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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풀에게 물어라



생명이란 얼마나 모질도록 간절한가

대리석 보도블럭의 틈새로 자라난 풀이 말을 건다

이렇게 해볼 수 있겠냐고? 

천 근 돌에 눌리고 하늘은 보이지도 않아도

틈새로 스미는 햇살, 바람, 빗물을 아껴 먹고 

마침내 뿌리를 뻗어 자라난 이 고상한 풀이

나처럼 해보라고 말을 걸고 다리를 잡는다


들의 풀만도 못하다, 사람이

산다는 것의 찬란함을 겸손하게 배우고 보면

존재의 매일이 기적이고 은총인데

그걸 모르고 돌로 떡을 만들어 달라고 아우성만 친다

아서라, 돌은 떡이 되어도 달라질 것이 없단다

맘이 변해야 비로소 변하지

풀에게 말을 걸어라, 너는 어째서 거기 태어났냐고

너는 어떻게 그토록 간절하게 살았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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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13 목양칼럼 :: 교회는 결코 넘어지지 않는다


중세시대 유럽은 이미 종교적 기득권을 독차지하는 로얄 계층이 등장 했습니다. 말하자면 ‘교회귀족’인 이들은, 교회의 권력과 엄청난 재산을 상속해 갔습니다.

이러한 부조리를 타파하기 위하여 교회는 사제들의 독신제도를 강화하게 됩니다. 사제들이 본래의 계율을 지켜 독신으로 일생을 마치면 일어날 수 없는 타락에 당황했던 것이지요. 

그러나 역사가 보여주는 현실은 참담합니다. 아무리 탁월하고 합리적인 제도도 인간의 탐욕을 가두지는 못한다는 것이지요. 결국 교회의 권징은 하급사제들에 국한되고, 역시나 대부분의 ‘교회귀족’들은 음흉한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자기들의 왕국을 계속해 갔습니다. 

16세기 프랑스에서는, 국왕 프랑수와 1세와 교황 클레멘트 7세의 담합으로 주교와 수도원장 같은 고위층 사제들의 임명권을 왕이 가지게 됩니다. 그 결과 국왕에게 줄서기를 하는 사제들이 교회의 고위직에 오르게 되고, 그들은 자신들이 뇌물을 바친 만큼 최선을 다해(?) 교회를 노략질 했습니다. 또한 그 노략질한 재물과 권력을 자신들의 숨겨진 피붙이들에게 대물림 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타락의 패턴은 비슷합니다. 처음에는 재산을 탐하고, 다음에는 그것을 자기 자손에게 넘겨서 영원히 소유하려 합니다. 이 과정에서 탐욕과 함께 방탕과 거짓, 음모, 술수가 미친 굿판을 벌이게 됩니다.

이러한 시대를 개탄하는 것은 신앙과 양식이 있는 사람들로서는 당연한 반응이 아닐까 합니다. 하지만 절망할 필요까지는 없어 보입니다. 왜냐하면 이런 타락이 해일처럼 밀려와 교회를 넘어뜨리려고 했던 적이 과거에도 수없이 많았지만, 그것을 통과하고 여전히 빛나는 십자가가 우리 앞에 세워져 있기 때문입니다.

확신하는 바는, 이 참담한 시대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승리할 것입니다. 교묘한 술수와 탐욕이 오히려 다윗 앞의 골리앗처럼 쓰러지고, 연약해 보였던 교회의 신앙이 시대를 넘어 예수 그리스도를 고대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성경의 약속을 믿어야 합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직접 하셨던 말씀입니다. 음부의 권세가 결코 교회를 이길 수 없다는. 비록 주어진 현실이 참담하다 하더라도 그것은 우리가 헤아릴 수 없는 하나님의 경륜 속에서 잠시 필요해서 허락하시는 것일 뿐, 영원한 패배가 아닙니다.

교회는 재산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신앙을 지켜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진흙탕에 함께 뒹굴며 망가지기 보다는, 여러분의 근간이 되는 신앙을 붙들고 승부하십시오. 그것이 승리의 비결입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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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과이 페스티벌 인 도쿄 (히까리가오까공원 光が丘公園)



이번 주일(10월13일) 히까리가오까공원에서 파라과이 페스티벌이 열린다고 합니다.

동경에 계신 분들은 한 번 구경 오셔도 좋을 것 같네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이번 주일에 예배 마치고 나가서 둘러봤으면 합니다.

아침에 동경드림교회에서 함께 예배 드리고 찾아보면 더 좋을 것도 같네요... ^^

혹시라도 의향이 있는 분들은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맛있는 점심과 간단한 가이드 제공합니다. 또한 동경에서 함께 살아가는 좋은 분들을 만나실 수 있습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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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있을까요?


오늘 주일을 보내며, 사모님은 계속 웃어서 얼굴 근육이 어색하다고 하더이다.

이유는 유진이 때문입니다. 

유진이가 낯을 덜 가리기 시작하면서 이 품에도 가고 저 품에도 가니, 아이를 안고 어르다가 어른들이 웃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딸, 하윤이를 한국에 보낸 장수호 집사님은 유진이의 옹알이가 옛날 생각을 하게 만드나 봅니다. 

평소 우리 교회 공식 사진사는 유진이 아빠입니다. 

그러나 스님이 제 머리 못 깎듯이 아무리 아빠가 사진을 잘 찍어도 아빠와 유진이가 함께 있는 사진은 드물 것 같아서 얼른 카메라를 들어 봤습니다.

맑게 생긴 유진이도 참 좋지만, 엄마와 아빠의 모습도 너무 좋습니다. 사람들에게서 햇살 냄새가 납니다.

앞으로도 더욱 행복하게 행복하게... 예쁜 모습 기대하겠습니다.

유진이네 파이팅~


## (사진을 클릭하면 원본크기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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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06 목양칼럼 :: 위험한 영적 비만


사람은 아주 적게 먹고도 살고, 아주 많이 먹고도 삽니다. 

음식을 지나치게 적게 먹을 경우에는 영양실조가 나타나고, 또한 지나치게 많이 먹을 경우에는 비만이 찾아오게 됩니다. 그 양편은 모두 건강에 해로우며, 극단적으로는 생명을 위협하기까지 할 수 있습니다.

건강을 위해 가장 좋은 생활은, 먹은 음식을 적당한 운동으로 잘 소비하는 생활을 해나가는 것입니다. 먹는 것과 운동 하는 것의 균형을 찾는 일이 곧 건강의 비결이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몸에는 ‘본능적 건강성’이 있다고 합니다. 이 말은, 몸이 살 길을 스스로 찾는다는 것입니다. 몸에 이상이 생겼을 때에, 의학을 잘 알지 못하더라도, 몸이 가르쳐 주는 신호대로  잘 좇아가면 병을 고치고 회복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식욕은 이 본능적 건강성이 잘 작동하지 못하는 부분입니다. 그것은 먹는 것이 단지 몸을 유지하는 수단이 아니라, 바로 욕심을 채우는 수단으로 변질하기 때문에 생겨나는 일입니다. 다시 말해서 식욕이 음식에 대한 욕망을 지나 음식에 대한 탐욕이 될 때에 몸은 먹는 기능을 통해 망가지는 것입니다.


신앙에 있어서도 마찬가지 원리가 적용될 수 있습니다. 

신앙을 건강하게 하는 비결은, 우리가 아는 것과 행하는 것에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듣고 행하지 않으면 신앙은 모래 위에 짓는 집과 같이 위태하고 참담한 결과를 낳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반드시 그 양편(input & output)을 잘 살피고 균형을 찾아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반드시 탈이 나고 부작용을 만들게 됩니다.

오늘날 신자들은, 듣기는 많이 하지만 정작 행하는 것에서 부실하여 영적인 비만이 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설교를 평가하기는 하지만, 정작 자신이 얼마나 부실하게 신앙의 삶을 살고 있는지는 잘 반성하지 않습니다. 더 좋은 설교에 대한 욕망은 넘치는 반면에, 정작 그 설교에  부합하는 삶을 사는 것에 대한 고민은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이것은 결코 사는 길이 아닙니다. 건강할 수 없는 양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귀를 즐겁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주어졌다는 사실을 명심하십시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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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에 들어섰다... ^^

네리마 구약소(구청)의 공식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네리마구에는 모두 9개의 추천 산보코스가 있다. 


그 중에서 우리집에서 바로 시작되는 산보코스가 시미즈야마(清水山)코스이다. 
산보 가이드가 PDF로 제공되고 있다. [링크]  (편의를 위해 아래 첨부해 두었다)

shimizuyama-1.pdf

shimizuyama-2.pdf


가이드북에는 7.2킬로라고 나오는데,
집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구글맵에 찍어 보았더니 대략 8.5킬로 / 1시간46분이 찍였다.


구글맵 링크 :: http://j.mp/1byeqMX


출발해서 주택가를 지나는 길은 생각보다 좋지 못했다.

낮에도 차량 통행이 많고, 길도 그냥 주택가의 동네 길이어서 아기자기한 산보로를 기대했던 마음은 실망으로 가라앉았다.

하지만 햇살 좋고 바람도 간간히 불어 걷는 재미는 길의 왜소함을 보충했다.

중간에 하천을 끼고 이어지는 길로부터 조금은 산보의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전경들이 이어졌다.


오래된 주택가에는 중간중간 생산녹지가 많아서 여러 작물들이 재배되고 있었는데,

귤도, 감도, 포도도 자라고 있었다.

네리마에서 귤이 생산된다는 사실은 이번에 처음 알았다... ^^

더욱 정겨운 풍경은, 군데군데 자기 밭에서 생산한 작물을 좌판으로 풀어놓고 동네 사람들에게 판매하는 상점들이 있다는 점이다. 저렴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신기하고 흥미 있었다.


주택가 안쪽으로 조그만 가계들이 많았다.

한국의 주택가의 경우, 대부분이 음식점들이다.

그러나 일본의 주택가에는 설비, 중장비, 목공, 조경, 파이프, 수공업체, 디자인, 연구소 등이 다양하게 보였다.

작은 가계를 운영하더라도 큰 위기 없이 지속적인 안정을 약속 받을 수 있다는 것은 일본 사회의 저력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참 부러운 현실이다...


산보코스의 만족도는 5점 만점에 3점 주겠다.

일단 길이 어려웠다. 대부분이 차도와 골목길을 가는 것이라 지도만 보고서 걷기에는 좀 불안했다.

그리고 길이 심심하다. 딱히 길에서 발걸음을 잡는 스팟이 없다.

가이드북에 나온 스팟들이 실제로는 부실하기 그지 없고, 별로 관리도 되고 있지 않아 보였다.

좀 더 아기자기하고 일본스러운 산보코스를 알아봐야겠다...










































Posted by makari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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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와 다혜도 오랜만에... 카메라 앞에 앉혔다.

너무 자라서 신기하기만 한 녀석들... 이 녀석들이 이렇게 컸으니 내가 나이를 먹은게지. ㅋㅋ 

그걸 모르고 나만 나이 먹는다고 생각 했으니 참 바보구나. 

아이들의 웃음은 내 영혼에 내려앉은 먼지를 털어내는, 상쾌한 바람 같다...

고맙다, 잘 자라 주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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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보, 예민한 사내, 최.유.진.

보통 아이들이 내 품에 오면 잘 울지 않는데, 이 녀석은 내 얼굴을 보기만 해도 당장 울어서 나를 무척 당황스럽게 했다.

그간에 서로 간을 보다가 오늘 겨우 품에 안아서 재울 수 있었다. 덕분에 이 녀석 얼굴을 맘 놓고 카메라에 담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엄마, 아빠의 사랑을 많이 받고 자라서 그런지 무척 포동포동 탐스러운 아이다.

유진아, 앞으로도 잘 지내자! 사랑해!


** 클릭하면 원본 사진(대용량)으로 볼 수 있습니다. 


누구 닮았니? 예수님 닮아라~

멋진 미소야

아빠를 좋아해!



가을 햇살이 들어서 느낌이 좋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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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29 목양칼럼 :: 그리스도인의 관점


바울은 세 번째 단계의 하늘에 올랐던 경험을 간접화법을 통해 말한 바가 있습니다. 영적인 신비는 사람이 헤아릴 수 없는 저편의 것인지도 모릅니다.

뜬금 없는 말이 될지 모르지만, 저는 이번 여행에서 비슷한 경험을 했습니다. 

제가 출국을 하던 지난 16일은 일본에 태풍이 상륙하던 날이었습니다. 일찍 도착한 공항은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비행기들이 취소되었고, 사람들은 비바람이 불어대는 창을 보면서 공항 여기저기에 자리를 잡고 누웠습니다.

다행히도(?) 저의 비행기는 취소되지 않고 오후 4시 반으로 변경되었기 때문에, 일생 처음으로 공항에서 6시간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안부를 전하는 전화를 하고 책을 보며 지루한 시간을 견디었습니다.

드디어 탑승 수속을 마치고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생각보다 훨씬 작은 비행기였기 때문에 과연 태풍을 뚫고 무사히 갈 수 있을지 조금은 걱정이 되었습니다. 이륙과 상승의 과정에서 동체는 심하게 흔들렸습니다.  비행기는 캄캄한 구름을 뚫고 위로 위로 올라가기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어둡던 구름의 색깔이 점점 하얗게 변하더니, 드디어 비행기는 구름 위의 하늘로 솟아 올랐고, 마치 구름의 바다 위를 항해 하는 배와 같이 멋진 장면을 선사해 주었습니다.

불안이 금새 감탄으로 변했습니다. 태풍이 만들어 놓은 흔적은 마치 구름을 붓으로 휘저어 놓은 것 같아서, 더욱 아름답기만 했습니다.

그 장면을 보면서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인생에서 어둡고 힘들다고 느끼는 것은, 모두 아래에서 보는 관점이 아닐까 하는. 그 구름을 뚫고 솟아올라 하늘의 관점에서 보면, 같은 시간도 훨씬 아름답고 멋진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찬찬히 해보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이 가장 하나님을 가까이 했던 것이 어느 시대입니까? 

역설적이게도 그들이 광야를 지나던 시절입니다. 그 고단했던 행진의 삶에서 세상적인 환경은 지난(至難)했지만, 하나님은 가장 가까이 계셨고 그들과 직접 소통하셨습니다. 

같은 구름이 아래에서는 캄캄하게 보이고, 위에서는 햇빛을 머금은 찬란한 구름이 될 수도 있습니다. 결국 그 양편 중에서 어느 것을 보고 사느냐가 인생의 품질을 결정하는 요인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늘의 관점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이 신앙입니다. 하나님은 이유 없는 현실을 주시지 않습니다. 그러니 피하려고만 하지 말고, 그것을 뚫고 솟아 오르는 저력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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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큰 아들과 같은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 올린 것이라 더 관심이 갔습니다. 드디어 이번에 아버지의 선물로 아이폰5를 가지게 되었다고, 사진과 함께 자랑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진의 아이폰에는 테두리에 글자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2014년도 서울대 신입생 OOO’ 


아마도 아버지가 공부 열심히 해서 서울대 꼭 들어가라고 그렇게 글자를 새겨서 아들에게 선물을 한 것 같았습니다. 좋기도 하겠지만, 부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에 꼭 가거라.”


우리가 흔히 아이들에게 하는 말입니다. 나도 우리 아들에게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말은 소망보다 탐욕에 가깝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공부를 열심히 하라는 말은 학생에게 합당한 덕담입니다. 그러나 그 열심히 공부하는 것의 목표가 ‘대학’일 수 있겠는가 하는 것에는 의문이 듭니다. 좋은 대학과 덜 좋은 대학, 혹은 나쁜 대학이 무엇인지 그 기준을 말하는 것도 복잡하겠지만, 무엇보다 대학에 꼭 가야 한다는 강요가 아이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줄까 걱정이 됩니다.


한 동안 생각을 하고 기도를 했습니다. 아이를 위해 기도할 때에, 나는 아이 보다 아이에 대한 나의 태도와 마음, 소망에 대하여 더 많이 기도 합니다. 내가 바른 생각과 신앙을 가져야 비로소 곁에 있어주는 부모로서 좋은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나름 생각을 정리한 다음에, 오늘 저녁식사 자리에서 큰 아들에게 공부하라는 당부와 함께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네가 자부심을 가지는 것이다. 스스로 실망하거나 한심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서 열심히 공부하라는 것이지 꼭 일류 대학에 들어가라는 말이 아니다. 정말 하고 싶은 일이 생기고, 마음에 소망이 심어지면, 나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나는 너에게 그런 꿈이 나타나기를 기도 한단다...... 아빠는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그 행복을 내일로 미루지는 말아라. 오늘 주어진 상황에서도 얼마든지 스스로 행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라. 오늘을 행복하게 살지 못하는 것은 결국 자기 탓이란다.”


소망은 사랑을 말리지 않습니다. 아이를 향한 소망이 강요와 간섭이 된다면, 그것은 소망이 아니라 욕심이기 때문입니다.

성경과 역사를 통해 확인하는 바와 같이, 사람의 욕심은 때때로 거룩한 이름으로 포장되어 더 큰 불행을 낳습니다. 소망이나 사랑과 같은 이름으로 포장된 욕심이 오히려 노골적으로 드러난 욕심보다 더 위험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늘 경계해야 하겠습니다.


어떤 말을 자녀에게 하기 전에, 그 말이 과연 소망인지 욕심인지 기도해 보십시오. 그 말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살펴가는 동안, 우리는 자녀가 우리를 되비치는 거울이라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거울 앞에서, 우리는 나를 아름답게 바꾸어야 비로소 거울 안의 자녀도 아름답게 변한다는 것을 배우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십니까? 알고 있습니다. 지극한 그 사랑이 자녀의 소망에 물을 주는 것이 되기를 바랍니다. 정말 그러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부모들은 더 많이 자신을 위해 기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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