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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17


모든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을 향한 주님의 편지입니다. 때문에 우리를 통하여 세상은 신앙에 대한 태도를 달리하게 됩니다. 

2차 세계대전 직후에 부모를 잃은 어느 소녀가 한 농장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소녀는 젊은이들의 유행을 따라 신앙이란 낡아빠진 퇴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농장의 주인내외는 독실한 신앙인이었습니다. 그들이 함께 지내는 동안 소녀는 신앙을 받아들이게 되었고, 함께 열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녀가 말했습니다.

“솔직히 나는 성경이 너무 어려워요. 읽어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고, 이해되지 않는 것들이 너무 많아요. 하지만 나는 걱정하지는 않아요. 왜냐하면 내게는 주인아주머니가 있으니까요. 그분이 하는 대로만 좇아가면 다 잘 될 거라는 확신이 들어요.”


이성과 논리가 불필요하다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단순한 신앙의 원리를 사람의 논리로 혼돈케 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실제로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살아보면 체험하게 될 것을, 그렇게 하지는 않으면서 말로만 설명하려고 하니 버겁고 무거운 것이 되고 맙니다.

벌써 12월의 중반이 지났습니다. 다음 주일이 크리스마스 주간입니다. 그리고 송구영신예배를 드리면 또 1년을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이하게 됩니다. 

우리는 주님이 우리에게 찾으시는 것이 화려한 논리가 아니라 실제로 변화된 삶이라는 사실을 다시 되새겨야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삶을 통하여 우리에게 부여된 사명, 곧 그리스도의 편지로 세상을 살아가는 것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기 원합니다.

주님의 온유함과 겸손함을 배우도록 하십시오. 말을 부드럽게 하고 먼저 섬길 뿐 아니라, 항상 영적으로 살기를 갈망하십시오. 자신의 삶으로부터 주님이 찾으시는 열매가 만들어질 수 있도록 자기를 개혁하는 일을 멈추지 마십시오.

무엇보다 복음의 증인이 되십시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묵상한 것을 주변의 사람들에게 증거하십시오. 우리 주 예수 안에서 승리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동경드림교회의 모든 지체들에게 넘치기를 원합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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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10


많은 관광객들이 아테네 시 언덕 위에 있는 유명한 고대의 신전 아크로폴리스 성채를 방문합니다. 세계 각국으로부터 수천 명의 관광객들이 이곳에 와서 대리석 조각을 기념으로 주워가곤 하는데, 이상한 것은 그 대리석 조각들이 없어지지 않고 계속 남아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 이유는 몇 달에 한 번씩 한 트럭분의 대리석 조각들이 수마일 떨어진 채석장으로부터 실려 와서 아크로폴리스 전역에 뿌려지기 때문입니다. 관광객들은 그것을 고대 역사의 진짜 조각이라고 믿으면서 집으로 가져가는 것이지요. 

이와 마찬가지로 종교적 언어나 음악, 또 물건들을 통해서 혹은 예배의식이나, 공허한 행사들을 치르면서 신자는 하나님과 직접적인 교통을 하고 있다고 착각할 수가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 시대에도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단지 성전에 드나들기만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에게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나의 가증이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사1:1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경건한 의식들도 어쩌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진심에서 우러나는 믿음이 아니라 그것의 모조품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신앙생활의 요체는 한 번, 혹은 잠시만이 아니라 우리가 가진 신심(信心)을 끝까지 지켜가는 것입니다. 인내, 오래참음, 충성, 신실함 등은 결국 한 가지 열매에 대한 다양한 이름인데, 그것은 하나님과의 교제를 흩트리지 않고 거짓에 물들지 않은 마음으로 마지막까지 자기를 지키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외양이나 직분, 이름에 현혹되지 말고, 매 주일 예배에 참여한다는 사실이나 혹은 정해진 헌금을 드리고 있다는 사실로 핑계하지도 말고 우리는 좀 더 신중하게 자기를 살펴야 합니다. 

정말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까? 그분의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까? 예수님이 보여주신 모범을 좇아가려는 노력이 오늘의 현실에 있습니까? 있다면 너무나 감사한 일입니다. 그런 마음과 태도를 평생 변하지 않도록 지키십시오. 그러나 만약 그런 삶과 마음이 오늘 없다면, 우리가 어떤 자리에서 어떤 평판을 듣던지 그것은 하나님과는 상관없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예배와 신앙은 형식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보시는 것은 횟수와 금액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마음입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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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03


강철왕 카네기가 철강업에 종사할 때입니다. 그가 공장을 순시할 때마다 늘 기쁨으로 성실하게 일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마침 공장장 자리가 비어있던 터라 카네기는 그에게 공장장을 맡기고 싶었습니다. 

“당신의 성실함을 보았소. 그 성실성으로 공장장 일을 한 번 해보지 않겠소?” 그러나 그는 “사장님, 저는 단순한 철공입니다. 철공 일에는 대통령이죠. 그러나 다른 일은 잘 하지 못합니다.”라고 했습니다. 

카네기는 “당신 말이 옳소. 당신이 철공 일에는 대통령이니, 이달부터 대통령의 봉급을 주겠소. 계속 기쁨으로 철공 일을 해 주시오.”라고 했답니다.

솔로몬은 모든 부귀와 영화를 차지한 이후에 비로소 인생의 덧없음을 깨달았고, 카네기는 세계의 대부호가 된 다음에 비로소 한 사람의 존귀함을 알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현대사회는 ‘봉급’이라는 봉투의 두께 만큼 사람의 가치가 평가되지요? 하지만 그것은 저급한 삶의 현장에서 악바리 근성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평가일 뿐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이미 부요하신 분이기에 우리의 작은 재산이나 재능은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성경에 나오는 달란트의 비유에서 주인이 종에게 나누어준 1달란트가 황금 34킬로에 해당한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까? 당시 다른 계량법으로 따져도 최소한 1달란트는 24킬로입니다.

지금으로 봐도 어마어마하지요? 하지만 채굴능력이 부족했던 당시로 따지면 더 어마어마한 양입니다. 그러나 비유에 나오는 주인은 1달란트는 물론 10달란트(황금 340킬로)조차 가볍게 여기는 통 큰 주인이랍니다. 그분이 바로 저와 여러분의 아버지시죠! ^^

하나님은 재능이 있는 사람보다 성실한 사람을 찾으십니다. 그래서 자기의 능력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은 항상 하나님과 멀어지게 되고, 뭔가 나사가 하나 빠진 듯해도 날마다 성실하게 하나님을 추구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도와 주시는 것입니다. 이 진리를 안다면, 여러분은 정말 복된 성도입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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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1-26


구소련에 속해 있던 아르매니아에서 예전에 무려 5만5천명이 참사를 당하는 대지진이 일어난 적이 있습니다. 이 때에 9층 짜리 아파트가 무너지면서 스잔나라는 엄마와 4살 짜리 딸아이 가이아니가 철근과 콘크리트의 잿더미 속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오랜 시간 구조를 기다리며 탈진과 배고픔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그래도 배고픔은 목마름보다는 나았습니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뒤부터 아이는 울면서 “엄마, 목말라! 엄마 목말라!”를 연발하고 있었습니다.

엄마는 움직일 수도 없는 상황에서 한 가지 생각을 해냈습니다. 그것은 예전에 보았던 TV 프로에서 조난당한 사람들이 서로의 피를 나누어 마시며 구조를 기다렸다는 경험담이었습니다.

엄마는 즉시 팔을 뻗어 유리조각을 찾았고, 그것으로 자신의 손가락을 찔렀습니다. 그리고 그 손가락을 아이의 입에 물려주었습니다.

스잔나의 결단으로 그들은 잿더미 속에서 두 주 동안이나 버틸 수 있었고, 나중에는 모두 무사히 구조되었습니다.

성탄절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혹여나 일본의 정서에 동화되어 너무 무감각하거나, 혹은 세상적인 기분에 들뜨는 날이 되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주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분의 손과 발에서 흐른 피가 온 세상을 적시는 생명의 강이 되었습니다.

때문에 성탄은 우리 크리스천들이 자기를 내어주는 헌신의 절기여야 하며, 또한 주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치르신 희생과 사랑을 기념하는 절기가 되어야 마땅합니다.

아직도 마음이 마구간처럼 불결하다면 아기 예수님을 영접하기 위하여 마음의 정리를 좀 하십시오. 근심의 먼지를 털어내고, 불평의 쓰레기를 치우고, 세속적인 오물들은 성령의 불로 살라 버리십시오.

그리고 진리의 등불 하나 켜십시오. 예수님처럼 온유한 마음과 겸손한 태도로 사람들을 대하고, 하나님을 추구하십시오.

성탄은 연인의 절기가 아니라 낮고 약한 사람들에게 부어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되새기는 절기입니다. 그분의 십자가가 이렇게 선명하게 서 있는데,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을 무엇으로 더 증명해야 합니까? 

하나님의 은혜가 온 땅에 가득하지 않습니까?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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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1-19


1921년에 세상을 떠난 벤자민 워필드 박사는 무려 34년 동안 프린스턴 신학교에서 목회자들을 가르치며 훌륭한 신학자로서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의 저서인 ‘성경의 영감과 권위’는 지금까지도 많음 목회자들에게 읽혀지는 중요한 책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가 겪었던 아픔과 사랑의 헌신에 대하여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는 1876년에 애니와 결혼을 했습니다. 행복의 꿈을 안고 그들이 신혼여행을 떠났던 곳은 독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신혼여행에서 아내인 애니는 그만 번개에 맞아 영구적인 불구자가 되고 맙니다. 워필드 박사는 그녀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무려 39년 동안 그녀의 곁을 떠나지 않으며 간호했습니다. 심지어 학기 중에도 그녀의 곁을 2시간 이상 비운 적이 없다고 합니다.

한 남자가 한 여자에게 39년 동안 헌신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그 인내와 사랑은 그가 강의했던 모든 강의와 그가 남긴 모든 신학적 업적보다도 숭고합니다. 왜냐하면 그는 신학자이기 전에 한 사람의 크리스천으로 주님을 닮은 삶을 우리에게 남겨 주었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추수감사절입니다. 내게 가장 감사한 일이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무엇보다 사랑하고 섬길만한 사람들이 곁에 있다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신앙은 말이 전부가 아니라는 가르침을 성경에서 자주 확인하면서도 말로 신앙을 다하려는 우리의 부족함을 보곤 합니다. 사랑받을 만한 존재, 우리를 사랑하는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보람 있고 행복한 일은 될지언정 상 받을 일은 되지 못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사랑은 항상 되갚을 수 없는 존재들을 향하여 ‘낭비’되는 사랑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 사랑에 대한 ‘상’을 하나님께 바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허물이 많은 사람을 사랑하십시오. 갚을 길이 없는 사람을 섬기십시오. 아무도 기도해주지 않을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십시오. 하나님께 받은 은혜가 있다면, 그래서 진심으로 하나님께 감사하다면 우리는 그런 삶을 살아야 합니다.

사랑은 무례하지 않다고 하였습니다. 감사하지 않는 것이 결국 무례함이니 사랑이 없기에 감사도 없는 것이겠군요. 오늘은 서로 서로 감사하다는 말을 많이 하도록 합시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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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1-12


좋은 신앙을 가지기 위해서는 좋은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세월을 받아내면서 좋은 성품과 인격을 가지는 것이 신앙의 중요한 요소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될 때가 많았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신앙이 기도, 찬양, 예배와 관계된 것에서만 나타난다고 생각하지만, 실상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일상을 살피시며 그에 합당하도록 은혜를 주십니다.

때문에 아무리 열심히 구해도 삶에서의 변화가 없으면 신앙은 더 이상 자랄 수 없는 어떤 한계에 다다르게 되어 있습니다. 많이 기도하면서도 더 깊은 신앙의 차원으로 가지 못하는 많은 신자들이 바로 이러한 처지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때에는 열심히 기도하는 것보다 깊이 생각하는 것이 더 중요한 은혜의 방편이 될 수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는 까닭이 ‘고난의 십자가를 지게 하시기 위함’이라고 말합니다. 고난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십자가를 지는 것이 목적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결국은 부활의 영광이 되었던 것처럼, 신자의 고난도 은혜를 통하여 결국은 하나님의 영광이 되어야 합니다.

때문에 하나님은 ‘은혜’만을 추구하는 신자들을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은혜는 반드시 인격이 되어야 하고, 삶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더 큰 은혜를 마음껏 쏟아주실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은혜받기를 사모합니다. 그러나 은혜로 인하여 부여되는 새로운 신분과 책임에 대하여는 너무 무지한 것 같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과 일반으로 말하고 행동하면서도 전혀 그것이 자기의 양심에 거리낌이 되지 않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교회의 사랑하는 지체들은 이러한 무모함으로부터 돌이켜 하나님을 제대로 추구할 수 있는 신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전심으로 추구하십시오. 모든 삶의 영역에서, 특별히 우리의 마음의 중심에서 항상 하나님께 순종하려는 태도를 가지도록 합시다. 하나님에 대한 일반적인 상식조차 없는 일본의 사회에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버겁고 힘든 일인지 목사도 배워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포기하거나 타협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그러한 태도는 결국 우리의 은혜 없음이 될 것이며, 우리의 신앙생활을 더욱 힘빠지게 할 것입니다.

힘들어도 힘을 내어야 합니다. 자기를 돌아보고 항상 그리스도인답게 살기 위하여 노력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보십니다. 이 황무한 땅에서 몸부림치는 우리에게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기를 원합니다.


Posted by makari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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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1-05


시내가 모여 큰 강을 이루듯이 한 가정이 바로 서는 것으로부터 교회가, 사회가, 온 세상이 건강해집니다. 때문에 오늘 우리 교회에서 새로운 가정들이 탄생하는 것은 얼마나 기쁜 일인지 모릅니다.

정명훈+이설희 가정과 장수호+이선경 가정의 멋진 출발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풍성한 축복을 더하시기를 빕니다.

또한 온 교우들은 이 가정들이 앞으로 경건한 신앙과 바른 삶으로 하나님을 섬길 수 있도록 함께 격려하고 기도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신자의 삶은 개별적인 것이 아니라 공동체적인 것입니다. 혼자서는 아무리 잘해도 한계가 있습니다. 서로 보조를 맞추고 마음을 같이할 때에 좋은 영향력을 끼치고 하나님의 의를 이루게 됩니다.

그런 점에서 새 가정의 탄생은 기쁨이며, 동시에 좋은 부담입니다.

기도해야 합니다. 관심을 주어야 합니다. 좋은 모범을 보여야 하고, 때로는 훈계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지체들의 관심과 사랑으로 인하여 한 가정이 하나님의 뜻에 바로 서는 것은 이 세상에서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열매이며, 기쁨일 것입니다.

또한 새롭게 가정을 꾸린 지체들을 향하여 권면합니다. 더욱 성숙하게 생각하고 시간을 아껴 주님과 교회를 섬기십시오. 여러분의 섬김이 여러분의 축복이 될 것을 저는 확신합니다.

현대가 다 그러합니다만, 일본이라는 환경은 특히 좋은 환경을 이루기에 열악합니다. 삶의 환경은 좋을지 모르지만, 좋은 부부생활과 신앙생활의 모범을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대로 사는 가정이 귀합니다. 그런 가정생활을 통하여 우리는 이 세상에 하나님의 빛을 드러내고, 사람들을 복음으로 인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 사명을 지금 함께하고 있는 것입니다.

잠시의 관심으로 끝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사랑은 영원한 것이며, 끝까지 참고 인내하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교회가 무엇보다 행복한 가정의 축복들을 다 받기를 원합니다.


23 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 하니라

24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 창세기 2:23~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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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0-22


한 사람이 항해를 하다가 폭풍을 만나 무인도에 표류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해안을 둘러보다가 파선한 배로부터 해안까지 밀려온 물품들을 발견하고는 기뻐하며 이것저것을 모아서 작은 오두막을 마련하였습니다.

그리고는 날마다 하나님을 향하여 자신이 구조되게 해달라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그 무인도의 근방으로는 지나가는 배가 없었고, 여러 날이 지나도록 그는 희망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바다로 먹을 것을 구하러 나갔다가 돌아왔더니 그의 오두막이 불타고 있었습니다. 무엇인지 자연발화하여 그가 애지중지하며 살림살이를 모아왔던 오두막에 불을 붙인 것이었습니다.

그는 절망했습니다. 어떻게 앞으로 살아야 할 지 막막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는 모든 것이 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때에 저 멀리 수평선으로 배가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그는 구조되었습니다.

만약 그의 오두막이 불타지 않았다면, 그래서 높이 연기가 올라가지 않았다면 그는 계속하여 무인도에 남아야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의 오두막에 불이 나는 바람에 그것이 신호가 되어서 구조 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신앙의 속담에 ‘화가 변하여 복이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성경의 교훈으로 말하면, 참신자에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입니다.

때로 하나님은 기이한 방법으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그 방법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가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때때로 그분을 오해하거나 혼자 낙심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믿음이란 실망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성경의 이야기를 가만히 음미하며 읽어 보십시오. 실망의 환경을 이겨내지 않고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사람이 없습니다. 믿음의 선진들은 믿음을 지키기 어려운 때에도 믿음의 언행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인내를 통하여 그들의 믿음이 환경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만을 향한 것임을 증명하였고, 하나님은 이러한 믿음을 기뻐하시며 축복하셨던 것입니다.

환경은 변합니다.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신자의 믿음은 변함이 없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변함이 없는, 성실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우리가 기도할 때에 우리가 하나님을 향한 확신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만약 기도하면서도 의심하고 환경에 따라 변하는 마음으로 기도한다면 하나님은 이런 자의 기도를 듣지 않으실 것입니다. (약 1:6~7)

그래서 기도의 삶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힘만으로는 이 실망의 고비를 넘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이 친히 인도하시고 힘 주실 때에만, 우리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로 그 믿음으로 축복의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저는 우리 교회의 지체들이 기도에 불붙게 해달라고 갈망합니다. 그것이 바로 진정한 축복으로 나아가는 유일한 길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의 응답을 경험하기를 원합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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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0-15


한국의 반기문 외교부 장관이 유엔의 사무총장에 당선되었습니다.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상이 높아진 때문이기도 하지만, 여러 가지로 하나님의 섭리가 작용된 것 같습니다. 

선거를 앞두고 이번의 유엔사무총장은 아시아에서 나와야 한다는 의견이 힘을 얻었습니다. 때문에 오래 전부터 출마를 결정하고 준비작업을 해왔던 반기문 장관이 주요한 후보가 되었지만, 그의 라이벌로 출마를 결정했던 태국의 부총리, 수라키앗도 만만치 않은 강력한 후보였습니다. 사실 투표를 실행하면 누가 당선되게 될 지 불분명한 접전이 예상되었습니다. 그런데 태국에서 군부 쿠데타가 갑자기 일어나면서 수라키앗 부총리는 모든 정치적 근거를 잃어버리고 포기하게 되었고, 반기문 장관이 단독 후보가 되어서 이렇게 유엔사무총장에 당선된 것입니다.

북한과 미국이 대립의 각을 세우며 맞서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인이 유엔의 사무총장이 되었다는 것은 시대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사건일 것입니다. 어찌되었든지 간에 한반도에서의 전쟁을 억제할 수 있는 또 하나의 힘을 갖게 되었고, 반기문 장관을 통하여 보다 다양한 평화의 노력을 유엔의 무대에서 시도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 일하십니다. 역사의 주권은 하나님의 손에 있어서 모든 것이 사람의 뜻대로 되는 것처럼 보여도 실상은 하나님의 깊은 섭리 가운데서 움직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반기문 유엔총장의 당선이 한반도를 위한 하나님의 섭리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을 중보해야 하는 사명이 있고, 복음과 사랑에 있어 빚진 자의 심정을 가져야 마땅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하여 기도할 뿐 아니라, 바로 세상의 역사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가지고 그 역사 위에서 좀 더 선한 일들이 실현되기 위하여 헌신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조국의 교회에 부흥이 임하고 북한과의 관계가 하나님의 선하신 손길에 의하여 개선되며 주변 국가들과 선린의 관계를 가질 수 있도록 기도하는 것은 지금의 역사적 현실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고비는 기회가 되기 마련입니다. 저는 끝도 없이 악화되는 현실이 어쩌면 북한의 폐쇄적인 문을 단번에 여시기 위한 하나님의 경륜이 아닐까 조심스레 기대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 일이 그렇게 아름다운 결말로 가기까지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좀 더 깊은 기도로 중보해야 할 것입니다.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자기의 틀을 깨뜨리고 주님의 마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역사(history)를 그분의 이야기(his story)로 인식하고 기도의 손을 통하여 하나님과 함께 세계를 경영하는 것은 ‘왕 같은 제사장’으로 세상을 사는 저와 여러분의 합당한 권세입니다. 원대한 기도를 하십시다. 입을 크게 열면 그분이 채우실 것입니다. 때문에 저는 여러분이 개인적인 기도와 함께 넓은 중보기도의 세계로 초대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샬롬~


Posted by makari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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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0-07


누구의 인생에나 2% 부족한 무언가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부족을 채우기 위하여 고군분투(孤軍奮鬪)하며 살아갑니다. 그 부족이 우리를 행복하지 못하게 발목 잡는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가만히 생각해 봅시다. 2% 부족하다는 것은 반대로 98%의 채워진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까? 왜 2%의 부족만 보고, 98%의 채움은 보지 못합니까?

우리는 나와 뜻이 맞지 않는 한 두 사람 때문에 낙심할 때가 많지만, 실상 우리의 주변에는 힘이 되어주는 사람들이 훨씬 많이 있습니다. 돈은 없어도 돈으로 살 수 없는 건강이 있고, 세상에 이름을 날리지는 못했어도 나만 바라보는 아내(혹은 남편)가 있고, 좋은 교회가 있고, 좋은 이웃이 있지 않습니까! 

이만큼 가진 사람도 흔치 않은데, 우리는 계속해서 무언가를 더 가져야만 행복을 살 수 있다는 착각에 사로잡혀 있지는 않습니까? 

맑은 10월이 다 가기 전에 마음을 열고 소중한 행복의 씨앗들을 나의 주변에서 찾아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네 잎 클로버의 의미는 ‘행운’이지만, 세 잎 클로버의 의미는 ‘행복’이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사람들은 행운만을 찾다가 지천에 널려있는 행복의 소중함을 발견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 식구들은 그렇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요즘 교회를 보면서 참 감사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어려운 형편이지만 자기의 역할을 묵묵히 감당해주는 지체들이 대견합니다. 교회를 위하여 걱정하고 기도하는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조금씩이지만 변화는 일어나고 하나님의 은혜는 깊어가는 것을 느낍니다.

계절은 이제 조금씩 추워져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에는 이제 조금씩 봄이 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더욱 열심을 다해 섬겨야 하고, 조심해서 이 소중한 은혜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교회를 위해, 지체들을 위해 기도해 주세요. 부흥을 위해, 예배의 회복을 위해, 영적 감동과 성령의 충만을 위해 기도해 주세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사용하시는 교회가 되도록, 우리의 인생이 허송세월로 채워지지 않고 보람 있는 비전의 내용을 가지도록 기도해 주세요.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그분은 지금도 우리를 통하여 당신의 선하신 뜻을 세상 가운데 이루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이러한 하나님의 뜻은 반드시 성취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을 신뢰하고 믿음을 굳게 합시다. 감사를 배우도록 합시다. 힘든 줄 압니다. 그러나 그 힘듦조차 우리에게 유익이 될 것을 믿고 감사합시다.

교회의 모든 지체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여러분의 인내와 작은 헌신들이 여기까지 교회를 지켰습니다. 그러나 그 열심도 결국 주님이 주신 것을 깨닫기를 바랍니다. 사랑합니다. 우리 같이 좋은 날을 봅시다. 샬롬~



Posted by makari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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