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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17 목양칼럼


튜닝이 유행이다. 이는 본래 기계에서 최선의 성능을 끌어내기 위한 조작을 뜻한다. 그러나 시대적 변화에 따라 조작의 중심은 성능에서 기호로 바뀌었다. 이제 맘에 들지 않는 부분을 맘에 드는 것으로, 평범한 것에서 독특한 것으로 바꾸는 것을 튜닝이라 부르게 되었다.

핸드폰을 생각해 보자. 요즘 대부분의 사람들은, 핸드폰을 구입하면 보호필름과 커버를 산다. 몇 년 전만 해도 생각하지 못하던 일이다. 물론 핸드폰이 스마트해지면서 고가의 물건으로 바뀌었고 그래서 더 애지중지 하게 되었다. 그러나 역으로 생각해보면, 고가이기 때문에 왠만한 악세사리는 패키지로 포함되어 있어야 하고, 제품 자체가 다른 도움과 보호를 필요로 하지 않아야 한다.

왜 핸드폰 회사는 처음부터 커버와 보호필름이 필요하지 않은 상태로 제품을 만들지 않을까? 

역설적이게도 핸드폰의 악세사리 회사들은 영세한 업체들이다. 물론 창의적인 능력이 돈에 비례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본래 핸드폰을 생산하는 애플이나, 삼성에 훨씬 유능한 디자이너들이 많을 것이다. 그들이 만들어낸 본래의 디자인을 다른 것으로 덮어 씌우는 것이 과연 올바른 튜닝일까?

요즘은 사람도 튜닝의 대상이 되었다. 눈과 코는 예사가 되었고, 이제는 턱관절을 조각하기도 한다. 그 후유증으로 평생에 병자가 되거나 심지어 죽는 사람이 나오는데도 사람들은 자기를 튜닝하고 싶은 열망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손에 잡히는 모든 것을 자기만의 것으로 바꾸고 싶어하는 열망이 드디어 자기 몸에까지 손을 대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서 앞에 했던 질문을 다시 반복하고자 한다. 창조주가 만드신 디자인을 우리 손으로 고치는 일이 과연 긍정적인 결과를 만들 수 있을까? 과연 본래의 디자인보다 더 훌륭해지는 튜닝은 가능한가? 가장 자기다운 디자인은 결국 이미 만들어진 자기의 모습의 담겨져 있는 것은 아닐까?

성경은 외모를 튜닝하지 말고 내면의 튜닝에 분발하도록 우리를 격려한다. 사람은 다 만들어진 존재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재능(달란트)를 가지고 과연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에 따라서 사람의 존재가 변화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내면의 변화가 외모까지 변하시킨다는 것이다.

마음의 변화에 제일 민감한 것이 눈빛이고, 인격적 변화는 표정과 태도를 확실히 바꾼다. 그리고 그런 미묘한 변화에 의하여 사람은 전혀 다른 사람으로 느껴질 수 있다. 몇 년의 시간 차를 두고 같은 사람의 얼굴에서 천사와 악마를 보고서 그림을 그렸다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경험처럼 말이다.

가장 자기다운 디자인은 이미 자기 안에 있다. 그것을 누리며 살 것인지, 아니면 흔들리는 '기호'에 맞추어 함부로 손을 댈 것인지는 자기의 선택이다. 그러나 그 선택이 인생에서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주의하라. 핸드폰 커버와 필름은 떼고 바꿀 수 있지만, 사람의 몸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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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오후,
지혜네와 함께 맥도날드에 갔습니다.
아이들은 주일마다 받는 장난감이 있다고 하네요.
그걸 위해 주말에는 꼭 가야만 한답니다.

덕분에 햄버거 하나 같이 먹고,
크리스마스 핸드벨 공연도 잠시 구경했습니다.
어느새 크리스마스가 가까이 왔네요.


웃음은, 세상을 환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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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10 목양칼럼 ::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제가 사는 히까리가오까에는 은행나무가 많습니다.

이제 제법 노랗게 물든 나무가 나란히 줄을 서서 무수히 많은 잎사귀를 떨구는 모습은 매해 볼 때마다 감격을 자아냅니다. 그 감격은 예뻐서도 나오지만, 가여운 마음에서도 나옵니다. 모진 겨울을 목전에 두고서, 나무를 지키기 위하여 자기를 희생하는 잎사귀의 모습은 처절하기까지 합니다. 더러는 아직도 푸른데, 더러는 아직도 생생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무'라는 본체를 지키기 위하여 이 녀석들은 자연의 법칙에 순응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이렇게 절실하게 무언가를 지켜본 적이 있던가요? 우리들은 이렇게 아프게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면서도 조용히 숨죽여 본 적이 있던가요?



저 자신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늘 말이 많았고, 내가 떨어지지 않아야 하나님의 영광이 된다고 설득하려고만 했습니다. 그래도 떨어지는 날에는 눈을 흘기고 아우성을 쳤습니다. 나는 거름이 아니라 열매가 되어야 한다고, 나는 마땅히 이 세상에 주인공으로 살아야 한다고 외치고 또 외쳤습니다.

그러나 인생에 주연은 무엇이고 조연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모두 착각으로 높은 탑을 쌓으며 위대한 인생을 살려 하지만, 정작 인생은 떨어지는 낙엽 앞에서 겸손을 배워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정작 부끄러운 것은 죽는 일이 아니라 사는 일입니다. 자기 답게 살지 못하고, 자기 자리를 지키지 못하며, 자기의 사명을 다하지 못할 때에 삶은 구차한 것이 되고 맙니다. 그래서 우리는 영원히 죽지 않게 해달라고 구할 것이 아니라, 죽어야 할 때를 알고 바르게 죽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이맘때면, 아이들은 낙옆 위에 뒹굴고 낙엽을 모아 파아란 하늘에 던지며 자지러지는 웃음을 뿜어냅니다. 그런 아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낙엽이 하나도 슬프지 않습니다. 낙엽은 죽은 것이 아니라 돌아간 것이 분명합니다. 그 본래의 자리로, 아이들의 추억 속으로, 나의 사색 곁으로.



희생이라는 것도 이와 같은 것이 아닐까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제 역할을 다하고 본래의 제 자리로 돌아가는 것. 아무 것도 남지 않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웃음이 남게 하는 것. 어쩌면 그것을 위하여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허니, 무명하다고 고개를 떨구지 마십시다. 나무도 그렇게 하지 않는데 하나님의 자녀라는 우리들이 그래서야 어디 쓰겠습니까? 하나님 앞에 서면, 정녕 누가 헛된 삶을 살았는지 분명히 알게 되겠지요. 그 때까진 그저 내게 주어진 소임을 다하기 위하여 전력을 다할 뿐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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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03 추수감사절 주일오전예배

동경드림교회 (http://TokyoDream.ORG)


제목 : 하늘의 하나님께 감사하라

본문 : 시편 136편23~26절


(136:23) 우리를 비천한 가운데에서도 기억해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36:24) 우리를 우리의 대적에게서 건지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36:25) 모든 육체에게 먹을 것을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36:26) 하늘의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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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03 목양칼럼 :: 신앙으로 드리는 감사


우리에게 2013년의 감사절을 동경에서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다사다난했던 한 해를 또 무사히 보내고, 우리는 이제 2달 남짓 남은 한 해를 마무리 해야 하는 시점에 서 있습니다. 모두에게 쉽지 않은 인생의 한 부분이었을 것이라 짐작해 봅니다. 그러나 세월은 흐르고 돌아오지 않기에, 비록 우리에게 힘들었고 아직도 힘든 날들이지만, 그러나 언젠가는 그리울 날들이고 감사할 날들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인생은 앞이 보이지 않습니다. 보이는 것 같아도, 사실 그 계획대로 되는 법은 별로 없습니다. 늘 생각하지 못한 복병을 만나고, 늘 짐작하지 못했던 사건에 처하는 것이 바로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이끌어 주시는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이 있기에 우리는 절망하지 않고 사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합시다. 그러나 그 감사는, 결코 말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인격이 되고 삶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 합시다. 감사하는 자가 절망할 수 없고, 감사하는 자가 이웃에게 무례할 수 없습니다. 감사는 분명히 오늘을 더 충실하게 살아가는 힘이며, 더 많은 사람들을 사랑하게 해주는 스스로의 격려입니다.

성경이 무수하게 감사를 말하고 가르치는 이유는, 바로 이 감사를 통해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고 우리 인생을 더 풍요롭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감사는 느낌이 아니라 훈련입니다. 단순한 상황의 인식에서 나오는 좋은 반응이 아니라 의지적으로 이 상황을 뛰어넘어 하나님을 바라보는 결단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이 사실을 바르게 배우고 명심하기를 바랍니다. 

감사해서 감사하는 것은 어린 아이의 감사입니다. 감사하지 않은데 감사하는 것은 어른의 감사입니다. 아프고 고통스러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감사하는 것은, 진정한 신앙인의 감사입니다.

그런 점에서 오늘 우리는 우리의 감사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더러는 정말 상황이 감사해서 감사하고, 더러는 거기 우리의 소망과 신앙을 투영하여, 의지를 가지고 감사해야 합니다. 이 두 가지 감사가 하나로 만날 때에, 비로소 '범사(모든 것)에 감사하라'는 성경 말씀이 성취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감사하는 자에게 선하게 갚아 주십니다. 이것은 분명한 진리입니다. 그러므로 감사하는 사람이야말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는 지혜로운 사람이라 하겠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지혜로운 사람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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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27 목양칼럼  :: 이것이 진정한 응답입니다



하나님께 응답을 받았다고 너무 가볍게 말하는 사람들의 본심에는 ‘응답’을 믿지 못하는 깊은 실망감이 자리하고 있을 때가 많습니다. 어쩌면 말이라도 그렇게 해서, 하나님께 응답을 받아 보려는 은밀한 강요가 내포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내가 이렇게 하나님에 대하여 이미 떠들어 놓았는데, 하나님이 계시다면(!) 응답하지 않으실 수는 없을 것이라는, 꼬인 심리가 엿보이기도 합니다.

믿고자 하는 것과 믿어지는 것은 다릅니다.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믿고자 하는 것(의지)을 믿어지는 것(은혜)과 혼동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혼동은, 처음에는 매우 의욕이 넘쳐 보여도 결국에는 깊은 실망감으로 끝날 때가 많습니다.

솔직히 하나님께 여쭈고 싶습니다. 왜 이런 사람들의 손을 잡아 주시지 않느냐고요. 대담하게 ‘응답’을 떠들고 다닐 때에, 조금 유치하기는 하지만, 하나님께서 즉시 응답의 손으로 나타나 주시면 그들이 변할 수 있지 않을까요? 적어도 믿음을 가지게 되지 않을까요?

그러나 저의 경험과 묵상으로 말씀을 드린다면, 하나님께서는 결코 그런 식으로 일하시지 않습니다. 목사로서 늘 주의를 환기시켜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우리가 생각하는 응답은 어떤 문제의 ‘해결’이라면, 하나님께서 생각하시는 응답은 ‘변화’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감히 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응답에 대하여 깐깐하게(?) 구시는 이유도 아마 이 때문일 것입니다. 잦은 기분 변화에 술렁거리고, 말이 많은 사람은 일단 자기를 변화시키려고 하지 않습니다. 은혜로운 말만 많이 하는 것이 아니라, 변명도 잘하지요. 그리고 그런 방식의 신앙생활은 한 번의 응답(해결)으로 기분이 좋아진다 하더라도, 궁극적인 응답(변화)으로 나아갈 희망이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기도를 하나님과의 교제라고 말씀들 하시지요. 틀렸습니다. 대부분의 기도는, 야곱의 씨름입니다. 내 욕구(해결)와 하나님의 응답(은혜) 사이의 줄다리기이지요. 그 과정을 지나, 우리의 환도뼈가 부러진 이후에야 우리는 다리를 절며 응답의 저편으로 갈 수 있습니다.

그러니, 기도를 옆집 아저씨에게 만원쯤 꾸어 오는 것처럼 간단히 생각하지 마십시오. 이건 나를 죽이고, 다시 새롭게 살리는 심각한 과정입니다. 그 자리에 앉도록 온갖 미끼를 던지기도 하지만, 기도를 가볍게 여기면 반드시 깊은 영적인 대가를 치르게 됩니다.

오래 기도하라는 말은, 깊이 생각하라는 말입니다. 같은 말로 시간만 보내는 것은, 중언부언 하는 기도이고, 예수님께서 이미 금지하신 기도의 방법입니다. 중요한 것은 기도의 자리에서 철저하게 나의 현실, 나의 실체와 마주하고 절망하는 것입니다. 나의 환도뼈가 부러져야 합니다. 그게 뭔지는 저보다 여러분이 잘 아실 겁니다. 아니, 아셔야만 합니다.

그 이후에 하나님께서 나를 부축해 주십니다. 진정한 응답이 영혼에 임하는 순간이지요. 말할 수 없는 평강과 위로가 있습니다. 찬송가 가사로 표현을 한다면, 세상과 나는 간 곳 없고 구속한 주만 보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응답입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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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20 목양칼럼 :: 우리의 왕이 되신 그리스도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 요즘 다시 주목을 받는다고 합니다.

새로운 책들이 무수히 저작되고 있는 현실에서, 사람들이 꾸준히 고전으로 눈을 돌리는 것은, 역시나 전도서의 말씀과 같이 '해 아래 새것은 없다'는 사실을 깨우쳐 주는 것 같습니다.

강력한 군주의 등장을 열망하는 내용으로 저작된 <군주론>은 아직 중세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해 여러 공국으로 분열되어 있었던 마키아벨리의 조국, 이태리를 위해 저작된 책입니다. 

당시 독일과 프랑스 등은 이미 강력한 국왕의 등장으로 나라가 통일되어 강력한 국가를 일으키고 있었지만, 이태리는 중세적인 구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외세의 침략을 자주 받았고, 그런 사회 속에서 외교관으로 살았던 마키아벨리는 강력한 조국에 대한 열망을 마음에 품게 되었던 것입니다.

<군주론>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권력을 쟁취하고 사용하는 비정한 리더를 그리고 있는 것 같지만, 실상 그 안에는 피폐한 이태리 민중을 구해줄 영웅을 갈망하는 기다림이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과연 그의 생각이 옳은 것이었는가에 대하여는 아직까지도 회의를 남깁니다. 영웅의 탄생이 비탄에 빠진 대중을 구원하기는커녕 오히려 외세의 침략보다 더 깊은 수렁으로 이끌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수 차례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사사기에 나오는 바와 같이, 사람은 '왕'의 자리를 감당할 수 없습니다. 

절대적인 권력의 왕은 절대적인 부패를 낳기 마련이고, 부패한 권력은 그 권력의 크기 만큼 사람들에게 커다란 해를 끼치게 됩니다.

그래서 완전한 것은 아니지만, 현실적으로 서로의 권력을 견제하는 역할을 분담하여 아무도 왕이 되지 못하게 만든 민주주의 정치제도가 인류로서는 최선의 선택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그러나 이 또한 지나갈 것입니다. 이 세상의 진정한 왕이신 그리스도가 나타나시는 날에, 세상의 모든 정치는 마땅히 무대 뒤로 사라져야 할 한시적인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날이 오기 전에, 이미 우리의 마음은 그분을 왕으로 모시고 살아야 합니다. 

잊지 맙시다.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는 이미 왕이 있습니다. 그분을 향한 충성이 먼저이고, 그 나머지는 다음이라는 것을 항상 명심하며 살아가는 삶의 질서를 항상 마음에 새기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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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주가 다르게 아이가 커 갑니다.
놀랍고 감사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더욱 지혜와 총명을 더하시고 건강으로 지켜 주시기를 기원합니다.

유진아, 사랑해!

** 사진을 클릭하면 원본(빅사이즈)으로 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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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마르크 카페에서



어스름한 저녁에 

동네를 어슬렁거리다가 들어간 카페에서

새처럼 재잘거리는 아이와

우아한 표정으로 차를 마시는 여인과

피곤에 찌든 남자와

깊은 주름 속에 빛나는 노인과

손톱을 칠하는 소녀와

어설픈 외국어를 구사하는 나를 보았다


산 마르크,

예수의 제자였던 그는 오늘

무슨 빵을 먹었을까?

행복한 하늘 저편에서

창가에 앉은 내 찻잔 위로 흐르는

어색한 낙엽의 춤

그래, 삶은 언제나 아름답다

이해할 수 없는 순간에도


어둠이 시야를 방해할 즈음에야

분위기 좋은 등이 켜진다

카페를 나서려고 할 때에야

듣고 싶었던 음악이 나오기 시작한다

만나고 싶은 사람은

약속을 해도 만나지지 않고

피하고 싶었던 사람은

간발의 차이로 내 앞을 가로 막는다

그래, 싫어하지 말자

그러면 두리번 거리며 문을 나설

일도 없지 않으랴


오늘도 우리 동네는

맛 있는 빵과 구수한 커피로

가을처럼 붉게 익어간다

참 좋은 저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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