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쉬운 길로 가지 마라! makarios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896)
목회 (632)
목양칼럼 (474)
설교 (132)
교육 (19)
자료보관 (0)
시편묵상 (7)
인생 (179)
동경in일본 (35)
혼자말 (50)
추천 (0)
11-24 15:21
Total
Today
Yesterday

달력

« » 2024.11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2006-11-12


좋은 신앙을 가지기 위해서는 좋은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세월을 받아내면서 좋은 성품과 인격을 가지는 것이 신앙의 중요한 요소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될 때가 많았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신앙이 기도, 찬양, 예배와 관계된 것에서만 나타난다고 생각하지만, 실상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일상을 살피시며 그에 합당하도록 은혜를 주십니다.

때문에 아무리 열심히 구해도 삶에서의 변화가 없으면 신앙은 더 이상 자랄 수 없는 어떤 한계에 다다르게 되어 있습니다. 많이 기도하면서도 더 깊은 신앙의 차원으로 가지 못하는 많은 신자들이 바로 이러한 처지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때에는 열심히 기도하는 것보다 깊이 생각하는 것이 더 중요한 은혜의 방편이 될 수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는 까닭이 ‘고난의 십자가를 지게 하시기 위함’이라고 말합니다. 고난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십자가를 지는 것이 목적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결국은 부활의 영광이 되었던 것처럼, 신자의 고난도 은혜를 통하여 결국은 하나님의 영광이 되어야 합니다.

때문에 하나님은 ‘은혜’만을 추구하는 신자들을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은혜는 반드시 인격이 되어야 하고, 삶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더 큰 은혜를 마음껏 쏟아주실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은혜받기를 사모합니다. 그러나 은혜로 인하여 부여되는 새로운 신분과 책임에 대하여는 너무 무지한 것 같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과 일반으로 말하고 행동하면서도 전혀 그것이 자기의 양심에 거리낌이 되지 않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교회의 사랑하는 지체들은 이러한 무모함으로부터 돌이켜 하나님을 제대로 추구할 수 있는 신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전심으로 추구하십시오. 모든 삶의 영역에서, 특별히 우리의 마음의 중심에서 항상 하나님께 순종하려는 태도를 가지도록 합시다. 하나님에 대한 일반적인 상식조차 없는 일본의 사회에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버겁고 힘든 일인지 목사도 배워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포기하거나 타협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그러한 태도는 결국 우리의 은혜 없음이 될 것이며, 우리의 신앙생활을 더욱 힘빠지게 할 것입니다.

힘들어도 힘을 내어야 합니다. 자기를 돌아보고 항상 그리스도인답게 살기 위하여 노력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보십니다. 이 황무한 땅에서 몸부림치는 우리에게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기를 원합니다.


Posted by makarios
, |

2006-11-05


시내가 모여 큰 강을 이루듯이 한 가정이 바로 서는 것으로부터 교회가, 사회가, 온 세상이 건강해집니다. 때문에 오늘 우리 교회에서 새로운 가정들이 탄생하는 것은 얼마나 기쁜 일인지 모릅니다.

정명훈+이설희 가정과 장수호+이선경 가정의 멋진 출발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풍성한 축복을 더하시기를 빕니다.

또한 온 교우들은 이 가정들이 앞으로 경건한 신앙과 바른 삶으로 하나님을 섬길 수 있도록 함께 격려하고 기도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신자의 삶은 개별적인 것이 아니라 공동체적인 것입니다. 혼자서는 아무리 잘해도 한계가 있습니다. 서로 보조를 맞추고 마음을 같이할 때에 좋은 영향력을 끼치고 하나님의 의를 이루게 됩니다.

그런 점에서 새 가정의 탄생은 기쁨이며, 동시에 좋은 부담입니다.

기도해야 합니다. 관심을 주어야 합니다. 좋은 모범을 보여야 하고, 때로는 훈계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지체들의 관심과 사랑으로 인하여 한 가정이 하나님의 뜻에 바로 서는 것은 이 세상에서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열매이며, 기쁨일 것입니다.

또한 새롭게 가정을 꾸린 지체들을 향하여 권면합니다. 더욱 성숙하게 생각하고 시간을 아껴 주님과 교회를 섬기십시오. 여러분의 섬김이 여러분의 축복이 될 것을 저는 확신합니다.

현대가 다 그러합니다만, 일본이라는 환경은 특히 좋은 환경을 이루기에 열악합니다. 삶의 환경은 좋을지 모르지만, 좋은 부부생활과 신앙생활의 모범을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대로 사는 가정이 귀합니다. 그런 가정생활을 통하여 우리는 이 세상에 하나님의 빛을 드러내고, 사람들을 복음으로 인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 사명을 지금 함께하고 있는 것입니다.

잠시의 관심으로 끝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사랑은 영원한 것이며, 끝까지 참고 인내하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교회가 무엇보다 행복한 가정의 축복들을 다 받기를 원합니다.


23 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 하니라

24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 창세기 2:23~24 ] 

Posted by makarios
, |

2006-10-22


한 사람이 항해를 하다가 폭풍을 만나 무인도에 표류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해안을 둘러보다가 파선한 배로부터 해안까지 밀려온 물품들을 발견하고는 기뻐하며 이것저것을 모아서 작은 오두막을 마련하였습니다.

그리고는 날마다 하나님을 향하여 자신이 구조되게 해달라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그 무인도의 근방으로는 지나가는 배가 없었고, 여러 날이 지나도록 그는 희망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바다로 먹을 것을 구하러 나갔다가 돌아왔더니 그의 오두막이 불타고 있었습니다. 무엇인지 자연발화하여 그가 애지중지하며 살림살이를 모아왔던 오두막에 불을 붙인 것이었습니다.

그는 절망했습니다. 어떻게 앞으로 살아야 할 지 막막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는 모든 것이 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때에 저 멀리 수평선으로 배가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그는 구조되었습니다.

만약 그의 오두막이 불타지 않았다면, 그래서 높이 연기가 올라가지 않았다면 그는 계속하여 무인도에 남아야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의 오두막에 불이 나는 바람에 그것이 신호가 되어서 구조 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신앙의 속담에 ‘화가 변하여 복이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성경의 교훈으로 말하면, 참신자에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입니다.

때로 하나님은 기이한 방법으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그 방법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가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때때로 그분을 오해하거나 혼자 낙심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믿음이란 실망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성경의 이야기를 가만히 음미하며 읽어 보십시오. 실망의 환경을 이겨내지 않고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사람이 없습니다. 믿음의 선진들은 믿음을 지키기 어려운 때에도 믿음의 언행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인내를 통하여 그들의 믿음이 환경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만을 향한 것임을 증명하였고, 하나님은 이러한 믿음을 기뻐하시며 축복하셨던 것입니다.

환경은 변합니다.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신자의 믿음은 변함이 없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변함이 없는, 성실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우리가 기도할 때에 우리가 하나님을 향한 확신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만약 기도하면서도 의심하고 환경에 따라 변하는 마음으로 기도한다면 하나님은 이런 자의 기도를 듣지 않으실 것입니다. (약 1:6~7)

그래서 기도의 삶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힘만으로는 이 실망의 고비를 넘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이 친히 인도하시고 힘 주실 때에만, 우리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로 그 믿음으로 축복의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저는 우리 교회의 지체들이 기도에 불붙게 해달라고 갈망합니다. 그것이 바로 진정한 축복으로 나아가는 유일한 길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의 응답을 경험하기를 원합니다. 샬롬~



Posted by makarios
, |

2006-10-15


한국의 반기문 외교부 장관이 유엔의 사무총장에 당선되었습니다.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상이 높아진 때문이기도 하지만, 여러 가지로 하나님의 섭리가 작용된 것 같습니다. 

선거를 앞두고 이번의 유엔사무총장은 아시아에서 나와야 한다는 의견이 힘을 얻었습니다. 때문에 오래 전부터 출마를 결정하고 준비작업을 해왔던 반기문 장관이 주요한 후보가 되었지만, 그의 라이벌로 출마를 결정했던 태국의 부총리, 수라키앗도 만만치 않은 강력한 후보였습니다. 사실 투표를 실행하면 누가 당선되게 될 지 불분명한 접전이 예상되었습니다. 그런데 태국에서 군부 쿠데타가 갑자기 일어나면서 수라키앗 부총리는 모든 정치적 근거를 잃어버리고 포기하게 되었고, 반기문 장관이 단독 후보가 되어서 이렇게 유엔사무총장에 당선된 것입니다.

북한과 미국이 대립의 각을 세우며 맞서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인이 유엔의 사무총장이 되었다는 것은 시대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사건일 것입니다. 어찌되었든지 간에 한반도에서의 전쟁을 억제할 수 있는 또 하나의 힘을 갖게 되었고, 반기문 장관을 통하여 보다 다양한 평화의 노력을 유엔의 무대에서 시도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 일하십니다. 역사의 주권은 하나님의 손에 있어서 모든 것이 사람의 뜻대로 되는 것처럼 보여도 실상은 하나님의 깊은 섭리 가운데서 움직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반기문 유엔총장의 당선이 한반도를 위한 하나님의 섭리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을 중보해야 하는 사명이 있고, 복음과 사랑에 있어 빚진 자의 심정을 가져야 마땅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하여 기도할 뿐 아니라, 바로 세상의 역사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가지고 그 역사 위에서 좀 더 선한 일들이 실현되기 위하여 헌신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조국의 교회에 부흥이 임하고 북한과의 관계가 하나님의 선하신 손길에 의하여 개선되며 주변 국가들과 선린의 관계를 가질 수 있도록 기도하는 것은 지금의 역사적 현실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고비는 기회가 되기 마련입니다. 저는 끝도 없이 악화되는 현실이 어쩌면 북한의 폐쇄적인 문을 단번에 여시기 위한 하나님의 경륜이 아닐까 조심스레 기대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 일이 그렇게 아름다운 결말로 가기까지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좀 더 깊은 기도로 중보해야 할 것입니다.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자기의 틀을 깨뜨리고 주님의 마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역사(history)를 그분의 이야기(his story)로 인식하고 기도의 손을 통하여 하나님과 함께 세계를 경영하는 것은 ‘왕 같은 제사장’으로 세상을 사는 저와 여러분의 합당한 권세입니다. 원대한 기도를 하십시다. 입을 크게 열면 그분이 채우실 것입니다. 때문에 저는 여러분이 개인적인 기도와 함께 넓은 중보기도의 세계로 초대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샬롬~


Posted by makarios
, |

2006-10-07


누구의 인생에나 2% 부족한 무언가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부족을 채우기 위하여 고군분투(孤軍奮鬪)하며 살아갑니다. 그 부족이 우리를 행복하지 못하게 발목 잡는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가만히 생각해 봅시다. 2% 부족하다는 것은 반대로 98%의 채워진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까? 왜 2%의 부족만 보고, 98%의 채움은 보지 못합니까?

우리는 나와 뜻이 맞지 않는 한 두 사람 때문에 낙심할 때가 많지만, 실상 우리의 주변에는 힘이 되어주는 사람들이 훨씬 많이 있습니다. 돈은 없어도 돈으로 살 수 없는 건강이 있고, 세상에 이름을 날리지는 못했어도 나만 바라보는 아내(혹은 남편)가 있고, 좋은 교회가 있고, 좋은 이웃이 있지 않습니까! 

이만큼 가진 사람도 흔치 않은데, 우리는 계속해서 무언가를 더 가져야만 행복을 살 수 있다는 착각에 사로잡혀 있지는 않습니까? 

맑은 10월이 다 가기 전에 마음을 열고 소중한 행복의 씨앗들을 나의 주변에서 찾아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네 잎 클로버의 의미는 ‘행운’이지만, 세 잎 클로버의 의미는 ‘행복’이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사람들은 행운만을 찾다가 지천에 널려있는 행복의 소중함을 발견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 식구들은 그렇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요즘 교회를 보면서 참 감사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어려운 형편이지만 자기의 역할을 묵묵히 감당해주는 지체들이 대견합니다. 교회를 위하여 걱정하고 기도하는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조금씩이지만 변화는 일어나고 하나님의 은혜는 깊어가는 것을 느낍니다.

계절은 이제 조금씩 추워져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에는 이제 조금씩 봄이 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더욱 열심을 다해 섬겨야 하고, 조심해서 이 소중한 은혜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교회를 위해, 지체들을 위해 기도해 주세요. 부흥을 위해, 예배의 회복을 위해, 영적 감동과 성령의 충만을 위해 기도해 주세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사용하시는 교회가 되도록, 우리의 인생이 허송세월로 채워지지 않고 보람 있는 비전의 내용을 가지도록 기도해 주세요.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그분은 지금도 우리를 통하여 당신의 선하신 뜻을 세상 가운데 이루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이러한 하나님의 뜻은 반드시 성취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을 신뢰하고 믿음을 굳게 합시다. 감사를 배우도록 합시다. 힘든 줄 압니다. 그러나 그 힘듦조차 우리에게 유익이 될 것을 믿고 감사합시다.

교회의 모든 지체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여러분의 인내와 작은 헌신들이 여기까지 교회를 지켰습니다. 그러나 그 열심도 결국 주님이 주신 것을 깨닫기를 바랍니다. 사랑합니다. 우리 같이 좋은 날을 봅시다. 샬롬~



Posted by makarios
, |

2006-09-24


전도사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가을이 되어 교회에서 경로관광을 계획하게 되었습니다. 교회에서 60세 이상 되신 분들을 모시고 단풍 구경을 시켜드리는 행사를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한 권사님이 자기는 빠지겠다고 하셨습니다. 거동이 불편하셔서 지팡이를 짚고 간신히 다니시는 분이셨는데, 아마도 남에게 폐가 될까봐 걱정이 되셨던 모양입니다.

그 권사님을 두고 하신 말씀인지는 모르겠지만, 경로관광을 앞두고 그 직전 주일에 목사님이 설교 중에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다음에 우리가 천국에 가면, 열심히 기도만 하다가 온 사람에게도 하나님이 책망을 하신데요. 무슨 책망인지 아세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만들어주신 것들을 제대로 누리지 못한 것에 대한 책망이랍니다. 왜 너는 내가 만든 내장산 단풍구경도 못하고 왔느냐? 뭐가 바빠서 그렇게 살았느냐? 네가 내 솜씨를 보지 못해서 찬양하지 않은 것이 나는 섭섭하다. 하나님이 그렇게 우리에게 책망하신다는 것입니다.”

그 설교를 듣고 은혜를 받으셨는지, 그 권사님은 경로관광을 떠나는 아침에 해맑은 모습으로 나타나셨습니다. 좋은 구경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하여 마음을 결심하신 것입니다. 

성경을 살펴보면, 거센 풍랑의 시기를 살았던 믿음의 선배들에게서도 이상한 여유를 발견하게 됩니다. 광야로 도피생활을 하던 다윗은 하늘의 해와 달을 보며 찬양하였고, 다니엘은 왕의 포고령을 알면서도 창문을 활짝 열고 기도하였으며, 예수님께서도 바쁜 사역의 틈틈이 한적한 곳을 찾으셨습니다.

언젠가도 말씀을 드린 바처럼, 일은 아무리 해도 끝나지 않습니다. 일을 모두 마치고 여유를 갖겠다고 하는 사람은 결국 여유를 포기한 사람과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의지를 가지고 여유를 찾아야 하고, 그 여유 속에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도하는 신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주변에는 하나님이 주신 은총의 선물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것들을 하나씩 느끼고 곱씹으며 찬양하는 것은 우리의 신앙을 살찌우는 습관입니다. 그래서 정서적으로 메마른 사람은 결국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풍성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제 푸른 초목에 화려한 단풍이 들어갈 계절입니다. 태풍이 지나가더니 오늘은 하늘이 얼마나 쾌청합니까? 오늘도 건강한 것이 얼마나 감사합니까? 내가 동경에서도 교회를 다닐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귀합니까? 하나님이 주신 모든 것들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하나님을 찬양하십시오. 그리고 감사로 마음을 채우십시오. 잃어버린 감동을 되찾으십시오. 하나님을 향하여 서십시오. 그러면 모든 것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묵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은 선하십니다. 내 생각과 그분의 생각이 다를 때에라도 나보다 그분이 선하시고 지혜로우십니다. 나무 한 그루를 키워 보아도 그 사실을 배울 수 있습니다. 정말입니다. 샬롬~


Posted by makarios
, |

2006-09-17


영적인 그리스도인과 육적인 그리스도인에 대하여 바울은 말했습니다. 

영적이라는 것은 성숙하다는 의미이고, 예수님을 닮았다는 뜻입니다. 반대로 육적이라는 것은 미숙하다는 의미이고, 예수님과 닮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제대로 묵상하지 않으면 우리는 우리 삶의 목표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닮아야할 주님의 모습은 다른 곳이 아니라 바로 성경 속에 나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자의 성숙에 가장 필수적이며 결정적인 요인이 바로 ‘말씀’임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말씀이 없으면 신자의 영혼은 성장할 수 없습니다. 저절로 육적이게 됩니다. 초보적인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항상 시험에 시달리고 실패를 반복하게 됩니다.

현실적으로 우리는 가장 바쁘고 힘겨운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인간의 수명이 많이 늘어났지만 반대로 개인의 행복을 누리고 자연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은 훨씬 줄어들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대부분의 시간을 경제적인 활동에 사용하고, 나머지 시간도 그 노동의 결과로 소모된 자신을 다시 충전하고 회복하는데 사용하고 있습니다. 결국 우리의 목표는 ‘빵’으로 대변되는 물질이 초점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왜 삽니까? 무엇을 위해 일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원하시는 삶이 어떤 삶이라고 생각합니까? 예수님이라면 당신의 현실에서 어떤 것을 최우선으로 하셨을 것 같습니까?

그리스도인은 ‘사람’을 삼켜버리는 물질의 바다에서 헤엄을 쳐야 합니다. 아니, 예수님만을 바라보고 그 거친 바다 위를 걸었던 베드로를 본받아 우리도 세상의 바다 위를 용감하게 걸어야 합니다.

끊임없이 자신의 삶에서 초점이 무엇인지를 확인하십시오. 그리고 스스로 성장하고 있는지에 대하여 살펴보십시오. 바쁘다는 것을 핑계하지 마십시오. 바쁘기 때문에 숨 안 쉬는 사람이 없듯이 그리스도인은 바쁘더라도 그리스도인이어야 합니다.

기본을 잃어버린 신자는 표류합니다. 환경을 핑계하고 다른 사람을 핑계합니다. 그러나 솔직하게 묻고 대답해 보십시오. 정말 다른 사람 때문에 내 신앙의 상태가 이처럼 유치한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 보지 말고 주님을 봐야 한다는 것, 하나님을 먼저 섬겨야 한다는 것, 말씀이 내 인생길에 등불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우리 자신이 지키지 못한 것입니다.

영적인 그리스도인이 되십시오. 그 길은 다른 길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살아가는 길입니다. 그 말씀을 통하여 하루하루의 삶에 주님의 은혜가 임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통해 예수를 바라보고, 예수와 교제하는 성도는 아름답습니다.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에게 기대하시는 바가 바로 그것임을 잊지 마십시오. 샬롬~


Posted by makarios
, |

2006-09-10


하나님의 말씀이 희귀한 시대입니다. 성경책은 쉽게 구할 수 있지만 제대로 읽고 묵상하는 성도가 적고, 설교는 많지만 깨닫고 변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언제인가부터 지적 유희(柳僖)가 거룩한 교회를 오염시켰고, 신자들은 더 이상 설교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지 않고 오히려 사람의 말로 듣거나 농담으로 여깁니다. 때문에 오해가 무성하고 말씀이 역사하는 경건의 삶은 우리에게 희귀한 것이 되었으니 어찌 하나님의 말씀이 희귀한 시대라고 아니할 수 있겠습니까?

신자의 삶에 말씀의 은혜는 샘과 같습니다. 샘이 마르면 나무가 시들고 생명이 사라집니다. 가뭄이 심각한 아프리카의 소식을 들어 보십시오. 마른 샘가에는 동물의 사체가 즐비하고, 갈라진 땅에 간신히 서 있는 나무는 뿌리까지 말라 선 채로 장작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는 신자의 영혼이 이와 같습니다. 찬양의 꽃은 시들고, 감사의 열매는 떨어집니다. 감격이 없는 메마른 영혼은 정죄하기 쉽고, 작은 일에도 상처를 쉽게 받으며, 한 번 받은 상처를 회복하지 못하여 오래 동안 가슴앓이 하게 됩니다.

기도가 될 리 없습니다. 성도의 교제는 형식에 그칩니다. 예배는 습관이 되고, 삶은 불신자의 그것과 구별됨이 없습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만의 얘기가 아니라, 성경이 미리 말씀하신 예고된 역사의 전부입니다.

물론 우리는 다 불완전한 사람입니다. 저는 제가 스무 살 무렵에 했던 설교의 녹음을 다시 듣곤 합니다. 그 시절에 열정은 넘쳐으나 제 인식의 수준은 미천했고 때문에 설교 곳곳에서 허점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흐르는 동안에 많이 보완되고 은혜로 채워졌으나, 그러나 아직도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설교자로서 제 자신이 얼마나 모자르고 부족한 사람인지를 날마다 깨닫고 있습니다.

그러나 말입니다. 제가 강단에 서서 설교할 때마다 제가 증거하는 메시지에 하나님의 음성을 생생이 담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증하여 여러분에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부족함에도 사람을 쓰십니다. 때문에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의 부족함을 주목하고 폄하하는 사람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농담과 거짓말로 들려졌던 것입니다.

설교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기대하고 들으려는 순전한 성도들의 열심, 신령한 젖을 사모하는 어린 아이 같은 심령이 우리에겐 필요합니다. 이런 마음을 잃어버리는 것은 누구보다 말씀의 은혜를 받지 못하는 신자 자신의 손해요, 문제입니다.

조금 더 마음을 집중하십시오. 말씀으로부터 기도, 찬양, 감사의 삶을 회복하도록 노력하십시오. 이 시대에는 이것보다 더 큰 축복이 없다고 저는 간절히 말씀을 드립니다. 샬롬~


Posted by makarios
, |

2006-09-03


그렇게 무덥던 날씨가 벌써 아침저녁으로 시원해졌습니다. 하나님의 성실하심이 계절을 통하여 다시 한 번 느껴집니다. 

일본에서 처음 겪는 여름을 보내며 새롭게 배운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이 살아가는 조건이 얼마나 까다로운 것인가에 대한 것입니다.

겨울에는 그리도 추위가 뼈에 사무치더니, 여름은 또 그렇게 열기와 습도로 인하여 힘들었습니다. 금새 변덕이 죽 끓듯 하는 것 같아서 겸연쩍어 하다가도 생각해보니, 이처럼 약한 몸과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기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환경을 진화론자들은 ‘우연’의 산물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저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습니다. 사람이 살아갈 수 있는 그 까다로운 조건들이 한 해도 아니고 수 천 년의 세월동안 질서정연하게 지켜지고 있는 것을 어떻게 ‘우연’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그분은 오늘도 온 우주를 통하여 우리를 향한 그분의 사랑을 증거하고 계십니다. 다윗처럼 하늘, 달, 별을 보며 하나님의 임재를 음미해 보십시오. 

지금 가만히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여기까지 살아오는 날 동안 겪었던 많은 사연들 속에서도 신앙을 지키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섬길 수 있었던 것이 정녕 우리 자신의 의지 때문이겠습니까? 계절만큼이나 변함없는 섭리와 은혜 가운데서 우리를 이끌고 붙잡아주신 하나님의 손길을 느낄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얼마나 불평에 강하고 감사에 약한지요. 항상 주신 것은 당연하게 여기고 없는 것은 마치 하나님이 큰 죄라도 저지르신 것처럼 따지고 항변하기를 잘합니다.

저부터 반성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무감각했던 나, 감사보다는 불평이 앞서 있었던 나, 미련하고 약한 나를 의지하고 하나님께 묻는 것에 부족했던 나를 반성합니다. 그리고 이런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사 조건 없는 사랑으로 용납하여 주시는 주님, 항상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사랑으로 나를 붙잡아 주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제자촌교회 가족 여러분, 무덥던 여름의 기억과 함께 우리의 모든 게으름과 불평도 같이 보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이제는 정말 정신을 차리고 제대로 기도하고 말씀을 묵상하며 주님을 섬길 때가 아니겠습니까?

신앙은 내면의 문제입니다. 때문에 아무도 강제할 수 없습니다. 오직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 깨어나야 합니다. 내가 내 문제에 정직하게 대면해야 하며, 또한 그것을 주님과 함께 경영하기로 작정해야만 합니다. 결단은 우리의 몫이고, 그 다음은 주님이 인도하실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오는 가을에는 하나님의 부흥을 경험게 되기를 원합니다. 샬롬~


Posted by makarios
, |

2006-08-27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전쟁의 불길이 치솟았던 베이루트에서 한국인의 특별한 사명감이 사람들을 감동케 하였습니다. 지난 7월12일, 이스라엘의 공격이 시작된 이후에 ‘중동의 파리’라고 불리던 베이루트의 시내는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습니다. 대부분의 외국인은 도피했고, 시민들은 두려움에 떨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두 사람의 한국인이 자리를 떠나지 않고 베이루트의 시민들을 위하여 봉사한 것입니다.

한국전력이 베이루트의 두 발전소를 위탁경영하기로 계약한 것은 올해 2월부터라고 합니다. 현지법인을 만들어 즉시 위탁경영에 들어갔는데, 그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이처럼 전쟁이 일어나고 만 것입니다. 때문에 현장에 근무하던 9명의 한국인 직원 중에서 7명은 귀국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현지법인장 이선민(49세)씨와 부장 이종원(45세)씨는 귀국을 포기하고 자기의 자리를 지켰습니다. 이 법인장은 "우리마저 철수하면 레바논이 암흑 속에 빠질 것 같아 도저히 떠날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 부장은 "회사의 신용을 지키는 것은 물론 전란에 시달리는 레바논 사람들을 돕기 위해서라도 남아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습니다.

이 두 사람이 베이루트에 남아서 생산하는 전력은 전체의 60%에 해당하는 전력이라고 합니다. 언제 발전소에 폭격이 가해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목숨을 걸고 현장을 오고가며, 오히려 도망하려는 현지 기사들에게 사명감을 가지도록 독려하여 발전소를 지키고 있다는 것입니다.

덕분에 베이루트는 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암흑을 면할 수 있었고, 시민들은 빛을 잃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그들을 곁에서 지켜본 현지 직원들은 “이들이야말로 진정한 현대판 영웅이 아니겠느냐?”며 진심어린 감동의 박수를 보내고 있다고 합니다.

두 사람의 이야기는 사명감이 무엇인지, 충성이란 어떤 것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합니다. 40대의 나이에 목숨을 걸고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붙들 수 있다는 것은 흔하지 않은 일입니다. 더욱이 그들이 그 ‘일’을 통하여 자기와 피부색이 다르고, 말이 다른 사람들을 섬기려고 한다는 점이 더욱 감동스럽습니다.

이익에 따라 배신을 밥 먹듯 하는 세상의 풍조 속에서도 신앙인은 그러한 세상의 방식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처음에는 바보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결국은 이러한 헌신의 모습을 통하여 세상은 우리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빛을 보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명의 자리를 지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결국에는 그 어려움이 바로 소중한 열매로 돌아온다는 것을 잊지 말도록 합시다. 우리가 주님을 위하여 충성한다면, 진정으로 그분이 주신 사명에 끝까지 최선을 다한다면, 우리에겐 반드시 그분의 상이 주어질 것입니다. 주님께 상 받기를 소망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샬롬~


Posted by makarios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