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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워 아트 (Flower Art)

꽃으로 새를 만드네요. 만들어진 새의 모습이 곱고 친근합니다.

사람이 아무리 멋진 염료를 만들어내도 자연의 생동감 있는 색깔은 따라갈 수 없는 것 같습니다.

당연한 것인가요? 사람의 솜씨가 하나님의 솜씨를 따라갈 수 없는 것은...^^

그래서 유능하다고 생각되는 사람일수록 반드시 겸손을 배워야 하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 앞에 겸손한 마음 늘 간직하기, 오늘의 결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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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5월11일, 새벽 2:29 / 설교준비를 마무리하며


설교 준비를 하다가 마음이 뜨거워졌다. 여기저기 성경에서 자맥질을 하다가...밤도 새울 것 같은데... 손이 아프다. 홈페이지 작업한 후유증이 손목뿐 아니라, 손의 관절에까지 내려와서 타자를 잘 못치겠다. 

내일은 진통제를 좀 먹어야겠다. 아, 이제 또 한국에 가져갈 특강 준비를 해야 하는데... 그래도 걱정 보다는 마음이 뜨겁다. 내가 외치는 소리를 듣고, 한 사람이라도 그 인생이 말씀 안에서 변할 수 있다면... 그것은 얼마나 놀라운 은혜인가! 얼마나 놀라운 희망인가!

내일은, 아니 오늘이구나... 너무 몰입해서 흥분하지 말아야지. 늘 이렇게 다짐을 하지만, 그래도 말씀은 나를 뜨겁게 한다. 내 가슴에 불이 있는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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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11 목양칼럼


제인이라는 인형을 좋아하는 소녀의 집에 아저씨 한 분이 놀러 왔다. 소녀는 여러 가지 인형을 내보이며 아저씨에게 자랑을 했다. 갑자기 아저씨가 “제인, 너 이것들 중에 어떤 인형을 제일 좋아하니?” 하고 묻자, 소녀는 잠시 깊이 생각한 다음에 아저씨를 바라보고 “제가 좋아하는 인형을 보여드리겠어요. 그런데 절대로 웃지 않으시겠다는 약속을 하셔야 해요.”라고 말했다. 

아저씨가 약속을 하자, 제인은 방에 들어가더니 아주 못생긴 인형을 들고 나왔다. 코는 문드러졌고, 팔 다리는 떨어졌으며, 옷은 형편없이 낡아있는 인형이었다. 아저씨는 제인에게 “무엇 때문에 이 인형을 좋아하지?”하고 물었다. 그러자 제인은 이렇게 대답했다. “제가 사랑해주지 않으면 아무도 사랑해 줄 사람이 없으니까요.”


진정한 사랑은 사랑 받을 만한 이유가 보이지 않을 때 드러난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이고,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부모님의 사랑이다. 이 사랑을 깨닫는다면,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절망할 수 없으며, 또한 감사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사랑은 경쟁하고 쟁취하는 것이 아니다. 명예와 황금은 그런 식으로 얻을 수 있지만, 가장 고귀한 사랑은 결코 그렇지 않다. 사랑에 조건을 걸지 말라. 단서를 붙여 입맛대로 사랑하지 말라. 어떤 사랑하는 사람이 당신에게 실망을 준다면, 그것은 ‘더 큰 사랑’을 요구하는 청구서와 같다고 여겨라.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사랑해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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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폰 6의 모습


일단 화면 사이즈는 4.7인치입니다. 그래도 갤럭시보다는 약간 작군요. ㅎㅎ

각진 베젤에서 둥근 라운드로 바뀌었고, 상단의 버튼이 없네요. 

사이드에서 한 편이 쓰리 버튼(볼륨포함)이고, 다른 면에 버튼이 하나 더 있습니다.

올 가을즈음에 런칭될 것이고 하는군요...

하지만 솔직히 잡스의 시절에 비하여 기대감은 별로 없습니다. 그냥 또 하나의 핸드폰 새 모델이 나오는가보다 하는 정도의 느낌이네요...

그래도 화면만 조금 컸으면 당장 아이폰 쓰겠다는 니즈가 주변에 상당히 많기 때문에, 아마도 이 모델이 나오면 적지 않은 인기를 끌게 될 것이라 생각됩니다.

아래는 유튜브 영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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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갑에 신용카드 몇 장이나 들고 다니시나요?"


마그네틱 카드를 IC카드로 교체했다고는 하지만, 사용자 입장에서는 똑같은 카드일 뿐입니다.

'모바일 카드'로 핸폰에 카드를 심는 기술이 상용화되었지만, 실제에 있어서는 그래도 카드를 긁는 손맛을 선호하거나 보안문제에 대한 불안으로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지요.

그런 점에서 딱 그 중간을 점유하는 새로운 카드의 등장입니다.



Coin은 전자카드를 내장한 실물카드입니다. 8장의 카드를 내장할 수 있고, 스마트폰과 블루투스로 연결되어서 사용기록이 저절로 핸드폰에 정리됩니다. 사용할 때에는, 사진에서 보여지는 버튼을 통해, 자기가 사용할 카드를 내장된 카드들 중에서 선택하면 그만입니다. 물론 두께와 크기는 보통 카드와 똑같게 디자인 되었습니다. 그래야 보통 카드의 단말기에 사용할 수 있겠지요...^^


저도 평소에는 NFS(근거리통신)를 사용하는 ID(일본의 전자카드)를 주로 사용하는데, 이게 아직은 사용되는 곳이 한정되어 있고 가끔은 결재에 꽤 오랜 시간이 걸려서 약간 민망할 때가 있습니다. 물건 결재하려고 하는데, 결재승인이 빨리 떨어지지 않으면 직원과 함께 어색한 침묵으로 기다리는 시간이... 뒤에서는 사람들 기다리고요...ㅋㅋ

그러니 설사 결재가 되지 않더라도 즉시로 다시 긁어볼 수 있고, 뭐라고 얘기할 내용이 있는 실물 카드가 좀 덜 난처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만들게 된 것이 어떤 동기이든 괜찮은 아이디어라고 생각됩니다. 현재 이 서비스는 클라우드 펀딩을 진행중이라고 합니다. 잘 진행되어서 서비스가 나오면 좋겠군요. 그러면 또 어떤 사람들은 굳이 8장의 카드를 모두 채워서, 카드를 더 많이 가지게 될지도 모르겠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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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지역구의 국회의원에게 세월호 사고에 관심을 가지고 정치적 행동을 해달라고 청원하는 메일을 보낼 수 있는 사이트가 개설되었습니다. 아래 링크로 들어가서 자기 주소지를 입력하면 국회의원 이름이 나옵니다. 간단한 클릭 몇 번으로 유권자의 관심을 표현하는 메일을 보내실 수 있습니다. 좋은 참여라고 생각합니다. 관심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

http://www.heycongress.org/






국회의원을 움직이는 손

세월호가 침몰한 지 이틀이 지나 슬픔과 무기력이 스멀스멀 올라오던 때, IT업계 종사자 오영욱(32·왼쪽)·이숙번씨(35·오른쪽)는 한 게임개발자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개인은 할 수 있는 게 없지만 국회의원은 할 수 있는 게 많다. 우리 손으로 국회의원을 뽑으니, 우리가 직접 요구하자.” 오씨와 이씨를 비롯한 IT업계 종사자 9명은 ‘응답하라 국회의원(응국·http://www.heycongress.org)’을 만드는 데 팔소매를 걷어붙였다.

‘응국’은 유권자가 자신의 지역구 의원을 검색하면 해당 의원에게 세월호 피해 지원을 촉구하는 이메일을 자동으로 보내도록 돕는 사이트다. 4월20일 개설하자마자 초기 목표였던 5000명을 훌쩍 넘겼고, 5월1일 현재 유권자 1만1483명이 자신의 지역구 의원에게 메일을 보냈다…

출처 : www.sisain.kr/20226 :: 페이스북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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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조선의 대동맥, 조선의 폐(肺)는

아기야, 너에게만 있도다. 

-- 양주동, [조선의 맥박] 중에서


대한민국이 오늘의 발전을 이룬 것은 어떤 개인의 능력 때문이 아니라, 바로 그 부모들의 희생과 가르침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을 알지 못하고 선전된 '영웅'의 업적으로 모든 것을 등치하는 사람들을 나는 이해할 수 없다. 

헐벗고 굶주리는 세월 동안에도, 나라가 없어졌음에도, 오직 자식을 위해서라면 진자리, 마른 자리 가리지 않고 헌신해 주셨던 부모님들의 사랑이, 이 나라의 뼈대를 이루고 모든 자녀들이 불굴의 의지를 가질 수 있도록 격려하는 발판이 되었다.

하여, 세월호의 사건은 이토록 엄중한 것이다. 수 천 억을 빼돌리고, 나라를 거덜내도 참았던 국민이지만, 자식들의 불행한 죽음을 더욱 비참하게 만드는 권력 앞에서, 마침내 폭발의 직전에 도달하고 만 것이다.

대한민국을 이해한다면, 결단코 건드려서는 않되는 '역린'이 나는 바로 '자식'이라고 생각한다. 

때문에 이 사건은 심지어, 그토록 분열시켜 재미를 보았던 좌우를, 동서를 하나로 묶어낼 가능성이 있다. 어쩌면 한국인의 피에는, '자식사랑'이라는 것에 유독 공명하는 유전자가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

--  by mAkaRi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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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 정의(正義)가 없는 대학(大學)은 대학이 아니기에.>


나는 두산대학 1세대다. 2008년, 두산은 야심차게 중앙대를 인수했다. 명문의 반열에 올려놓겠다고 선언했다. 당시 수험생이었던 나는 중앙대 학생이 되고 싶었다, ‘사람이 미래다’라는 두산 기업의 말처럼 나는 내 자신의 미래를 만들어가고 싶었다. 그래서 공부했다. 그리고 합격했다. 하지만 두산재단과 함께 시작한 대학생활은 녹록치 않았다. 


박용성 이사장은 대학이 교육이 아닌 산업이라 말했다. 대학도 기업식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중앙대라는 이름만 남기고 모든 것을 바꾸겠다고 했다. 그리고 불과 5년 만에 그의 말은 실현되었다. 정권에 비판한 교수는 해임되었고, 총장을 비판한 교지는 수거되었다. 회계를 의무적으로 배우면서, 성공한 명사들의 특강을 의무적으로 들어야 했다. 비용 절감을 이유로 교양 과목은 축소되었고, 이수 학점은 줄어들었다. 학과들은 통폐합되었다. 건물이 지어지고 강의실은 늘어났지만, 강의 당 학생 수는 줄어들지 않았다. 


진리의 상아탑이라는 대학에서 대자보는 금지되었다. 정치적이라고 불허됐고, 입시 행사가 있다고 떼어졌다. 잔디밭에서 진행한 구조조정 토론회는 잔디를 훼손하는 불법 행사로 탄압받았다. 학생회가 진행하는 새터와 농활도 탄압받았으며, 지키는 일이 투쟁이 되었다. 중앙대는 표백되어갔다. 


대학은 함께 사는 것을 고민하는 공간이라고 생각했다. 학문을 돈으로 재단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치열하게 고민하고, 처절하게 싸웠다. 2010년 고대의 한 학우가 대학을 거부하고 자퇴라는 선택을 했을 때, 나는 무기정학을 받았다. 한강대교 아치위에 올라 기업식 구조조정을 막기 위해 분투한 대가였다. 대학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다. 순진하게도 그 것이 가능하다고 믿었다. 


하지만 기업을 등에 업은 대학은 괴물이었다. 그 대가는 참혹했다. 5차례의 징계위원회에 회부되었고, 3차례의 징계조치를 받았다. 무기정학 처분이 부당하다는 법원의 판결을 받아내자 대신 유기정학 18개월의 처분을 내렸다. 유기정학 기간이 채 끝나기도 전에 구조조정 토론회를 기획했다는 이유로 근신처분을 받았다. 이러한 징계이력은 낙인찍기였다. 받았던 장학금은 환수요청을 받았으며, 학생회장으로 출마할 피선거권을 박탈당했다. 학교본부는 나의 피선거권을 박탈하기 위해, 각 과 학생회장들을 징계처분, 학군단과 교환학생 자격박탈, 학생회비 지원중단 등 갖가지 방법으로 협박하였다. 

그렇게 난 블랙리스트 대상이 되었다. 학생들은 날 종북좌파라 어느 교수는 나를 불구덩이에 타죽으러 가는 사람이라 했다. 그렇게 나는 절벽 앞으로, 불구덩이로 내몰렸다. 비단 나 혼자만의 문제였을까. 


대학에 더 이상 정의는 없다. 이제 학생회는 대의기구가 아니라 서비스 센터다. 간식은 열심히 나눠주지만, 축제는 화려하게 진행하지만, 학생들의 권리 침해에는 입을 닫았다. 학과가 말도 안 되는 이유로 폐과되고, 청소노동자들이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학생회는 움직이지 않는다. 


교수들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민주주의가 후퇴한다고 시국선언을 했던 교수들이 학내에서는 아무도 말을 하지 않는다. 아니, 탄압의 선봉을 자처하게 된 교수들도 있다. 대학의 본질을 찾는 학생들에게 교수들은 다치지 않으려면 조심하라는 말밖에 해주지 못했다. 자기 몸 하나를 건사하기 위해 모두가 비겁했다. 


내가 이 대학에서 배운 것은 정의를 꿈꿀 수 없다는 것이다. 현실의 벽은 너무나 거대하고 완고해서 무너지지 않을 것이고, 때문에 그저 포기하고 순응하며 살아가라는 것이다. 모두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문제를 고민하고, 경쟁을 통한 생존을 요구했다. 그렇게 대학은 세일즈하기 편한 상품을 생산하길 원했다. 하지만 대학은 기업이 아니고 나 또한 상품이 아니다. 난 결코 그들이 원하는 인간형이 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마지막 저항을 해보려한다.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중앙대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다. 그 누구보다 중앙대를 사랑하고, 중앙대가 명문대학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을 통해 말하고자 한다. 대학은 대학으로서 가져야할 최소한의 품위가 있어야 한다고. 진리와 정의에 대한 열정이 있어야 한다고. 


나는 비록 중앙대를 자퇴하지만, 나의 자퇴서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 되어야 한다. 대학을 복원하기 위해 모두에게 지금보다 한걸음씩의 용기를 요구하는 재촉이기도 하다.


‘의에 죽고 참에 살자’ 중앙대의 교훈이다. 

떠나더라도 이 교훈은 잊지 않으려 한다. 


우리 모두가 기억했으면 한다. 지금 대학엔 정의가 필요한 시기이다.


중앙대학교 철학과 김 창 인 


2014년 5월 7일에 올라온 글입니다. 

김창인 군의 페이스북 : http://goo.gl/wcSjP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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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레기’와 시대유감

-- 희망을 의심하는 자들에게 띄우는 편지 --

김종선 목사 (동경드림교회)


2014-05-08 목양칼럼



신조어(新造語)는 시대의 고민과 정신을 어느 정도 반영한다. 세상이 바뀌면서 없는 단어가 생겨나는 것인데, 그 없는 단어를 사람들이 찾고 만들어낼 때에는 반드시 어떤 이유와 필요가 있기 마련인 것이다.

요즘 눈에 들어오는 단어는 ‘기레기’다. 기러기도 아니고 이게 도대체 무엇일꼬?

이 신조어는 유감스럽게도 한국의 ‘기자’와 ‘쓰레기’의 조합이다. 그러니까 좀 풀어서 말로 설명을 하자면 ‘쓰레기 같은 기자들’이라는 뜻이다. 

기자(記者)는 본래 단순한 기록의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은 시대를 감시하고, 사실을평가하고, 심지어 대중을 설득하는 기능을 이미 오래 전부터 해왔다.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무시로 글을 써 교류하는 지금에도 기자는 전문직으로 존중 받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존엄한 기자(記者)라는 말에 쓰레기가 장식되었다. 왜일까? 

그 본연의 임무를 천연덕스럽게 포기하고 권력과 금력에 야합했기 때문이다. 재벌의 잘못은 아무리 커도 신문에 오르지 못하고, 권력의 실수 또한 알아서 가려주기에 급급하다. 그래서 글[文]은 정직하고, 펜은 칼보다 강하다고 믿었던 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렸으니, 사회로부터 ‘쓰레기’의 취급을 받는 것이다.

세월호 사고를 앞에 두고, “한 해 일어나는 교통사고에 비하면 많이 죽은 것도 아니다…”는 말을 했다는 국영방송 KBS의 보도국장을 만나기 위해 유가족들이 방송국을 찾았다고 한다. 그것도 어버이날에 말이다. 물론 만나지 못했다. 경찰은 다시 차로 벽을 쌓고 권력의 힘으로 변절한 펜을, 기자를, 방송을 보호했다.



죽어가는 단원고 아이들 수 백 명은 멀거니 지켜보면서도 보호하지 못했던 정부가 입으로 똥을 뱉어내는 이런 사람은 잘도 보호한다. 물론 당장 번거롭고 곤란한 입장은 피할 수 있었겠지만, 그래도 소용은 없을 것이다. 이미 이 시대는 ‘기레기’라는 말로 그런 류(類)의 사람들을 정죄했기 때문이다. 


나는 이 단어를 처음 듣는 순간, 마태복음에 나오는 예수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개정개역, 마 5: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재미있는 것은,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라는 반어법의 강조구문이 역본에 따라 약간씩 다르게 해석되어 있다.


(쉬운성경, 마 5: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만일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다시 짠맛을 가질 수 있겠느냐? 아무 쓸모가 없게 되어 밖에 버려져 사람들에게 밟힐 뿐이다.

(표준새번, 마 5: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소금이 짠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그 짠 맛을 되찾게 하겠느냐? 짠 맛을 잃은 소금은 아무데도 쓸 데가 없으므로, 바깥에 내버려서 사람들이 짓밟을 뿐이다.


개역성경은 ‘짜게 하리요?’라는 표현을 써서, 마치 소금을 대체하는 어떤 다른 것을 찾고 있는 것과 같은 인식을 주지만 원문의 내용은 이와 다르다. 다른 역본들의 번역과 같이, 소금이라는 것이 한 번 맛을 잃으면 되돌릴 수가 없다는 결론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맛을 잃은 소금은 아무리 양이 많아도, 색깔이 멋져도, 모양이 훌륭해도, 이전에 얼마나 비싼 값으로 구입했더라도… ‘쓰레기’라는 것이다.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어찌 예수님의 이 말씀을, 다만 교회 안에다만 가둘 수 있겠는가?

선장이 다급한 순간에 승객을 포기하고 제일 먼저 도망하면, 구조대원이 죽어가는 아이들을 보고서도 속셈만 거듭하다 자기 목숨이 아까와 달려가지 못하면, 경찰과 검찰이 불의를 잡아들이지 못하면, 기자가 정직한 글을 쓰지 못하면, 권력이 국민을 섬기지 못하면… 그것들은 다 맛을 잃은 소금이며, 쓰레기에 불과하다 말할 수 있지 않겠는가?

심지어 교회가 교회답지 못하니,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기독의 기’를 천한 ‘개’로 바꾸어 ‘개독교’라는 새 이름을 지어주지 않았는가! 이 이 얼마나 통탄할 시대인가? 이 얼마나 부끄러운 현실인가? 


말을 해보라. 죽어가는 자식 앞에서, 혹은 죽어버린 자식 앞에서 오열하는 부모들의 애통을 앞에 두고 ‘종북’은 무엇이고, ‘좌우’는 무엇인가? 이념은 무엇이고, 정치와 선거는 무엇인가? 

그보다 원시(元始)적인 인간의 바탕이 드러나고 있는 것을 진정 보지 못하는가? 바다 보다 깊은 애통함이 진도 앞바다를 건너 온 세계를 진동시키고 있는 것이 정녕 보이지 않는가?

금발 아가씨도 알고, 흑인 아저씨도 아는 사람의 기본적인 정서(情緖)를, 슬픔을 어찌 같은 나라의 대통령이, 국회의원이, 기자가 모른다는 말인가? 어찌 목사가 그것을 모른다는 말인가?

그것도 모르면서 어찌 밥을 먹겠는가? 어찌 나라를 통치하고, 글을 쓰고, 강단에서 설교를 하겠는가? 그 빛깔이 아무리 고와도 그런 류(類)의 부산물은 결국 부패하고 냄새 나는 쓰레기가 되지 않겠는가? 말을 해보라, 말을…


구약의 마지막 책인 말라기서에는 타락한 제사장에 대한 신랄한 경고가 등장한다.


(개역개정, 말 2:3) 보라 내가 너희의 자손을 꾸짖을 것이요 똥 곧 너희 절기의 희생의 똥을 너희 얼굴에 바를 것이라 너희가 그것과 함께 제하여 버림을 당하리라


이스라엘 민족에게 있어 ‘제사’의 타락은 ‘제사장’의 타락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그것은 거의 필연적이었다. 어떻게 제사장이 야합하지 않는데, 잘못된 제물이 드려질 수 있을까?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돈 바꾸는 자들의 상을 엎으시고, 죽음을 기다리며 배설하는 짐승들의 떼를 몰아내실 때까지 이러한 야합은 멈추지 않았다. 아니, 예수님께서 그렇게 과격한 호통을 치신 다음에도 아주 오랜 동안 종교는 돈과 권력에 탐닉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아무 것도 하지 않으신 것은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약속을 지키셨다. 

말라기서에 나오는 말씀과 같이 그들의 자손을 꾸짖고, 짐승의 똥을 그 얼굴에 바르셨다. 부정한 것들을 제하여 버리듯이 그런 자들을 순식간에 망하게 하셨다.

그러나 죄는 깊었다. 돈과 권력을 위해 타락할 사람들은 언제나 줄을 서 있었고, 잠시라도 진정되었던 맑은 물은 그들에 의하여 순식간에 흙탕물이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안에서는 한 치 앞도 제대로 볼 수 없는, 진도 앞바다의 세월호 속 같은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근본적으로 하나님과 사람의 싸움이다. 나는 그것을 믿는다.

그래서 희망을 가슴에 품는다. 내가 품는 희망은, 사람의 것이 아니다. 죄로 오염된 사람들이 철이 들고 돈보다 귀한 가치를 깨닫고 훌륭한 인격으로 돌아오기에는, 인생이란 너무 짧고 돈과 권력의 심연(深淵, abyss)은 너무 깊다. 

그러나 아무리 그 유혹이 교묘하고 죄의 성세(成勢)가 대단하다 하더라고, 죄는 결국 심판 아래 있고 창조주의 정의(正義)는 반드시 승리한다는 것을 나는 의심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경고한다. 쓰레기가 된 사람들이여, 회개하라. 

그렇지 않다면, 이제 그 얼굴에 창조주의 손으로 똥칠할 것을 기다리라. 그대들의 권력과 돈이 불[火]의 심판 앞에 허무하게 사라지는 것을 보게 될 것이며, 그대들의 명성과 화려한 옷은 오히려 더 큰 괴로움의 이유가 될 때가 반드시 올 것이다. 

그러니 그 때가 이르러 후회조차 늦기 전에, 지금 후회하고 혹시라도 있을지 모르는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라.


선량한 사람들이여, 낙심하지 말라. 어떤 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정의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희망은 인조(人造)의 공산품이 아니라, 언제나 창조주의 자연(自然)의 산물이다. 그것은 죽은 씨앗처럼 겨울을 지나지만, 봄에는 반드시 싹이 트고, 여름에는 자라나 온 대지(大地)를 덮는다. 

정의와 희망은 무릇 그런 것이다. 사람이 어쩔 수 없는, 사람이 만들어 낼 수도 없지만, 죽일 수도 없는, 더 본질적인 하나님의 것(devine thing)이다. 그러니 불의한 시대를 잘 참고 견디라. 타협하지 말라. 같이 쓰레기가 되지 말아라. 얼굴에 똥칠할 짓을 조심하라. 그리고 묵묵히 무쏘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진리의 길을 가라. 믿음대로 살아라.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당신이 옳다고 생각하고 믿는 것을 천천히 실현하라. 


답답함은 무릇 의인의 보상이다. 우리뿐 아니라 어느 시대에나 그러했다. 의인들의 한숨과 눈물이 기도가 되고, 다짐이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은 땅을 떠나지 않았고 다시 꽃 피워 우리들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그러니 눈물로 씨를 뿌리는 것을 결코 불행이라 여기지 말라. 그 씨가 자라게 될 미래는 반드시 있다. 하여, 하나님을 바라는 것을 멈출 수 없는 것이다.

나는 이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시편 12편

(12:1)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여덟째 줄에 맞춘 노래] 

여호와여 도우소서 경건한 자가 끊어지며 충실한 자들이 인생 중에 없어지나이다

(12:2) 그들이 이웃에게 각기 거짓을 말함이여 아첨하는 입술과 두 마음으로 말하는도다

(12:3) 여호와께서 모든 아첨하는 입술과 자랑하는 혀를 끊으시리니

(12:4) 그들이 말하기를 우리의 혀가 이기리라 우리 입술은 우리 것이니 우리를 주관할 자 누구리요 함이로다

(12:5) 여호와의 말씀에 가련한 자들의 눌림과 궁핍한 자들의 탄식으로 말미암아 내가 이제 일어나 그를 그가 원하는 안전한 지대에 두리라 하시도다

(12:6) 여호와의 말씀은 순결함이여 흙 도가니에 일곱 번 단련한 은 같도다

(12:7) 여호와여 그들을 지키사 이 세대로부터 영원까지 보존하시리이다

(12:8) 비열함이 인생 중에 높임을 받는 때에 악인들이 곳곳에서 날뛰는도다


Posted by makari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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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 소 문>

먼저 어제(5월 6일) 실종자 구조작업 중 사망하신 고 이광옥 잠수사님의 명복을 기원하며, 그 가족께도 깊은 애도의 뜻을 전합니다. 저희는 고 이광옥 잠수사님의 숭고한 희생을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며, 지금도 사고해역에서 최선을 다해 구조작업을 하고 계시는 잠수사님들의 노고에도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다시는 이와 같은 사고가 일어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정부에 촉구합니다.

1. 정부는 실종자를 조속히 구조해 주십시오. 
사고책임은 선사에 있지만 구조책임과 의무는 정부에 있습니다. 그러나 사고 직후부터 지금까지 정부의 구조작업은 지연과 혼선뿐이었습니다. 그로 인해 구조할 수 있었던 탑승자들의 죽음을 방치하였고, 이제는 드문드문 올라오는 시신이 신원을 확인하기 어려울 정도로 상하였습니다. 우리 희생자/실종자/생존자 가족들은 이제라도 실종자 구조에 실질적인 최선을 다하는 대한민국 정부를 보고 싶습니다. 단 한명의 실종자 유실도 없이 모두 가족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가능한 모든 조치를 즉시 취해주시기를 강력히 촉구합니다. 

2. 정부는 투명하고 철저한 진상조사를 해주십시오. 
현재 검찰이 선사 및 관련자들을 대상으로 사고원인 등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사고책임이 있는 선사 및 관련자들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처벌은 당연합니다.
동시에 가장 중요했던 사고 초기 구조작업이 이틀 이상 지연되고 이후 구조작업도 소극적으로 이루어졌던 부분에 대해서도 철저한 진상규명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는 남아있는 우리 자녀들이 똑같은 피해를 당하지 않는 “안전한 나라”를 만들어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첫 과정입니다. 
정부는 검찰의 수사내용을 우리 “가족대책위”에 공개해 주십시오. 해경 또는 검찰이 수거한 우리 아이들의 휴대전화에 대한 수사내용도 공개해 주십시오. 검찰의 수사가 미진하거나 의혹이 있다고 판단될 경우 우리 희생자/실종자/생존자 가족들은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철저한 진상규명을 위한 행동에 돌입할 것임을 분명히 밝힙니다.

국민 여러분들께 호소합니다.

세월호 사고 이후 함께 아파하고 울어주신 국민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국민 여러분들께서 함께 아파해주신 이유는 이러한 사고가 언제 어디서든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문제라고 여기셨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책임이 부정과 부패를 방관하고 방조해온 우리 어른들에게 있다고 느끼시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에 저희 “가족대책위”는 다음과 같이 호소합니다.

1. 조속한 실종자 구조를 위해 함께 외쳐 주십시오.
진도에서 외롭게 피눈물 흘리며 바다 밑에 갇혀 있는 아이와 가족을 기다리는 실종자 가족들이 원하는 것은 단 하나, 내 아이, 내 가족의 시신이라도 돌려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종자 수가 줄어들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언론의 관심도 점차 줄어들고 있습니다. 비록 생존가능성이 거의 없더라도 시신이나마 내 자식이고 내 가족입니다. 장례라도 온전히 치뤄 주고 싶은 게 부모의 애절한 마음입니다.
국민 여러분! 외로움에 치를 떨며 피눈물을 흘리고 있는 실종자 가족들이 더 외롭지 않도록 마지막 한 명의 실종자가 구조될 때까지 끝까지 함께 외쳐 주십시오.

2. 투명하고 철저한 사고 진상 규명을 위해 함께 행동해 주십시오.
저희 “가족대책위”는 진심으로 검찰의 사고원인 및 무책임한 사고수습에 대한 수사가 투명하고 철저하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저희 “가족대책위”는 검찰의 수사가 미진하거나 의혹이 있다는 판단이 들면 지체 없이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직접 철저한 진상규명에 나설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바로 지금부터 국민여러분들께서 함께 외치고 행동하고 제안도 해주십시오. “내 아이가 안전한 나라”, “단 한 명의 국민도 끝까지 책임지는 나라”는 국민 여러분들의 참여 없이는 만들어 나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3. 저희의 목적은 “안전한 나라”를 만드는 것입니다.
저희는 사고 후 무책임하고 무능력한 정부의 대응에 대해 강력히 비판해왔지만 그것은 앞으로 같은 사고가 반복되지 않는 안전한 나라“를 만들기 위한 것입니다. 국민 여러분들께서는 이러한 저희의 뜻을 충분히 헤아리시고 모든 희생자/실종자/생존자 가족 및 모든 국민들이 함께 ”안전한 나라“ 건설의 목적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2014년 5월 7일

세월호사고 희생자/실종자/생존자 가족 대책위원회


** 이 호소문은 A4 / A3 용지로 출력할 수 있도록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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