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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6-11


고대 인도로부터 전래되는 이야기를 하나 하겠습니다. 

네 명의 왕자가 각자 세상에 흩어져 특별한 능력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다시 모였을 때, 그들은 각자의 능력을 자랑하게 되었습니다. 

첫째는 무슨 뼈든지 한 조각만 있으면 그 모든 원래의 뼈를 회복시키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둘째는 뼈만 있으면 그 위에 힘줄과 살을 덮고 털을 자라게 할 수 있었습니다. 셋째는 그 몸통에 강력한 팔 다리를 만들어 주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넷째는 이 모든 외양이 완성된 것에다가 생명을 불어넣는 능력을 가졌습니다. 결국 그들은 각자의 능력을 자랑하기 위하여 밀림으로 들어갔고 숲에 떨어져 있는 하나의 낯선 뼈를 선택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만 그것은 사자의 뼈였습니다. 네 왕자의 능력이 합해져서 사자가 살아났을 때, 그 사자는 즉시 달려들어 네 왕자를 죽이고 유유히 사라졌다고 합니다.

이 짧은 이야기는 인간의 자만이 불러오는 불안한 미래를 예감하게 합니다. 과학자들이 핵분열의 실험에 성공했을 때, 그것이 바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그토록 많은 인명을 살상하는 극악한 무기로 변할 줄은 결코 몰랐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세상을 변화시킬 능력을 구하는 사람들은 많습니다. 그러나 간과하지 말아야 하는 중요한 사실은, 스스로 자신을 변화시키지 못한 사람은 세상을 변화시킬 능력을 결코 감당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죄인이 머리가 좋으면 오히려 교활하고 치밀한 범죄를 저지르게 됩니다. 먼저 선량한 양심과 정신을 회복해야 그 다음으로 ‘능력’이 그 본연의 목적대로 쓰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질의 축복을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물질을 다스리는 능력을 배양하십시오. 스스로 물질의 유무에 상관없이 한결같은 양심과 신앙으로 살 수 있는지를 묻고 훈련하십시오. 명예와 성공을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과연 그 자리에 합당한 내면적 성숙이 있는지 자기를 되돌아보십시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지 않는 것은 없어서가 아니라 그것이 우리에게 유익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는 목회자로 사역하며 능력이 사람을 삼키는 것을 종종 보았습니다. 빵빵한 집안이기 때문에 맘 놓고 이혼을 하고, 돈이 많기 때문에 하나님을 떠나고, 잘 생겼기 때문에 방탕하고, 유능하기 때문에 오히려 사업에서 망하는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그들의 능력은 그들의 축복이 되지 못합디다. 그래서 깨닫게 된 것이 바로 사람이 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돌로 떡을 만들라는 사탄의 유혹에 대하여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다!’라고 대답하셨습니다. 능력을 최상의 가치고 숭배하는 오늘의 우리에게 큰 메아리를 남기시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돌로 떡을 만든다고 하여서 근본적인 배고픔이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변해야 합니다. 그것만이 우리가 하나님의 참된 축복을 맘껏 누리는 유일한 길입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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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6-04



옛날 어느 농촌에서 긴 가뭄으로 인하여 위기에 처하게 되자, 마을 사람들이 특별 기도회를 선포하고 예배당에 모여 날마다 하나님께 단비를 구하는 기도를 하게 되었답니다. 

1주일의 작정한 시간이 마쳐갈 무렵, 정말로 마지막 날 기도회를 마치고 예배당을 나서려고 하니 천둥이 치고 시원한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기도가 응답 받았다고 기뻐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때 사람들의 눈에 한 꼬마가 들어왔습니다. 꼬마는 장화를 신고 우산을 받쳐 들고 있었습니다. 누군가 물었습니다.

“꼬마야, 너는 어떻게 장화와 우산을 가지고 있니?”

꼬마가 웃으면서 대답했습니다.

“비가 오게 해달라고 기도하면서 장화와 우산을 가져오지 않는다면 하나님을 의심하는 거잖아요. 저는 하나님이 비를 주실 것을 믿었어요!”


기도하는 것은 귀중한 일입니다. 아울러 주님은 우리에게 기도에 부합하는 선택과 행동을 기대하십니다. 기도와 불평을 병행하고, 기도와 근심을 병행하고, 기도와 욕심을 병행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결국 자신의 기도를 욕되게 하고, 나아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맙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막11:24)

받은 줄로 믿으라는 것은 단순한 마음의 확정이 아니라, 그 믿음의 영향력 아래에서 살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침울한 로뎀 나무의 그늘 보다는 응답의 기쁨과 기대 속에서 우리를 만나고 교제하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신자의 삶에는 근본적으로 평강과 기쁨이 있어야 합니다. 슬픔과 고민도 분명히 인생의 한 부분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잠시일 뿐입니다. 저녁에는 슬픔이 기숙해도 아침에는 즐거움이 회복되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신자의 저력이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가 그러한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지 못하는 데에는 기도하지 않는 묵은 습성과 기도와 삶을 유리시켜서 한 가지로 묶어내지 못하는 신앙적 부조리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기도하면서도 여전히 기도 밖의 사람들과 매한가지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비를 달라고 기도하러 갈 때에는 장화와 우산을 준비하십시오. 장화를 신고 우산을 들고 마른 땅을 밟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입니다. 정말 어린아이와 같은 단순한 믿음이 아니면 하기 힘든 선택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믿음에 대하여 그렇게 용감하고 실제적이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응답은 용감한 자에게 더욱 넘치게 될 것입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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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5-28


건강한 신앙의 삶은 구원의 감격으로부터 나옵니다. 때문에 신자는 구원을 묵상할 때에 경건한 삶의 동력을 얻게 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거기 드러난 하나님의 사랑을 묵상하게 하는 것이 바로 ‘말씀’입니다. 우리는 성경의 말씀을 통하여 거듭거듭 우리 자신이 걸어가야 하는 신앙의 길을 확인하게 되고, 누가 어떻게 우리를 인도하시는가에 대하여 깨닫게 됩니다.

말씀을 가까이 하지 않고 지내는 일주일은 얼마나 짧은지 모릅니다. 우리는 바쁘다는 핑계로, 사람들과의 사이에서 받는 스트레스에 치여서 하나님의 말씀에 먼지가 쌓이게 합니다. 그렇게 일주일을 보내고 나면 예배를 드리면서도 담대함이 없고, 무엇보다 우리 자신의 신앙에 대하여 그늘진 열등감을 가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무리 바빠도 걱정하는 시간은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참된 그리스도인이라면 걱정할 시간에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것이 지혜로울 것입니다. 염려와 걱정의 시간을 은혜의 시간으로 바꾸십시오. 잠이 오지 않는다면 억지로 자려고 하기보다 기도와 말씀에 헌신하십시오. 하나님을 향하여 삶의 정황을 아뢰고 지혜를 구하는 것에 투자해 보십시오.


염려가 많다는 것은 기도할 것이 많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앞으로 받을 하나님의 은혜가 많을 것이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며 너무나 가까이에 계십니다. 그분은 멀리 하늘 너머에서 우리를 쳐다만 보는 분이 아닙니다. 그분은 우리의 속삭임을 들으시고, 우리의 눈물을 닦으시며, 우리가 하는 잠꼬대를 살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손길에 자신을 맡기는 훈련을 하십시오. 핑계하지 말고 어떻게든 그분과의 관계가 당신의 삶에서 ‘먼저’가 되게 하십시오. 당신의 뜻대로 살지 말고 그분의 뜻에 순복하려고 노력하십시오. 마음을 기울여 전심으로 찾고 찾으면 하나님을 만날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을 만나는 순간에 우리가 가진 모든 혼돈과 어둠은 깨끗이 사리지고 빛을 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는 요즘 기도할 사람들이 많습니다. 귀 있는 자들은 들으십시오! 하나님께서 당신의 기도를 요구하십니다. 제발 핑계하지 말고 순복하십시오. 그분을 먼저 찾으십시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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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5-21


양배추를 사다가 배추김치를 담았습니다. 신김치가 되자 다시 그것으로 김치찌개를 끓였습니다. 훌륭했습니다. 낫또를 사다가 청국장찌개를 끓였습니다. 콩이 좀 작아서 그렇지 맛은 거의 같았습니다.  

일본에 왔으나 일본사람이 될 수는 없었습니다. 일본에서 살면서도 한국의 입맛을 찾아 이렇게 저렇게 궁리하여 적응해가고 있습니다.

요즘은 일본어 공부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새롭게 ‘가나’를 암기하고, 짧은 문장과 단어들을 암기하며 말하는 법을 다시 배우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혜공주의 모친께서는 목사랑 지혜랑 같이 그림책을 봐야 한다고 하십니다. 또 목사가 명사 다음에 ‘노’를 부치는 것도 모르더라고 걱정도 하십니다. 참 고마운 분입니다. 하지만 목사가 반년이 되어가도록 일본에 있으면서도 일본어 공부를 뒤로 미룬 것은 내심 까닭이 있답니다. 지금은 말하지 못하고 나중에 기회가 되면 말하겠습니다...


아무튼 온 가족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하여 열심히 분투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못 알아듣는 수업을 견디고 있고, 아내는 열심히 자전거를 타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가족이 같이 있고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어려운 문제야 어디나 있고, 고민과 걱정도 항상 있는 것이지만, 그러나 주님의 은혜가 우리 가족에게 풍성하여 모두들 그늘지지 않고 최선을 다하여 현실과 씨름하니 가장(家長)으로서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찬혁이가 첫 한자시험에서 20점을 받아 왔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이의 어깨를 다독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수고 많았다. 네가 언제 이런 점수를 받아 보겠냐? 세상에는 항상 1등도 있지만, 꼴등도 있게 마련이란다. 이런 기회를 통해 꼴등을 경험하고 그 심정을 배우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자. 그리고 이제부터는 네가 다시 1등이 되더라도 오늘 이 심정을 꼭 기억해서 항상 꼴등을 배려하는 사람이 되거라.”

“나 꼴등 아니예요, 아빠. 내 옆의 친구는 일본인인데도 빵점을 맞았어요.”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를 강하게 합니다. 그 은혜 가운데 살아갈 때에, 우리는 어떤 형편과 처지에서도 담대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세상이 이해할 수 없는 용기와 평강을 우리에게 약속하셨습니다. 그분과 교제하고, 그분에게 구하십시오. 하나님은 반드시 충분한 은혜를 우리에게 주십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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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5-14



저에게는 팔순이 넘으신 외할아버지가 계십니다. 제가 신학을 하고 목회자가 되도록 가장 많이 수고하시고 영향을 주신 분입니다. 제가 어린 시절에도 참 남다른 사랑을 주셨는데, 이제는 그 사랑이 저의 아이들에게로 가서 아이들을 얼마나 아끼고 사랑해 주시는지 모릅니다. 한국에 있을 때에는 아이들의 용돈을 도맡아 주셨고, 가끔은 점심시간에 아내와 아이들을 밖으로 불러 점심을 사주시고 지켜보시는 것이 낙(樂)이셨습니다.

저희 어머니는 맏딸이셨습니다. 때문에 그 맏딸이 일찍 시집가서 어렵게 낳았던 저는 신기하고 애절한 손자였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런 제가 장성하여 가정을 꾸리고 자식을 또 낳았으니, 아마도 저의 아이들이 할아버님께는 더욱 신기하고 애절한 대상인 것 같습니다.

저는 할아버님을 뵈면서, ‘내리사랑’이라는 말을 새삼 생각하곤 합니다. 사대(외할아버지, 어머니, 저, 아이들)가 한 자리에 모인 자리에서 우리는 언제나 즐겁고 감사로 충만합니다. 

사랑은 멈추지 않는다는 광고의 카피가 생각납니다. 맞습니다. 사랑은 결코 멈추지 않습니다. 한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하면 그 사람이 사랑하는 다른 대상들도 같이 사랑하게 됩니다. 때문에 사랑은 끊임없이 확장되고, 더 넓은 지경으로 우리를 인도합니다.

‘내리사랑’이라는 말도 바로 이러한 사랑의 끊임없는 확장의 하나입니다. 자식을 통해 자식의 자식을, 다시 그 후손을, 심지어 내가 죽은 이후에 태어날 누군가를 축복하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어버이주일입니다. 물론 이 하루만 섬기고 사랑할 부모님은 아니지만, 이런 날을 정한 이유는 이 날이라도 좀 더 신경 쓰고 마음을 새롭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누군가의 사랑을 통해 모진 세상에서 견디어내고 오늘날의 우리가 있음을 잊지 말았으면 합니다. 특별히 부모의 곁을 떠나 있는 우리는 ‘불효자(不孝子)’의 이름을 피하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사람은 돈이 없어 못 사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목말라 못 사는 존재입니다. 마음으로 부모님을 섬기십시오. 주님으로 인하여 여러분의 사랑을 확장하십시오. 아직 기회가 있을 때에 최선을 다하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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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5-07



오늘은 꽃주일입니다. 교회마다 5월을 가정의 달로 지키는데, 첫 주는 어린이를 위한 주일로, 두 번째 주는 어버이를 위한 주일로 지킵니다. 이 주일들을 통하여 가정의 소중함을 되새기고 특별히 가정에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예부터 ‘아이’에 대한 두 가지 견해가 있어 왔습니다. 하나는 미숙함과 모자람의 대상으로 이해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순진함과 깨끗함의 대상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어의 표현을 빌리면, 전자를 ‘childish'라고 표현하고 후자를 ’childlike'라고 표현합니다.

이러한 구분은 성경에도 존재합니다. 우리 교회의 올해 주제 성구인 에베소서 4:13에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4: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여기에서 ‘아이’는 아직 온전하지 못한 사람이며, 다 크지 못한 상태를 의미하기 때문에 성도는 ‘장성한 분량’ 곧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성숙한 이미지를 지향해야 합니다. 하지만 반대로 아이와 같아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거나, 아이와 같은 자가 천국에서 큰 자라는 예수님의 교훈도 성경에는 존재합니다.


우리는 단순한 신앙이 좋은 신앙이라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대체로 맞습니다만, 그것이 전부는 아닌 것 같습니다. 성도는 아이와 같아야 하면서 동시에 어른이 되어야 합니다. 

사람의 내면에는 사랑받고 싶어 하는 욕구가 누구에게나 존재합니다. 아이의 욕구입니다. 그러나 섬기고 사랑하려는 마음은 쉽게 생겨나지 않습니다. 이것은 성숙한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항상 교회 안에는 섬김을 받으려는 사람들이 넘쳐나고 섬기려는 사람들이 부족하게 됩니다.

우리는 이 부조화를 극복해야 합니다. 심령으로는 아이와 같이 순결하게, 마음으로는 예수님과 같이 성숙하게 살아가는 성도의 삶을 추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어리광’이 아니라, ‘순결함’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기억하는 꽃주일이 되기를 바랍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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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4-30


미국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흑인은 누구일까요? 

대개의 사람들은 인권운동가인 마틴 루터 킹 목사를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최근에 실시된 조사에 따르면 ‘조지 워싱턴 카버’ 박사가 선정되었습니다.

카버는 ‘땅콩 박사’라는 별명을 가진 분입니다. 남부 농장의 노예의 아들로 태어난 카버 박사는 공부하고 싶다는 한 가지 열망으로 많은 시련과 어려움을 이겨낸 분입니다. 다른 흑인에 비하여 먼저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던 카버 박사는 노예 해방 이후에 몰락한 남부의 목화농장에서 땅콩을 재배하면 땅을 다시 살릴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러나 너무 많은 사람들이 땅콩을 재배하면서 땅콩의 가격이 폭락하여 수많은 흑인농민들의 원성을 사게 됩니다. 그 때 카버는 밤하늘의 별을 보며 하나님께 이렇게 물었습니다.

“하나님, 밤하늘의 별은 무엇을 위해 만드셨습니까?”

“저 넓은 우주의 끝은 어디입니까?”

그 때 그에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얘야, 넌 너에게 너무 어려운 것을 묻고 있구나. 그런 것은 가르쳐 주어도 네가 이해할 수 없단다.”

한 참을 다시 생각하던 카버가 버려진 땅콩을 손에 들고 새롭게 물었습니다.

“하나님, 그렇다면 땅콩은 무엇을 위해 만드셨습니까?”

그러자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그것을 들고 너의 연구실로 들어가라!”

카버 박사는 이후로 땅콩을 이용한 각종 발명품을 만들게 됩니다. 카버 박사의 이러한 노력은 결국 소비의 길을 찾지 못했던 흑인 농민들의 땅콩에 활로를 찾아 주었고, 이로 인하여 흑인들이 경제적 기반을 마련하고 진정한 자유를 얻을 수 있게 하는 것에 조력하게 됩니다.

그래서 미국인들은 흑인의 자유와 평등이 법적으로는 링컨에 의하여, 경제적으로는 카버에 의하여, 그리고 정신적으로는 마틴 루터 킹 목사에 의하여 얻어지게 되었다고 평가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에는 하나님의 뜻이 깃들어 있습니다. 볼품없이 보이는 것도 다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가 그것을 발견할 때에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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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4-23


집을 구하러 다녔습니다. 돈은 적고 가족은 많고 외국인에다가 되도록 교회와 가까운 곳을 찾으니 찾는 집이 만만할 리가 없었습니다. 부동산에 들어가 상담서를 써내면 30분은 뒤적여서야 겨우 우리가 찾는 조건에 비슷한 집을 찾아주었습니다. 

처음 대하는 다다미에서는 냄새가 역했습니다. 그렇게 본 집에 대해서도 여전히 까다로운 조건이 남아 있었습니다. 일본인 보증인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기본이고, 심지어 보증인의 세금납부 증명서를 요구하기도 하였습니다. 어렵사리 집을 하나 골랐는데, 그 집도 막상 계약하려고 하는 순간에 집주인의 마음이 변해서 거절당하고 말았습니다. 황당하고 막막한 마음을 뒤로 하고 새로 집을 찾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날씨는 흐리고 바람이 불었고, 일본어는 빈곤했으며, 도와줄 이도 많지 않았습니다. 

외국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하고 많이 느꼈습니다.


너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라 너희가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었은즉 나그네의 정경을 아느니라 (출 23:9)


가족에게 제일 미안했습니다. 내가 또 고달픈 현장으로 가족을 이끌고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혼 13년, 지난 세월 동안에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은 풍성했지만, 남편과 아버지로서의 나의 역할은 과연 무엇을 하였는가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내가 예수를 만난 이후로 나는 나와 내 가족의 편안함을 위하여 살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생각의 초점은 ‘주님이 이 길을 원하시는가?’였지, ‘이 길에 무엇이 있는가?’가 아니었습니다.

내가 훌륭한 인격을 가진 청렴한 목사라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원래 게으르고 욕심이 많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은 이후로 내 삶이 변했습니다. 언제나 중요한 선택의 순간마다 그분이 나를 붙드시고 인도하시는 것을 경험합니다. 그래서 나는 내 주관대로 살지 못하고 믿음대로 사는지도 모릅니다.

신앙은 서럽게 가는 길입니다. 주님은 장밋빛 핑크로드를 약속하신 적이 없습니다. 힘들어서 남이 가지 않는 길을 우리가 신앙으로 선택하고 걸어갔을 때에, 그 종말에는 상(賞)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기도는 편안하려는 자신과의 긴 싸움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이겨야 비로소 믿음의 길이 보입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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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4-16


예수님은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할렐루야~

바울은 부활이 없으면 우리 신자들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들이라고 말했습니다. 

어떤 소녀가 병으로 인하여 손을 절단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수술에 들어가기 전에 자기의 손을 향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의 손아, 그동안 수고가 많았다. 너로 인하여 바느질도 배울 수 있었고 그림도 그렸지만, 이제 다시는 그런 것을 하지 못하겠구나... 하지만 이것이 끝은 아니다. 부활의 아침에는 내가 다시 너를 찾을 것이다. 그 때까지만 기다리는 것이다.”

이 소녀의 말은 정녕 사실입니다. 우리는 부활의 아침에 모든 약점을 벗어버리고 온전하게 될 것입니다. 그 때에는 다시 아픈 것과 약한 것이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처럼 될 것입니다...


부활의 소망은 우리를 강하게 합니다. 우리는 이 소망 가운데서 그 어떤 고난과 역경도 참을 수 있으며,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실 풍성한 은혜의 영광을 바랄 수 있습니다. 애벌레의 짧은 다리로는 절대로 넘을 수 없었던 바위라 할지라도, 나비의 날개를 달고 나면 아주 사소한 장애물에 불과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자기를 생각하는 것은 현재의 삶을 위한 유익이 있습니다. 현실성이 없는 신앙은 죽은 신앙이요, 무력한 신앙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현재의 자기만을 보는 것은 틀림없이 ‘낙심’을 불러옵니다. 때문에 신앙인은 현실과 아울러 미래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 미래의 궁극적인 승리가 바로 ‘부활’이라는 말로 함축됩니다. 죽음을 정복한다면 더 겁날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현재의 삶에 낙심하고 있습니까? 예수님의 부활을 묵상해 보십시오. 그리고 그 부활을 자신의 소망으로 받아들이십시오. 그러면 불안의 그늘을 벗어나 새로운 희망을 품을 수 있을 것입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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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4-09


우리는 가난합니다. 

내 집이 없어 남의 집에 세를 살고, 내 차가 없어 대중교통을 타며, 여유자금이 없어 빌려주지 못하고, 남들보다 싼 음식점에서 외식을 하기 때문입니다. 내 아이들은 다른 집 아이들처럼 학원에 다니거나 특별한 레슨을 받지 못하고, 내 아내는 성형외과에서 쌍꺼풀 수술을 받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가난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가난’은 정작 우리의 삶에 본질적인 결핍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런 것들이 없어서 행복하지 못하다고 착각하지만, 실상 그것은 교묘한 거짓말일 뿐입니다.

유학생 생활이 힘들다고요? 아닙니다. 유학생 생활이 힘든 것이 아니라 인생의 뚜렷한 목표를 상실한 내 자신의 혼돈이 힘든 것입니다. 경제적인 어려움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있습니다. 중요한 사실은, 그래도 우리는 끼니를 먹고 문화를 누리며 사는 사람들 중에 속한다는 것입니다.

진짜 가난은 생존을 위협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생존의 위협을 받을 만큼 어려운 사람은 없지 않습니까? 

우리는 이미 충분히 가지고 있음에도 상대적 박탈감, 혹은 상대적 빈곤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실상 물질의 빈곤이기 보다는 정신과 영혼의 빈곤입니다. 그것을 알지 못하고 평생을 돈 버는 것에만 헌신하면, 그 사람 인생의 결과는 ‘허무’만 남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족하는 지혜를 예수님께 배우십시오. 그리고 이미 주어진 것을 소중히 여기고 그 안에서 충분히 행복한 사람이 되십시오. 자기의 행복을 믿음 안에서 가꾸어갈 때에, 우리는 누구나 ‘천국의 시민’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인생을 채워갈 수 있습니다.

  

“만일 냉장고에 먹을 것이 있고, 몸에는 옷을 걸쳤고, 머리 위에는 지붕이 있는 데다 잘 곳이 있는 사람이라면 당신은 이 세상 75퍼센트의 사람들보다 잘 살고 있는 것이다.” 

                        (김혜자, 「꽃으로로 때리지 마라」중에서...)


Posted by makari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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