, 선생님들은 종례시간에 노점상 앞에 멈추지 말고 곧장 집으로 가라고 훈시했지만, 그래도 항상 아이들은 그 노점상 앞에 북적거렸고, 그 푸짐한 유혹은 끝내 유년의 기쁜 추억과 하나가 되었습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하면 참 희한한 일입니다. 그건 분명히 건강에 해가 될 만한 음식들이었는데도, 그것을 먹었던 내가 지금까지 건강하게 살아 다시 그 이상한 먹거리들을 추억하게 된다는 것은 말입니다. 하나님이 만들어주신 우리의 몸이 얼마나 독소를 잘 해독하고 소화의 기능이 뛰어난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

곰곰이 더 생각해보면, 건강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 합니다. 병균과 독소가 몸에 해롭다고 하여서 무균실에 들어가 산소만 마시면서 사는 것이 결코 건강한 삶이 아닌 것처럼 때로는 세상의 풍파와 세속에 처해 있으나 그것을 적절히 소화하고 이겨내며 살아가는 것 말입니다.

어른들이 말씀하시기를 젊은 청년을 보고 ‘돌도 씹어 삼킬 나이’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그런 말을 듣던 시절에는 솔직히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습니다. ‘좋은 음식 다 놔두고 돌이 뭐야! 그럼 나더러 돌밥이나 먹으라는 뜻인가?’라는 반항적인 생각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제 생각해보면, 그것은 젊음의 건강함이 흠뻑 묻어나는 담백한 표현이 아니었나 합니다. 돌도 씹어 삼킬 나이이니, 조금 억울한 일이 있어도, 섭섭한 감정이 들어도, 힘들어도 능히 이겨낼 수 있지 않겠는가라는 긍정적 암시가 어른들의 말씀에는 있었던 것 같습니다.

신앙이 좋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좋은 설교 듣고, 맘 맞는 사람들과 어울리고, 항상 위로와 감동 속에서 사는 것입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 신앙생활만을 동경하면 평생 만족함을 찾지 못할 것입니다.

오히려 좋은 신앙이란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소화하는 신앙이 아닌가 합니다. 때로는 내게 해로운 것까지도 은혜 가운데 좋게 해석하고 유익하게 소화해서 긍정적 에너지를 만들 수 있는 신앙이 좋은 신앙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은 누구나에게 건강의 비결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경륜 가운데 정해진 시간만큼 삽니다. 그리고 그 삶의 시간 동안, 불안과 걱정, 두려움으로 살 것인지, 감사와 기쁨으로 살 것인지는 우리 자신이 스스로 결정합니다. 참된 신앙은 물론 어떤 경우에도 후자를 택할 것입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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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1-04


항상 위기는 기회도 됩니다.

사람은 무언가 절박함이 없이는 마음까지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심령이 가난한 사람, 애통하는 사람이 오히려 ‘복 있는 사람’이라고 하셨던 것 같습니다. 

살만 해서 안일하게 넋이 빠진 사람보다 뭔가 간절한 이유가 있어 정신을 차리고 마음을 기울여 하나님께 예민한 사람이 건강한 사람입니다. 그렇게 살다보면 위기는 위기대로 해결하고 또한 함께 많은 은혜를 받으며 예상치 못한 축복을 누리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니 위기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위기의 기회를 살리기 위해서는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라 간절한 기도와 삶의 깊은 묵상이 필요하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문제를 통하여 우리를 생각하게 하십니다. 문제 속에서 우리의 초점은 ‘해결’이지만 하나님의 초점은 ‘변화’와 ‘성장’입니다. 그리고 순서적으로 하나님의 목표가 먼저 이루어져야 다음으로 우리의 목표가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목표가 정확하게 무엇인가를 인식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 위기를 통해 뭐가 변해야 하고 어디가 성장해야 하는지에 대하여 우리가 잘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기도입니다. 로마서에서 바울이 말한 바와 같이 성령은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찰하시고, 우리의 미련함을 긍휼히 여기사 마치 가정교사가 어린아이를 가르치는 것처럼 자상하게 가르쳐 주십니다.

위기 가운데 기도한다는 것은 처음에는 위기 자체를 인하여 눈물 흘리는 것이지만, 점차 기도 가운데 성령의 은혜가 부어질 때에 우리는 생각하게 되고,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게 되고, 그것을 우리 자신의 삶에 실천하기 위하여 용기를 가지게 됩니다. 그래서 결국에는 위기가 기회로 바뀌는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이러한 훈련의 방식이 참 감사합니다. 만약 하나님이 우리의 ‘변화’를 요구하시지 않고 다만 ‘해결’만을 주신다면 우리는 은혜를 받을수록 점점 유약(幼弱)해질 것입니다. 하지만 위기 가운데서 하나님이 우리의 마음을 단련하시고 변화를 요구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수록 오히려 더욱 강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때문에 위기는 점점 사소해지고, 삶은 모험과 기대로 충만하게 됩니다.

홍해 바다 앞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두 두려움에 떨었지만, 요단강의 범람하는 물결 앞에서는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며 순종했습니다. 40년의 세월 후에 그들이 겪었던 위기가 그들의 신앙을 강화하면서 그들은 이제 비로소 문제보다 크신 하나님을 볼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문제는 크다 하면 크고 사소하다 하면 사소합니다. 그것은 우리 마음의 결정에 따라 얼굴을 달리 합니다. 그러므로 기도하고 하나님께 집중하십시오. 그러면 위기는 오히려 기대로 가득찰 것입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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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28


그리스도인으로서 구원을 지속적으로 묵상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가 받은 은혜를 깊이 인식하면 할수록 하나님을 향하여 헌신하는 일과 세상을 섬기는 일에 더 견고하게 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전하고 신앙대로 살고자 하면 세상에서 억울한 일을 많이 당하게 됩니다. 남들이랑 똑같은 법칙으로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원칙대로 살면 무시당할 일도 없고, 손해 볼 일도 없습니다. 그런데 ‘크리스천’이라는 이름을 걸고 살아가려면 얼마나 불편하고 손해 볼 일이 많은지 모릅니다.

그래서 많은 신앙인들이 교회 안과 밖에서의 얼굴을 바꾸어가며 적당히 타협하며 살게 되는가 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한없는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믿는다’는 소극적 태도를 위해서가 아니라 ‘고난도 받는다’는 적극적 태도를 가지게 하시기 위함이라고 바울사도는 말했습니다. (빌 1:29)

현재의 우리가 비록 예수 믿는 일로 인하여 감옥에 갇히고, 재산을 몰수당하지는 않지만, 그러나 여전히 세상으로부터 부당한 대우와 억울한 말과 신자이기 때문에 당하는 핍박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다고 그것을 피하면 참 신자가 아닙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그런 일들을 당하는 것을 영광으로 알아야 합니다. 주님이 바로 그 일을 위하여 우리를 부르셨고, 은혜를 주셨다는 것을 이해해야 하며, 또한 그 일을 믿음으로 잘 감당할 때에 우리에게 영광의 면류관이 약속되어 있다는 사실을 기대해야 합니다.

저는 우리 동경드림교회 지체들이 믿는 자로서의 자부심을 가지기를 바랍니다. 또한 그 자부심을 현실의 사소한 손해와 바꾸지 않고 주님 오시는 날까지 끝까지 지켜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믿음의 길은 ‘희생’의 길입니다. 우리는 엄밀한 의미에서 세상이 이뻐서가 아니라 주님이 좋아서 그 일을 행합니다. 그래서 신자의 삶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열렬히 사랑하는 것이고, 그 사랑이 식지 않기 위해서는 항상 그분이 내게 주신 구원의 의미를 깊이 묵상하며 되새기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의 가슴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하나님 없이 비참하게 살다가 버려질 나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찾아와 주시고, 만나 주시고, 은혜 주시고, 여기까지 인도하셨다는 사실에 대하여 감격하는 마음이 있습니까?

그분의 사랑이 진심으로 감동되어 그분을 위해서라면 옥합이라도 아깝지 않고, 목숨이라도 부족하다는 절실한 마음이 있습니까? 신앙은 바로 그런 마음으로부터 출발하고 지켜져야 합니다.

구원의 감격을 회복하십시오. 예수님을 사랑하십시오. 그것이 우리 신앙의 가장 중요한 핵심입니다. 그것을 잊지 마십시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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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21


일본에 와서 보니, 다른 어떤 대적보다 ‘분주함’이 신앙에 있어 치명적인 약점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배우게 됩니다.

열정을 가지고 열심히 살아가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기계가 아니기 때문에 쉼 없이 계속해서 일만 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낮만 만드시지 않고 밤을 두신 까닭은, 사람의 체질이 ‘쉼’을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무시하고 계속해서 일에만 몰두하다보면 결국에는 병이 찾아오고 정신적으로도 공허해지게 됩니다.

문제는 이것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신앙을 통해 하나님의 섭리를 배웠고, 그래서 일주일에 하루는 쉬면서 신앙을 점검하고 하나님을 바라는 삶을 살기를 원하지만, 주어진 환경이 너무 척박해서 일에 매이지 않을 수 없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은 저절로 지켜지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은 신자의 믿음에 우호적이지 않으며 알게 모르게 신앙생활을 방해합니다. 그것을 극복해야 신앙이 크는 것이고 영적인 승리를 누리는 것입니다.

저는 일본에서 신앙생활하는 우리가 한국에서보다 두 배는 더 기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선은 주어진 환경이 훨씬 비신앙적이며, 또한 사회의 구조가 일을 너무 숭배하고 좋아합니다. 이런 환경에서 오래 살다보면 자기도 모르게 신앙적 정서가 죽고 일본적인 정서가 스며들게 됩니다. 일본적인 것이 모두 나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신앙적이지 못하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고 여겨집니다.

한국에서는 바쁜 일상을 살면서도 새벽마다 교회를 찾아 설교를 듣고 기도하는 신앙인들을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물론 말뿐인 신자들도 많지만, 그래도 여전히 정말 신앙대로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도 아직은 많습니다.

그러나 이곳 일본에서는 신자를 만나기도 어려울뿐더러 정말 우리의 모범이 될 만한 좋은 신자를 만나기는 더 어렵습니다. 모두 자기의 기준이 강하고 그래서 자기 방식에 도취된 사람들이 많습니다.

생활은 분주하고, 모범은 없고, 사회적 분위기도 신앙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에 일본에서의 신앙생활은 힘이 듭니다. 그래서 더욱 우리가 의지할 곳은 하나님은 한 분 밖에 없고, 우리가 힘쓸 것은 기도와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 모든 것은 정말 전투하는 심정으로, 살기 위한 몸부림으로 행하지 않으면 지키기 힘들고 그냥 영적인 잠에 빠지기는 너무 쉽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곳에 부르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일자리가 없어서 일본에 보내신 것입니까? 육신의 떡만을 생각한다면 우리는 좋은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우리를 이곳에 부르신 것은 이 영적 황무지 동경에서 제대로 신앙생활 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서입니다.

이 사실을 잊지 맙시다. 그래서 분주함 속에서도 신앙을 지키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합시다. 주님께서 동경드림교회를 지켜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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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14


플로리다의 한 시골에 청년 우체부가 있었습니다. 그는 황량한 시골길을 걸어 날마다 편지를 배달하는 자신의 일을 지겨워했습니다. 언제고 기회가 생긴다면 직업을 바꾸어 이 지긋지긋한 시골을 벗어나야 하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던 그가 신앙을 통해 삶의 의미를 새롭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자기를 부르신 삶의 자리에 분명 의미가 있다고 믿고, 그 자리를 최선을 다해 아름답게 가꾸어야 하겠다는 생각으로 변화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주머니에 꽃씨를 넣어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황량한 시골길을 걸으며 그는 조금씩 자기의 주머니에서 꽃씨를 꺼내 길에 뿌리기도 하고, 어떤 것은 손수 심기도 하였습니다.

무려 30년 지나도록 그는 그 일을 꾸준히 했습니다. 

이제 그가 다니던 길에는 무수한 꽃이 피어 아름다운 장관을 연출하였습니다. 그 지역의 명소가 되어 사람들이 찾아왔고, 꽃에 취하던 사람들은 한 우체부의 이야기를 전해 들으며 다시 한 번 감동하였습니다.

사람이 앉았다가 일어난 자리에 쓰레기만 남는 사람이 있고 인격의 향기가 남는 사람이 있습니다. 큰 일, 큰 비전을 좋아하지만, 하나님의 시선으로 보면 모든 인간의 일이 오히려 작은 일에 불과하지 않겠습니까?

때문에 중요한 것은 그 일에 대한 우리의 태도이며, 성실함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먼 미래의 성공이 아니라 바로 지금 현실에서 우리가 믿음에 합당한 무언가를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황무한 삶의 자리에 여러분도 꽃씨를 좀 뿌려 보십시오. 남을 잠시 웃게 하는 유머일수도 있고, 같이 나누는 커피 한 잔의 여유일수도 있고, 힘을 잃은 지체를 위한 격려의 쪽지일수도 있습니다.

처음에는 그 모든 것이 허무하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누구처럼 꾸준히 해나가다보면 그것으로 인해 내 주변이 꽃밭으로 변하지 않겠습니까?

바울은 신자들을 향하여 ‘그리스도의 향기’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 인격의 향기가 그리스도를 생각나게 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는 것은 대단한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그 일을 믿음과 성실함으로 행할 때에 세상은 우리 안에서 예수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어려운 현실을 방치하지 말고, 사람을 귀히 여기십시오.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에 입각한 삶을 보여주십시오. 여러분은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그 자리에 파송되었습니다. 이 신분과 사명을 절대로 잊지 말고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동경드림교회의 지체들에게 주께서 능력 주시기를 구합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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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07


예수님은 다양한 신분과 직업의 사람들을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였던 셀롯 당원 시몬은 당시 로마의 통치에 반대하여 무장혁명을 주장하던 사람이었지만, 세리 마태는 로마의 준 관료로 자기 백성으로부터 개 취급을 받던 사람이었습니다. 요한의 집안은 괜찮았고, 나다나엘은 경건했지만, 베드로는 성격이 급했고, 빌립과 도마는 의심이 많았습니다.

우리의 관점에서 뜯어보면 어떻게 이 열둘이 하나의 팀을 이룰 수 있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을 화목하게 하셨고 오히려 그들의 연합으로부터 폭발적인 능력을 이끌어내셨습니다.

우리가 ‘화목’이라는 말을 성경에서 찾아볼 때에, 그 말은 성향과 의견이 일치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절대로 아닙니다. 오히려 그 말은 하나님과 우리의 사이에서 찾아볼 수 있듯이 뭔가 불편하고 서로 어울리지 않는 가시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가시를 누군가 끌어안고 용서해 주기 때문에 일어나는 평화가 바로 성경이 말하는 ‘화목’인 것입니다.

저는 교회의 중요한 특징이 바로 이러한 ‘화목’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교회는 성향이 맞아서 하나된 사람들이 아니라, 신앙이 같아서 하나된 사람들의 모입니다. 때문에 언제나 충돌과 경쟁, 시기와 같은 불편한 요소들이 내재되어 있습니다. 마치 예수님의 12제자들처럼 말입니다.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는 불현듯 누군가 자기들과 동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그분이 설명해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에 그들의 마음이 뜨거웠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무언가를 느끼는 순간, 그들과 동행하던 바로 그 분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러한 동행이 우리들의 교회에도 계속 일어난다고 믿습니다. 둘이지만 사실은 셋입니다. 육신의 눈에 보이지 않지만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주님으로 인하여 우리가 화목을 배우고 누군가의 가시를 끌어안아 용서하고 관용합니다. 그 은혜의 용납 속에서 교회는 교회로서 ‘화목’의 특징을 성취하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빌립보서에서 “그리스도 예수님의 마음을 가지라!”고 외쳤습니다. 이는 겸손의 마음이며 또한 화목의 마음입니다. 그분이 스스로 낮아지셨기 때문에 우리와 하나님의 화목뿐 아니라 우리끼리의 화목이 가능하게 되어진 것입니다.

동경드림교회는 품이 넓은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자기의 틀을 버리고 예수의 품에 안겨서 함께 행복한 교회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자기 내어줌은 결코 우리의 자존심과 이기심 안에서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우리를 이렇게 만드실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말씀과 기도 안에서 ‘화목’을 깨우쳐 갑시다. 판단하고 정죄하는 마음을 버리고 서로 은혜로 세우는 공동체가 되도록 합시다. 그래서 동경드림교회는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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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30


하나님의 관심은 사람입니다.

좋은 교회란 사람이 많이 모이기도 해야 하지만, 모인 사람들이 제대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양편의 우열을 가리기 힘들지만, 그래도 중심은 ‘많다’ 보다는 ‘변화’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교회가 거대교회가 될 수는 없습니다. 

교회의 성장에는 여러 가지 조건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지역의 특성과 시대의 필요성, 그리고 그 교회가 잠재적으로 지니고 있는 역량들이 함께 작용해서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교회가 탄생하는 것입니다. 마치 기업의 생리처럼 작은 교회가 무조건 큰 교회를 벤치마킹 하려는 것은 바람직한 태도가 아닙니다. 그런 노력은 성경이 말해주는 교회의 존재목적에 부합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작은 교회는 작은 교회대로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크게 사용하시기까지 기다려야 하며, 그 기다림의 가정을 어떤 비전과 기도로 준비할 것이냐가 보다 중요하다 하겠습니다.

저는 목회에서 사람을 중시합니다. 목회자의 영광은 주어진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것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돋보기를 통해 태양의 광선이 하나의 초점에 모아질 때 불이 붙는 것처럼 사람도 관심과 애정의 초점을 통해서만 변화된다고 믿습니다. 

저는 동경드림교회가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성장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다만 그 과정을 어떻게 채워나갈 것이냐의 문제는 지금 우리의 반응에 달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차지하는 것은 하나님의 경륜 가운데 이미 결정된 길이었지만, 다만 그들의 믿음과 반응에 따라 그 시일은 단축되기도, 지연되기도 하였습니다.

애굽에서의 습성을 고치고, 마음의 패역을 버리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법을 배워갈 때에 이스라엘은 물리적 거리가 아니라 마음의 거리에 있어 가나안땅의 축복에 다가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람이 변해야 합니다. 교회는 그것을 위해 존재합니다. 때문에 남이 아니라 바로 내가 문제입니다. 핑계만 일삼고 정작 믿음이 없어 기도하지 못하는 나, 설교를 듣고 이해는 하지만 머리에서 가슴으로 그 감동이 내려오지 못하는 나, 남을 판단하되 자신을 고치지 못하는 내가 문제입니다.

교회만 커지면 뭐합니까? 내가 고쳐지지 않으면 그것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우리 마음에 바른 목적이 세워져야 합니다. 그러면 축복의 열매는 저절로 맺어질 것입니다. 목사는 목사의 일에 집중하고, 성도는 성도의 일에 집중해야 합니다. 그리고 모두가 함께 교회의 머리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뜻에 집중해야 합니다. 

그것이 아름다운 교회요, 큰 교회요, 바른 교회입니다. 동경드림교회는 그런 교회가 되어야만 합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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